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 위 죽음 때문에 그리스도의 상징이 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보편적인 그리스도교의 표시이자 상징. 대속(代贖, redemptio)의 표상이자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한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십자가는 예수의 십자가 위의 죽음 전에는 사형을 위한 잔인한 도구였다. 기원전 6세기경부터 서기 4세기까지 십자가형은 사형(死刑)의 한 방법으로 페르시아와 셀레우코스 왕조, 카르타고와 로마 제국 내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 죽음과 부활로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리스도 생명의 표지가 되었다(1고린 1, 17-18 ; 필립 3, 18). 이로써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표지가 되었으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표지이다.
〔십자가 형벌〕 로마 제국의 형벌 : 로마 제국에서 가장 참혹한 사형 형태는 십자가형(crucifixio), 화형(crematio) , 맹수형(dammatio ad bestias) 등 세 가지였다. 일반적으로 로마 시민들은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지 않았지만, 노예와 노예 신분을 벗어난 자유인들이 중죄를 범한 경우 로마와 이탈리아에서는 십자가에 처형하였다(servile supplicium) 그러나 이스라엘 등 로마 식민지에서는 '강도들' (ληδται, latrones)을 십자가형이나 맹수형으로 처벌하였는데, 이 경우 강도들은 날강도들 또는 독립 투사들을 의미하였다. 로마 제국 내에서 십자가형은 콘스탄틴 대제(306~337)에 의해 337년에 폐지되었으며, 350년경부터는 그리스도교 예술의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예수의 십자가형 : 로마 역사가 타치투스(P.C. Tacitus, 56?~120?)는 《연대기》(Annals) 15권 44장 3절에서 예수가 본시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로마 황제 네로(54~68)가 64년에 로마 빈민가를 전소시키자 시민들의 여론이 몹시 험악해졌고, 다급해진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았다고 한다. 또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과 관련하여 타치투스는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를 언급하였다. "이 명칭의 창시자는 그리스도로서 그는 티베리오 황제가 통치할 때에 본시도 빌라도 총독에 의해 처형되었다"(Auctor nominis ejus Tiberio imperante per procuratorem Pontium Pilatum supplicio adfectus erat). 한편 그리스 풍자가였던 루치아노스(Lucianos, 120?~180?)는 165년경에 저술한 《나그네의 죽음》(De morte peregrin)에서, 예수는 팔레스티나에서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으며(11항) 별 볼 일 없는 철학자였다고 기록하였다(13항).
예수의 십자가형에 대한 기록은 네 복음서에 언급되어있는데, 마르코 복음 14-15장을 기본 사료로, 요한 복음18-19장을 부차적 사료로 하여 예수의 십자가 처형 경위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헤로데 궁전 밖 광장에서 30년 4월 7일 정오 쯤 빌라도로부터 십자가형 언도를 받았다(요한 19, 13-14). 이어 광장에서 로마 군인들로부터 편태를 당한 다음(마르 15, 15), 헤로데 궁전 내정에서도 군인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마르 15, 16-20a ; 요한 19, 2-3). 이후 예수는 "두 강도들" 즉 독립 투사 두 명과 함께 골고타 형장으로 끌려갔다. 사형수들은 흔히 십자가 횡목(patibulum)만 지고 갔는데, 죄목을 쓴 판자(titulas)를 목에 걸고 가기도 하고, 제삼자가 죄목 판자를 앞에서 들고 가기도 하였다. 십자가의 길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헤로데 궁전 옆에 있는 겐나트 성문(정원 성문)을 나서서 골고타(요한 19, 41)까지 직선 거리는 400여 m 남짓이었지만, 시내를 빙빙돌아 골고타로 끌고 갔을 수도 있다. 예수가 너무 지쳐 십자가 횡목을 지고 갈 수 없자 로마 군인들은 키레네 출신 시몬이라는 구경꾼을 징발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형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 주려고 예루살렘 부인들은 사형수에게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는데, 예수는 이를 사양하였다.
