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영〕Argentine Re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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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대륙 남단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공식 이름은 아르헨티나 공화국(República Argentina). 북쪽은 볼리비아, 북동쪽은 파라과이, 동쪽은 브라질과 우루과이, 서쪽과 남쪽은 칠레와 접경하고 있으며, 남동쪽은 대서양과 연해 있다. 면적은 남대서양의 도서 등을 포함하여 3,761,274㎢이고, 인구는 36,600,00명(1999)이며, 수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이다. 연방 수도와 13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종은 유럽계(특히 스페인과 이탈리아계) 백인이 대다수이고, 나머지는 메스티소와 인디언 등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며, 국교는 가톨릭이다.
아르헨티나의 식민지 역사는 1516년 스페인 사람 솔리스(Juan Diaz de Solis)가 처음으로 지금의 라플라타 강(Rio de la Plata) 유역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으며, 특히 은광이 발견되면서 식민지 정복자들은 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식민 도시를 건설해 나갔다. 그 뒤 1776년에 스페인 정부에 의해 현재의 아르헨티나 · 우루과이 · 파라과이 · 볼리비아 등을 포괄하는 지역에 라플라타 강부왕령(副王領)이 세워졌으며, 부왕령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무역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유럽과 남아메리카를 잇는 중계항으로 급성장하였다. 그러던 중 1807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 본토를 점령하자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도 독립의 기운이 고조되었고, 1810년 5월에는 아르헨티나도 혁명을 통해 국왕을 폐위시키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1813년 의회를 소집했으나, 국가 형태를 둘러싸고 연방주의자들(federalistas)과 중앙 집권주의자(centalistas)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어, 1818~1820년에는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1852년 제헌 의회가 소집되었고, 이듬해 제헌 헌법이 선포되었으며, 1861년 미트레(B. Miitre, 1821~1906)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비로소 정치적 갈등이 진정되었다. 1943년에는 페론(J. Peron, 1895~1974)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뒤 민족주의를 고취시켜 나갔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독재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이에 레오나르디(E. Leonardi)가 1955년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이때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군정과 민정이 되풀이되는 정치 불안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89년 메넴(C. Menem)이 취임하면서 아르헨티나는 점차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복음의 역사〕 가톨릭의 전래 : 16세기 마젤란(F. de Magellan)의 탐험대가 훌리안(San Jiilian)에 도착하였을때, 동행했던 몇몇 성직자들이 처음으로 십자가를 세우고 미사를 집전하였다. 이어 스페인 식민지 정복자들이 새로운 도시를 세우면 반드시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이를 가톨릭 신부들에게 맡기던 관례대로, 15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부근에 도착한 멘도사(Pedro de Mendoza)가 몇 개의 교회를 설립하자 이들과 동행하였던 레스카노(Juan Gabriel de Lezcano) 신부는 학교를 열어 인디언들에게 교리 · 성가 · 쓰기 등을 가르쳤다. 1547년에는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그리고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일부를 포함하는 라플라타 강 교구가 설립되었고, 1570년에 아르헨티나의 중부와 북서부를 포괄하는 투쿠만(Tucumán) 교구, 1620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 그리고 1806년에는 살타(Salta) 교구가 설립되었다. 이와 같이 아르헨티나의 가톨릭 교회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프란치스코회와 예수회 신부들의 적극적인 인디언 선교 활동의 영향이 컸는데, 특히 16세기 후반 라틴 아메리카에 도착한 예수회 신부들은 스페인 정부로부터 자율적인 활동권을 얻어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보호 통치' (保護統治, reductiones, 宣敎區라고도 함)라는 자립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 인디언들을 교육하고 농사와 목축을 가르쳤으며, 때로는 포르투갈의 침략에 맞서 무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공동체의 성장은 포르투갈뿐만 아니라 스페인 정부도 불편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1767년 스페인 국왕은 예수회 신부들을 라틴 아메리카에서 추방하였다.
