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그 제자들이 "찬송가를 부른 다음 올리브 산으로 떠난"(마르 14, 26) 때부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라는"(마르 15, 22) 갈바리아 산으로 올라가 못박히고 부근의 동산 바위에 뚫려 있는 새 무덤에 묻힐 때까지의 행로. 예수의 지상 생활 가운데 마지막 여정으로서 '고통의 길' (Via dolorosa)이라고도 한다. 또 교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심 수련 중 하나로, 신자들이 예수의 마지막 지상 여정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재현하면서 수난 사건들을 묵상할 수 있도록 14처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한국에서는 "성로 선공" (聖路善功), "성로 신공" 聖路神功), 14개의 처(處, station)로 되어 있다고 해서 "십사처기도" (十四處祈禱)라고 하였다.
〔의 미〕 예루살렘에서 완성된 구원 여정 : 십자가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의 구원 계획을 충실히 완성하며 인간들을 향한 당신의 위대한 사랑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지상에서 걸어간 마지막 여정이다. 이 여정은 예수 친히 제자들의 선두에 서서 결단을 내리고 지휘한 여정(루가 19, 28)이었으며, 과월절 무렵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다. 예루살렘은 예수가 눈물을 흘릴 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한 도성(루가 19, 41)이며, 당신 사제직의 도성, 당신 희생의 도성, 당신의 보편적 왕권의 도성(요한 12, 32)이다.
예수의 이 마지막 행로는 짧다. 예수가 사형 판결을 받은 빌라도의 관저에서부터 십자가에 못박히고 시신이 안치될 새 무덤이 있는 동산(요한 19, 41)을 암시하는 갈바리아 산 정상까지의 짧은 길이다. 그러나 이 짧은 행로에서 대단히 많은 은총과 구원의 사건들이 완성되었다.
첫째, 십자가의 길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양처럼"(이사 53, 7) 고난의 장소를 오르는 유순하고 비천한 주님의 종의 예언이 실현되었다. 둘째, "버림받음의 신비" 즉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리며 걸어가는 주님의 길은 예루살렘 도성 밖으로 나 있는 길이다(마태 27, 32). "성문 밖에서"(히브 13, 12)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분 스스로 속죄의 희생 제사를 완성하고, 그 시신은 진지 밖에서 태워져야만 했던(레위 16, 27) 버림받음의 신비가 완성되었다. 셋째, 끝내는 예수가 자신의 선교 사명을 완수하고 제자들의 생명을 위해 취한 "십자가의 신비"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즉 십자가 위에서 흘린 피(골로 1, 20)로 예수는 죄에 물든 인간을 깨끗하게 하고, 죽음을 쳐부수어 사탄을 패배시켰으며, 하늘과 땅을 다시 화해시키고 새로운 계약을 맺어 하느님의 영광에 들어간 것이다.
십자가의 길은 만남의 공간 : 예수는 공생활 동안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 (도는) 모든 질병과 모든 허약함을 고쳐 주면서" (마태 4, 23) 팔레스티나의 길을 두루 다녔다. 베드로 사도는 백부장인 고르넬리오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모든 사람을 고쳐 주셨다" (사도 10, 38)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그것은 "하느님이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증언하였다. 이와 같이 예수의 길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의 공간인 것이다.
갈바리아를 향한 짧은 여정 역시 예수에게는 열정적인 만남의 공간이었다. 예수는 인간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시 한번 선포하면서 위로와 용서의 심정을 드러내었다. 예수는 마리아와 만나서 서로의 위안과 연민, 무엇보다도 깊은 일치의 눈길을 주고받았다. 또 십자가의 짐을 나누는 키레네 사람을 만나(마르 15, 21) "영광의 무게" (2고린 4, 17)를 나누어 주기를 약속하였고, 자신을 보고 우는 예루살렘의 딸들을 만나서는 죄와 악에 대해 울라고 충고하였다(루가 23, 28). 자신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 중 한 강도의 모욕은 온화하게 참아 받은 반면, 다른 강도의 간청에는 용서와 우정과 생명의 말씀으로 응답하였다(루가 23, 42).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생을 마치면서 성부의 손에 자신의 영혼을 맡김으로써(루가 23, 46) "최상의 만남"인 성부와의 만남을 실현하였다.