로마 군인들은 골고타에서 예수의 옷을 벗겨 나누어가진 뒤, 오후 1시경에 예수의 손목과 발목에 대못을 박았다. 1세기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요하난 벤 하콜이라는 청년의 유골 단지가 1968년 6월 예루살렘 북동 구역(Givat ha Mivtar)에서 발견되었는데, , 양 발목을 포개어 길이가 11.5cm나 되는 대못으로 박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사형수의 죽음을 늦추려고 엉덩이가 닿는부분에 나무토막(sedile)을 부착하여 사형수로 하여금 걸터앉게 하였다. 현재 십자고상(十字苦像)에서 흔히 볼수 있는 발을 받치는 발판(suppedaneum)은 3세기 초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형장에 항상 세워져 있는 종목 위에 횡목을 얹으면 T형 십자가(crux commissa)가 되고, 종목 꼭대기 아랫 부분에 횡목을 붙들어 매달면 十형 십자가(crux immissa)가 된다. 예수가 어떤 형태의 십자가에 못박혔는지는 알 수 없다. 예수의 처형 죄목은 그가 "유대인들의 왕이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마르 15, 25). 예수는 오후 3시쯤 숨을 거두었는데(마르 15, 33), 운명하기 전에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 34 ; 시편 22, 2a)라고 외쳤다. 이는 하느님을 원망하는 절규가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시편 22편의 서두이다.
〔예수의 십자가 위 죽음의 의미〕 예언자적 죽음 : 예수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신명기적 사관(史觀)에 따르면 예언자는 고통을 당하고 죽는다고 하였다. 《예수 어록》의 작가 역시 예수가 예언자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보았다. 이것은 사도 행전을 집필한 작가의 예수 사관(死觀)이기도 하다(사도 7, 51-52).
대속 죄적 죽음 : 예수는 온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려고 대신 죽었다는 신앙이 사도 바오로 이전에도 있었다 (갈라 1, 4 ; 2, 20 ; 3, 13 ; 1고린 5, 7 ; 15, 3 : 2고린 5, 21 ; 로마 3, 25-26 ; 4, 25 ; 5, 6. 8 ; 8, 3. 32). 사도 바오로는 대속 신앙 전승을 이어받아서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겼는데, 그래서 그의 신학을 십자가 신학이라고 한다.
사랑의 죽음 :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과 예수가 인간을 사랑한 나머지 예수의 대속 죄사(代贖罪死) 사건이 일어났다고 풀이하였다. 하느님의 사랑(로마 5, 8 : 8, 32. 38-39)과 예수의 사랑(갈라 2, 20 ; 2고린 5, 14 ; 로마 8, 35-37)이 예수 사건의 결정적 동인이라는 것이다. 바오로의 이러한 관점은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시요(1요한 4, 8. 16), 예수는 목숨 바쳐 그 사랑을 보여 준(요한 15, 13)하느님의 화신이라는 요한계 문헌의 구원관과 잘 어울린다. 사실 십자가의 고통이 인간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감내한 예수의 사랑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랑을 부추기고 어여삐 여기신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형 태〕 십자가에는 많은 형태가 있는데, 대표적인 십자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T자형 십자가로 그리스어 '타우' (τ)를 닮았다고 하여 '타우 십자가' 라고도 불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 안토니오 십자가라고도 하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1226)가 좋아했다고하여 프란치스코회 회원이나 제3회 회원들이 사복에 이십자가를 많이 착용한다. ② 종목과 횡목의 길이가 똑같은 그리스 십자가. ③ 종목이 횡목보다 긴 라틴 십자가. ④ 라틴 십자가 위에 죄목 형태를 붙인 십자가. ⑤ 4번 십자가의 아랫 부분에 발을 받치는 발판을 비스듬히 덧붙인 십자가로, 비잔틴 교회와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용한다. ⑥ 십자군 시대에 요한 기사 수도회 또는 말타 기사 수도회는 십자가 끝 부분에 깊은 여덟 귀를 만들었다. ⑦ 14세기에 스웨덴에서 창설된 비르지타 수도회 소속 사제들은 수도복 왼쪽에다, 여덟 귀가 치켜 오른 십자가를 새겼다. 십자가 복판의 원은 성체를 뜻한다. ⑧ 스페인 카라바카에서는 13세기 이래 이중 십자가가 유행하였다.