독립과 가톨릭의 발전 :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운동 과정에서 대다수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독립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참여하자, 정부는 교회를 더 이상 스페인 식민지 권력과 밀착된 집단으로 여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탈식민화하기보다는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 아르헨티나의 정치가 리바다비아(B. Rivadavia, 1780~1845)는 프로테스탄트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조약을 영국과 맺으면서 모든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였고, 1829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는 1810년 이래로 중단된 교황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에 교황 비오 7세(Pius Ⅶ, 1800~1823)는 메드라노(M. Medrano, 1767~1851) 주교를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의 교구장으로 임명하였다.
한편 서유럽 자유주의 사조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정부는 가톨릭 교회를 국가와 사회의 이해에 반대되는 사회적 · 정치적 세력으로 간주하고, 사회 제도로서 교회의 힘을 약화시켜 나갔다. 특히 1853년에 채택된 제헌 헌법은 정교 분리를 명확히 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교리나 정신을 배제하였는데, 이로 인해 특히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톨릭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퇴조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프리메이슨(Freemason)단의 활동은 갈수록 활발해지면서 그 영향력이 확대되었고, 심지어 당시의 로카 (J. Roca) 대통령은 프리메이슨이 가톨릭 교회를 공격하도록 공개적으로 허용하기도 하였다. 또 의회를 중심으로 교육과 결혼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졌으나 결국 가톨릭 교회의 패배로 끝났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경향에 반대하기 위하여 가톨릭 활동가인 에스트라다(J. Estrada)를 중심으로 가톨릭 연합(Unión Católica)이 조직되었고, 이 단체를 중심으로 제1차 아르헨티나 가톨릭 총회가 1884년에 소집되었다. 가톨릭 교회의 이러한 반자유주의적 공세는 20세기 초 가톨릭 근본주의적 운동(integralismo)으로 이어지다가 193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된 제32차 세계 성체 대회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소수 엘리트층에 갇혀 시대적인 변화 속에서 점증하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압력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1943년 대중주의적 정부의 등장과 함께 가톨릭 교회는 이전 시대의 보수주의 · 자유주의 논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회적 기반을 소수 엘리트층을 넘어 새롭게 형성되는 중산층과 노동 계급으로 확산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대다수의 주교들은 정교 분리를 반대하고 공립 학교의 종교 의무 교육 등 전통적인 교회의 권리를 보장하는 페론 정부를 지지하고 정부의 거의 모든 사회 정책에 적극 참여하였다. 페론과 교회의 이러한 동맹 관계는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었으므로 페론의 대중주의적 정책의 위기와 함께 깨졌다. 또 정부는 이혼을 합법화하고 의무 종교 교육을 폐지하는 등 자신이 보장했던 모든 권리들을 폐기하였다. 이에 교회는 1955년 페론을 무너뜨린 쿠데타에 적극 가담하였고, 이후 계속된 정치적 불안기에 등장한 각종 정부들과 밀착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히 가톨릭 신자였던 온가니아(J. Ongania) 정부 때에는 군종교구를 설립하여 엘리트 군인들을 교육하고 장악함으로써 가톨릭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메델린 주교 회의의 영향을 받아 1969년 아르헨티나 주교 회의가 발표한 '산미겔(San Miguel) 선언' 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진보적인 흐름을 담고 있어 교회 일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진보 성향의 "제3 세계를 위한 사제 모임" (MSPTM)을 태동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96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32,088,000명이며, 대교구 14, 교구 50, 본당 2,596개에 추기경 2, 대주교 21, 주교 84, 신부 5,877(교구 소속 3,532, 수도회 소속 2,345), 종신 부제 421, 수사 848, 수녀 10,773명이 있다. 그리고 1999년 현재 한인 본당 1개와 한인 공소 2개에 사제 3(한국인 2. 외국인 1), 수녀 3, 한인 교포 신자 2,468명이 있다. (→ 라틴 아메리카 ; 보호 통치)
※ 참고문헌  G. Furlong, 《NCE》 1, pp. 779~785/ 《EB》2, pp. 356~373/ Ramon Garcia-Pelayo y Gross, Pequeño Larousse Ilustrado, ed. Larousse, Paris, 1988/ Pablo Richard, Morte das Cristandades e Nascimento da Igreja, ed. Paulinas, 1984/ Synopsis Estadística Edición 1999, INDEC/ República Argentina, 1999/ 2000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Annuario Pontificio 1998, Citttà del Vaticano, 1998. 〔金沆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