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수입의 10분의 1을내는 헌금.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종교와 문화에서도 십일조가 있었다. 그러나 성서에 언급된 십일조의 본질과 기능을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십일조에 관한 성서 본문의 언급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서 행해진 관습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에서의 십일조〕 십일조를 걷는 관습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매우 보편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기원전 6세기의 문서는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십일조 관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물론 기원전 6세기 이전에도 십일조 관습이 고대 근동 지역에 있었는데, 이 문서에 의하면 생산되는 농산물 · 축산물 · 나무 · 금 · 은 등의 10분의 1, 즉 십일조가 신전 유지를 위하여 거두어졌다. 곡식 등은 신전 창고에 보관되었고 가축은 신전의 도장으로 표시해 놓기도 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십일조를 돈으로 바꾸어 거두거나 보관하기도 하였다(2역대 31, 5-12). 소나 양 등은 희생 제사를 위하여 주로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곡물은 사제나 신전 관리인 등 신전의 인력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십일조는 신전의 십일조 담당 관리인들에 의해서 거두어졌고 이들도 십일조를 내야 했다.
기원전 14세기경의 우가리트 문서에는 십일조가 왕이 거두어서 자신의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세금으로 묘사되어 있다(1사무 8, 15-17). 그러나 이것은 십일조가 신전과는 무관한, 왕궁 유지 세금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왕궁과 신전은 매우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고, 이 둘은 왕의 통치 영역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궁에 의해서 신전이 세워지고 유지됨에 따라 신전에 바쳐야 할 십일조가 왕에게 바쳐지게 되었고, 왕은 이것을 자신에게 속한 신전들의 유지와 운영을 위해서도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마카베오서 상권에 의하면, 기원전 2세기경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들은 왕궁의 수입을 위하여 공물의 삼분의 일세 · 과일의 이분의 일세 · 조공 · 소금세 · 왕관세 등과 함께 십분의 일세를 거두었다고 언급하였다(10, 31 ; 11, 35).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십분의 일 세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다른 종류의 세금들과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지 않다.
〔구약성서〕 성조사 : 창세기의 성조 이야기에서 십일조에 관한 언급은 아브라함(창세 14, 20)과 야곱(창세 28, 22) 이야기에 나타나 있다. 먼저 아브라함은 엘람 왕 등 4개 국 동맹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오는 길에 마중 나온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의 1을 주었다. 멜기세덱은 살렘, 즉 예루살렘(시편 76, 2)의 왕이자 사제였다. 야곱은 하란으로 가는 도중 베델에서 제단을 쌓은 뒤 모든 소득의 10의 1을 하느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하였다. 예루살렘과 베델은 왕들에 의해서 성전이 세워졌던 곳이며,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였다. 십일조에 관한 이 두 전승의 연대를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족장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바빌론 유배 시기 이전 왕조 시대의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전승들을, 왕들이 성전 유지를 위해서 십일조를 거두고 사용한 것에 대한 원인론적인 언급으로 여기기도 한다.
신명기 : 신명기에는 밭에서 거둔 소출, 즉 곡식 · 포도주 · 기름의 10의 1을 십일조로 드려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가축이나 광산물 등은 그 대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함께 모여 지정된 장소인 성전이 있는 곳, 즉 중앙 성소에서 십일조로 구별된 것들을 먹으며 일종의 가족 축제를 벌여야 한다(14, 22-29)이때 레위인들도 초대되어야 하지만, 십일조가 단순히 이들을 부양할 목적으로 구별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 지정된 장소가 너무 멀어서 십일조를 운반하기 어려울때에는 돈으로 바꾸어 지정된 장소에 가서 축제를 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십일조의 해' 라고 불리는 매 3년째에는 자기가 사는 성안에 십일조를 저장해 두었다가 레위인이나 이방인, 고아, 과부들을 위해 사용하여야 했다(14, 28-29 : 26, 12-14). 자기 소유의 땅을 가지고 있지않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십일조를 사용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레위인은 사제보다는 가난한 자로 취급되었다. 신명기는 이와 같이 십일조를 성전 유지를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빈민 구제나 가족 축제 형식으로 소모할 것을 규정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명기의 견해는 십일조가 성전에 바쳐지거나 성전 유지를 위하여 사용되었다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요시야 시대의 종교 개혁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는데, 즉 요시야 당시 신명기적 종교 개혁을 통하여 지방 성소와 산당 등이 폐지되었지만, 십일조를 성전이나 성소에 바치던 관습은 계속되어 가족 축제 형태로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왜 십일조가 중앙 성소의 유지를 위해서 바쳐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또 다른 견해는 신명기의 십일조 규정이 현실적으로 실행되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이상적으로만 공포되었다는 것이다.
