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교부. 호교론자. 락탄시오(L.C.F. Lactantius, 250?~321?)의 스승(예로니모의 《명인록》 80 ; 《서간집》 70. 5. 2).
3세기 중엽에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시카(Sicca)에서 태어났으며, 오랫동안 고향에서 수사학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았다. 본래 그리스도교를 맹렬하게 공격하던 사람이었으나, 50세 정도 되던 295년경 꿈속에서 환시를 보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열렬한 호교론자가 되었다. 꿈의 내용과 개종 동기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개종한 다음 그는 자신의 기쁘고 평화로운 심정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오, 나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눈먼 사람이었던가! 나는 대장장이들이 망치로 두드려 만든 형상들, 코끼리의 뼈들, 그림들, 고목(古木)에 걸려 있는 넝마들을 섬겨 왔었다. 사실 나는 올리브 기름에 절어 있는 바위를 쳐다보고는, 마치 어떤 신적 능력이 그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깊은 존경심을 드러내곤 하였다. 아무 이성적 요소도 없는 그런 바위에 대고 나는 말을 하고 복을 빌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무나 돌이나 뼈의 조각들에 불과한 이런 물질에 신들이 거처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품고, 그것들을 불손하게 다루기도 하였다. 위대한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인도에 따라 이제 진리의 길에 들어선 나는 이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우리는 다만 그분에게서 기쁜 생활을 영위할 큰 은혜를 받았고 그분께 바람으로써 언젠가는 다가올 그날에 희망을 두고 있을 뿐이다"(《이교 민족 논박》 1, 39). 아르노비오는 평신도로서 후배 양성에 힘쓰다가 327년에 사망하였다.
〔저 서〕 집필 동기 :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말기인 303년에 매우 혹독한 박해가 있었는데, 그리스 도인들이 우상 숭배를 거부하여 재난과 질병, 기아와 전쟁 등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박해의 이유였다. 이에 대항하여 아르노비오는 7권으로 된 《이교 민족 논박》(Ad-versus nationes, 304~310)을 저술하여(PL V ; 《CSEL》 Ⅳ) 박해의 부당성과 이교의 비합리성을 지적하였다. 예로니모의 《연대기》(Chronologia)에 따르면, 이 저서는 개종할 뜻을 밝힌 아르노비오에게 당시 시카의 주교가 의심을 갖자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신앙을 고백하기 위하여 저술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연대기》의 이와 같은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아르노비오의 저서에는 교회의 정통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 견해들이 많고, 또 시카의 주교가 이 저서를 참된 신앙의 입증으로 간주하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형식 : 《이교 민족 논박》에는 이교도들의 종교심과 철학, 그리고 다양한 그리스도교적 이단 특히 마르치온 (Marcion, ?~160?)에게서 영향을 받은 부분들이 있다. 이 저서는 비록 호교론적 유형에 속하지만, 그리스도교를 옹호하기보다는 이교 사상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데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어 당시 이교 사상을 가장 신랄하게 질타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보존되어 있는 사본이 유일한데, 이 사본을 보면 그가 순수한 수사학자로서 집필한 흔적이 보인다. 그는 신학을 정식으로 배운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주장을 근거 있게 증명할 만한 바탕도 없었다. 또한 그는 51명의 철학자들과 저술가들을 인용하면서도 원서를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플로릴레지아' (florilegia, 꽃다발) 즉 어떤 주제나 분야에 대해 이전의 학자들이나 그들의 가르침을 마치 꽃다발처럼 모은 소책자만을 인용하였다.
그리고 아르노비오가 이 저서에서 신앙에 대해서 강조 할 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동의 느낌은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교회에서 인정할 수 있는 저술들을 가려내는 기준이 되었던 6세기의 《젤라시오 법령》 (Decretum Gelasianum)은 그의 저서를 외경으로 간주하였다. 신학적으로 볼 때 비록 빈약한 저술이지만, 《이교 민족 논박》은 당시의 이교도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측면에서는 가장 풍부한 가치가 있는 저술로 꼽힌다.
구성과 내용 : 《이교 민족 논박》은 크게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내용(제1~2권)과 이교도들의 오류를 비난하는 내용(제3~7권)으로 구분된다.
