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서구 아미2동 산 19 소재. 1969년 8월 10일 초장(草場) 본당으로부터 분리·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라우렌시오. 관할 구역은 아미 2동과 감천2동 전 지역. 〔교 세〕 1976년 1,005명, 1980년 1,148명, 1985년 1,437명, 1990년 1,885명, 1995년 2,099명, 1999년 2,138명. 〔역대 신부〕 초대 골라신스키(J. Golasinski, 고) 야고보(1969. 8~1978. 7) , 2대 표중관(表仲寬) 베드로(1979. 2~1980. 10), 3대 오남주(吳南周) 프리모(1980. 10~1981. 2), 4대 한영일(韓永日) 니콜라오(1981. 2~1984. 1), 5대 김태호(金兌) 알로이시오(1984. 1~12), 6대 월름젠(G. Wilmsen, 진만복) 제라르도(1984. 12~1985.4), 7대 오키페(T.O Keeffe, 기) 디모테오(1985. 4~1986. 2), 8대 루스(J. Ruth, 조용희) 요셉(1986. 2~1988. 2), 9대 노경삼(魯景三) 다니엘(1988. 2~4), 10대디 프란체스코(A. Di Francesco, 안현철) 안토니오(1988. 4~1994. 1), 11대 팔다니(G.C. Faldani, 장자호) 가롤로(1994. 1~1995. 2), 12대 백성환(白性煥) 안드레아(1995. 2~1996. 2), 13대 왕영수(王永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6. 2~1997. 2), 14대 차성현(車聖賢) 암브로시오(1998. 2~1999. 2) 15대 손원모(孫元模) 요한 그리소스토모(1999. 2~현재).
한국 전쟁 이후 많은 피난민들과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아미동과 감천동 지역으로 모여들어 판잣집을 짓고 어렵게 생활하며 제때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마리아 수녀회의 설립자인 슈워츠(A. Schwartz, 소재건) 신부는 1967년 9월 20일 현 사제관 자리에 구호 진료소인 '마리아회 의원' 을 개원하고 무료 진료를 실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슈워츠 신부는 가난으로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이듬해 2월 현 성당터에 중학 과정인 '아미고공민학교 를 설립하고, 뜻을 함께하기 위해 미국에서 온 골라신스키 신부를 초대 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주일에는 선교와 지역 신자들을 위하여 학교 교실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이것이 아미 본당의 시초가 되었다. 슈워츠 신부와 골라신스키 신부의 적극적인 활동에 힘입어 신자수가 늘어나자, 교구에서는 1969년 8월 아미동과 감천동 일부를 관할하는 아미 본당을 설립하고 골라신스키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당시 감천동은 증산계 신종교인 태극도(太極道) 왕국이라고 일컬어질 정도여서 선교하기가 힘든 지역이었는데, 골라신스키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을 창단하고 사재를 털어 무료 탁아소를 운영하는 등 열성적으로 사목하였다. 그러다가 병을 얻어 1978년 7월 14일 치료차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고, 아미고등공민학교 역시 그 해 말로 폐교되고 말았다. 아미 본당이 교구로 편입되면서 이듬해 2월 2대 주임으로 임명된 표중관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학교 교실을 개조하여 성당과 사제관을 마련한 뒤 여러 단체들을 구성하는 한편, 선교 활동에 힘써 교세를 확장하였다. 4대 주임 한영일 신부는 마리아회 의원 건물을 사제관으로 개축하고 성당 도색 작업 및 담장 공사를 실시하는 등 성당 안팎을 정비하였고, 5대 주임 김태호 신부는 꾸리아를 창단하고 성당 건물 위에 십자가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1년도 안되어 밀양 본당으로 전임되면서 본당 사목권은 골롬반 외방선교회로 이관되었다.
1984년 12월 6대 주임으로 월름젠 신부가 부임하면서 거주 신부로 오키페 신부가 함께 부임하였는데, 월름젠 신부는 제의 대신 한복을 입고 미사를 집전하는 등 신자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고자 노력하였고, 오키페 신부는 쁘레시디움 활동을 육성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4월 월름젠 신부가 만덕(萬德) 본당으로 전임되어 오키페 신부가 7대 본당 주임으로 사목하게 되었고, 이어루스 신부가 8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였다. 이때 성모 동굴과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분원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1988년 2월 사목권이 다시 끈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로 넘어가면서 9대 주임으로 노경삼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 후 사목권이 다시 교구로 환원되어 12대 주임으로 부임한 백성환 신부는 성당 내부 도색 및 바닥 타일 공사 등 보수를 하였고, 경로 잔치를 개최하였다. 한편 13대 주임으로 부임한 왕영수 신부는 서대신(西大新) 본당 주임을 겸임하였기 때문에 당시 보좌였던 차성현 신부가 주임 신부를 대신하여 사목하면서 관리실과 휴게실을 마련하였다. 1997년 2월 11일 주임 서리로 임명된 데 이어 이듬해 2월 14대 주임으로 정식 임명된 차성현 신부는 성당 주변을 정비하고, 노인 성서반 모임 결성 및 잃은 양 찾기 운동 등을 전개하여 교세를 신장시켰다. 15대 주임 손원모 신부 때인 1999년에는 본당 설립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갖고, 본당사를 발간하였다. (→ 부산교구 ; 초장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아미 성당삼십년사》, 천주교 부산교구 아미 교회, 1999. [편찬실]
아미 본당
峨嵋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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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