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히〕אָדָם · 〔그〕Ἀδάμ · 〔라 · 영〕A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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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로 창조된 아담(왼쪽)은 온갖 생물들을 다스렸으며, 930년을 살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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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로 창조된 아담(왼쪽)은 온갖 생물들을 다스렸으며, 930년을 살다 죽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남자 이름.
아담은 구약성서에 605번 나오는데, 보통 명사로 사용될 경우 '사람' 을 가리키며, 정관사 '하' (חַ)가 없이 쓰일 경우에는 '인류' 혹은 '인간들' 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간혹 한 개인을 지칭하거나(시편 32, 2 ; 에제 27, 13 ; 잠언 28, 17 ; 집회 5, 18), 형용사로 '인간적인' 이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며, 막연히 누군가를 지칭하기도한다. 복수형이나 연계형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북서쪽 셈어에서 '아담' 은 성서 히브리어에서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고, 페니키아어에서는 "ארם" 이 전형적인 북부 관용어로 "사람"을 뜻하는 '이쉬' (אשׁ)보다 더 자주 사용되었다. 라스 샤므라(Ras Shamra) 문서에서는 "엘은 인류의 아버지" 라 하여 인류를 가리킬 때 "אר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구약성서〕 성서 히브리어에서 아담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은 태초의 사건들을 설명하는 창세기 1-11장이다. 기원 이야기에 여러 번 나오는 이 단어는 집합 명사로서 '인간' 을 가리키는데, 그 밖의 성서 다른 부분들에서도 아담은 모든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 : 창세기 1-11장에는 인간의 창조와 낙원에서의 추방, 홍수 이야기와 카인과 아벨 이야기, 그리고 족보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 야훼 전승(이하 J) 문헌과 사제계(이하 P) 문헌으로 되어 있으며, 인간 창조와 홍수 이야기를 두드러지게 반복하여 묘사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인간 창조 부분의 J 문헌(2, 4b-3, 24)은 인간 아담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 전체를 통하여 인간 아담의 개체성이 뚜렷한 반면, 한 개별 남자로 제한하는 것은 2장 18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담 이야기' 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하느님 현존 앞에서의 인간 존재를 제시한다. 또 3장 14-19절의 내용처럼 불순명에 대한 책망은 여자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간 공동체의 책임이다. 반면에 4장 25절에서 아담은 카인, 아벨, 셋의 아버지로서 고유 명사로 쓰였다.
P 문헌 1장 26-28절에서는 아담을 남자와 여자를 모두 가리키는 집합적인 용어로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한 부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모두를 가리키며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의미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5장 3-5절에서는 아담을 셋과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며, 아담이 죽었을때의 나이를 따져 보기도 한다. 이것이 꼭 J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창세기의 정경성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서는 창세기 1-11장을 J와 P를 연결시키기 위한 상호 종속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개의 본문은 인간에 대하여 균형 있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창세기 1장 26-30절과 2장 4b-24절의 인간 창조 이야기는 다음 세 가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첫째 두 이야기가 다 하느님께서 첫 번째 인간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간은 하느님을 닮게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인간 창조는 기원 이야기의 전형적인 서술로서, 인간 즉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를 말하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을 가리키는 아담이 고유의 이름 '아담' 이 된 것은 단지 족보 이야기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4, 25 ; 5, 1). 결국 이스라엘이 태초의 역사에 민족사를 엮으면서 생긴 일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하느님의 모상이므로, 인간을 그의 피조물성에서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다. 둘째,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로 만들어졌음에 대하여 1장 26-30절에 간결하게 언급되어 있다.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2장 4b-24절에도 역시 동일하게 나와 있다.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진흙으로 창조되었으나 하느님이 의도한 것이 아직 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 좋지않으니"(2, 18)가 의미하는 것은, 인간 창조는 진실로 여자의 창조로 완성되었음을 말한다. J 문헌은 인간 창조에 이 사실을 삽입하였다. 셋째, 두 이야기 모두 인간 창조의 목적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들과 에누마 엘리쉬나 아트라하시스 이야기에 나오는 인간 창조의 이유는, 매일 힘겹게 일해야 하는 하급신들이 일에서 풀려 나고 대신 인간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또 수메르 시대부터 인간 창조는 신들을 섬기는 의례에 결부되어 제의로 방향 지어져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성서에서의 인간 창조 이유는 온갖 생물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고(1, 26b. 28b : 2, 19-20), 또 모든 다른 피조물들까지 다스리고(1, 28) 땅을 일구고 돌보도록(2, 15 ; 2. 5b)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삶의 터전인 땅을 돌보고 온갖 생물을 다스려 조화롭게 계속 살 수 있도록 하며 하느님의 뜻을 채우는 인간 존재의 이유는, 인간의 창조 자체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에서 이 의무는 분리될 수 없다.
인간과 동물은 생명체로서 일치한다. 인간 창조는 동물 창조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고(2, 7. 18-24), 동물과 인간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며(1, 22. 28), 홍수 이야기에도 같은 양상으로 나란히 나오고 있다(6, 3 ; 7, 23). 이는 생명 공동체를 강조한 것이다.
인간의 한계 : 인간 창조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이루어졌고, 하느님의 현존에 초대되었다는 것은 창조에 이어 이야기되는 인간 소외와 불화에 인간이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창조 이야기나 인간의 피조물성은 인간이 지닌 한계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면서 어떻게 그런 한계를 지녔을까라는 질문에 구약성서는 여러 가지로 답변을 시도하고 있다. 즉 창세기 3-4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명 이야기와 카인과 아벨 이야기, 6-9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죄악과 노아의 홍수 이야기, 그리고 11장의 교만과 바벨탑 이야기 등이다.
