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페

〔그〕ἀγάπη · 〔라 · 영〕ag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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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신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는 공동 식사를 '아가페' 라고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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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신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는 공동 식사를 '아가페' 라고 일컬었다.

일반적으로 '사랑' 을 뜻하는 그리스어 전성 명사(轉成名詞)로서, 초대 교회에서 사랑의 만찬(愛餐)을 일컫던 용어.
〔성서의 의미와 개념〕 고대 그리스어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이 단어를 칠십인역 성서에서 당시 널리 쓰이던 이집트 방언(코이네 그리스어)에서 차용하여 히브리어 '아헵' (אָהֵב)과 같은 의미(예레 2, 2 ; 31, 3 ; 이사 63, 9 ; 2사무 13, 15)로 사용하였다. 신약성서에서도 이 단어를 받아들여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 명사 곧 에로스(ἔρος), 필리아(Φιλία), 스토르게(στοργή)보다 아가페를 주로 사용하였다. 이로써 아가페가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신약성서 용어로 정착되었다. 즉 아가페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자애로운 사랑,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 인간 상호간의 자선과 사랑 등을 뜻하며,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이루는 특성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더 나아가 아가페는 자기 자신보다는 상대방과 상대방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 자신이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해주는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러한 사랑은 헌신 · 성실 · 자비 · 동정 · 자선 · 친절 · 우정 · 친교 · 약속 · 깊은 이해 · 책임 등의 속성을 지닌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로마 13, 10)이요 "첫째가는 계명" (마르 12, 28-31)이며 성령의 "열매"(갈라 5, 22)이다. 사도 바오로는 사랑만이 가장 가치 있고 위대하며 영원히 존속한다고 강조하면서(1고린 13, 1-13), 반면에 하느님의 사랑은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나타난다고 하였다(로마 5, 8). 또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 8. 166)라든가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이마다 모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요한 3, 16), 또는 "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요한 13, 34 ; 참조 ; 요한 15, 12-17)라는 말들은 신약성서에 담겨 있는 결정적인 사랑의 정의이며, 계시의 절정이요 핵심이다.
이와 같이 신약성서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주로 사용되었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마르 12, 29-31 ; 1요한 4, 20-21 ; 5, 2 ; 참조 : 신명 6, 4-5 ; 레위 19, 18).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뜻은 자비이지 제사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당시 유대 지도자들을 깨우쳐 주곤하였다(마태 9, 13 ; 12, 7). 따라서 이웃 사랑이나 형제애는 단순한 박애가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행위로서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마태 25, 40). 달리 말하면 인간은 형제적인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자기를 먼저 사랑해준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고(1요한 3, 16 ; 4, 19-20), 인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제자라는 사실도 보여 주게 된다(요한 13, 35).
〔초대 교회에서의 아가페〕 의미와 원천 :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성서에서 제시하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는 공동 식사를 '사랑의 만찬' 이라는 의미로 "아가페" 라고 일컬었다. 그렇지만 신약성서에서 이러한 의미로 언급된 곳은 유다서의 한 부분뿐이다(유다 1, 12 ; 2베드 2, 13). 사랑의 만찬으로서 아가페는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적 친교를 위하여, 특히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자선이나 자비를 베풀기 위하여 마련되었다. 따라서 아가페는 그리스도인다운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고 기른다는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있고(1요한 3, 17-18), 공동 식사나 정찬으로서 사랑의 만찬을 우선적으로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이 만찬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참으로 실천하려고 하였다는 점과 그 사랑을 실천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공동 식사를 중요시하였다는 점을 말해 준다.
