시나이 산에서 야훼 하느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한 열 가지 말씀 또는 율법.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밝혀 주는 말씀들로, 하느님이 "손수"(출애 31, 18 ; 신명 5, 22) 쓴 계명이다.
십계명은 성서의 요약인 동시에 하느님 의지의 총괄이며, 교회의 핵심 사상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집약한 그리스도교의 대강령이다. 또 그리스도교 윤리의 기초이며 모든 인간 도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십계명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열 말씀"(출애 34, 28 ; 신명 4, 13 ; 10, 4)을 뜻하는데, 출애굽기 20장 1-17절과 신명기 5장 6-21절에 두 가지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성서 안에서의 위치와 특성〕 출애굽기의 십계명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 이루어지는 '시나이산의 계약' (출애 19, 1-24, 11)에 포함되어 있고, 신명기의 십계명은 모세가 모압 평야에서 광야에서의 40년을 회고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문맥 속에 수록되어 있다. 십계명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기원 문제는 학자들 사이에 많은 견해 차이가 있으므로, 그 기원과 전승 과정을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기원과 관련하여 분명한 사실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나오는 두 가지 형태의 십계명은 20여 곳에서 작은 차이들을 보이고있는데, 특히 안식일 계명의 제정 근거는 그 차이가 크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느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이렛날 쉬셨기 때문(20, 11)이라고 제정의 이유를 설명한 반면에, 신명기에서는 하느님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켰으므로(5, 15)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열 손가락을 꼽으면서 쉽게 기억하도록 열 마디의 간단한 말로 되어 있다. 현재 십계명 가운데 제1 계명과 제6~9 계명들은 짧고 다른 계명들은 길게 되어 있는데, 본래는 긴 계명들도 이 계명들처럼 짧았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또 제3 계명(안식일)과 제4 계명(부모 공경)만이 긍정문으로 되어 있고, 다른 계명들은 "···하지 말라"는 부정사(לא)를 동반한 부정문으로 되어 있다. 이는 "...하지 말라"로 금지하는 것을 제외한 것들은 "···하"는 수많은 긍정적인 명령들을 포함함을 의미한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상 생활 중 늘 읽고 외우던 말씀이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정기적으로 모든 회중들 앞에서 십계명을 낭독하였는데, 특히 7년마다 찾아오는 안식년에 실시되는 계약 갱신제에서 낭독하였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신명 31, 10-13).
출애굽기나 신명기의 십계명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으므로, 교회에 따라 그 분류가 조금씩 다르다. 가톨릭 · 성공회 · 루터 교회는 프로테스탄트에서 제1~2 계명(다른 신 · 우상 숭배 금지)으로 분류한 것을 하나의 계명으로 간주한 반면에, 프로테스탄트에서 제10 계명으로 분류한 것을 둘로 나누어 제9 계명과 제10 계명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유대교 랍비들은 2절 · 3-6절 · 7절 · 8-11절 · 12절 · 13절 · 14절 · 15절 · 16절 · 17절로 구분하고, 가톨릭 교회는 3-6절 · 7절 · 8-11절 · 12절 · 13절 · 14절 · 15절 · 16절 · 17a절 · 17b절로 구분한다. 그러나 원형에 가장 충실하다고 할 수 있는 동방 교회와 프로테스탄트에서는 3절 · 4-6절 · 7절 · 8-11절 · 12절 · 13절 · 14절 · 15절 · 16절 · 17절로 십계명을 구분하고있다.
〔내용과 정신〕 서언-해방의 하느님 : 서언은 십계명 전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출애 20, 2 ; 신명 5, 6). 이 서언은 출애급의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고 해서 '역사적 서언' 이라고 불린다. 십계명을 선포하는 하느님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로부터 이끌어 내어 해방하신 하느님이다. 이 서언은 하느님의 성격을 규정함과 동시에 인간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데, 즉 하느님은 해방의 하느님이요 인간은 종으로 살 수 없는 해방된 존재라는 성격 규정이다. 이 역사적 서언에 이어 나오는 열 가지의 계명은 서언에서 천명하고 있는 해방의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서언은 모든 사람의 해방을 말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억눌림당한 자들의 해방을 강조하였고, 서언에 이어 나오는 열 가지 계명도 전반적으로는 인간해방을 말하지만 특히 억눌린 자와 약자 등 민중의 해방을 말하고 있다.