성령에 의해 인도된 길 : 예수의 생애 전체는 성령에 의해 인도된 여정이다. 복음 선포 활동의 시작에서도 성령은 예수를 사막으로 인도하였고(루가 4, 1), 성령의 불은 예수의 마음을 불타 오르게 하여 갈바리아로 향하게 하였다(루가 12, 49-50). 예수의 이 마지막 여정은 형언할 수 없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복음사가들은 사람의 아들이며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성부와 인간을 향한 사랑의 여정으로 걸어간 십자가의 길을 간결하게 묘사하였는데, 이 여정에서 예수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구원 계획의 완전한 실현에 가까워지는 순간순간이었다. 즉 보편적 용서(루가 23, 34)에 다다르는 때이며, 마르지않는 은총의 샘인 예수의 심장이 창으로 찔려 열리는 때이다(요한 19, 34). 또한 참된 파스카 양이 뼈 하나 손상되지 않은 채 온전히 희생되는 때이며(요한 19, 36), 인간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요한 19, 26-27)와 성령(마태 27, 50)을 선물로 주는 때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가 겪은 수난은 미래의 인간들을 위한 기쁨의 시작이며, 그가 겪은 모든 조롱은 영광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고통의 길에서 예수의 모든 만남, 친구 · 원수 · 무관심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최고의 가르침을 위한 마지막 기회이자 최후의 화해와 평화가 제공되는 기회인 것이다.
교회로부터 사랑받는 길 : 교회는 자신의 신랑인 주님의 이 마지막 여정을 살아 있는 생생한 기념으로 보존하고 있다. 예수의 이 여정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 속에는 은총의 신비가 숨어 있으며, 교회에 대한 사랑의 행위가 담겨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자신의 주님이 성사적 기념의 대상으로 골고타 정상에서 흘리신 피와 쪼개진 몸을 교회에 남겨 놓았음을 잘 알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매우 일찍부터 이 사건이 일어난 "거룩한 장소"들을 보존하였고 경배하기 시작하였다. 2세기경의 것으로 예수의 무덤이 있던 곳에서 출토된 고고학적 발견물들은 당시의 신자들이 이미 이 사건을 자주 재현하며 예배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4세기 말 에테리아(Etheria)라는 순례자는 당시 골고타 정상 세 곳에서 거행되던 전례를 상세히 전해 주고 있는데, 골고타 정상의 세 장소는 각각 부활(Anastasis) · 십자가(Crux) · 순교(Martyrium)라고 불렸고, 각 장소마다 소경당이나 대성전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부활' 이라고 불리는 장소는 예수의 무덤이 있던 곳이고, '십자가' 라는 장소는 예수의 십자가가 서 있던 장소로 다시 후면(postcrucem)과 전면(antecrucem)으로 구분되었다. '순교' 라고 불리는 장소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바로 전에 고난을 당하던 곳으로, 바로 그 자리에 대성전이 세워져있었다. 부활 대축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부활' 에서부터 순교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행렬을 하였다. "다음날인 부활 주간이 시작되는 일요일 새벽닭이 울면 관습대로 '부활' 과 '십자가' 에서 아침이 되기까지 일과경을 바칩니다. 그러나 일요일에는 '순교' 라 불리는 대성전에 모입니다. ···이 대성전에서 파견 예절이 끝나면 찬미가를 부르며 주교님을 모시고 '부활' 로 갑니다. 산 정상에서부터 시내까지 내려오고 또 시내를 돌면서 '부활' 까지 모든 이가 행렬을 합니다”(《에테리아 여행기》 30~31). 이러한 행렬이 물론 오늘날과 같은 신심 행위로서의 "십자가의 길"이나 "고통의 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순례의 내용들을 엮어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는 과정으로서의 행렬일 뿐이었지만, 이 행렬은 그때그때 부르던 찬미가와 함께 수난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긴밀히 연관되고 발전되어 십자가의 길의 모태가 되었다.