사랑의 잔치인 아가페가 교회사의 초기 단계부터 실시된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 처음으로 거행되었는지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아가페가 사랑의 만찬이라는 의미로 초대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행해진 것은 2세기 중엽부터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ae, 150?~215?)에 의해서라고 하나, 그 근원이나 동기는 추정일 뿐이다.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가 몸소 제자들과 함께나눈 공동 식사나 만찬(요한 12, 1-2 ; 21, 9-14 ; 마르 14, 22-26 ; 루가 24, 30-43 ; 사도 10, 41)과 군중을 배불리 먹인 일(마르 6, 34-44 ; 마르 8, 1-9),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루가 14, 12-14 ; 22, 26-27) 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사도 시대에는 아가페가 주님의 성찬 곧 성찬 전례(미사)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은 채 행해졌던 것 같다(사도 2. 42-47 ; 6, 1-4 : 20, 7-12 ; 1고린 11, 17-34 ; 《디다케》9~10장, 14장). 즉 아가페의 예식 가운데 성찬 전례도 함께 거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2세기 중엽부터 아가페와 성찬 전례가 구별되기 시작하였으나(유다 1, 12 ; 1고린 11, 17-34),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한 증거 자료는 없다. 분명한 것은 성찬 전례가 봉헌과 축복 그리고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시면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며 선포하는 제의적인 예식에 역점을 둔 반면에, 아가페는 친교적이고 자선적인 의미가 강한 사랑의 만찬이었다는 점이다.
예식의 형태와 역사적 변천 : 아가페 예식은 본래 유대인 가정과 공동체의 식사 관계, 특히 안식일과 축제일을 시작하는 정식 만찬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대인들은 가족 또는 몇몇 친지끼리 가정이나 정해진 집에 모여서 해지기 전에 정식 만찬을 함께하였는데, 그 예식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전식(前食)으로서 술과 같은 간단한 음료를 함께 나누고 나서 정찬을 위해 식탁에 편하게 기대거나 앉는다. 주인이 식탁에 빵을 놓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림으로써 정식으로 식사가 시작되고, 빵을 떼어 나누어 먹는다. 식사하는 동안 대화는 주로 잔치의 즐거운 분위기에 알맞는 주제로 하되 반드시 종교적인 내용이어야 했다. 그리고 방안이 어두워지면 등불이 켜지고, 이때 빛의 창조주인 하느님을 찬미하는 감사의 기도가 암송된다. 식사를 다 마쳤을 때는 다 같이 손을 씻은 후, 주인이 음식에 대한 마지막 감사 기도 곧 식사 후 기도를 올린다. 그러나 안식일과 축제일, 그리고 다른 특별한 절기 식사가 있는 경우의 식사 후 기도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특별한 기억으로서 물을 섞은 포도주 잔 이른바 찬양의 잔(1고린 10, 16)을 놓고서 하느님의 나라가 하루빨리 성취되기를 기원하는 기도로 이루어진다. 특히 쿰란 공동체에서는 자신들의 공동체적인 삶과 생활의 발전을 위하여 이러한 공동 식사를 매우 중요시하며 지켰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역시 사도 행전과 바오로서간에서 말해 주듯이 유대교 신자들의 모임과 유사하였다. 즉 그들은 공동 식사를 하는 동안 성령의 은사(1고린 12, 1-31 ; 14, 1-25)와 예배의 통일성과 질서(1고린 14, 26-40) 등을 듣고 배우며,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면서 "성시와 찬가와 영가"를 부르기도 했다(골로 3, 16-17 ; 에페 5, 19-20). 하지만 유대인들의 공동 식사와 다른 점은 과부들(사도 6, 1)이나 가난한 사람들(1고린 11, 21)과 함께 식사함으로써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사랑의 봉사로서 자선과 친교가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식사의 규례와 형식은 《디다케》 9~10장에서 볼 수 있는데, 식사 전에 잔과 빵을 놓고 먼저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세례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축복된 잔과 빵이 허락되지 않았다. 식사 후에는 음식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동시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하였는데,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순서가 빠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런 공동 식사가 성찬 전례와 구분되어 아가페라고 칭해진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디다케》14~15장에서 성찬 전례에 관한 가르침이 별도로 언급된 것이 이를 반증해 준다. 성찬 전례와 분리된 아가페에 대한 기록은 2세기 말경에 쓰여진 테르툴리아노(Q.S.F. Tertullianus, 160~223)의 《호교론》(Apologeticum)과 히폴리토(Hyppolitus Romanus, 170~236)의 《사도 전승》('Αποστο-λική παράδοσις)에서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그 이전에는 신자들의 정기적인 공동 식사에 성찬 전례가 결합되어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두 교부들의 기록에 의하면, 아가페의 예식은 유대교적인 공동 식사 예식과 병행을 이룬다. 즉 식사 전과후에 있는 간단한 예배 형식, 식사하면서 함께 나누는 종교적인 대화, 손을 씻는 일, 등불을 켜는 일 등이다. 