제1 ~2 계명-하느님 사랑 :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승하여라"라는 제1 계명은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라는 배타적인 요구이다. 그 이유는 첫째, 이 세상에서 야훼 하느님만이 참 신이요 참 해방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다른 신들은 참 신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을 해방시키는 신도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인간을 속박하고 노예화하며 비인간화하는 신들이므로 그러한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이다. 둘째, 여기에는 단순히 초자연적인 신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격화도 포함된다. 출애급 당시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신으로 추앙되었고, 로마의 황제들과 일본의 천황들도 신격화되었다. 또 직접적으로 신이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인간 권력의 절대화도 사실상 인간의 신격화를 의미한다. 역사상 존재하였던 독재자들은 인간 위에 군림하면서 신적인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사실상의 신적인 존재들이었다. 이러한 인간 권력의 절대화는 인간을 비인간화하고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야훼 이외의 신들뿐만 아니라 인간 권력의 절대화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1계명이 주는 교훈이다.
또한 이 계명은 모든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계명이다. 이스라엘 주변의 종교들은 모두 신상을 만들어 섬겼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금하였는데, 이는 하느님은 인간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의미한다. 인간이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신은 이미 신이 아니며, 인간보다 못한 쇠붙이나 나무토막에 불과한 거짓 신이다(이사 44, 9-20). 인간보다 못한 물건을 섬긴다는 것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물건 이하의 존재로 격하시키는 인간 모독 행위이다. 우상 숭배는 어떤 형상을 섬기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서에서는 "탐욕은 우상 숭배"(골로 3, 5)라고 하였다. 돈 · 물질 · 명예 · 권력, 심지어는 부모나 자식까지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 숭배이다(마태 10, 37). 하느님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은 이러한 것들을 절대화한다는 말이며, 따라서 절대적이 아닌 것을 절대화함으로써 우상 숭배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점이나 마술 등의 미신은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예배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말이나 행위로 하느님을 시험하는 행위 · 독성 · 성직 매매 등은 제1 계명으로 금지된 불경죄이며, 무신론은 제1 계명을 거스르는 죄이다.
제2 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는 인간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계명이다. 고대인들은 이름이 그 소유자의 성격이나 기능을 나타낸다고 믿었고, 이름을 알면 그와 교제하고 그를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인간에 의하여 조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조종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제2 계명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이름을 모욕적으로 부르지말라는 것이며, 거짓을 입증하려고 하느님을 내세우는 거짓 맹세 역시 하느님을 거스르는 중대한 과오이다.
