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傳敎修女會

〔영〕Franciscan Missionary Sisters of Assisi · 〔이〕Suore Franciscane Missionarie di Assisi(S.F.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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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공동 설립자인 마르케셀리 신부와 안젤라 마리아 델 질리오, 그리고 아시시에 있는 설립 공동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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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공동 설립자인 마르케셀리 신부와 안젤라 마리아 델 질리오, 그리고 아시시에 있는 설립 공동체 모습.

1703년 1월 2일 마르케셀리(Gusppe Antonio Marche-selli, 1676~1742) 신부와 안젤라 마리아 델 질리오(Angela Maria Giglio, 1658~1736)가 프란치스코 제3회의 쇄신과 세상 안에서의 성화를 목적으로 설립한 수녀회. 총본부는 아시시에 있으며, 한국 관구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502-10번지에 있다.
〔설립과 변천] 1676년 2월 21일 이탈리아 북부의 카살마조레(Casalmnngione)에서 태어난 마르케셀리는, 15세 때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1691년 9월 15일 끈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O.MC.mm)에 입회하여 양성기와 신학 공부를 마친 뒤 23세 때인 1699년 6월 13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1701년 9월 7일 아시시의 사크로 콘벤토(SaurComentto)로 파견되었는데, 그곳에서 훗날 함께 수녀회를 설립하게 될 프란치스코 제3회 회원인 안젤라 마리아 델 질리오를 만났다. 한편 1658년 2월 7일 이탈리아 북부의 비천자(Vicenza)에서 태어난 안젤라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어린 시절부터 동생들의 양육까지 도말아야만 했는데, 동생들이 모두 성장하자 31세때 되던 해인 1689년에 아시시로 이주하여 신심 깊은 여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방문하거나 어린이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러다가 1697년에 프란치스코 제3회 회원이 되어 동정 생활을 하던 중, 1702년 마르케셀리 신부의 고행에 가까운 금욕적인 삶과 설교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자신의 지도를 마르케셀리 신부에게 부탁하였다.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 마르케셀리 신부는 이듬해 1월 2일 '델 질리오의 3회' (Terziarie del Giglio)라는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설립 당시 아시시에는 관상 수녀회만 있었는데, 마르케셀리 신부가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조화시키는 활동 수도회의 생활 양식을 택함으로써 이 공동체는 반(半) 관상 생활 형태로 운영되었다. 또 마르케셀리 신부는 첫 공동체 회원들이 자신이 작성한 회헌과 1289년에 교황 니콜라오 4세가 인준한 프란치스코 제3회 회칙에 따라 살도록 하였다. 1810년 나폴레옹의 침입으로 이탈리아 내의 많은 수도회들이 폐쇄되었을때, 이 공동체는 당시 교육 사업을 하면서 군인 자녀들을 가르쳤기에 수도복 없이 계속 공동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빈궁과 혼란 속에서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아시시 지역에 200여 년 동안 머무르면서 젊은 여성들을 교육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활동한 이 공동체는, 1902년에 전교 수도회로 전환하면서 콘스탄티노플에 첫 진출하였고, 1919년에는 루마니아에 파견되어 전쟁 고아들과 노인들을 위한 사도직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26~1954년에는 이탈리아 전역에 교리 · 재단 · 수예 · 바느질을 가르칠 수 있는 여성 작업장을 만들었고, 탁아소 · 초등학교 · 진료소 · 고아원 · 기숙사 등에서 봉사하였다. 1934년 회헌 인준과 함께 교황 비오 9세로부터 수도회 승인을 받았으며, 1957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진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 선교 활동을 시작하여 일본(1958), 브라질(1959), 잠비아(1960) 미국(1961) 등으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1977년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수도회 이름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로 바꾸었다. 2000년 말 현재 10개 국에서 6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영 성] 마르케셀리 신부가 강조한 것은 '매일 안의 성화(聖化)' 였다. 매일매일의 삶 안에서 작고 평범한 것들이 성화의 기회라고 본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과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매일의 여정에서 만나는 작은 길을 수도회를 통하여 교회와 세상에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에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영적 딸들에게 자신의 성화를 열망하였으며, 특히 공동체 생활 안에서 형제애를 귀중히 여기고, 이 사랑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나누는 애덕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이처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는 설립 목적이자 영성인 프란치스칸 생활의 쇄신과 회개의 삶을 살며, 소외당하고 가난한 이들을 우선 선택하여 교회와 형제들을 위한 헌신과 봉사에 온 삶을 봉헌하고 있다.
[한국 진출과 사도직 활동] 부산교구의 초청을 받은 4명의 회원이 당시 끈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 지부장이었던 파브리지(M. Fabrizi, 황만용) 신부의 도움으로 1980년 7월 13일 입국하였는데, 이들 회원 중 한 명은 1968년에 본회 모원에 한국인 첫 지원자로 입회하였던 김숙녀(金淑女, 골름바) 수녀였다. 서울 종암동에 첫 공동체를 마련한 회원들은, 이듬해 부산 대연동에 위치한 나환우 자녀 보육 시설인 '프란치스코의 집' (현재는 장애아 재활원)에서 사도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3년에 본원을 잠시 서울 장위동으로 옮겼고, 1987년 10월에 지금의 수원시 우만동으로 이전하였다. 1989년에는 제1회 종신 서원식을 거행하였으며, 1990년 7월 13일에는 한국 진출 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1985년 춘천교구의 주문진 본당에 처음으로 파견된 이래 현재 6개 교구 9개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안동교구의 나환우 정착촌인 '신애원' 과 성남시에 있는 수원교구의 장애 아동 조기 교육 시설인 '기쁜샘' , 부산교구의 결손 가정 자녀 보호 시설인 '천사의 집' 등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브라질 · 미국 · 필리핀 · 일본 · 이탈리아 · 잠비아 등에 진출하여 선교 사도직을 전개하고 있다. 2000년 12월 말 현재 종신 서원자 53명, 유기 서원자 38명, 수련자 8명, 지 · 청원자 5명 등 모두 104명의 회원이 있다.
※ 참고문헌  한국 수도자 장상 연합회 양성위원회 편, 《오늘의 수도자들》, 분도출판사, 1992/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天主敎 釜山教區 편, 《釜山教區三十年 한국교회사연구소, 1990.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