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 페니키아어 · 우가리트어 · 모압어 · 암몬어 · 에돔어 등과 함께 북서 셈어군 중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사용된 언어.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성서 기록에도 사용되었고(다니 2, 4-7, 28 ; 에즈 4, 8-6장 ; 7, 12-26 ; 예레 10, 11 ; 창세 31, 47), 기원전 10세기 전후에는 근동 전 지역에서 국제어로 사용된 공용어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랍비 유대주의가 태동하던 시기에는 팔레스티나 · 시리아 ·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요한 구어(口語)이기도 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아람어를 사용하였고, 구약성서 중 후기에 쓰여진 성서 일부와 복음서 · 사도 행전에 아람어에서 번역된 흔적이 있다. "압바" (마르 14, 36) "탈리다 쿰" (마르 5, 41), "마라나 타"(1고린 16, 22) 등이 대표적인 구절이다. 또 시리아 성서(Peschitta)와 타르굼(תַּרְכּדּם, 해석 · 번역)은 히브리어 성서의 아람어 번역인데, 이는 랍비 문학을 비롯하여 시리아 그리스도교와 남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활발히 교세를 확장했던 그노시스주의자들의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역사와 서체〕 기원전 1100년경 아람인들은 가나안인들과 페니키아인들이 사용하던 알파벳을 차용하여 기원전 8세기 중엽까지 사용하였다. 그런데 페니키아어는 기원전 9세기 말까지 아람어권 지역의 비문에서 발견되며, 기원전 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다마스커스(Bar-Hadad, king of Damascus)와 하마스(Zakur, king ofHamath) 지역의 비문에서 같은 서체의 아람어가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헌들에서 '트' (ח)라는 철자가 두 획으로 표시된 것 외에 페니키아 알파벳과 분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아람어 서체의 독특성을 보여 주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기원전 8세기 중엽 하마스의 벽돌에 각인된 필기체이다. 아람어는 페니키아어보다 더 풍부한 음성 체계가 있었음에도 페니키아어의 22개 문자를 그대로 차용하였다. 기원전 1000년경에는 아람어와 아람어 서체의 사용이 아람 국가들에 한정되었지만, 기원전 8세기경 아람 국가들을 정복한 아시리아는 아람어가 자신들의 설형 문자보다 더욱 쉽고 편리함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아람어는 아시리아 제국 서부 지역의 공식 언어가 되었으며, 점차 외교와 무역에서 국제어가 되었다. 아시리아의 시종 장관에게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아람어로 이야기해 달라고 까지 할 정도였으며(2열왕 18, 26), 기원전 7세기 말엽 팔레스티나 도시의 왕 아돈은 바빌론의 침입을 우려하여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군사 원조를 요구하는 서신을 아람어로 보내기도 하였다.
한 국가의 아람어가 다양한 민족과 국가들에 의해 사용됨에 따라 예전의 문자들은 불필요한 획이 사라지고 변형되었다. 기원전 7세기 말경 아람어 서체는 페니키아어와 히브리어 서체와 비교해 볼 때 속기처럼 보이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또 소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이집트와 북아라비아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된 아람어 서체의 형태는 모두 동일하였다. 표준문자들은 정식 서기관들에 의해 필기체 형태로 유지되었으나, 그 외의 사람들은 더 빠르게 쓸 수 있는 서체로 바꾸려고 모색하였다. 이에 따라 필기체 서체는 표준형 . 자유 필기형 · 대중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외에 기원전 9~8세기경 비석 등에 사용된 석비 서체가 발견되었고, 8세기 후반에는 필기체의 형태가 비문과 인장 등에 사용되었다. 기원전 8세기부터 3세기까지, 즉 알렉산더대왕(기원전 356~323)의 정복 이후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아람어를 대신하기 전까지 비문과 사본들에는 동일한 형태의 아람어 서체가 쓰여졌다. 그러나 그리스 제국 시대에도 이미 깊이 뿌리를 내린 아람어는 100년 간 유지되었으며, 서기 3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다양화되었다.
〔구 분〕 동부 계열 : '시리아-팔미르계' (Syriac Palmyrene branch)는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시리아어는 에데사(Edessa)와 팔레스티나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언어이자 서체였고, 팔미르와 로마에 이주한 팔미르인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북메소포타미아계' 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하트라(Hata)라는 오아시스에서발견된 문헌을 통하여 알려진 것으로, 아르메니아인과 그루지야인들에 의해 문어(文語)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남메소포타미아계' 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노시스주의 분파로 알려진 만데아인(Mandeans)에 의하여 사용되었고, '이란계' 는 파르티아인(Parthians)과 페르시아인과 소그디아인(Sogdians)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서부 계열 : '유대 서체' (Jewish script)는 중세와 현대 히브리어의 모체가 되었으며, 유대인들은 제1 성전 시대의 국가 서체였던 고대 히브리어 서체보다 이 서체를 더 좋아하였다. 그러나 135년 바르 코크바 항쟁 이후 옛 히브리어 서체(Palaeo-Hebrew script)는 사마리아인들에 의해서만 유지되었고, 유대 필기체(Jewish cursive)는 사라졌다. '나바테아 서체' (Nabatean script)는 나바테아 도시들에서 발견된 기념비들과 시나이 산 지역의 암벽화 등을 통하여 알려졌다. 특히 나할 헤베르(Nahal Hever)에서 발견된 증서들의 서체는 아라비아 서체의 전신으로 보인다.
〔의 미〕 아람어는 오늘날까지도 현존하는 언어로서, 다마스커스의 북동 지역 도시인 마룰라에서는 비록 어휘는 아랍화되었지만 서부 방언 형태의 구어로 아람어가 사용되고 있다. 또 터키 남동 지역에서는 고전 시리아어 계열의 방언 형태로 서부 시리아어가 야곱파 신자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으며, 이라크의 쿠르드인들과 이란 · 터키 · 아제르바이잔 등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동부 시리아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 방언인 만데아어가 이라크의 최남단 지역과 인접한 이란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근래에는 고전 시리아어가 중동 · 유럽 · 북아메리카의 이주자 공동체 지역에서 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의 의사 소통 수단으로 다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 셈족 ; 아람 민족)
※ 참고문헌 J. Naveh, Early History oftheAlphab Leiden, 1982. 〔曺哲秀〕
아람어
語
〔히〕אֲרָמִית · 〔영〕Aramaic language
글자 크기
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