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 민족

民族

〔히〕אֲרַמִי · 〔영〕Ara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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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인(기원전 9~8세기의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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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인(기원전 9~8세기의 부조)

북서 셈어군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사용된 아람어(Aramaic language)를 사용한 민족.
이스라엘인들이 맏물을 봉헌하기 전에 야훼 하느님의 제단 앞에서 드리는 신앙 고백 가운데 "저의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신명 26, 5)라는 표현이있다. 여기에서 '조상' 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인 야곱을 가리키고, '아람인' 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제공하는 족장 기사의 주요한 정황을 말해 준다. 비록 성서에 다른 족속들의 기원과 더불어 아람인에 대해 셈의 후예(창세 10, 22-23) 혹은 나홀의 후예(창세 22, 20-21)라고하거나 이사악과 야곱의 아내와 소실들을 하란 출신의 아람인들로 소개(창세 24, 29-31장)하는 등 혈연적 연속성에 관하여 나와 있지만, 그 역사적 기원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고대 근동의 학자들이 이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하여 시도한 방법 중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 근동의 문헌들에서 아람인을 가리키는 용어에 대한 역사적 문헌을 추적한 방법에 따르면, '아람인' 이라는 명칭은 지리적인 기원에서 발전하였고, 훗날 정치적인 집단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지리적 기원〕 기원전 3100년경 이집트 제1 왕조 때 출현하였던 '유목민들' 이라는 용어가 기원전 2700년경 아카드어 문헌에서는 수티우(Sutiu) 혹은 수투(Sutu)로 사용되었으며, 아시리아 시대에 와서는 아모리인과 아람인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이 용어는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Tiglath-pileser I, 기원전 1115경~1077경)의 군사 원정기록에 나오는 '아르마' 로 점차 바뀌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의 원정 기록에는 '아리메 땅' (mat arime)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아르마' 는 아시리아인들이 아르메니아 기슭에 살고 있던 소규모의 유목민 집단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한 최초의 비셈어 계통의 지리적 용어라고 여겨진다. '아르마' 라고 불렸던 아람인은 시리아 광야에 살던 부락민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정착한 뒤,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바빌로니아의 라피쿠에서 시리아의 카르케미시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 때문에 시리아는 곧잘 아람과 동일시되며, 칠십인역과 그에 따른 현대어 번역들에서도 '아람' 을 '시리아' 로, '아람인들' 을 '시리아인들' 로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 아람인들은 칼데아인들과 시리아 북부 · 바빌로니아 남부에서 함께 살았기 때문에 성서에서는 이들을 같은 민족으로 여겼다.
아람 국가들의 영역 내에서 세력이 강력해진 아람 통치자들은 '왕' 이라는 칭호를 가졌으나, 아시리아의 제왕들은 이들을 '지방 군주' 정도로 취급하였다. 아람인은 아시리아의 국력이 약화되자 그들의 영토를 침범하여 정착하였고, 아시리아의 '암흑기' 였던 기원전 1050~930년경에는 아시리아의 심장부까지 이주하여 티그리스 강동편에 정착하였다. 기원전 9세기경 다시 세력이 강화된 아시리아의 왕들은 이미 국가의 모습을 갖춘 아람인을 서쪽 땅으로 몰아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에 아시리아 제국의 왕들은 점령지를 본국의 영토에 영입시키고 정치 구조를 일원화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아람인 통치자들에게 외교권을 제외한 통치권의 유지를 인정해 주는 대신에 정기적으로 조공을 받는 종주 · 봉신 국가의 관계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에 아시리아는 군사 원정을 통하여 아시리아인 관료를 아람인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Ⅱ, 기원전 883~859)와 샬마네세르 3세(Shalmaneser Ⅲ , 기원전 858~824)의 군사 원정 문헌에는 비트 아디니(Bit-Adini) · 비트 바안(Bit-Bahyan) · 비트차만(Bit-Zaman) · 비트 칼루페(Bit-Khalupe) 같은 봉신 국가들이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비트 아디니가 계약을 지키지 못한 경우에 속한다. 즉 기원전 855년 비트 아디니는 다른 독립 국가들과 연합을 시도하다가 샬마네세르 3세에게 점령당하여 비트 바르십(Bit-Barsip) 같은 주요 지역을 아시리아의 요새로 내주고 말았다. 