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벨기에의 사도. 신부. 수도자. 축일은 2월 6일. 아만도의 생애는 주로 《제일의 삶》(Vita Prima)이라는 책을 통해 알려졌는데(《MGSrerMer》 5, 428~449), 학자에 따라 그 저술 연대 추정이 서로 다르다. 즉 크루쉬(B. Kru-sch)는 8세기 후반에 쓰여졌다고 한 반면에, 아만도와 같은 시대 인물인 바우데문도(Baudemundus, +700)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편 모로(E.de Morea)는 7세기 후반이나 8세기 초의 책이라고 주장하였다(《Anal-Boll》 67, 449).
〔생애와 활동〕 584년경 프랑스 아키텐(Aquitaine)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외(Yeu) 섬에 있는 작은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수도 생활을 시작한 지 일 년 만에 그의 아버지가 찾아와 집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를 완강히 거절하자 아버지는 상속권 일체를 박탈하겠다고 위협하였고, 아만도는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만이 저의 유일한 유산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투르(Tours)로 가서 사제 서품을 받고 부르주(Bourges)로 가서 독수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성당에 부속된 독방에서 아우스트레지실로(Austregisilus, 551~624) 주교의 지도를 받으면서 빵과 물만 먹으며 생활하였다고 한다.
선교 활동 : 625년경 처음으로 로마를 순례한 뒤 북부 프랑크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한 아만도는, 628/629년경 프랑스에서 주교 서품을 받았지만 관할 교구가 없이 이교도들에게 신앙과 교리를 가르치는 설교 직무를 수행하는(ad praedicandum) 주교가 되었다. 먼저 그는 겐트(Gent)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다뉴브 강 일대를 순회하면서 가스코뉴(Gasogne)에 사는 슬라브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데 힘썼다.
그는 프랑크 지역을 선교하면서 프랑크의 여러 왕들 즉 클로타르 2세(Chlotar Ⅱ, 613~628),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 629~639), 지게베르트 3세(Sigebert Ⅲ, 639~656), 힐데리히 2세(Childerich Ⅱ, 663~675)로부터 지지와 후원을 받았다. 특히 그는 클로타르 2세의 요청으로 이교적인 관습에 빠져 있던 겐트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겐트 주민들은 적대적이어서 그들에게 설교한다는 것은 크나큰 모험이었다. 아만도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거나 심지어 강에 던져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강제로라도 개종을 시킬 수 있는 위임장을 주기도 했던 다고베르트 왕과 불화를 빚었는데, 그것은 다고베르트 왕이 예전의 부도덕한 생활로 돌아가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다고베르트 왕의 죄악을 묵인할 수 없었던 아만도는 그를 비난하였고, 이로 인해 아만도는 추방당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곧 다고베르트 왕은 그를 다시 불러들여 자신의 아들 지게베르트에게 세례를 부탁하였고, 630년경 아만도는 다고베르트의 후계자가 될 지게베르트에게 세례를 주었다.
646~647년에 아만도는 현 벨기에 지역의 통그레-매스트리히트(Tongres-Maestricht) 교구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이 교구를 관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교적인 풍습에 젖은 성직자들의 습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아만도는 교황 마르티노 1세(649~653)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교구를 떠났으면 좋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교황은 다루기 힘든 성직자들에 대한 행동 지침과 함께 로마에서 통과된 법령집을 프랑크 지역 주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네우스트리아(Neustria)와 오스트라시아(Austrasia)에서 교회 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였다. 이때 교황은 그에게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전하도록 위촉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아만도는 로마를 방문하여 교구를 떠날 수 있는 허락을 받고자 하였다. 마침내 아만도는 649년 교구를 떠나 선교사로서의 활동을 재개하였고, 이후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지역의 피레네 산맥 일대와 안트웨르펜(Antwerpen) 북부, 그리고 보비오(Bobbio)의 요나(Jonas, +690)와 함께 스카르프(Scarp) 강변과 스헬데(Schelde) 강의 하구까지 선교 활동을 하였다(《MGSrerMer》) 4. 62).
수도원 설립 및 수도 생활 : 선교 활동 중에도 수도 생활에 대한 갈망이 컸던 아만도는 지게베르트에게 세례를 준 이후, 겐트와 블란딘 산에 수도원들을 설립하였다. 또 648/649년에는 수도원을 창설하려는 다른 동료들을 도와 니벨(Nivele)의 수도원을 세웠는데, 무엇보다도 유명한 것은 그가 스카르프 강변에 설립한 엘논(Elnone) 수도원이었다. 훗날 아만도는 엘논 수도원으로 은퇴하여 수도 생활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674/675년 4월 17일 그의 동료 바우데문도에게 유언을 남기고 676년경 사망하였다.
〔공경과 의의〕 아만도는 플랑드르와 북부 프랑크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으며, 그가 설립한 겐트와 블란딘 산 수도원들과 엘논 수도원은 벨기에 지역에서 수도회가 발전하는 첫 계기가 되었다. 그가 사망한 후 그에 대한 공경이 인근 지역에 급속히 확산되었는데, 플랑드르 지역을 선교한 사도로서, 그리고 현재는 벨기에의 사도로 공경받고 있다. (→ 벨기에)
※ 참고문헌 H.G.J. Beck, 《NCE》 1, pp. 365~366/ T.J. Campbell,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1, trans. by Christine J. Murray, Robert Apple-ton Co., 1907/ M. Werner, 《LThK》 1, pp. 485~486/ B. Senger, Die Heiligen in Ihrer Zeit, Bd. I , Hrsg. von Peter Manns, Matthias-Grunewald Verlag, Mainz, 1967, pp. 390~391/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 Great Britain, 1983, p. 40. 〔편찬실〕
아만도 (584?~676?)
〔라〕Aman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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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벨기에의 사도 성 아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