제3 계명 -하느님의 안식과 인간의 안식 :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이 안식일 계명은 하느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말하는 제1~2 계명과 인간 상호간의 수평적 관계를 말하는 제4~10 계명을 잇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이 계명은 수직적인 측면과 수평적인 측면 모두를 담고 있지만, 출애굽기(20, 8-11)와 신명기(5, 12-15)에 나타나 있는 안식일 계명은 수직적인 측면보다 수평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일과 안식을 동시에 긍정하고 있다. 안식일의 일차적인 목적은 인간을 휴식 없는 노동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 계명은 특히 노동에 시달리는 종과 나그네, 심지어 농사에 동원된 가축들의 휴식에 대해서까지 지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안식일의 이차적인 목적은 창조주 하느님, 해방의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다. 비교적 후대 문서에 속하는 민수기 28장 9절에서는 안식일에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규정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는 안식일은 본래 단순한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에서 출발해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하느님께 예배도 드리는 날로 의미가 확정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인간의 안식을 위한 날이다. 그러나 인간의 참 안식은 해방의 하느님으로 부터 오기 때문에 하느님의 창조 행위와 구원 행위에 대해 감사하고 예배하지 않고서는 참다운 안식을 얻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으로부터의 쉼과 예배의 결합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4~10 계명-인간 사랑 : 이 계명들은 공동체 내의 인간 관계에 대한 계명이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를 위한 기본적인 사회적 · 도덕적 요구들이 열거되어 있다. 제4 계명 "부모에게 효도하여라"는 사회의 기초인 가정의 유지를 위한 계명이며,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를 말한다(에페 6, 1-3 ; 골로 3, 20 ; 부모 학대 금지에 대해서는 출애 21, 15. 17 ; 레위 20, 9 ; 신명 21, 18-21 ; 27, 16). 여기에서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모는 모든 부모를 의미하지만 특히 늙고 병든 약자로서의 부모이다. 노년의 부모는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자에 속하며, 부모 공경은 결코 자기 부모에게만 국한될 수 없다. 모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라는 명령이다(레위 19, 32).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제5 계명은,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므로 살인을 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향한 도전임을 의미한다. 이 살인 금지는 전쟁에서의 살인 행위를 포함하지만, 정당 방위까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특히 문제가 되는 살인 행위는 낙태 수술로, 일 년에도 수백만의 생명이 소리 없이 자궁 안에서 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모든 살인 행위를 금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강자의 손에 죽어 가는 약자들 즉 고아, 과부, 가난한 자 등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나아가 이 계명은 인간의 존엄성과 창조주인 하느님께 대한 존경에서 크게 어긋나기에 고의적인 안락사는 물론 정의와 희망과 사랑에 크게 어긋나는 자살을 금지한다.
"간음하지 마라" 는 제6 계명은 성(性)이 향락의 도구로 전락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결혼의 순결성을 보존하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간음한 사람은 돌로 쳐죽이도록 규정하고 있다(신명 22, 24 ;레위 20, 10). 이 계명은 모든 성적 타락 행위를 금지한 계명이므로 자위 · 사음 · 춘화 제작 및 배포 · 동성애를 금지하며, 임의적으로 출산을 조절하려는 불임 수술과 피임 역시 이 계명에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리고 간음 · 이혼 · 일부다처제 · 내연의 관계는 혼인의 존엄성을 크게 손상하는 것이므로 이 계명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 계명에는 성적 타락의 가장 큰 피해 대상인 약자로서의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도둑질을 하지 마라" 는 제7 계명은 인간(출애 21, 16)이나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을 모두 금하고 있다. 도둑질은 자기 몫이 아닌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이다. '도둑질'이라고 하면 일차적으로 좀도둑을 연상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공무원이나 공공 기관 근무자들의 공금 횡령이다. 이 계명은 특히 불법적으로 도둑질하는 강자들로부터 도둑질당하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계명이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는 제8 계명은 모든 거짓을 몰아내고 정의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계명으로, 모든 거짓말을 금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올바른 재판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즉 거짓 증언을 해서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는 공정하지못한 재판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거짓 증인을 동원하여 재판을 악용하는 사람들은 부자나 강자들이 대부분이다.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는 제9 계명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는 제10 계명은 제6~7 계명과 상통하는 계명이다. 도둑질은 탐심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자기 몫 이상을 가지려는 행위는 탐심에서 나오며, 모든 사람은 탐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자나 권력자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탐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이사 5, 8 ; 아모 2, 6-8). 가난한 사람은 남의 것을 탐내도 얻기가 쉽지 않지만, 부자나 권력자는 남의 것을 탐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는다. 이 계명들은 모든 탐심에 대한 금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부자나 강자들의 탐심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교회에서의 사용〕 십계명의 분류와 순서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해 왔다. 그러다가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354~430)가 십계명을 분류한 뒤부터 가톨릭 교회의 전통이 되었고, 또 그에 의해 십계명이 예비 신자들과 신자들의 교리 교육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15세기에는 십계명을 운율을 띤, 기억하기 쉽고 긍정적인 형태의 문구로 표현하는 관습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문구는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십계명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요구 등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처음 세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관련되고, 다른 일곱 계명은 이웃 사랑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아우구스티노가 "십계명 자체도 두 개의 돌판에 담겨서 주어졌습니다. 말하자면 세 계명이 한 판에 쓰여졌고, 일곱 계명은 다른 판에 쓰여졌던 것입니다"(《설교집》 33, 2, 2)라고 한 언급에 근거한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신자들은 십계명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며, 의화된 이들도 이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DS 1569~1570).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를 재확인하였다. "주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 주님에게서 만민을 가르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것이다. 그 목적은 모든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고 계명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교회 24항).