※ 참고문헌 W. Bösen, Der letzte Tag des Jesus von Nazaret, Freiburg, Herder, 1994/ R.E. Brown, The Death of the Messiah, vols. 2, New York, Doubleday, 1994/ M. Hengel, The Cross ofthe Son ofGod, London, SCM, 1986/ S. Légasse, Le Procès de Jésus, vol. 1(L'histoire) ; vol. 2(La passion dans les quatre évangiles), Paris, Cerf, 1994/ 김경희, <예수의 죽음에 대한 구원론적 해석과 그 기원>, 《신학 사상》 49호(1985. 여름), 한국신학연구소, pp. 280~308/ 박상래 역, 정 양모 주, 《고린토 후서》, 분도출판사, 1991/ 정 양모, <예수 수난사 연구>, 《종교 신학 연구》 9집, 분도출판사, 1996, pp. 321~392/ H.-W. Kuhn · C. Murray · U. Köpf · K.-H.Zur Mühlen · H.G. Thümmel · O. Bayer, 《TRE》 19, pp. 712~779. 〔鄭良謨〕
〔전례에서의 십자가〕 현재 대부분의 교회 장식들은 십자가로 꾸며지고 있다. 성당 안의 제대 뒤쪽에 있는 십자가는 이 세상에 오시는 사람의 아들의 표지이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십자가는 승리와 생명의 표지라는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녔을 뿐 신자들이 직접 십자가를 그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공개적으로 십자가를 사용할 경우 신자임이 밝혀져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십자가 대신에 여러 가지 형태의 모노그람마(monogramma)가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뒤 보석과 진주들이나 풀과 포도 넝쿨 등의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십자가가 등장하였다. 이후 수 세기 동안 십자가는 예수가 창에 찔려 인성(人性)으로는 죽은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여전히 눈을 뜨고 팔을 내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신성(神性)으로는 살아 있음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리스도 단성설(monophysitismus)에 대항하기 위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죽음을 이겨낸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예수는 눈을 뜨고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고통스러운 흔적은 전혀 없었다. 9세기경 예술가들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강조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십자가 위의 고통과 고뇌를 더욱 정교하게 표현하였다. 로마네스크 예술에서 십자가상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역사적 장면이 아니라 긴 옷을 입고 머리에 왕관을 쓴 승리한 주님으로 표현되었다. 사실적으로 보고 체험하는 고딕 시대에 비로소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과 죽음의 극렬한 비참함이 표현되었고, 더 이상 부활에 대한 관점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일방적인 고난과 죽음의 표지로 십자가가 만들어졌다. 또한 왕관 대신 가시관을 쓴 예수의 모습이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전례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행렬 때 군기와 같이 높은 대(臺) 위에 십자가를 꽂아 앞세우는 관습이다. 미사를 봉헌하기 위하여 화려한 입장을 한 후 이 십자가는 제대 옆에 세워 놓았는데, 여기에서 11세기부터 제대 위에 십자가를 놓는 관습이 발전되었고, 미사가 끝난 후에도 제대 위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동방 교회에서는 지금도 일반적으로 십자가에 못박힌 성상과 함께 십자가를 자유로이 제대 위에 놓아두고 있다. 반면에 로마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제대 위에 놓지 않고 제대보다 높게 벽에 매달아놓았다. 오늘날에는 처음의 전례 형태로 돌아가는 것을 선호하는 까닭에, 유동적인 십자가를 활용하여 입당 때 함께 들고 들어가 제대 옆에 세워 둔다(《로마 미사 전례서총지침》 270항). 행렬시 향과 촛불과 함께 들고 들어가는 십자가는 미사 거행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표지이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영원히 십자가의 제사를 계속하시고자 당신의 몸과 피로 성찬의 제사를 세우시고,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배필이신 교회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여 이 성제를 거행하게 하셨다" (사목 47항 ;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머리말, 2항).
파스카 금요일에는 예루살렘과 로마의 모범을 따라 십자가에 대한 경배를 한다. 십자가를 몸에 달거나 옷에 부착하는 관습은 일찍부터 있어 왔으며, 주교와 고위 성직자라는 표지로 가슴에 거는 십자가는 12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오늘날도 관습적으로 동방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 성인의 유해를 넣은 둥근 어깨 주머니를 걸고있는 것처럼,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특수 경우로서 생각할 것이다. (⇦ 고상 ; 십자가형 ; 십자고상 ; → 모노그람마, 그리스도의 ; 십자가의 길 ; 십자 성호)
※ 참고문헌 J.A. Jungmann, Symbolik der katholischen Kirche, Stuttgart, 1960/ D. Forstner, Die Welt der Symbole, Innsbruck, 1961. 〔崔允煥〕
십자가
十字架
〔라〕Crux · 〔영〕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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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형벌은 로마 제국에서 가장 참혹한 사형 중 하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