신명기에서 십일조의 대상은 곡식에 제한되어 있지만, 십일조가 드려질 때 소와 양의 맏배도 함께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14, 23) 따라서 곡식의 십일조와 짐승의 맏배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서 가능한 대답은 곡식의 십일조와 짐승의 맏배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곡식의 경우 첫 열매를 더 정확하게 규정하기 위해서 십일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짐승의 경우에는 맏배가 십일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일시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맏물로 거둔 곡식, 포도주, 기름, 처음 깎은 양털" 을 제사장들에게 바치라는 신명기의 규정(18, 4) 때문이다. 한편 신명기의 십일조 규정은 밭에서 나는 것 중 '곡식 · 포도주 · 기름' 을 그 대상으로 국한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사실 신명기가 세 종류에만 십일조를 국한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십일조의 대상을 땅에서 나는 모든 소산물로 간주하고 있는 것같다(레위 27, 30). 왜냐하면 이 세 종류는 이스라엘 땅에서 나는 주요 농산물이고, 이것들은 이 농산물의 대표적인 종류로 쓰여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명기의 규정은 독특하지만, 십일조가 땅의 소출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임을 인정하는 수단이요, 하느님의 지극한 관심의 대상인 약자를 보호하는 헌물임을 의미하고 있다.
제사 규정 : 제사에 대한 언급에서 십일조 규정은 레위기 27장 30-33절과 민수기 18장 21-32절에서 발견되고 있다. 전자에 의하면, 땅에서 나는 곡식이나 열매뿐만 아니라 소나 양 등 목자가 키우는 모든 짐승까지도 10의 1을 바쳐야 한다. 또 곡식이나 열매의 경우 이미 바친 십일조의 일부를 무르려면, 그 값의 5분의 1을 더 얹어 물어내야 한다(레위 22, 14) 짐승의 경우 깨끗한 것으로 분류된 것을 십일조로 바치되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관없이 매 10번째가 십일조에 해당되며, 결코 다른 것과 바꿀 수가 없다. 만일 다른 것으로 바꾸려면 이미 바친 것과 바꾸려고 한 것 둘 다 십일조로 바쳐야 한다.
레위기에서 십일조는 야훼께 바쳐야 한다고 가르치고있다. 야훼께 바쳐진 제물은 결국 사제의 몫이 되기 때문에(레위 23, 20 : 민수 5, 8), 십일조는 사제들에게 주어지고 성전의 재산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수기 18장 21-32절은 십일조를 레위인들이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레위인들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였고 물려받을 유산도 없고 만남의 장막에서 예배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가운데서 거두어진 십일조 전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가운데 10분의 1을 아론 계열의 사제들에게 주어야 했다. 레위기에서와는 달리 민수기에서는 십일조의 대상이 곡식 · 포도주 · 기름 등에 한정되었고, 짐승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와 같이 제사 규정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십일조 규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제사 규정이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유래된 제의 관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느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바벨론에서의 귀환 이후 시대 : 기원전 537년부터 귀환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은 십일조가 성전 유지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여겼다. 말라기서에서 예언자는 백성들이 십일조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였다(3, 9-10). 백성들은 소출의 10의 1을 성전 곳간에 가져와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비되는 양식으로 사용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속였다는 것이었다. 느헤미야서에 의하면 밭에서 나는 소출의 십일조는 레위인들에 의해서 거두어들여졌고, 그중 10분의 1은 성전 창고에 보관되어 성전 양식 즉 아론 계열의 사제들을 위해서 사용되었다(10, 38-39 ; 12, 44)고한다. 레위인들이 받을 몫인 십일조가 거두어지지 않았을 때, 그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고 성전 일을 포기하여야 했다(13, 10).
