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드
[히]אַכַּר · [라]Achad · [영]Akkad, Accad
글자 크기
8권

1 / 2
아카드 왕국의 나람신이 부조된 석비.
민족들의 목록에 등장하는 느므롯(Nimrod)의 도시 가운데 하나. 현재의 이라크 중부 지역에 있었던 고대 왕조의 이름이기도 하며, 우리말 성서에는 "아깟"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성서의 기록〕 창세기 10장에 등장하는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세계 민족 계보에 의하면, 아카드는 노아의 세 아들 중 하나인 함(Ham)의 손자이며,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이 다스린 시날 지역 즉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수메르 지역에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이 계보는 언어학적이나 인종적인 계보가 아니라 창세기 10장을 기록한 야훼계 전승과 사제계 전승 시대에 알려진 팔레스티나의 정치적 ·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나름대로 해석한 분류이다. 니므롯은 시날 지방에 있는 바빌론(Babylon) 에렉(Erech), 아카드, 갈네(Calneh) 등을 다스렸다. 창세기 10장에서 아카드는 지명이 아닌 인명으로 나오는 니므롯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니므롯이라는 인명이 메소포타미아 역사 안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인명을 그 지역을 의미하는 니므롯으로 대치한 것 같다. 성서에 니므롯은 "세상의 첫 장사(גבר)이다”(창세 10, 8b)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니므롯이 기원전 3000년대 중요했던 지명인 에렉과 아카드 등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니므롯은 셈족에 의해 수메르를 함락시키고 세운 아카드 왕국의 사르곤(Sargon, 기원전 2334~2279)이나 나람신(Naram-Sin, 기원전 2254~2218)을 대신하여 지칭한 이름인 듯하다. 사르곤이나 나람신이 그들의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쐐기 문헌에서 각각 '힘센 용사 와 '힘센 남자/용사' 라는 별칭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쐐기 문헌에서의 아카드〕 왕조 이름인 아카드 : 쐐기 문헌에서 아카드는 사르곤 왕이 세운 왕조 이름이자, 기원전 2500년부터 2000년까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사용된 셈족 계열의 언어 이름이다. 아카드-수메르어 아가데(Agade), , 혹은 악기데(Aggide) 지금까지 그 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있는 니푸르와 바빌론 중간쯤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카드 왕조의 창시자인 사르곤은 쐐기 문헌 기록에서 추론할 수 있다. 사르곤은 쐐기 문헌에서 샤룸-킨(Shar-rum-kin)과 그 후 샤르겐(Sharcn)으로, 성서에서는 사르곤으로 불린다. 샤름-킨은 '정당한/정통성이 있는 왕' 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그가 왕위 찬탈자임을 감추려는 의도에서 붙인 것이다. 그의 출생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가 성서의 모세처럼 역청을 바른 바구니에 담겨 유프라테스 강에 떠다니는 것을 한 정원사가 발견하여 그를 키웠다는 것이다. 그 후 샛별의 여신이자 사랑의 여신인 이슈타르(Istar)의 사랑을 받아 왕이 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수메르 왕조 실록(Sumenan King List)에는 "사르곤의 아버지는 대추야자수나무 정원사이자 아카드의 왕 우르-자바바(U-Zababa)의 시종장"이었고, 우르-자바바는 아카드를 짓고 56년 동안 다스렸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니푸르에 있는 엔릴(Enlil) 신의 신전 에쿠르(Ekur)에서 사르곤에 관한 쐐기 문헌이 발견되었는데, 이 문헌에서 그는 "아카드의 왕, 키시의 왕, 나라의 왕"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그 후 그는 우루크(Umk)와 우루크의 왕 루갈자기시(Lugalzagisi)를 굴복시켰고, 남쪽으로 계속 원정을 감행하여 우르(Ur) · 움마(Umma) · 라가시(Lagash)에 이어 페르시아 만 주변까지 정복하였다. 