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몽, 장 마리 (189~ 1960)

Hamon, Jean Ma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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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리 아몽 신부.

장 마리 아몽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한국 이름은 하제안(河濟安). 세례명은 요한 마리아. 1899년 7월 28일 프랑스 중동부 루아르(Loire) 주의 낭트(Nantes) 교구에서 태어나 1926년 9월 20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28년 6월 29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9일 프랑스를 떠나 11월 6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대구 비산동(飛山洞) 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였다. 1929년 4월 하양(河陽) 본당 주임으로 임명된 아몽 신부는, 부임 직후 하양 동서리 618번지의 현 성당 부지를 매입한 뒤, 1931년 4월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고 그 해 5월 21일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 집전으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듬해 9월에는 후쿠오카(福岡)의 외제(Heuzet) 신부를 초청하여 하양과 영천(永川)에서 지하 수맥을 찾도록 함으로써, 본당 지역 내 주민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 해 12월 공소를 순회하며 성사를 집전하던 중 한국인 경찰로부터 봉변을 당하자 당시 교구장 드망즈 주교에게 회장을 보내 이를 보고함으로써, 드망즈 주교는 경찰 서장에게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강력히 항의하였다.
1937년 4월에는 대구 지역 선교사들의 피정에 참석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본국의 소집령을 받고 1939년 9월 중국 천진(天津)으로 갔다가 그 해 10월 11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경제난과 흉년으로 본당 내의 많은 신자들이 만주와 일본으로 떠난 상태여서 아몽 신부는 선교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1946년에 프랑스로 돌아간 아몽 신부는, 그 후 건강이 악화되어 1951년 1월 23일 프랑스 북서부의 디낭(Dinan)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오랜 투병 생활 끝에 1960년 6월 8일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 하양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본당 60년사》, 천주교 비산 교회, 1988/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교구 총람》, 대구대교구 홍보국, 1986/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신문사, 1987/ Ammales des Missions Etrangères, Paris, 1928, p. 169/ Bulletin des M.E., Nazareth-Hongkong, 1931, pp. 58, 510 ; 1939, p. 8491 Compte Rendu, Paris, 1928, p. 171.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