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

公所

〔라〕satio (secundaria) · 〔영〕(secondary)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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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를 기다리는 공소 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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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를 기다리는 공소 신자들.


본당 신부가 상주하지는 않으나 본당에서 소속 신자 집단으로 인정한 교우촌 또는 교우들이 집단적으로 살고 있는 소도시의 한 장소. 본당 신부는 관할 공소들을 해마다 적어도 봄, 가을에 두 번 방문하고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어야 하였다. 성 사, 특히 고해성사를 주거나 받는다는 뜻에서 이 방문을 판공(判功)이라 불렀고 가을에 하는 것을 '가을 판공' 으 로, 봄에 하는 것을 '봄 판공' 으로 구별하였다. 성사와 미사 집전은 공소의 강당(講堂, oratorium parvum)에서 거 행되었고, 강당이 없을 경우에는 일반 사가(私家)에서 성사를 주었는데, 이때 그 집을 공소집이라 불렀다. 봄 판공보다 가을 판공이 더 의무적이었다. 왜냐하면 이때 는 농사일이 거의 끝나 성사 받기에 적절한 시기로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본당 신부의 공소 순방은 이런 순서로 진행되었다. 본 당 신부는 출발일이 결정되면 보름 전에 공소 도착 날짜 와 일정을 알리고 또한 성사 받을 준비를 잘 하도록 권 하는 서한을 공소에 보내야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배정 기(排定記, Litterae circulares)였다. 신부가 공소에 도착하 면 공소 회장은 미리 작성한 공소 인명록을 본당 신부에 게 제출해야 하였는데, 거기에 신자 가족 전원의 명단은 물론 각자의 교리 지식의 정도, 그간 받은 성사 또는 조 당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해 놓아야 하였다. 이것이 교적(敎籍)의 전신(前身)이 되었다. 본당 신부는 고해성사에 앞서 직접 교리 문답에 관한 시험을 치러야 하였다. 이것을 찰고(察考)라고 하였다. 찰고는 봄 판공 때는 하지 않아도 되었으나 가을 판공 때는 의무적이었다. 고해성사는 하루 30명을 넘어서는 안되었다. 그러므로 고해자가 30명을 넘으면 공소를 2 일 간, 60명이 넘으면 3일 간 치러야 하였다. 그리고 신 부는 그 공소를 떠나기 전에 영세자와 고해자 수를 잊지 말고 기록해 놓아야 하였다. 끝으로 교우들이 공소전(公 所錢, pecunia Kongso)을 바쳤는데, 모든 교우들은 공소 비용을 위해 공소전을 정성껏 바쳐야 하였고, 남은 것은 본당 신부가 본당 전체를 위해 임의로 사용할 수 있었다. 공소 순방이 계속되는 경우 그 안내와 여비는 다음 공 소에서 담당해야 하였다. 본당 신부가 떠나면 다음 판공 때까지 공소 회장이 본당 신부를 대리해서 공소에 관한 모든 일을 일체 책임져야 하였다. 예를 들면 교우 자녀 가 태어나면 3일 이내에 세를 부쳐야 하고, 혼인성사가 있으면 입회해야 하였고, 주일과 축일이면 교우들을 모 아 함께 첨례(오늘의 공소 예절)를 바쳐야 하였으며 공소 건물의 관리까지 맡아 해야 하였다. 그간 공소수는 사제수와 본당수의 급증에 따라 현저하 게 줄었다. 예컨대 서울대교구의 경우, 1912년 본당이 41개, 공소가 631개였던 것이 1992년에는 본당이 156 개, 공소가 14개로,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즉 1912년에는 공소가 본당보다 15배나 많았는데 1992년 에는 오히려 공소수가 본당수의 10%에 불과하게 되었 다. 뿐더러 그간의 교통 수단의 놀라운 발전은 본당 신 부로 하여금 공소를 연 2회만이 아니고 수시로 방문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현재의 공소 는 옛날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 본당 ; 본당 사목 ; ⇦ 강당) ※ 참고문헌  Coutumier de la Mission de Corée, Seoul, 1887, pp. 37~43/ Directorium Missionis Taikou, Hongkong, 1914, pp. 13~16/ Directorium Missionis de Seoul, Hongkong, 1923, pp. 42~48/ Directorium Commume Missiomm Coreae, Hongkong, 1932, pp. 28~31/ 尹亨重, 《한 국 가톨릭 지도서》, 가톨릭출판사, 1963, pp. 12~13, 194~204. 〔崔奭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