기원전 225~175년경에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비트서에는 세 종류의 십일조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1, 6-8). 첫 번째 십일조는 모든 생산물의 10의 1을 바치는 것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레위인들에게 주어졌다. 두 번째 십일조는 안식년을 제외한 6년 동안 해마다 또 다른 십일조를 돈으로 바꾸어서 예루살렘 순례 때 예루살렘에서 비용으로 사용하였다. 세 번째 십일조는 3년마다 재산의 10분의 1을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마카베오서 상권에 보면, 유대인들은 마카베오가(家) 독립 전쟁 기간 중에 십일조를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여 바쳤다고 한다(3, 49).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히고 더럽혀지자, 유대인들은 십일조뿐만 아니라 제복과 첫 수확물을 마카베오가 군인들이 단식 기도를 하고 있던 미스바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구약성서의 십일조에 관한 언급은 다양하며, 여러 시대의 관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십일조는 일반적으로 성전 유지와 관계가 있으며, 십일조의 징수 방법과 보관 등에 있어서 고대 근동의 십일조 관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약성서〕 신약에서 십일조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마태오의 복음서 23장 23절에서 예수는 바리사이파사람들이 박하 · 시라(蒔蘿) · 소회향(小茴香) 등에 대해서까지 십일조를 바치면서 율법을 준수하지만, 정의 · 자비 · 신의 등의 율법은 소홀히 하고 있다고 책망하였다. 이러한 예수의 지적은 루가의 복음서 11장 42절에도 나타나 있다(루가 18, 9-14 참조).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모든 푸성귀는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와 하느님 사랑은 제쳐놓는구나. 그런 것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지만 이런 것들도 실천해야 했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7장 4-10절에서도 십일조가 언급되어 있는데, 아브라함이 전리품의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으며, 레위인들은 십일조를 거둘 권한을 율법으로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구약의 십일조를 언급한 목적은 멜기세덱과 레위인들의 사제직을 실례로 들면서 예수의 영원한 사제직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지 초대 교회 시대의 십일조를 언급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의 규정〕 유럽 지역이 그리스도교화되면서 십일조는 교회의 관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십일조로 바쳐진 돈 · 곡식 · 가축 등은 성직자들의 생계를 뒷받침하고 교회를 유지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사용되었다. 그래서 6세기경에는 교회의 의무 규정으로 명시되었다. 그러나 십일조의 남용을 막기 위하여 교황 그레고리오 7세 (1073~1085)는 평신도들이 십일조를 차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으며, 제3차 라테란 공의회(1179)에서는 평신도에 대한 십일조 의무의 강요를 금지시켰다. 그 후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 십일조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규정이 정해졌고, 제1차 리용 공의회(1245)에서는 사라센인들로부터 예루살렘 성지를 구원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주교들과 추기경들은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낼 것이므로 성직자들도 모든 수입의 5%를 매년 세금으로 내도록 하였다. 또 제2차 리용 공의회(1272)에서는 십자군 조직을 위하여 유럽의 국가들이 6년 동안 국가재정의 10분의 1을 걷도록 하였다. 이처럼 신자 각 개인에 대한 십일조 강조는 줄어들었으나, 교회에 어떤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때 그 기준은 항상 십일조에 두었다.
종교 개혁 시기에 루터(M. Luther, 1483~1546)는 군주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인정하였다. 사실, 가톨릭 교회는 물론 프로테스탄트 역시 교회 이익을 위하여 십일조를 거두었으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반발이 거세어졌다. 십일조가 교회 운영과 성직자들의 생활 및 성당 건축을 위한 주요 자금원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투명하지 못한 사용으로 일반 신자들에게 의혹도 주었기때문이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1789년의 대혁명 기간 중에 십일조 제도가 폐지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1887년에 폐지되었다.
〔현대적 의미〕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십일조는 하느님의 몫으로 구별되어 바쳐졌다. 신학적인 의미에서 모든 생산물과 그것을 내는 땅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요, 그에게 속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을 일상 생활에서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위는 구체적으로 십일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구별된 십일조는 성전 유지나 사회적 약자를 구제하기 위해서, 혹은 성전순례의 비용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교적인 목적으로 바치는 것은 십일조 외에 보상제 · 속죄제 · 친교제 등의 제물도 있었으나, 십일조는 특정한 제사와 관계없이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의무적으로 바쳐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구분된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십일조 규정들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십일조 규정에 내포되어 있는 신학적인 의미는 간과될 수 없다. 수입의 일부를 떼어 바침으로써 모든 생산의 근원과 주인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며 구별하여 바치는 헌금이나 헌물이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수입의 10분의 1에 못 미치거나 훨씬 더 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명시되어 있는 수입의 10의 1이라는 규정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행동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고, 그렇게 바쳐진 물질은 종교적인 목적과 사회적인 약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 봉헌 ; 헌금)
※ 참고문헌 R. de Vaux, Ancient Israel, New York, McGraw-Hill, 1965, pp. 140~141, 380~382, 403~405/ M. Weinfeld, 《ET》 14, pp. 1156~1162/ J.C. Wilson, 《ABD》 6, pp. 578~580. 〔千 사무엘〕
십일조
十一租
〔히〕מַעֲשֵׂר · 〔그〕δεκάτη · 〔라〕decimae · 〔영〕ti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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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아브라함은 마중 나온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