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에 위치한 섬나라로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사이에 있으며,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국가는 남동쪽으로 800km 정도 떨어진 영국의 스코틀랜드이다. 공식 명칭은 아이슬란드 공화국(Ljdhveldich Island). 면적은 102,819k㎡이고, 인구는 271,000(1997)이며, 수도는 레이카비크(Reykjank)이다. 공용어는 아이슬란드어이고 덴마크어 · 영어 · 독일어 등도 사용되며, 국교는 루터교이다.
9세기 초까지 아이슬란드에는 아일랜드의 은둔 수도자들이 살고 있었으나, 870~930년 사이에 바이킹을 포함한 이교도 노르웨이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은둔 수도자들은 이 섬을 떠났다. 이때 이주한 노르웨이인들은 군주제에 반대하는 등 정치적인 투쟁으로 축출된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930년경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입법 의회의 하나인 알싱(Althing)을 창설하였다. 1262년부터는 아이슬란드 내전을 빌미로 노르웨이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1380년 노르웨이가 덴마크의 지배하에 들어감에 따라 덴마크령이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투쟁을 벌여 1874년부터는 덴마크 왕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국 내 문제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1918년에는 군주제와 공동의 외교 정책에서만 덴마크와 연합하는 완전한 독립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944년에 덴마크와 모든 공식적인 관계를 끊고 '아이슬란드 공화국' 을 수립하였다.
〔복음의 역사] 8세기경 정착민 중 소수만이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나, 대다수는 신자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 후 국외로 나갔던 아이슬란드인들이 10세기 말부터 외국의 신부들과 함께 돌아왔고, 선교회가 들어온 것도 이때였다. 초기에 선교회는 어느 정도 복음 전파에 성공을 거두었으나 방법이 너무 폭력적이어서 결국 강제 추방되고 말았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가문들이 점차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교는 급속도로 전파되었고, 1000년경에는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었다. 아이슬란드 교회는 처음에 브레멘-함부르크(BremeneH-Hambug) 교구 관할이었으나 1104년 룬드(Lund) 교구, 1152년부터는 트론헤임(Trondheim) 교구의 관할이 되었다. 13세기에 이르러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자 교회는 사유 교회를 타파하고 성직자 독신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문학적으로는 수도자들이 아이슬란드어로 된 문학 작품들을 번역하는 등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진 위대한 '사가' (Sagas)의 시기였다. 1380년 덴마크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 섬은 점차 고립되기 시작하였으며, 영성적인 면도 쇠퇴하고 사제들은 독신제를 잘 지키지 않았으며, 수도원의 규율은 무너졌다. 15세기 초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흑사병으로 전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을 때 사제들도 대부분 사망하였다. 1537~1552년 루터교가 덴마크로부터 전해지자 주교들은 이를 막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결국 루터교가 아이슬란드의 국교가 되었고, 덴마크 왕은 교회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수사들에게는 수도회를 떠나도록 강요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아이슬란드가 덴마크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한 뒤 가톨릭 교회의 활동은 다시 시작되었고, 1874년에는 종교적인 자유를 획득하였다. 1923년에 설정된 아이슬란드 지목구는 1929년 대목구가 되었다가 1968년에는 레이카비크 교구로 승격되었다. 1996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3,000명이며, 교구 1, 본당 4개에 주교 1, 사제 11(교구 소속 5, 수도회 소속 6), 수녀 50명이 있다.
※ 참고문헌 M. Jakobsson, INCE》 7, pp. 319~3221 (EB) 11, pp. 1033~1040/ 2000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23/ Ammuario Pontificio 1998, Città del Vaticano, 1998/ 《EU》 Les Chiffres du Monde, pp. 293~294. [편찬실]
아이슬란드
〔영〕Republic of Ic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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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