또 멜루하(Meluhha, 현재의 인도) · 마간(Ma-gan, 현재의 오만) · 딜문(Dilmun, 현재의 바흐라인)까지 해상 교역을 했으며, 북쪽으로는 마리(Mari) · 에블라(Ebla) · 지중해 연안인 야르무티(Yarmuti) · 레바논의 백향목 산까지 정복하였다. 그는 훗날 아카드라고 불린 아가데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과 이슈타르 신과 키시의 전쟁 신인 자바바(Zababa) 신을 위한 신전을 지었다고 쐐기 문헌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는 또 아카드어를 널리 보급하였는데, 그뿐만 아니라 그의 뒤를 이은 왕들도 자신들의 권한이 신에게서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다른 도시 국가들과는 달리 그들은 신전이 아닌 왕궁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사르곤 왕의 뒤를 이은 리무시(Rimush, 기원전 2278~2270), 마니시티슈(Manishtishu, 기원전 2269~2255), 나람신, 샤르칼리샤리(Shar-kali-sharri, 기원전 2217~2193)는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지역인 수메르 지역을 정복한 데 이어 지중해 해안에서 페르시아 만까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정복하였다. 훗날의 기록에 의하면 사르곤이 "해 뜨는 곳부터 해지는 곳까지" 정복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아시리아 제국의 사르곤 2세(기원전 721~705)를 찬양하기 위해 꾸며 낸 이야기이다. 기원전 22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 왕국이 자그로스 산맥을 본거지로 하는 야만인 구티족에게 무너진 뒤, 약 100년간 메소포타미아는 문화의 암흑 시대를 맞았다. 아카드어 : 사르곤 왕은 수메르 상형 문자의 음절을 빌려 그것으로 자신들의 말을 기록하는 음절 문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아카드어이고, 여기에서 아시리아어와 바빌로니아어가 유래하였다. 고대 아카드어에서 아시리아어와 바빌로니아어가 발전된 과정을 보면 아래 도표와 같다. 아카드어는 넓은 의미로 셈어군에 속하는 동(東)셈어(East Semitic)로서 기원전 2500년부터 서기 100년까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에서 사용된 언어를 말한다. 셈어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언어인 아카드어는 이 언어를 썼던 사람들이 자기 언어를 지칭하던 아카둠(Akkadum)을 번역한 용어이다. 다른 셈어들로는 아랍어 · 아람어 · 에티오피아어 · 히브리어 등이 있다. 좁은 의미에서의 아카드어는 고대 아카드어 즉 아카드 왕국의 언어를 말한다. 고대 아카드어는 사르곤, 나람신, 그리고 다른 아카드 왕국의 왕들의 문서에 사용되었다. 우르 제3 왕조(기원전 2112~2004)의 몇몇 문서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편지 · 법령 · 경제 문서들과 왕조 비문들이 대부분이지만 문학 작품도 몇 개 있다. (→ 메소포타미아 ; 설형 문자) ※ 참고문헌 Jean-Jacques Glassner, La Chute d'Akkade : L'événement et sa mémoire, Berliner Beiträge zum Vorderen Orient 5, Berlin, D. Reimer, 1986/ I. Gelb · B. Kienast, Die altokkadischen Korigsinschrifen des dritten Jahrtausends v. Chr., Freiburger altorientalische Studien 7, Stuttgart, F. Steiner, 1990/ J.N. Postgate, Early Mesopotamia : Society and Economy at the Dawn ofHistory, London, Routledge, 1993/ A. Westenholz, The Old Akkadian Empire in Contemporary Opinion, Power and Propaganda, ed. M.T. Larsen, Mesopotamia 7, Copenhagen, Akademisk Forlag, 1979/ -,The World View of Sargonic Officials,Akad, IlPrimo Impero Universale : Strutture, ideologia, tradizioni, ed. Mario Liverani, Padova, Sargon, 1993/J.G. Westenholz, Heros of Akkad, Journal ofthe American Oriental Society 103, 1983. [裵哲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