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서

〔히〕ספר עמוס · 〔라〕Prophetia Amos · 〔영〕Book of 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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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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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예언자.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 가운데 세 번째 책.
[저 자] '정의의 예언자' 로 알려져 있는 아모스는 예언-집필 문학 시대를 연 이스라엘 최초의 예언자였다. 아모스(ご》等)가 '들어올리다' 또는 '나르다' 를 의미하는 “아마스”(ㅇ)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그의 본래 이름은 "아마스야" (行)함))였던 것으로 여겨진다(2역대 17, 16). 그러므로 "주님께서 날라 주셨다" 또는 "주님께서 구원해 주셨다" , 즉 주님의 호의적인 개입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이름이 아모스인 것이다.
아모스는 남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으로부터 남동쪽으로 18km 떨어진 작은 촌락 드고아에서 태어났다(1, 1). 다윗 왕권 계승 사화에도 등장하는(2사무 14, 1-24) 이 마을은,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싸인 유다 광야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서 염소나 양 떼 목축업이 가능했던 지역이었다. 아모스는 자신을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는데(7, 14), 이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속성 재배를 목적으로 당시 가축들의 사료로 사용되었던 돌무화과나무의 열매에 칼집을 내던 목축업자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돌무화과나무 재배에 종사했다는 사실에서 여러 지역 특히 세펠라(Shefela) 지역을 자주 여행하였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아모스는 정치 · 문화 · 농업이 상호 긴밀히 연계되어 있던 지역 출신으로서,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원 세계에서 터득한 언어를 어려움 없이 구사할 수 있었다.
또한 볼프(H.W. Wolff)가 그의 저서 《아모스의 정신적인 고향》(Amos' geistige Heimat)에서 지적하였듯이 아모스는 이스라엘 지혜 문학 언어를 즐겨 사용하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아모스는 지혜 문학의 수적 도식인 "세 가지와 네 가지 30, 15 이하 : 집회 26, 5)라는 문형을 제 민족을 향한 신탁(아모 1, 3-2, 16)에서 인용하고 있다. 또 아모스서 5장 14-15절에서는 지혜 문학의 주요 관심사인 짝 개념으로서의 '선과 악' (창세 2-3장 ; 이사 7, 14-17 : 2사무 14, 17)이 발견되며, 5장 11절과 18-20절에서 확인되는 반대 개념과 대비 개념 역시 . 현인들에게는 친숙한 개념들이다. 대답이 없는 질문들을 쏟아 놓는 아모스 3장 3-6절 또한 대중 지혜 문학에 매우 가까운 작품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아모스의 언어 속에는 인간의 감정을 하느님께 전가시키는 경우(5, 21), 동물 세계에서 빌려 온 표현(2, 13 : 4, 7-9 : 7, 1 : 8, 1-2), 언어 유희와 풍자(3, 12 ; 5, 5 : 6, 13 : 8, 1) 등이 발견된다. 이처럼 아모스는 대중 지혜 문학에 심취해 있던 유능하고 유식한 목축업자로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잘 표현하였다.
[역사적 배경] 이스라엘의 지파 동맹은 본래 통치자의 계급 착취에 기반을 둔 이방 민족의 정치 조직과는 달리 평등한 사회 질서를 추구하고 유지하려는 조직이었으며, '성읍 국가 보다 높은 수준의 조직이었다. 그러나 불레셋 군사 동맹이 철기 문명을 도입하고 정치 조직에서도 질적으로 비약할 가능성을 드러내자, 다윗과 솔로몬은 이를 적극 수용하여 팔레스티나에서는 최초로 전제 군주국을 구축하였다. 이후 팔레스티나의 여러 군소국들도 이 체제를 지향하여 패권 쟁탈에 나서지만 상호 공존 상태를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예언자들의 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라는 강대국이 등장하면서 팔레스티나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게 되었다. 이들 국가들은 이해 판단에 따라 상호 결속을 견고히 하는가 하면, 때로는 패권 쟁탈을 위한 침략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아모스 예언자가 활동한 기원전 8세기 중반은 북이스라엘 왕국에 있어서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아합(기원전 875~853) 시대에 맞이한 번영의 시기가 지나자 아람 민족은 예후(기원전 841~814)와·그의 아들 여호아하즈(기원전 820~803) 시대 동안 이스라엘을 억압하였고, 이러한 상황은 아람 민족이 사마리아를 점령함으로써 극에 달하였다(2열왕 6, 24-7, 17 : 참조 : 1열왕 20, 1-21). 그러나 사마리아의 王文 왕 여호아스(기원전 803~787)가 서진 팽창 정책을 펼치려던 아시리아 제국에 조공을 바침으로써 아람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회를 틈타 여호아스는 그때까지 아람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요르단 동부 이스라엘 영토의 일부를 탈환하였다. 북이스라엘의 정치 · 경제 · 종교에 있어서 가장 번창했던 시기는 여호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기원전 787~747)때였다. 정치적인 면에서 여로보암 2세는 아시리아 제국의 약세를 틈타 요르단 동부의 옛 영토를 완전히 회복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성서에서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해에 이르는 이스라엘 영토를 되찾은 것이 그였다" (2열왕 14, 25)라는 언급은 과거 솔로몬 시대의 국경선을 상기시킨다(1열왕 8, 65). 그는 다마스커스와 모압 영토 거의 대부분을 장악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들 정복지로부터 조공을 받음으로써 왕실 또한 부유해졌을 것이고, 백성들은 이러한 승리에 도취되어 국가의 안녕이 보장된 것으로 생각하였다(아모 6, 13-14). 경제적인 면에서는 인접 국가들과의 교역이 확대됨으로써 괄목할 정도로 부(富)가 증대되었지만, 이는 오히려 빈부의 사회적 불균형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사치와 졸부들의 속물 근성이 확산되면서 백성 상호간의 연대 의식은 파괴되기에 이르렀으며(3, 12 : 6, 4-7), 착취가 사법권을 등에 업고 조직적으로 행해졌다(2, 6-7 ; 4, 1 : 5, 7. 11-12). 종교적인 면에서 예언자들은 경신례가 점점 더 화려해지지만 법과 정의' 를 존중하고 실천하려는 의지 없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식이 되었다고 비난하였다(4, 4-5 ; 5, 4-5. 21-27).
