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영〕Republic of Arm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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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 아시아에 있는 공화국으로, 공식 이름은 아르메니아 공화국(Respublilika Armeniya). 북쪽은 그루지야, 동쪽은 아제르바이잔, 서쪽은 터키, 남쪽은 이란과 접경하고 있다. 면적은 29,743k㎡이고, 인구는 3,773,000명 (1997)이며, 수도는 예레반(Jerevan)이다. 공용어는 아르메니아어. 국민 대다수가 아르메니아인이며, 아제르바이잔인 · 러시아인 · 쿠르드인이 소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교는 없으나 대부분이 동방 교회에 속하는 아르메니아 교회 신자들이다.
기원전 2세기 아르메니아 지역에 건설된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은 기원전 1세기경 최고로 번성하여 인접 지역인 이베리아 · 알바니아 · 시리아 · 파르티아의 일부까지 세력을 뻗쳤으나,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로마의 보호국이 되었다. 그리고 387년에는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에 의해 분할되어 지배를 받다가 페르시아 세력이 쇠퇴하자 동로마 제국에 의해 지배를 받았으며, 7세기부터는 아랍 · 오스만 제국 · 몽골 등 이민족의 침입과 지배를 받게 되어 아르메니아의 전통 문화는 파괴되고 말았다. 한편 12세기 초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이슬람교 신자들의 탄압을 피해 실리시아(Cilicia) 지방으로 이주하여 소(小)아르메니아 왕국을 세웠다. 15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6세기 이후부터는 터키 · 이란 · 러시아 간의 세력 다툼으로 잠시 독립하기도 하였지만(1722~1730) , 정치적 혼란은 1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19세기 초 러시아가 카프카스 지방을 합병한 뒤 러시아 와의 경제적 통일이 이루어졌고, 1921년에는 예레반을 수도로 하는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공화국' 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그루지야 ·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카프카즈 연방 공화국' 을 형성하였으며, 1936년 독자적인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다가 1991년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복음의 역사〕 3세기 이전까지 아르메니아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또 1세기에 성 타데오(St. Thaddeus)와 성 바르톨로메오(St. Bartholomaeus) 사도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은 전설에 불과하다. 아르메니아에 본격적으로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것은 그레고리오(Gregorius Illuminator, 240~332)에 의해서였는데 페르시아인들의 박해로 가빠도기아(Cappadocia)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그는, 261년 환국한 뒤 아르메니아 왕 티리다테스 3세(Tiridates Ⅲ, 238~314)를 비롯하여 많은 국민들을 개종시켰다. 그 결과 301년에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었으며, 그리스도교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가자 그레고리오는 12개의 주교좌를 설립하였다. 그의 선교 영향은 멀리 그루지야와 알바니아까지 미쳤으나, 그가 사망한 뒤 정치적 · 종교적으로 많은 혼란이 초래되자 성 바실리오(St. Basilius, 329~379)는 그 후 아르메니아의 여러 지역을 두루 다니며 오용된 종교 생활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였다. 더욱이 아르메니아 일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페르시아 지배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며 조로아스터교로의 전향을 강요하자 많은 신자들은 산속으로 피신하였다.
451년에 열린 칼체돈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 단성설 (monophysitismus)을 이단으로 단죄하였는데, 같은 해 아르메니아 교회가 이 결정을 거부함으로써 가톨릭과 단절하였으며, 1054년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열로 동방 교회의 한 분파가 되었다. 그 후 아르메니아 교회는 십자군과 유럽 문화의 영향으로 피렌체 공의회(1483~1439)에서 가톨릭과의 일치를 선포하였으나, 실제로는 분열과 일치의 반복이었다. 16세기부터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도미니코 수도회 · 예수회 · 카푸친 작은 형제회(O.F.M.Cap.) 등이 아르메니아에서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1694~1764년에는 가톨릭과 아르메니아 교회 사이에 우위권을 차지하려는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내의 수도회들은 로마로 신학생들을 유학 보내고, 교구 신부를 보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1742년에는 실리시아에 아르메니아 총대주교좌가 설립되었고, 18세기 초에는 페르시아에 의해 점령되었던 아르메니아 영토를 점령한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러시아 정교회에 귀속시키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1년에 교구는 19개로 증가하였다. 1915년부터 오스만 정부에 의하여 약 175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로 추방되면서 여러 교구가 폐지되고 말았으나, 1928년부터 다시 교계 제도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뒤 이듬해 3월 23일 교황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현재 아르메니아의 동방 교회 신자는 인구의 94%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는 3.7%에 불과하지만, 역사상 최초의 그리스도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복음화 1,700주년을 맞이하여 2001년 9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 1996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147,000명이며, 그루지야를 포함하여 라틴 전례를 따르는 신자들을 위한 직할 서리구(administratio apostslica) 1개와 본당 29개에, 아르메니아에 좌를 두고 있는 동유럽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교구 직권자(ordinaius) 1, 대주교 1, 신부 17(교구 소속 1, 수도회 소속 16), 수녀 18명이 있다. (→ 그리스도 단성설 ; 동방 교회)
※ 참고문헌  N.M. Setian, 《NCE》 1, pp. 825~830/ 《EB》 2, pp. 418-426/ 2000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p. 308~309/ Annuario Pontificio 1998, Città del Vaticano, 1998/ 《EU》 Les Chiffres du Monde, pp. 102~103.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