제1권에서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세상의 질병과 재앙이 생겨난다는 주장을 배격한 아르노비오는, 신들이 분노하여 이런 재앙들을 내린다는 것은 이교도들의 주장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함은 이교도 사제들에 의한 책동으로서, 불황기에 그들의 수입이 감소되자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질병 · 가뭄으로 인한 추수의 감소 · 우박 · 메뚜기로 인한 피해 등 온갖 종류의 재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있기 전에도 있었지, 자연의 법칙이 그리스도교의 탄생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그리고 전쟁의 처참함도 과거에 더 심했다고 주장하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신들의 감정을 진노하게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믿고 공경한다. 그분은 지고의 왕이며 첫째가는 신이다(deus princeps, deus summus). 그리고 신자들은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적을 통하여 자신이 참된 하느님임을 계시하였고, 이교도의 종교를 무너뜨리고 참된 종교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첫째 하느님을 공경하라고 가르쳤다. 그리스도인들은 첫째 하느님을 공경함으로써 공경해야 할 다른 모든 신들까지도 포함한다. 이러한 주장을 통하여 아르노비오는 이교도들의 공격에 맞섰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종교인 그리스도교는 오히려 세상안에서 재앙을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행하면 전쟁 같은 재앙도 일어나지 않게 되며(1, 6),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참된 종교 · 참 신앙을 가져왔음을 역설하면서, 그리스도교에 귀의할 것을 권유하였다. 또 그는 여러 형태의 이교들을 세밀히 분석하면서 모든 우상 숭배는 잘못된 신관과 비도덕적인 신화에 의한 것이라고 갈파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보잘것없는 인간을, 더 나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를 공경한다는 비판에 대하여, 아르노비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기적들은 신성을 지닌 분임을 명백하게 보여 주며 신앙의 전파와 확장은 그것을 입증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또 구세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온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제2권에서는 이교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미워하는 것에 대하여 거론하였다. 그는 그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우상 숭배를 지상에서 추방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참된 종교를 가져다 주었으나 그들은 어리석게도 거절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조롱을 받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가운데 많은 부분이 위대한 철학자들로부터 인정받았는데, 예를 들어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가르침은 플라톤(기원전 428/427~348/347)에게서도 발견된다(2, 13 이하). 제3~5권에서는 이교도들이 섬기는 신들에 대한 신화가 얼마나 우습고 윤리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오류인지를 밝혔으며, 제6권에서는 이교도들이 우상을 숭배하기 위하여 신전을 건축하고 조각품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리고 제7권에서는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의 오류에 대하여 공박하였다.
원 사료 및 가치 : 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83~322/321), 소포클레스(Sophokles, 기원전 496~406) 등 그리스 학자들뿐만 아니라 바로(M.T.Vamo, 기원전 116~27), 치체로(M.T. Cicero, 기원전 106~43), 루크레시우스(T. Lucretius, 기원전 98~55) 등 라틴 저술가들의 작품도 폭 넓게 인용하였다. 반면에 특이하게도 성서나 교부들의 글은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자들은 그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의 《그리스인들을 위한 권고》(Protrepticus) , 테르툴리아노의 《호교론》과 《이교 민족들에게》(Ad nationes) , 그리고 미누치우스 펠릭스(Marcus Minucius Felix, ?~250?)의 《옥타비우스》(Octavius)를 읽고 인용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르노비오의 저서는 락탄시오의 《신의 훈시》(Divinae intitutiones)와 유사한데, 이는 작품들이 공통된 원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여러 주장에 대해 학자들간에 논란이 있으나, 아르노비오는 아마도 3세기 말과 4세기 초의 사상적 혼란을 고려하여 그리스도교와 이교 사상 사이에 조화를 꾀하면서 자연 신학적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부각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저서는 그리스도교 신학 사상적으로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지만 당시 이교 사상을 진단하는 데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사상 및 신관〕 예로니모가 자신의 <서간> 58편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교 민족 논박》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아르노비오가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 아르노비오는 하느님을 감지되지 않으며 접근할 수 없는 분, 이 세상을 완전히 초월하고 격리된 분으로 이해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신관은 플라톤적 신관에 상당히 가깝다. 