그 후에도 다마스커스의 아다드 이드리(Adad-idri, 성서에서는 Hadadezer)를 중심으로 헷족 하마스(Hamath)의 우르힐리나(Urhilina)와 이스라엘의 아합을 포함한 아람 국가들이 아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국을 형성하고 기원전 853년경 '카르카르 전투' 를 벌였다. 그 결과 아시리아는 기원전 849년, 848년, 854년의 원정을 통하여 이 동맹을 무산시킨 데 이어 기원전 841년과 838년에는 다마스커스 원정을 단행하는 등 반란 국가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740년에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기원전 746~727)에게 얌핫의 아르파드가 정복되었고, 기원전 732년에는 소바와 다마스커스가 정복되었으며, 기원전 722년에는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한 뒤, 2년 후 사르곤 2세에 의해 하마스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아시리아 제국의 왕들은 이들 피정복민들을 하볼 강변의 아람 땅 과 고산 지역 등 시리아 영토로 분산시켰는데, 이들은 그후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지 못하였다.
〔이스라엘과 아람 국가들〕 판관 시대에 아람인들은 요르단 강 상류 주변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북쪽과 북동쪽으로 이스라엘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특별히 성서에서는 서쪽 경계를 이루었던 갈릴리 동쪽의 그술과 마아갓에 대하여 "그러나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그술족과 마아갓족만은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술과 마아갓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여호 13, 13)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시리아 전 지역의 통치권을 행사하던 '르흡의 아들, 소바 왕 하다데제르' (1사무 14, 47 ; 2사무 8, 3-8 등)가 자신의 통치권을 회복하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쳐들어오자 도중에서 그를 쳐 이겼으며, 원조 병력마저 무산시킴으로써 그의 통치권 지역을 빼앗아 소바를 봉신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아람인들은 요르단 강 건너편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리고, 서로 용병을 주고받으며 동맹하여 다윗에게 대항하였다(2사무 10, 8). 남북조 왕국 시대에 유다 왕 아사(기원전 911~870)는 다마스커스를 다스리고 있던 벤하닷-혹은 아합 시대까지 이르는 벤하닷 왕조라고 추정되는-에게 이스라엘 왕바사와의 연합을 파기하고 선조 때부터 맺어 온 친분을 계속 유지하자는 제안을 하여 교섭 끝에 성공을 거두었다(1열왕 15, 18-19). 이후 아람 국가는 팔레스티나에서 매우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벤하닷을 살해하고 등극한 하자엘(2열왕 8, 15)은 이스라엘을 가혹하게 다루었으며(2열왕 13, 3. 7), 다마스커스는 소바와 그술과 마아갓을 흡수하고, 이스라엘의 북동쪽을 침략하였다(1역대 2, 23) .
〔아람인의 문화〕 아람인들은 초기 소수의 부족에서 시작하여 국가로 발전하였으며 기원전 9세기 때 이르러서는 다마스커스의 '벤하닷' 과 같은 왕조 시대로 발전하였다. 이들은 제국의 형태를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때에 따라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연합국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창세기의 라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아람인들은 반유목적인 생활을 하였으며, 아시리아의 전리품 목록에는 곡식이나 가축 등이 기록되어 있고, 기원전 700년경의 하란 인근 지역에는 목축을 하는 소규모의 농부들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각 도시에는 만신전을 비롯한 수호신이 있었는데 가장 유력했던 수호신은 '하다드'(Hadad) 혹은 '하다' (Hadda)였다. 다마스커스의 왕들은 '하다드의 아들' 이라고 불렸으며, 다마스커스의 신전에서 이 신은 '번개' (Ramman, 구약성서에서는 '림몬' )로 알려져 있었다. 이와 더불어 '엘' (El)이라는 최고의 신이 있었고, 이외에 달신 · 태양신 등이 있었다. 아람인들은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의 신들을 그들 나름대로 토착화시켰던 것 같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성향의 독특성은, 고대 근동의 세계를 끊임없이 이주하면서 인근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동화시켜 다시 이주한 곳에 퍼뜨렸다는 점이다. 즉 아람 민족은 페니키아인의 알파벳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토착화시켰고, 이것을 다시 페르시아, 이스라엘, 아랍 등에 전함으로써 아카드어나 페르시아의 설형 문자들을 대치시켰다. (→ 시리아 ; 아람어)
※ 참고문헌  W.W. Hallo · W.K. Simpson, Ancient Near East. A History, Harcourt Publications, 2nd ed., 1998. 〔曺哲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