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오 (400~458)

〔그〕Anato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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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생애와 활동〕 400년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치릴로(Cyrillus Alexandriae, 370/380?~444)의 제자가 되었으며, 부제 임명을 받고 콘스탄티노플에 파견되었다. 한편 그리스도 단성설을 주장하였던 에우티케스(Euthyces, 378~454)는 448년 11월 콘스탄티노플 지역 주교 회의에서 단죄를 받자 이에 불복하여 교황 레오 1세(440~461)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진상을 확인한 교황은 이듬해 6월 그리스도의 육화에 대한 신학 논술을 써서 콘스탄티노플의 플라비아노(Flavianus, 446~449) 총대주교에게 보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플라비아노에게 보내는 교의 서한>(Epistola dogmatica ad Flavianum)이다. 당시의 상황이 혼란스러워지자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408~450)는 같은 해 에페소에서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이 '에페소 강도 공의회' 에서 에우티케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플라비아노 총대주교는 단죄를 받아 면직되었으며, 에우티케스를 지지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디오스코루스(Dioscorus, +454)와 환관 그리사피우스(Chrysaphius)는 플라비아노의 후임자로 아나톨리오를 임명하였다. 그들은 아나톨리오가 자신들을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사망하고 군인이던 마르치아누스(Marcianus, 396~457)가 450년 8월 말 전 황제의 누이인 풀케리아(Pulcheria, 399~453)와 혼인하면서 왕위를 계승하였다. 교황 레오 1세를 적극 지원하였던 황후 풀케리아는 디오스코루스의 견해에 반대하였는데, 새로이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된 아나톨리오 역시 교황 레오 1세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아나톨리오는 에페소 강도 공의회에서 파면되었던 주교들 즉 플라비아노와 도릴레움(Dorlaeum)의 에우세비오(Eusebius, 5세기)의 복권에 동의하였고, 플라비아노의 시신을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거룩한 사도들의 교회' 에 안장하였다.
한편 아나톨리오는 황제 마르치아누스가 451년에 칼체돈에서 공의회를 소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 그는 디오스코루스를 교리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에페소 강도 공의회를 주관한 부정한 행동에 대해 단죄하기로 하는 데 동의하였으며, 일리리아(Illyria)와 이집트의 주교들에게 교황 레오 1세가 보낸 서한의 정통성을 이해시키고 공의회 결정 사항의 틀을 잡는 데도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이 공의회가 끝나 갈 무렵 동방 교회의 주교들은 교회의 지위 규정에 대한 요구를 다시 제기하였다. 따라서 에페소 공의회 이후 소아시아와 북그리스 지역을 관할하던 콘스탄티노플 주교의 권한이 어느 정도인가를 다시 규정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칼체돈 공의회에서는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지위를 로마에 이어 두 번째 서열에 올려 놓고,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로마 주교의 권리와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였다(28조). 이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교황과 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황 레오 1세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권한이 교황의 수위권과 결부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에서,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위치는 어디까지나 교황의 수위권에 속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하였다. 교황은 또 아나톨리오가 이 규정을 관철시키려 한다고 오해하였다. 이에 아나톨리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교황에게 순종 서약을 하였다. 아나톨리오는 주로 그리스도 단성설에 반대하는 정책을 내세웠으며, 특히 457년에 황제 레오 1세(457~474)의 상속이 문제가 되었을 때에는 교황의 입장에 협력했다. 그는 458년 7월 3일 콘스탄티노플에서 사망하였는데,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이단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설도 있다.
〔평 가〕 볼랑디스트들(Bollandistae)은 아나톨리오를 진정한 가톨릭 신자이며 성인이자 예언자라고 평가하였다. 아나톨리오를 공경하는 어느 성인 전기 작가는 아나톨리오와 관련된 기적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 중에서도 기적이 수없이 일어났다고 서술하였다. 아나톨리오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한 병에 걸렸을 때에도 네스토리우스파를 물리치려고 에페소에서 싸웠는데, 이때 다니엘(Daniel Stylita, +493)이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고 그를 만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동방 교회에서는 아나톨리오를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 레오 1세 ; 칼체돈 공의회)
※ 참고문헌  T.J. Campbell,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1, Robert Appleton Co., 1907/ P.T. Camelot, 《NCE》 1, pp. 482~483/ Angelo di Berardino ed., Encyclopedia ofthe Early Church, vol. 1, trans. by Adrian Walford, James Clarke & Co. Cambridge, 1992, p. 371 레이몬트 콧체 · 베른트 될러 편, 이신건 역, 《고대 교회와 동방 교회》, 한국신학연구소, 1995, pp. 238~243/ A. Franzen, 최석우 역, 《교회사》, 분도출판사, 1990, pp. 103~105, 127~132/ J.N.D. Kelly, 김광식 역, 《고대 기독교 교리사》, 도서출판 한글, 1997, pp. 373~385/ J.L. 니이브, 서남동 역, 《기독교 교리사》, 기독교서회, 1986, pp. 216~219. 〔崔爛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