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노 규칙서》

規則書

〔라〕Regula St. Augustini · 〔영〕Rule of St. Augus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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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 규칙서》는 서방에서 최초로 라틴어로 쓰여진 수도 규칙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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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 규칙서》는 서방에서 최초로 라틴어로 쓰여진 수도 규칙서이다.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노(354-430)가 400년에 집필한 수도 생활에 관한 규칙서. 서방 교회에서 처음으로 라틴어로 쓰여진 수도 규칙서로, 본래의 이름은 <계명집》(Praeceptum) 또는 《하느님의 종들을 위한 규칙서》(Regula ad servos Dei)이다.
[역 사] 오랜 정신적 방황 끝에 개종하여 387년 부활성야 때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오(339-397)로부터 세례를 받은 아우구스티노는, 세속적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387년 11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10개월 간 로마의 여러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수도 생활을 체험한 다음 고향 타가스테(Tagaste)로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온갖 세속적 관심사들을 떨쳐 버리고 단식과 기도와 선행을 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뜻을 같이한 친구들과 하나가 되었으며, 밤낮으로 주님의 법을 묵상하였다”(포시디오, 《아우구스티노 전기》 3, 1). 이처럼 이 수도 공동체는 평수사 공동체로서 철저한 관상 생활을 하였는데, 이 수도원은 그가 밀라노나 로마에서 알게 되었던 수도원들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탐구의 생활에 몰두하는 그의 성향이 내포된 수도원이었다. 391년 아우구스티노는 타가스테 공동체를 알리피오에게 맡기고 히포로 가서 새로운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얼마 후 알리피오는 자신이 맡고 있는 타가스테 공동체의 생활을 규정한 《수도원 규정서》(Ordo Monasterii)를 만들어 가져왔다. 이 《수도원 규정서》는 10개 항목으로 된 2쪽도 채 안되는 짧은 규칙서로, 수도원의 하루 일과와 수도 생활의 양식에 관한 극히 기본적인 요소들(기도 · 식사 · 노동· 순명 · 외출 등)을 규정한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첫 부분과 끝 부분에 영성에 관한 자신의 말을 덧붙여 인가해주었다.
한편 391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주교관 옆에 사제들을 위한 수도원을 세울 허락을 받음으로써 사제 생활과 수도 생활을 병행할 수 있었던 그는, 396년 히포의 교구장이 된 후에도 계속 수도 생활에 관심을 갖고 지도하였고, 400년에는 《계명집》을 작성하였다. 그 후 두 개의 규칙서 즉 <수도원 규정서》와《계명집)이 함께 복사되어 유포되었는데, 그중 한 부가 이탈리아에 있는 놀라의 바울리노(Paulimus de Nola, 353-431)에게 보내짐으로써 이탈리아에서는 이 두 개의 규칙서가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다.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는 그보다 120여 년 뒤에 저술된 《베네딕도 규칙서》(Reglala Sancti Benedict)에 의해 그 빛을 잃었으나, 11세기 유럽의 수도원 개혁과 주교좌 성당의 의전 사제단(capitulum canonicorum cathedrale)들이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를 채택하면서부터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수도원 규정서》의 전례 규정은 물론 《아우구스티노 규칙서》에 규정된 엄격한 단식과 매일 여러 시간의 육체 노동이 그들의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이에 1100년경 이전부터 《수도원 규정서》의 본문이 규칙서에서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삭제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3세기에는 새로운 수도 단체들인 도미니코 수도회와 아우구스티노의 은수자회 및 다른 수도회들이 처음부터 본래의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만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수도원 규정서》의 첫 문장인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 이웃을 사랑할 것이니,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첫째가는 계명들이다" 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 이 문장은 아우구스티노가 알리피오의 <수도원 규정서》를 인가하면서 덧붙여 준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는 그 후 이 형태로 100개 이상의 수도 공동체에 채택되어 사용되고 있다. 1967년에 《아우구스티노 규칙서》 연구의 권위자인 베르헤엔(L. Verhejen)은 이 두 개의 규칙서를 분리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구하였다.
[내 용] 《아우구스티노 규칙서》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그리스도교 수도 생활의 초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규칙서가 지닌 영적인 풍부함 때문이었다. 규칙서에는 아우구스티노 자신의 하느님과의 친교,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 사도적 가난과 헌신, 봉사와 친절의 마음 등이 반영되어 있다. 규칙서의 구성은 제1장 수도 생활의 목적과 공동체 생활의 원칙, 제2장 기도 생활, 제3장 청빈과 절제의 생활, 제4장 형제적 교정, 제5장 공동 소유 문제, 제6장 형제애와 상호 관계, 제7장 장상, 제8장 맺는 말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규칙서는 아우구스티노가 수도 생활의 주된 골자들을 서술한 것이어서 수도 생활 순서와 생활 양식에 대한 세세한 부분이나 외적 구조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 규칙서는 또 성서에 철저하게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비록 짧은 문장이더라도 기본적인 영감은 성서를 바탕으로 성서의 구절들을 조합하여 저술한 것이 많다. 그리고 수도회의 근본 이상은 사도 행전 4장 32-35절에 묘사되어 있는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에 두고 있다. 한편 이 규칙서에서는 금욕주의(ascen-cism)를 강조하지 않고 있는데, 아우구스티노에게 있어서 청빈과 금욕의 의미는 물질의 포기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원하는 마음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발적인 검소한 삶이 내적인 해방과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입술의 찬양과 마음의 찬양, 외면과 내면, 이론과 실천, 이상과 현실이 일치된 삶을 궁극적인 수도 생활의 목적으로 여긴 것이다. 현재 아우구스티노의 규칙서를 사용하는 수도회로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아우구스티노 참사 수도회(Canons Regular ofS Augustine), , 레골렉티 아우구스티노회(Augus-tinian Recollects), 성모 승천 수도회, 도미니코 수도회,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 노르베르토 수도회(Norberineses : Canons Regular of Prémontré), 아우구스티노 관상 수녀회, 도미니코 수녀회, 우르술라회(Usuines), 빌라노바의 성 토마스 수녀회, 성녀 리타 수녀회, 성녀 모니카 수녀회, 착한 목자 수녀회,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 마리아의 종 수녀회 등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설립된 수도회로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와 서울 성가 소비녀회 등에서 이 규칙서를 사용하고 있다.
[의의 및 가치] 알리피오의 《수도원 규정서》와 함께 본래 라틴어로 쓰여진 최초의 규칙서인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는 본문이 10여 쪽밖에 안되며, 고대 수도 규칙서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짧은 규칙서에 속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서방 수도 규칙서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체사리오 규칙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베네딕도 규칙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후에도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아우구스티노는 히포에 있는 한 수녀 공동체에 두 통의 편지(서간 210~211)를 썼는데, 서간 211, 5~16에 수도 규칙서가 실려 있다. 그렇지만 이 《수녀들을 위한 규칙서》는 자신의 규칙서를 글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서, 단지 라틴어 어휘의 남성형을 여성형으로 바꾼 차이밖에 없다. 그래서 수녀들을 위한 최초의 규칙서라고 할 수는 있어도 고유한 하나의 규칙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 수도 규칙서 ; 아우구스티노, 히포의 ;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 참고문헌  L. Verhejen, La Regle de S. Augustin I (Tradition Manu-scrite) Ⅱ (Recherches historiques), Paris, 1967/ -, Nouwelle apporoche de la Règle de S. Augustin, Bellefontaine, 1980/ A. Zumkeller 주석, 이형우 역, 《아우구스티누스 규칙서》, 분도출판사, 1990. [李瀅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