〔신심 수련으로서의 십자가의 길〕 형성 과정 : 오늘날과 같은 신심 수련으로서의 "십자가의 길"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중세 시대 이후부터였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 보나벤투라(1217?~1274) 등의 성인들은 십자가의 길에 애정 어린 믿음을 갖고 참여함으로써 십자가의 길이 신심 수련으로 탄생되는 토양을 준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경건한 신앙심은 예루살렘의 "거룩한 장소"들을 복원시키려는 십자군 파견의 열정으로 연결되었는데,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이라는 유일무이한 특권을 누리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십자군 운동은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있는 예수의 여정을 이상적으로 복원하려는 운동이었다. 예루살렘 성지 순례는 12세기 부터 다시 시작되었고, 1233년부터는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에게 예루살렘의 거룩한 장소에 상주가 허가되고 성지 수호의 임무가 부여되었다. 그들은 "거룩한 장소"와 그리스도 수난에 대한 신심을 촉진시켰으며 널리 전파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부터 귀환한 십자군과 순례자들은 자신들의 도시나 거주지에 예루살렘에 있던 거룩한 장소들과 같은 모형들을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련되어 예루살렘 밖에 세워진 것 중 모범으로 꼽히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측되는 것은 5세기경 볼로냐(Bologna)의 성 스테파노 성당에 세워진 일곱 경당들의 조합물이다.
그리스도 수난에 대한 경건한 신심 운동과 함께 13세기 말경부터 십자가의 길은 갈바리아 산으로 오른 예수의 여정으로서 언급되었고, 여러 장소와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엮어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십자가 산의 리날도(Rinaldo di Monte Crucis)라는 도미니코회 수사는 1294년경에 펴낸 저서 《순례의 책》(LiberPeregrinationis)에서 거룩한 무덤(S. Sepolcro)까지 예수가 친히 십자가를 지고 간 길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길 중에 있는 여러 지점들을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즉 헤로데 궁전,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은 빌라도 총독 관저 앞의 돌 포장(Λιθόστρωτον), 예루살렘 부인들을 만난 장소,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지점 등이었다.
15세기경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신앙심을 배경으로 예수가 갈바리아 산에 오른 행로와 직접 관련된 신심 수련의 세 가지 형태가 특히 게르만 지역과 네덜란드 지역에 널리 퍼졌다. 이 세 가지 신심이 통합되어 오늘날과 같은 십자가의 길이 신심 수련으로서 탄생된 것이다.
첫째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도중에 있었을 "그리스도의 넘어지심"에 대한 신심으로서 일곱 번까지도 열거되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행로"에 대한 신심으로서, 고통의 매 단계들을 기념하는 일곱 개나 아홉 개 혹은 그 이상의 성당들을 지정하고, 차례로 경건한 행렬을 하는 신심 행위이다. 여기에는 게쎄마니 동산에서 안나스의 집에 이르는 행로(요한 18, 13), 안나스의 집에서부터 대제관 가야파의 집까지의 행로(요한 19, 14 ; 마태 26, 56), 그리고 빌라도의 관저에까지 이르는 행로(요한 18, 28 ; 마태 27, 2)와 헤로데 왕의 궁전에 이르는 행로(루가 23, 7) 등을 포함하고 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지체하심"에 대한 신심인데, 이것은 갈바리아로 향한 십자가 행로에서 예수가 사형 집행인들의 저지로, 혹은 극도의 피로 때문에, 혹은 사랑의 마음으로 아직까지도 당신의 수난에 참여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하기 위하여 지체한 순간들에 대한 경배이다. 일반적으로 "고통의 행로" 와 "지체하심"은 그 숫자와 내용이 거의 일치하며, 각각의 행로는 하나의 처(處)로 고정되게 된다. 그리스도의 머무르심을 의미하는 각 장소에는 기둥이나 십자가로 표시되었으며, 묵상의 대상이 되는 장면들을 그림이나 조각 등으로 꾸며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십자가의 길 신심은 수난 행로와 머무르심을 드러내는 처들에 대한 경배로 나타났다. 이에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나 경당을 중심으로 십자가의 길을 의미하는 처들이 설치되고 널리 확산되었고, 17세기 중반에는 스페인 지역에서 사용되던 14처로 구성된 십자가의 길이 널리 퍼졌고, 18세기 중반에는 '십자의 길의 설교자' 로 알려진 프란치스코회의 수사 성 레오나르도(S. Leonardo da Porto Maurizio, 1676~1751)에 의해 열정적으로 전파되었다. 레오나르도는 세계 각처에 572개나되는 14처로 구성된 십자가의 길을 설치하였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1750년 성년을 기념하여 교황 베네딕도 14세(1740~1758)의 요청으로 로마 원형 경기장에 세워진 것이었다.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교황 글레멘스 12세(1730~1740)는 1731년 4월 3일 대사성(大赦省, Sacra Congregatio delle Indulgenze)을 통하여 <십자가의길 신심 행위의 올바른 거행을 권고함>(Monita ad recte ordinandum devotum exercitium V.C.)이라는 특별 교령을 공포하였다. 이 교령을 통해 당시까지 다양한 형태로 널리 전파되었던 십자가의 길을 14처로 한정하고, 각 처마다 고유한 수난 사건으로 고정시켰다. 이 교령에는 이외에도 설치 장소와 축성 방법, 설치 자격자, 신심 행위를 거행하는 형식과 관련된 대사에 관한 규정 등이 담겨 있었다.