사람들과 창조물 사이에 있는 친밀성, 혹은 일체감과 불화는 '아담' (אָדָם, 인간)과 '아다마' (אֲדָמָה, 땅, 흙) 사이의 언어 유희로 강조되었다. 아다마에서 아담이 형성되었다는 구절(창세 2. 7)은 아담이 아다마로 돌아가는 구절(3, 19)과 병행함으로써 그 뜻이 분명해졌다. 아담은 아다마를 경작하여야 하며(2, 6), 아담이 야훼께 불순명 할 때 아다마는 저주를 받는다(3, 17-19). 그리고 아담의 끝은 아다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언어 유희는 홍수 이야기를 통하여 계속되며 카인과 아벨 이야기(4, 11-12 ; 5, 29)에서 강조되고 있다. 죄와 저주라는 단어에서 아담과 아다마의 연계는 단지 노아의 제사 이야기(8, 21-22)에서 경감되는데, 이것의 기반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또 거기에서 비롯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있을 때, 곧 하느님과 거리를 두고 있거나 가까이 속해 있는 것에서 그 실재를 드러낸다. 인간에 대한 구약성서적인 인식은 자기 스스로에 기초하는 것이지 그 다음에 어떤 경로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그 자체로의 인간에서 출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담이라는 말과 함께 근원부터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한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가 하느님 앞에 서지 않는다면 결코 종합적으로 온전하게 규정될 수가 없다.
기원 이야기에 나오는 피조물성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대치적이라는 사실에 부응하는 것으로, 인간 존재는 필연적으로 그런 대조에서 기인한 한계를 포함하고있다. 만일 그가 이 한계를 지키지 않거나 소홀히 하면 인간 존재는 위협을 받는다. 즉 인간의 한계 이야기 역시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가 인간 존재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성서에서의 언급 : 구약성서 전반에 걸쳐 아담은 모두 570절에 605번 나오는데, 그중 모세 오경 에만 124번 언급되고 있다. 창세기 5장 1-5절에서 아담은 고유 명사로 나타나며, 그중 14번은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P문헌에서는 이 단어를 반복해서 "누군가가··· 할 때" (레위 1, 2 : 13, 2 등)라는 부정 대명사로 사용하였다. 신명기와 신명기계 역사서에는 35번나오는데, 여기에서는 보편 인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말한다(신명 8, 3). 또 사람은 외양을 보지만 야훼는 마음을 보신다(1사무 16, 7)고 하였으며, 금지 법령에서도 아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사람을 죽이지 마라"(여호 11, 14)가 그것이다. 이사야서에는 29번 나오며, 대부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차이를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서에는 30번 등장하는데, 사람에 대한 언급은 지혜를 말하는 것에서 두드러진다. "주님, 저는 압니다. 사람은 제 길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10, 23). 한편 에제키엘서에는 구약성서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33번 나오는데, 여기에서 예언자는 창조물의 대표로서 "사람의 아들" 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시편 (62번)과 읍기(27번)에서는 하느님과의 만남과 인간의 보편적인 운명이 모든 경우에 연결되어 있고, 잠언 (46번)과 집회서 (49번)에서는 특히 사람의 전적인 의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구약성서에서 아담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에서 사용된 아주 분명한 표현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초기 본문을 포함하여 아담의 구절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가리킨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 말이 매우 중요하게 등장하는 본문들과 그 횟수를 감안하면 구약성서에서 아담에 대한 주 개념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있다. 본질적으로 구약성서에서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만남과 그와의 관계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느님은 사람의 행위와 생생한 책임을 가져오는 한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분은 유일하고, 생의 모든 사건과 운명의 배후에 있다. 또 그분은 이렇게 인간이 끊임없이 하느님과 대면하도록 이끌며, 자연 종교와 다신교의 세계에서 사용되던 모든 이유들을 거부한다.
〔신약성서〕 신약성서에서는 아담을 그리스어로 '안트로포스' (ἄνθρωπος)로 번역하였는데, 구약성서에서와 같은 의미인 '사람' 혹은 '인류' 를 의미한다. 신약성서에서 '아담' 이 의미 있게 사용된 경우는 "아담-그리스도예형 신학(typology)"을 언급한 곳(로마 5, 12-21 ; 1고린 15, 21-22. 45-49)으로, 아담을 고유 명사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와 대조시켰다. 모든 죄인들의 대표인 아담은 은총으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한 그리스도의 인격을 예시한다.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새로운 인류의 머리이고 새로운 아담이다(1고린 15, 45). (→ 과성 은혜 ; 낙원 ; 생명수 ; 창세기)
※ 참고문헌  C. Westermann, Genesi, Piemme, 1989(titolo orig., Am Anfang. 1 Moes : Die Urgeschichte Abraham, Teil 1, Vluyn, Neukirchener, 1986)/ H.N. Wallace, 《ABD》 1, pp. 62~641 E. Jenni · C. Westermann, Dizionario Teologico dell'Antico Testamento, vol. 1, Torino, 1978, pp.36~491 G. Johannes Botterweck · Helmer Ringgren eds., 《TDOT》 1, pp.75~871 Von Rad, Genesi, Brescia, 1978(titolo orig., Daserste Buch Mose, Genesis, Göttingen, 1972)/ 박영식 역주, 《로마서》, 분도출판사, 1996, pp. 70~73/ 안성림 · 조철수, 《사람이 없었다 神도 없었다》, 서운관, 1995. 〔崔安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