그러나 아가페 예식의 독특한 점은 공동 식사가 끝나면 손님이 주인의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물 한 조각씩을 자유롭게 집으로 가져 갈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과, 아가페에 참여하는 것이 곧 가난한 자와 과부들을 돕는 일로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관습에서 나온것으로 추정되는 아가페의 또 다른 특수한 형태는 장례식과 추모식에서 베풀어지는 공동 식사였다. 즉 친교와 자선을 베풀기 위한 아가페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한 아가페도 행해졌던 것이다. 특히 후자의 아가페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순교자 들이 평화와 안식 가운데 누리길 바라는 천상 잔치를 상징하였고, 동시에 "여러분은 내 나라, 내 식탁에서 먹고 마실 것입니다”(루가 22, 30)라는 예수의 말씀을 상기시켰던 것이다. 그렇지만 4세기 이후부터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아가페의 역사에 관한 발자취를 체계적으로 살펴보기란 쉽지 않다. 아가페에 관한 보도 내용이 매우 단편적일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난해하여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 아가페가 보편적인 관습이나 일반적인 전례 규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각 지방 공동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행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대에 아가페는 좀더 효과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자선 행위를 표현하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시대가 흐르면서 초대 신자들이 베풀었던 아가페 예식은 그 의미가 희석되고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미사와의 관련성〕 아가페는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미사의 성찬 전례와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 만찬에서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잔치로서 성찬 전례를 제정하였기 때문이요(요한 13, 1), 성찬 전례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친교와 일치가 구체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1고린 10, 16-17). 예루살렘의 원시 공동체가 아가페와 구분하지 않고 성찬 전례를 거행하였다는 보도(사도 2. 42-47)나 고린토 공동체가 잘못 거행한 "주님의 성찬"을 올바르게 잡아 준 바오로의 가르침(1고린 11, 17-34) 역시 이를 반증해 준다.
성찬 전례는 형제적 친교를 나누고 자선을 베푸는 공동 식사의 핵심에 속하였고, 이 식사는 예수의 공생활 동안에 이루어진 식사(마르 6, 34-44 : 요한 12, 1-2)나 최후 만찬(마르 14, 22-26), 그리고 부활한 주님과 함께 나눈 식사(루가 24, 30-35. 41-43 : 요한 21, 9-13)를 기억하고 지속시키는 의미를 지녔다. 특히 제자들 가운데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승리가 재현됨으로써 이 식사는 전례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고 성찬 전례도 함께 거행된 셈이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에게 매일의 음식을 배급하는 봉사는 전례적인 행위라기보다는 하나의 자선 행위로 여겨졌고(사도 6, 1-6), 그래서 형제적 친교를 나누고 자선을 베푸는 공동 식사가 이른바 아가페와 성찬 전례로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바오로는 성찬 전례가 주님의 재림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1고린 11, 26). 따라서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의미상 이러한 구분이 이미 사도 시대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묵과할 수는 없다(사도 20, 7-11).
아가페와 성찬 전례의 관계는 초대 교부들, 예를 들어 이냐시오, 테르툴리아노, 히폴리토 등이 용어를 혼용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성찬 전례를 아가페로, 주의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를 아가페로, 사랑의 만찬을 주님의 성찬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디다케》 9~10장에도 잘 나타나 있다. 성찬 전례는 형제적 친교와 자선의 의미보다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선포하는 의미가 지배적이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성찬 전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친교를 맺으며, 그리스도 안에 일치된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이다(1고린 10, 16-17 ; 11, 23-29). 이 성찬 전례는 오늘날 미사 전례 가운데 계속 이어져 오고 있으나, 아가페 예식은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 애찬 ; → 미사 ; 사랑 ; 성찬 전례)
※ 참고문헌  M.H. Shepherd, 《IDB》 1, pp. 53~54/ C. Bernas, 《NCE》1, pp. 193~194/ V. Warnach · J.A. Jungmann, 《LThK》 1, pp. 178~180/ E.Ferguson, Agape Meal, 《ABD》 1, pp. 90~91/ J.F. Keating, The Agape and the Eucharist in the Early Church, London, 1969/ A. Hammah, Quelle est I'orgine de I'agape?, 《StPatr》 10, 1970, pp. 351~354 〔李永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