처의 수와 주제의 다양성 : 18세기경 14처로 고정된 십자가의 길이 전체 교회에 확산되면서 교황청의 승인을 얻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교회의 전통적인 신심 행위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 주제와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사형 선고를 받음, ② 십자가를 짐, ③ 첫 번째 넘어짐, ④ 마리아를 만남, ⑤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짐, ⑥ 베로니카가 예수의 얼굴을 씻어 드림, ⑦ 두 번째 넘어짐, ⑧ 예루살렘 부인을 위로함, ⑨ 세 번째 넘어짐, ⑩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함, ⑪ 병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음, ⑫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둠, ⑬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⑭ 무덤에 묻힘.
오늘날 일부 신학자들과 전례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부활에 대한 묵상을 15번째 처로 첨가하기도 하지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묻혔던 무덤이 바로 부활한 장소였으며, 묻힌 것을 묵상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묵상까지도 포함하는 것이기때문이다.
십자가의 길이 형성되는 긴 과정에서 두 가지 요소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데, 하나는 제1처의 변화에 관한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체 처의 숫자와 각각의 처에 나타난 주제의 다양성에 관한 것이다.
십자가의 길의 시작인 제1처와 관련하여 역사가들은 적어도 네 가지 다른 사건들을 제시하였다. 첫째, "어머니께 인사드리는 예수"의 모습이 제1처의 사건으로 취급되기도 하였으나, 그렇게 널리 퍼졌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성서상의 근거 문제가 원인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둘째,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줌을 제1처로 삼는 것도 있었는데, 이것은 최후의 만찬 및 성체성사의 제정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17세기 중반에 나타나 널리 퍼지기도 하였다. 셋째, "게쎄마니에서의 격심한 번민" 으로 올리브 동산은 예수가 성부께 대한 지극한 순명으로 수난의 잔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다 마시기로 결정한 곳이다. 이 사건은 17세기의 일곱 개 처로만 구성되어 있던 짧은 십자가의 길의 제1처를 구성하고 있었으며, 성서적 배경이 확실하다는 이유로 널리 퍼졌는데 특히 예수회 수사들의 작품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넷째, "예수가 빌라도 총독의 관저에서 사형 선고를 받음"을 제1처로 삼는 관행은 예수의 고통의 행로에 가장 적절한 기점이라고 여겨져, 초기교회부터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다.