사실 아르노비오에게 있어서 하느님 아버지는 본래의 첫째 신이다(Deus princeps) . 그러나 그는 이교도들의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신들은 단지 하급의 신들이며, 그들의 존재와 능력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아르노비오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부모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보다는 높은 다른 어떤 존재로부터 나오는데, 그 높은 존재는 첫째 신인 하느님은 아니고, 그보다 등급이 낮은 신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다(2, 36). 그리고 영혼은 그 본질이 신적인 요소와 물질적인 요소의 중간 형태(mediae qualitatis)라고 설명하였다(2, 14). 유스티노(Justinus, 100?~165?), 안티오키아의 주교 테오필로(Theophilus, 2세기 말)와 마찬가지로 아르노비오도 인간의 영혼이 본래부터 불멸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한 하느님의 은혜로 불멸하는 영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longaeva fieri 2, 32 ; vitae aeternitate donari 2, 34). 이 은혜는 인간이 지고의 하느님을 알아보는 노력 여하에 따라 주어지는데(2, 14), 이와 같은 그의 믿음이 그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데 기여하였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아르노비오는 제1권에서 하느님께 박해자들의 용서를 청하는 아름다운 기도를 서술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두를 창조하신 지극히 높으시고 위대하신 하느님, 당신은 피조물들이 볼 수 없고 감지 할 수도 없는 분이시니, 찬미받으소서. 이 더러운 입술로 당신을 감히 찬미할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자연 안에서 숨쉬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당신께 마땅히 감사드려야하며, 당신께 무릎을 끓고 기도드리고, 삶을 다하여 끊임없이 당신 이름을 부르며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제1 원인(第一原因)이며, 시공(時空)의 원천이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십니다. ··· 당신은 무한히 위대하고 끝없는 분이시며, 움직임도 조건도 없으신 분이기에, 사멸할 인간의 그 어떤 언어로도 당신을 형언할 수 없나이다. 당신을 깨닫기 위해서는 오로지 침묵이 요청될 뿐 입니다. 무모하게 당신을 묘사하려는 그 어떤 속삭임도 피해야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왕이시여, 당신의 종들을 박해하는 그들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푸소서.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종교를 거부하는 그들을 당신의 각별한 자비로써 용서하소서"(1, 31).
하느님에 대한 고상한 개념을 드러내 주고 있는 이 기도에서 아르노비오는, 인간은 천부적으로 첫째 원인이며 만물의 근원인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타고난다고 확신하였다(1, 33). 이렇게 그는 테르툴리아노의 '본성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인 영혼' (anima naturaliter christiana)이라는 개념을 수용하였던 것이다. 아르노비오는 하느님을 인간과 멀리 떨어져 있는, 감정이 없는 존재로, 그리하여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분으로 서술하였으며(1, 17 ; 6, 2 ; 7, 5, 36), 이러한 신관은 《이교 민족 논박》 전체에 걸쳐 내재해 있다. 또한 어떤 감정에 의해 방해를 받는 존재는 약하고 고통받기 쉽고,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사멸하는 존재(1, 18)라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그가 다른 호교 교부들과는 달리 이교도들의 신들을 마귀와 동일시하지 않고 그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은 것은 특이하다. 그러나 그에 의하면, 이교도들의 신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권위는 하느님이 나누어 준 것이기 때문에(1, 28),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만을 공경하면 가장 완전한 공경이 되므로 아무런 부족함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 호교가)
※ 참고문헌 G.E. McCracken, Arnobius of Sicca, The Case against the Pagans-Adversus Nationes vol. I Ancient Christian Writers, 7, J. Quas-ten · J.C. Plumpe ed., The Catholic Univ. of America Washington D.C., 1949/ B. Altaner · A. Stuiber, Patrologie Leben, Schriften und Lehre der Kirchenväter, Herder, 1993, pp. 183~185/ J. Quasten, Patrology II , West-minster, 1986, pp. 383~392/ O. Bardenhewer, Geschichte der alikirchlichen Literatur II , Herder, 1912, pp. 517~525/ G. Bardy, 《RAC》, pp. 709~711. 〔張仁山〕
아르노비오 (?~327)
〔라〕Arnobius
글자 크기
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