이 같은 역사적 · 사회적 상황 속에서, 좀더 정확하게는 기원전 760~750년경 예언자 아모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모스는 남부 유다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와 왕실의 성소(聖所)였던 베델을 중심으로 예언 활동을 전개하였다(7, 10-17). 따라서 그의 사명은 보편적인 중요성을 지님과 아울러 일치의 표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정치적 · 종교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시려는 하느님께는 여전히 한 백성으로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구조 및 내용] 아모스서도 다른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제자 또는 어떤 편집자에 의해 수정되고 보완되었다. 그러므로 예언자가 짧은 시간 동안의 예언 활동을 마치고 직접 글로 옮겨 놓은 부분도 있을 것이고, 이후 여러 가지 상황의 변화로 시대에 맞게 손질이 가해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2, 4-5 ; 4, 13 ; 5, 8-9 : 8, 8 ; 9, 5-6. 11-15 등). 표제(1, 1-2)와 결어(9, 11-15)를 제외한 아모스서는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주변 국가와 이스라엘을 질타하는 신탁(1, 3-2, 16) : 여기에서 아모스는 동일한 도식에 따라 일곱 민족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전하고 난 후 이스라엘을 질타한다. 이와 같은 선포 방법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지리적 교차 대구법' (geographical chiasmus) 이론을 가능하게 한다. 즉 다마스커스(아람)는 동북쪽, 가자(불레셋)는 서남쪽, 티로는 서북쪽, 에돔과 암몬과 모압은 동남쪽, 유다는 남쪽에 위치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이들 민족들 한가운데에 자리하였다. 아모스 예언자의 청중들인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인접 민족들의 범죄 행위와 그에 대한 응징을 접하면서 당연한 결과라고 수긍하다가도 결국 자신들이 저지른 사회적 불의에 대한 비난이 들려 오자 무척 당황하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신탁이 점점 더 긴박감을 더해 가다가 결국 이스라엘에 대한 신탁에서 절정을 이루게 되며, 다음 단원(3-6 장)에서는 오로지 이스라엘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신탁(3-6장) : 이스라엘만을 겨냥한 신탁 모음집으로, 사회적 불의(3, 9-11 : 4. 1-3), 사법권의 부패(5, 7. 10-12. 16-17), 위선적 경신례(4, 4-5 : 5, 4-6. 14-15. 21-27), 잘못된 선민 사상(3, 1-2 : 5, 18-20 : 6, 1-7) 등이 간결하면서도 다양한 문체와 양식으로 고발되고 있다. 그렇지만 순서 없이 나열되어 있어 논리적 구조를 찾아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예언서의 중심에 해당하는 5장을 통해 어느 정도의 논리는 읽어 낼 수 있다. 또 단락 양식 · 전승 · 유형에 있어 많은 문제점이 있고 무질서하게 보일 만큼 구조가 복잡하다. 그러나 본래 독립적으로 전해 온 서로 다른 개별 신탁들이 '정의' 라는 기본적이며 공통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규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의라는 주제는 5장뿐만 아니라 3-6장 전체에 걸쳐 내용상의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다섯 가지 환시(7, 1-9, 10) : 이 부분은 거의 비슷한 구조를 보이는 다섯 가지 환시를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다. 첫 번째 세 가지 환시(7, 1-3. 4-6. 7-9)에 이어 베델 성소에서 일어난 아모스와 아마지야의 언쟁을 자세히 전하는 전기(傳記) 사화(7, 10-17)가 이어진다. 그리고 네 번째 환시(8, 1-3)에서 예고된 응벌을 명백히 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일련의 신탁들(8, 4-8. 9-14)이 이어진다. 다섯 번째 환시(9, 1-4) 다음에는 한 편의 찬양시(9, 5-6) · 이집트 탈출을 이민족들의 이주와 동일시하는 한마디의 말씀(9, 7) · 이스라엘의 종말과 유배 예고에 관한 두 개 의 소신탁들(9, 8. 9-10)이 나온다.