십자가의 길을 구성하는 처의 숫자와 각각의 주제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매우 다양하였다. 5세기경 볼로냐의 성 스테파노 성당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은 5개의 처로 구성되었고, 벨기에 안트웨르펜(Antwerpen)에서는 7개의 처로 구성된 것이 발견되었다. 16세기 네덜란드 지역에서 출판된 신심 행위 지침서에는 14처로 나타나 있고, 12개 혹은 11개의 처로 구성된 십자가의 길도 발견되었다. 이 숫자를 결정한 것은 예루살렘에 갔었던 실제의 순례자들이라기보다는 경건한 저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에서 14라는 숫자로 정한 것은 18세기 중엽에 가장 널리 퍼졌던 십자가의 길을 승인하였기 때문이다. 그 주제에 있어서도 어떤 것들은 복음에 근거를 두고 있는 반면에, 어떤 것들은 간접적으로 연관된 장소와 사건들이 있었고, 또 어떤 것들은 극화된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한 번에서 일곱 번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는 십자가에 눌려 넘어짐이라든가 예수가 마리아와 베로니카를 만남 같은 것들이다. 이 가운데 전통적인 14처 십자가의 길에 포함되지 않은 주제들로는 ① 예수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타난 무리들에게 잡힘(마태 26, 47-56), ② 베드로의 부인(否認, 마태 26, 69-75), ③ 채찍질당하는 예수(마태 27, 26), ④ 대제관 가야파의 저택에서의 모욕적인 심문(마태 26, 67-68), ⑤ 헤로데 궁전에서 혹은 총독 관저에서 병사들로부터 능욕당함(마태 27, 27-31) 등이다.
한편 1990년대에 들어 전통적인 주제들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십자가의 길이 거행되기도 하였다. 1991년과 1992년 파스카 금요일에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거행된 것이 그것인데, 14처로 구성되었지만 각 처의 주제와 순서가 크게 바뀐 것이었다. 정확한 성서적 근거가 없는 "예수의 세 번 넘어짐"(3 · 7 · 9처), "마리아를 만남" (4처), "베로니카를 만남"(5처) 등 5개 처와 성서적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함" (10처)과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13처) 등 두 개 처를 합하여 모두 7개의 처를 제외시켰던 것이다. 대신 새롭게 "게쎄마니 동산에서 극심한 번민으로 기도함" (마태 26, 36-39), "유다로부터 배반당해 붙잡힘" (마태 26, 47-56), "최고 의회에서 대제관들에게 심판받음"(마태 26, 57-65), "베드로에 의해 부인됨"(마태 26, 69-75) , 채찍질과 가시관으로 고통받음" (마태 27, 27-31), "회개한 강도에게 당신 나라를 약속함" (루가 23, 39-43),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와 십자가 아래의 성모 마리아와 제자" (요한 19, 26-27)의 장면이 도입되었다. 새롭게 첨가된 7개 처의 주제들은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과 비교할 때 성서의 근거가 명확하며, 그리스도의 수난에 나타나는 극적인 사건들로서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를 담은 것들이었다. 특별히 이 주제들은 우리의 자각 여부에 상관없이 우리들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극적인 사건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들이었다. 새롭게 구성된 십자가의 길의 주제와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게쎄마니 동산에 있는 예수, ② 유다에게 배반 당해 붙잡힘, ③ 최고 의회에서 심판받음, ④ 베드로에게 부인당함, ⑤ 빌라도에게 판결받음, ⑥ 채찍질과 가시관으로 고통받음, ⑦ 십자가를 짐, ⑧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짐, ⑨ 예루살렘 여인들을 만남, ⑩ 십자가에 못박힘, ⑪ 회개한 강도에게 당신 나라를 약속함, ⑫ 십자가 위의 예수와 십자가 아래의 성모와 제자, ⑬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둠, ⑭ 무덤에 묻힘.
