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가톨릭 음악가이자 성당 악장. '마드리갈' (madrigal) 작곡가. 그의 이름은 여러 가지 (Arkadelt, Archadet, Harcadelt)로 표기된다.
〔생애와 활동〕 1505년경 플랑드르(현 벨기에)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1539년 로마의 산 줄리아노(San Giuliano dei Fiam-minghi) 성당 기록에 "플랑드르 출신의 성당 악장 야고보" (Jacobus Flandrus magister Capellae)라고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1514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설도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아르카델트는 1532년에 베르들로(P. Verdelot, 1470/1480~1552)가 악장이었던 음악 단체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며, 적어도 1539년부터는 교황청 소속의 성가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던 것 같다. 산 줄리아노 성당의 테너 가수,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magister puerorum)를 거쳐 1540년 12월 30일에는 시스티나 경당의 악장으로 임명되었다.
아르카델트는 음악 애호가인 교황 바오로 3세(1534~1549)의 후원으로 당대의 교회 음악을 교황 율리오 2세(1503~1513)나 레오 10세(1513~1521) 때와 견줄 만큼 크게 발전시켰다. 1547년 5월 28일까지 1년 간의 파리 체류를 포함하여 10여 년 동안 악장을 역임하면서 창작 활동의 절정기를 맞았던 그는, 적어도 1552년까지 시스티나 경당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155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에서 로렌(C. Lorraine) 추기경의 성당 악장으로 활동한 듯하다. 이는 그가 1557년에 파리에서 출판한 《3개의 미사곡》에 자신을 그렇게 표기하였기 때문인데, 실제로 1547년에 추기경이 된 로렌이 교황 바오로 3세가 사망한 뒤 아르카델트를 자신의 성당악장으로 요청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1568년 프랑스에서 사망하였다.
〔작 품〕 처음에 아르카델트는 모테트(Motetus)를 작곡하였는데, 1531년에 작곡한 6개의 모테트는 그가 동 시대의 다른 작곡가들처럼 교회 음악 작곡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음을 말한다. 그의 교회 음악곡에는 4~5성부 미사곡 3편, 무통(J. Mouton, 1458~1522)과 실바(A. de Silva)의 모테트를 편곡한 2편의 파로디 미사곡, 모테트 20편, 그리고 <마니피카>(Magnificat, 1557), <탄식의 노래>(Lamento, 1557), 시편 6편(1559) 등이 있으나 작품수로 보아 그의 핵심 창작 분야가 교회 음악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그의 교회 음악 작품들마저 적잖이 분실되었고, 그중에 6곡의 시편은 베이스 파트만 전해지고 있다.
미사곡과 모테트를 포함한 아르카델트의 음악 양식은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 1440~1521)의 전통적인 모방 기법을 따랐으나, 당시 로마에서 활동하던 페스타(C. Festa, 1480~1545), 에스코베도(B. Escobedo), 모랄레스(C. de Morales, 1500~1553) 등 이탈리아와 스페인 음악가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이를 넓혀 나갔다. 그의 작품들은 상성부의 선율성 강조, 과감한 불협화음의 사용 등 매우 진보적인 경향을 보여 주고 있으며, 교회 음악 특히 모테트들은 이탈리아 · 프랑스 · 독일에서 출판되는 등 폭 넓게 수용되었다. 이 작품들은 그 후 팔레스트리나(G.P. da Palestrina, 1526~1594)에게 전승되어 무반주 폴리포니(Polyphonie) 교회 합창 음악을 절정으로 이끄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가 세속 음악 분야에서 마드리갈 작곡가로 알려진 것은 그가 남긴 120여 곡의 상송과 특히 200여 곡의 마드리갈 때문이다. 1539년에 출판된 4권의 마드리갈 전 집 서문에서는 아르카델트를 "대단히 탁월하고 신적인 작곡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가 받았던 많은 위촉 작품들도 그의 명성을 입증해 주는 예이다. 즉 1534~1539년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미켈란젤로(1475~1564)의한 문서에는, 미켈란젤로가 아르카델트에게 자신의 시(詩)로 마드리갈을 작곡해 줄 것을 위촉하였다고 한다. 아르카델트의 첫 《4성부 마드리갈 작품집》이 1654년까지 40판을 인쇄할 정도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 역시 그의 음악적 탁월함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가톨릭 성가》 274번으로 수록된 <성모송>(Ave Maria)이 아르카델트의 작품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18세기의 작곡가 디트슈(P.C. Dietsch)의 작품이다. (→ 가톨릭 음악)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1, 세광음악출판사, 1990, p. 253/ J. Schmidt-Görg, 《MGG》 1, pp. 603~607/ 《NGDMM》 16, Macmillan, 1980, pp. 752~811/ W. Gurlitt, Hrsg. von, Riemann Musik Lexikon, Personenteil 1, Schott's Söhne, 1959, p. 47. 〔趙善宇〕
아르카델트, 자크 (1505?~1568)
Arcadelt, Jacques
글자 크기
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