1992년에 발행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소개하면서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그리스도교 윤리를 설명하고 있다. "십계명은 각 '조문' 또는 계명' 이 전체와 관련을 맺는 유기적 단일성을 이루고 있다. 계명 하나를 어기는 것은 율법 전체를 위반하는 것이다" (2079항). 그리고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의무들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므로, 그 기본 내용들에서 중대한 의무들을 계시해 준다. 그 계명들은 본질적으로 불변하며, 언제 어디서나 계명을 지킬 의무가 있다. 아무도 이 의무를 면제해 줄 수 없다"(2072항)고 하였다. 즉 계명의 준수는 의무와도 관련되어 있으며, 그 자체로 가벼운 문제에서도 의무를 지키도록 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다섯째 계명으로 금지되어있는 욕설은 그 자체로 중죄는 아니지만, 상황이나 의향에 따라서 중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의 미〕 십계명은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청사진이요 이상적인 공동체를 위한 대강령이었다. 그러나 십계명은 결코 이스라엘 공동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청사진이며 강령이다. 십계명은 특히 강자에게 눌리고 착취당하는 약자들을 해방하고 보호함으로써 자유와 정의, 평등과 평화,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십계명은 불의와 폭력, 착취와 불평등으로 얼룩진 세계에 대한 혁명 선언인 것이다. 십계명의 역사적 배경이된 출애급 사건이 혁명적이었던 것처럼 십계명은 개혁적이요 혁명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진 인류 공동체의 청사진이요 대강령인 것이다. (→ 계명)
※ 참고문헌 노희원, 《최근의 십계명 연구》, 도서출판 은성, 1995/ 임태수, <십계명, 하느님 나라의 대강령>, 《성서와 함께》 214호(1994. 1), pp. 62~70/ 장일선, 《십계명 해설》, 한국 기독교 장로회총회 교육원, 1995/ A. Alt, Origins of Israelite Law, Essays on Old Testament History and Religion, trans. by R.A. Wilson, Garden City, New York, 1966, pp. 79~132/ R.F. Collins, Ten Commandments, 《ABD》 6, pp. 383~387/ F. Crüsemann, Bebahrung der Freiheit : Das Thema des Dekalogs in sozialgeschichtlicher Perpektive, Kaiser Traktate 78, Munich, 1983/ W.J.Harrelson, Ten Commandments, 《IDB》 4, pp. 569~573/ F.-L. Hossfeld, Der Deklog : Seine späten Fassungen, die originale Komposition und seine Vorstufen, 《OBO》 45, Freiburg und Göttingen, 1982/ B. Lang, Neues über den Dekalog, 《TQ》 164, pp. 58~65/ C. Levin, Der Deklog am Sinai, 《VT》35, pp. 161~191/ G.E. Mendenhall, Ancient Oriental and Biblical Law,《BA》 17, pp. 26~45/ L. Perlitt, Deklog I, 《TRE》 8, pp. 408~413/ J.Vincent, Neuere Aspekte der Dekalogforschung, 《BN》 32, pp. 83~104/ 가톨릭대학 교리 사목 연구소 · 주교 회의 교리 교육위원회 역, 《가톨릭 교회 교리서》3 · 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任太秀〕
십계명
十誡命
〔히〕עֲשֶׂרֶת הַדִּבְּרים · 〔그〕δεκά-λογοι · 〔라〕decalogus · 〔영〕Decalogue, Ten Command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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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은 야훼 하느님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한 열 가지 율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