역사적으로 십자가의 길이 형성된 과정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변화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동안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주제들을 단순히 복원한 것에 불과하다. 1975년 성년에 성년 중앙위원회(Comitato centrale per L'Anno Santo)에서 발간한 《순례의책》(Libro del Pellegrino)에 이미 이러한 주제들이 소개되었으며, 최근 교황청 전례 성사성에서도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과는 다른 십자가의 길의 사용을 여러 경우에 허가하였다. 물론 이러한 구조의 변경이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의 구조와 주제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은 아직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계속 사용될 것이다. 새로운 십자가의 길은 다만 전통적인 구조와 주제에는 나타나지 않거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수난 신비의 중요한 사건들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십자가의 길의 특별한 보화를 강조하며 어떠한 구조로도 풍요로운 십자가의 신비를 남김없이 다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밝혀 주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에 관한 기본 규범〕 설치와 축복 : 초대 교회부터 수난 신비를 구성하는 각 처의 주제들은 많은 미술가들의 예술적 창작 대상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심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작품 자체가 신심에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각 처 위에는 비록 작더라도 잘 보이는 나무로 된 십자가의 부착을 의무화 하기도 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수난 신비를 잘 드러내는 것으로 전례와 성미술에 대한 지침에 따라 제작된 것이면 충분하다. 처음 십자가의 길이 신심 기도로 정착될 때 그 설치 장소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경당이나 성당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황 글레멘스 12세는 1731년 에 모든 경당이나 성당, 순례자들의 숙소 등 실내뿐만 아니라 순례지의 실외, 교회 묘지, 그 밖의 필요한 길가에 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구 교회법전에는 십사처를 설치하고 축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추기경, 교구 직권자, 프란치스코회 지역 장상, 그리고 이들의 위임을 받은 사제로 제한하였으나 현재는 그 성당의 주임 신부나 다른 사제가 축복하도록 하고 있다(《축복 예식서》 1097항).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성당이나 경당 자체의 축복과 함께 이루어지며, 성당 봉헌이나 축복 당시에 십자가의길 성상이 마련되어 있었다면 다시 축복할 필요가 없다.
전대사와 기도드리는 방법 :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사람들은 조건을 채운다면 매번 바칠 때마다 전대사(indulgentia plenaria)를 받을 수 있다. 요구되는 조건은 기도드리는 사람이 은총의 상태에 있을 것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14처 전체를 중단함 없이 순서에 따라 바치는 것이다. 만일 십자가의 길 기도 전체를 마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각 처마다 10년 한대사(限大赦, indulgentia partialis)를 받을 수 있다. 교황 인노천시오 12세(1691~1700)는 1694년에, 교황 베네딕도 13세(1724~1730)는 1726년에 <인테르 플루리마>(Inter plurima)를 통하여 예루살렘을 순례할 수 없는 사람들이 14처가 설치된 곳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침으로써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확대 · 승인하였다.
교회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때 마치 갈바리아로 향하는 그리스도의 여정을 따르는 것처럼 처와 처 사이를 조금이라도 이동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으로 바칠 경우 이러한 움직임이 불편하다면, 인도자 한사람이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그들을 영성적으로 동반하면서 각 처를 움직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기 위한 특별 기도가 규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각 처에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구세주의 수난을 묵상할 수 있는 것이면 충분하며, 주님의 기도 · 성모송 · 영광송을 각 처마다 한 번씩 바치면 된다. 십사처가 설치된 장소에서 기도를 바칠 수 없는 사람들, 즉 병자 · 여행자 · 죄수 등을 위해서는 기도를 바치고 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축복된 십자가의 사용을 허용하 고 있다. (⇦ 성로 선공 ; 성로 신공 ; 십사처 ; → 골고타 ; 대속 ; 십자가 ; 예수 그리스도)
※ 참고문헌 S.C. delle Indulgenze, Monita ad recte ordinandum devotum exercitium V.C., 1731. Paenitentiaria, Decretum, Conditione ad validam sacrarum 'Viae Crucis' stationum erectionem ex novo statuuntur, 1938. 3. 12, 《AAS》 30, 1938, pp. 111~112/ ㅡ, Responsum part., Solvuntur dubia circa requistita ad exercitium Viae Crucis valide cum indulgentiis peradendum, 1954. 6. 18, Leges Ecclesiae, vol. II , n. 2438/Massimilliano Brandys, 《EC》 7, pp. 1348~1350/ M. Sleuties, Instructio de stationibus S. Viae Crucis, ed. B. Kurtscheid, Quaracchi Florence, 5th ed., 1927/ Elia Pianisi, De pio V.C. exercitio disquisitio historica, iuridica, ritualis, Roma, 1950/ B. Brown, 《NCE》 14, pp. 832~835/ Piero Marini, La via crucis, cammino e incontro di salvezza, Via Crucis di Giovanni Paolo II al Colosseo, Casale Monferrato, 1990, pp. 5~7/ 박동균 · 이재룡 편, 《십자가의 길》,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朴東均〕
십자가의 길
十字架
〔라〕via crucis · 〔영〕Way of the Cross, Stations of the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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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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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과 현재의 위치> 제1처 : 사형 선고를 받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