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리 민족

民族

〔히〕עם האמורי · 〔라〕Amorrhaei · 〔영〕Amo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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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의 도움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대패한 아모리 군대(귀스타브 도레 작) .

야훼의 도움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대패한 아모리 군대(귀스타브 도레 작) .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기 전에 살았던 일곱 혹은 열 민족 가운데 하나(여호 7, 10 : 창세 15, 19). '아모리' (”方)는 구약성서에 85번 나오는데, 언어학적으로 "서쪽"이라는 뜻을 가진 지리적 명칭인 아카드어 '아무루' (Amum)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역사와 언어〕 '아무루' 는 아카드 왕국 시대(기원전 2360~2180경)의 서쪽 지방 혹은 그곳 사람들을 일컫는 명칭이다. 그러나 기원전 2600년경 파라(Fara) 문서에 '아무루' 의 수메르어 표기인 마르-투(MAR TU)가 나오고 에블라(Ebla) 기록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이들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초기 왕조 시대(기원전 2900~2300경) 중 제2기(기원전 2700~2500경 )부터라고 볼 수 있다. 수메르어 기록에서는 '아무루' 사람을 외국인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아카드 왕국이 구티인들(Gutians)에 의해 몰락한 기원전 2180년경이나 우르 제3 왕조(기원전 2060~1950)가 엘람과 아모리 민족의 공격에 의해 붕괴된 기원전 196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도시 국가에 아모리 민족이 정착한 것으로 보고있다. 소위 마르-트-투 신화에서 아모리 사람과 유목민을 동일시 했기 때문에, 고고학에서는 기원전 2350~2000년경의 유목민 문명의 흔적을 아모리 사람과 연관시키려는 소위 '아모리 가설' (Amorite Hypothesis)이 1950년대에 형성되었다. 초기 청동기 시대의 도시 문명이 파괴되고 청동기 시대의 도시 문명이 재형성되기까지의 과도기(EB Ⅳ와 MB I)에 있었던 독특한 문명의 주인공을 수메르 기록의 아모리 사람과 동일시하면서부터 아모리 민족의 세력은 과대 평가되었다. 따라서 이 가설에 의하면 시리아 광야 지대에 근거지를 둔 아모리 사람이 우르 제3왕조를 붕괴시켰고, 팔레스티나의 초기 청동기 도시 문명을 파괴시켰으며, 나아가 이집트의 고왕국을 몰락시키고 소위 '제1 중간 시대' (First Intermediate Period)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르 제3 왕조는 내부 분열로 인하여, 팔레스티나의 초기 청동기 도시 문명은 기상 이변에 의한 인구 이동으로, 그리고 이집트의 고왕국 역시 내부적 반란으로 스스로 붕괴되었다.
마리 문서를 통하여 기원전 19~18세기 시리아-메소포타미아의 중간 무역 도시인 마리에 살았던 아모리 유목민들의 생활상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아모리 사람의 주요 부족으로는 바누 야미나(banu Yamina)와 바누 시말(banu Simal) 등이 있었다. 기원전 1765년경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기원전 1792~1750)에 의해 마리가 파괴된 후, 아모리 민족은 더 이상 인종 집단으로 역사 문서에 나타나지 않고 단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관점에서 시리아 또는 시리아-팔레스티나를 지칭하는 지명으로 굳어졌다. 따라서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550~1200)에 들어와서는 가나안 민족이 이 지역에서 중심 세력을 형성하였다.
기원전 2600년경부터 1,000년 이상이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퍼져 있었던 아모리 민족은 스스로의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다른 민족의 문서에 의해서만 추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모리 사람의 이름이 당시 수메르어나 아카드어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북서 셈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모리 사람을 당시 번창하였던 시리아 도시 국가들의 주인공들과 동일시할 수도 없는데, 그 이유는 에블라 · 우가리트 · 알레포 등에서도 아모리 사람을 구분해서 일컬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모리 민족은 시대에 따라 분류되어야 하며, 적어도 도시 국가의 문서에 기록된 아모리 사람은 인종적 집단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사회 계층일 가능성이 더 크다.
아모리 민족이 사용하였던 아모리어는 셈어 연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아모리어에 관하여 알려진 것은 대부분 개인 이름들뿐이다. 이 이름을 통하여 아모리어의 특징을 찾아내고 있는데,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모리어는 언어학적으로 서부 셈어에서 완전히 독립한 언어로서 시리아와 시리아 서쪽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성서에서의 언급〕 구약성서에 나오는 기원전 1200년대의 아모리 사람과 기원전 2000년경에 등장하는 '아무루 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시혼(Sihon)과 옥(0g) 왕국의 통치자들을 시리아에서 도시 국가를 형성하였던 아무루 사람의 한 분파로 생각하는 가설도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팔레스티나의 원주민들을 '가나안인들' 이라고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모리인들' 과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팔레스티나를 차지한 민족들을 언급하는 구절에서 창세기 저자는 가나안인들과 아모리인들을 구분하고 있다(창세 12, 5-6 ; 15, 18-21). 하지만 창세기의 다른 곳에서는 아모리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은 사이라고 하였다(창세 14, 13). 성서에 기록된 아모리 사람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첫째, 아모리 민족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 이전에 가나안에 거주하였던 사람 전체를 지칭한다(창세 15, 16 ; 여호 7, 7). 둘째, 아모리 민족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거주하기 이전에 살고 있었던 열 민족(창세 15, 19-20) 또는 일곱 민족(신명 7. 1) 가운데 하나로 묘사되고 있다(창세 10, 16 ; 출애 3, 8). 뿐만 아니라 요르단 동쪽에 거주하였던 옥과 시혼의 거주민(민수 21, 13 ; 여호 2, 10 판관 10, 8 등)이나 요르단 서쪽의 산악 지대에 거주한 사람들도 아모리 사람들이라고 불렸다(신명 1, 19 : 27, 44 : 여호 10, 5 이하).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민족들의 명단에서 아모리는 가나안의 아들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아모리 사람들을 가나안의 원주민으로 여기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창세 10, 6). 구약성서에 기록된 아모리 사람들의 거주지는 북부 레바논 지역(여호 13, 4-5), 네겝 산악 지역(신명 1, 44), 헤스본을 중심으로 한 모압 지역(민수 21, 21-32), 그리고 가나안 땅의 중심인 유다 및 쉐펠라 지역(여호 10, 5) 즉 예루살렘 · 헤브론 · 야르뭇 · 라기스 · 에글론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 바빌론 ; 팔레스티나)
※ 참고문헌  G. Bucellati, The Amorites ofthe Ur Ⅲ Period, Naples, 1966/ J. Cooper, The Curse ofAgade, Baltimore, 1983/ A. Haldar, Who Were the Amorites?, Leiden, 1970/ T. Luke, Pastoralism and Politics in the Mari Period : A Re-examination ofthe Character and Political Sigmificance of the Major West Semitic Tribal Groups on the Middle Euphrates, Michigan, 1965. 〔金永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