한편 결어에 해당하는 9장 11-15절에서는 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약속하고 있다. 다른 예언서들과 동일한 문체상의 특징을 보여 주지만,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를 후기 작품으로 여기고 있다.
〔신학 및 메시지] 의로우신 하느님 : 예언자 아모스는 8세기의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라는 의미에서의 '계약' (П口)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계약과 계약법을 바탕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추구할 것을 끊임없이 호소하였다. 또 이스라엘은 단순히 하느님께 예속되어 있는 백성만이 아니라 전 실존을 통하여 이 관계를 표명해 나가야 할 백성으로 아모스는 인식하였다. 왜냐하면 계약의 하느님은 당신 백성으로 하여금 계약에서 비롯되는 실천적 응답을 요구하실 뿐만 아니라, 관계 단절이라는 위기 앞에서는 당신의 사자들을 파견하여 재정립을 촉구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온갖 불의가 사회를 지배하던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 아모스에게 있어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립은 정의 실천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으며,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의 품위 자체가 더 이상 하느님의 심판과 응벌을 면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지 못하게 되었다(5, 18-20). 오히려 의로우신 계약의 하느님은 율법을 통하여 당신의 정의를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이스라엘에게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 백성들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함[聖性]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특은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불의와 부정으로 인한 범죄의 결과는 그만큼 중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아모스는 모든 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일상 생활 속에서 구현되어야 하고, 무죄한 이가 의인으로 선언될 수 있도록 법정에서 존중되어야 하며, 이스라엘이 의로우신 하느님을 올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경신례에서조차 기본 바탕을 이루어야 하는 요소로 '정의' 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구원하시는 하느님 : 아모스는 '정의' 를 보편적 윤리와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였다. 물론 아모스는 구원보다는 심판과 응벌 선포에 무게를 두었다. 하지만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선민 사상을 구원을 위한 자동 보장 장치로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일 뿐, 실상 그의 하느님은 다른 예언자들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벌을 내리면서도 당신 백성을 구원으로 이끄는 하느님이다. 이 점에서 아모스서에서 예외적인 부분에 속하는 생명 또는 구원에 관한 신탁(5, 4-6. 14-15)이 지니는 가치는 매우 크다. 이 두 본문은 모두 경신례에 관한 내용인데, 경신례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만나 볼 수 있는 합법적인 공간,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은총의 공간임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면 경신례의 정화가 곧 구원의 전제 조건이 된다. 그러나 이 두 본문은 하느님이 진정 원하시는 경신례는 잘못된 의식(儀式)이 아니라 비둘어진 의식(意識)으로부터 정화된 경신례임을 밝히고 있다. 법과 정의를 존중하고 실천하는 마음이 없이 올리는 모든 경신례는 인간의 자만을 위한 허례(虛禮)가 될 수는 있어도, 하느님의 영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위선적이며 가시적인 행위에 불과할 것이다(마태 5. 22-24 : 마르 11, 25). 아모스에게 있어서 만남과 생명의 공간인 참 경신례는 법과 정의의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 점에서 예언자 아모스는 영원한 '정의의 예언자' 인 것이다. 1- 구약성서 ; 예언서 ; 예언자 ; 정의)
※ 참고문헌  H.W. Wolff, Amos' geistige Heimat, Neukirchener Verlag, Neukirchen-Vluyn, 1964/ 一, Dodekaprophetetem 2 Joel/ Amos, 《BKAT》 XIV -2, Neukirchener Verlag, Neukirchen-Vluyn, 1975/ R. Martin- Achard, Amos : L'homme, le message, l'influence, Labor et Fides, Genève, 1984/ 金正俊, 《正義의 豫言者 - 아모스 註釋》, 한국신 학연 구소, 19843/ J.A. Soggin, The Prophet Amos, trans. by J. Bowden, SCM, London, 1987/ F.I. Andersen . D.N. Freedman, Amos, AB-24A, Doubleday, New York, London, 1989/ S.M. Paul, Amos : A Commentary on the Book of Amos, Fortress, Philadelphia, 1991/ B.E. Willougby, Book of Amos, (ABD) 1, pp. 203~212/ A. Weiser, 박영옥 역, 《아모스》, 국제 성서 주석 25, 한국신학연구소, 1992/ J. Niehaus, Amos, The Minor Prophets : An Exegetical and Expository Commentary, T. McComiskey, Baker, 1992/ P. Bovati · R. Meynet, Le livre du prophète Amos, Cerf, Paris, 1994/ J. Jeremias, Hosea und Amos : Studien ZU den Anfangen des Dodeka-propheten, (FAT》 13, Tiibingen, 1996/ 김건태, <예언자 아모스의 법과 정의>, 《이성과 신앙》 12호(1996. 9), 수원 가톨릭대학교, pp. 73~106/ J.M. Asurmendi, 김건태 역, 《아모스와 호세아》, 가톨릭출판사, 1999. 〔金建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