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나시오 신경

信經

[라]symbolum Athanasianum · [영]Athanasius cr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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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오 신경 시작 부분.

아타나시오 신경 시작 부분.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Athanasius Alexandrinus, 295?~373)가 작성한 것으로 여겨져 그의 이름이 붙은 신경. 육화와 삼위 일체에 대한 보다 분명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누구든지 믿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의 '귀쿤궤' (quicunque)라는 단어로 시작되어 흔히 '귀군궤' 혹은 '귀쿤궤 불트' (quicunque-vult)라고도 부른다.
운율을 갖춘 40개 문장으로 이루어진 아타나시오 신경은 본래 개인적이고 비전례적인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나, 서방 교회에서는 중세 초기부터 전례에 이 신경을 사용하였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아타나시오 신경을 "교회 일치의 기준"에 버금가는 것으로 간주하였고, 13세기 스콜라 신학 시대에는 사도 신경과 니체아 신경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아타나시오 신경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 개혁자들도 혼쾌히 받아들였으며, 오늘날 영국 성공회의 전례에는 이 신경이 포함되어 있다.
〔내 용〕 아타나시오 신경은 주로 삼위 일체와 육화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칼체돈 공의회(451) 때까지의 교의가 발전되어 온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신경에서는 신성을 '본질' (substantia)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였으며, 삼위 일체의 세 위격을 설명하기 위하여 '위격'(persona)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히포스타시스'(hypostasis)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또 세 위격이 서로 구별되면서 동시에 동일하다는 내용을 상당히 강조 하였는데, 세 위격 안에 "하나의 전지전능"이 있다고 진술함으로써 세 위격이 "영원성"과 "전지전능"과 같은 동일한 속성 안에서 일치를 이룬다(unus omnipotens non tres omnipotentes)고 표현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이 표현을 옳다고 증명했으나, 이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았다(《신학 대전》 la, 39. 3). 이 신경에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아타나시오 신경에 내포된 육화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충만성과 완전성을 다루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의 본질로부터 영원에서 태어났고" , "마리아의 본질로부터 시간 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이성적인 영혼과 인간의 육체로 이루어졌다. 이 신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닌 신성의 측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등하며, 인성의 측면에서 볼 때는 성부보다 열등하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 같은 표현은 서방 교회에서 전형적인 것이었다. 또한 아타나시오 신경은 신적 위격 안에 인성이 들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에우티케스주의의 오류를 반박하였다. 예수 그 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서로 혼동되었거나 신성이 인성으로 전환 혹은 인성이 신성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 에우티케스주의의 주장이었다. 이에 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일치를 이루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타나시오 신경은 몸과 영혼의 일치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였다.
신경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지옥에 내려감, 부활, 승천, 성부 오른편에 앉음, 재림, 모든 이의 부활과 심판,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불의 심판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신경 서두에는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고통 중에 있더라도 구원에 대한 굳은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말미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상실한 고통 중일지라도 구원에 대한 굳은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친저성〕 7세기 초부터 아타나시오의 작품으로 간주된 이 신경은 17세기까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내용과 문체와 이 신경에 나타난 문헌상의 증거로 보아 그의 작품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리고 처음에 라틴어로 쓰여졌다가 후에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나, 동방 교회의 몇몇 학자들은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최초의 필사본들이 7~8세기부터 발견되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이 하나의 신경으로서 존재한 것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은 아를의 체사리오(Caesa-rius Arelatensis, 470?~542)였다. 이 작품은 프랑스 남부에서 처음 발견되어 아를 주변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훗날 아를 지방에서 스페인과 카롤링거 제국으로 퍼졌다. 이 신경을 암기할 것을 사제들에게 의무화한 670년경의 오툉(Autun) 교회 회의 문서에 의하면 이 신경이 전례에 사용되었고, 사제 양성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신경의 저자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의 합작품이거나 여러 교회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종합해 놓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1940년에 발견된 빈첸시오(Vincentius Lirinensi, +445)의 《레랭의 빈천시오선집》(Excerpta Vincentii Lirinensis)에 의하여 이 신경의 작성이 434~440년 사이에 시작되었음이 입증되었으며, 이 선집은 아타나시오 신경에 들어 있는 표현들에 대한 자료가 되었다. 그리고 이 신경이 완성된 542년은 이 신경을 최초로 목격한 아를의 체사리오가 사망한 해이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 신경의 저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은 암브로시오(339?~397)를 비롯하여 레랭의 빈천시오, 아를의 체사리오, 루스페의 풀젠시오(Fulgen-tius Ruspensis, 462/468~527/533) , 레메시아나의 니체타스 (Nicetas de Remesiana, +414), 푸아티에의 힐라리오(Hilarius Pictaviensis, 315~368) 등이다.
〔전례에서의 사용〕 독일 교회에서는 9세기에 아타나시오 신경을 전례에 받아들여 주일 미사 강론 후에 낭송하였으며, 후에는 시간 전례의 아침 기도에도 사용하였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로마 교회에서도 전례에 이 신경을 받아들여 1955년까지 시간 전례 주일 아침 기도의 한 부분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955년 이후부터는 단지 삼위 일체 대축일에만 시간 전례 아침 기도에서 이 신경을 낭송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라 시간 전례서를 개정한 다음부터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동방 교회의 수용〕 이 신경에 대한 동방 교회의 첫 필사본은 14세기의 것이지만, 9세기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서방 교회의 수도자들이 아타나시오 신경을 갖고 있는 동방 교회의 수도자들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동방 교회 수도자들은 "성자에게서" (Filioque)를 증명할 때 아타나시오 신경을 사용하였는데, 이 신경에 "성부와 성자로부터" 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성자에게서"라는 표현 때문에 동방 교회의 신학자들은 아타나시오가 이 신경의 저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후대에 이 신경의 필사본을 문헌학적으로 연구하면서 동방 교회의 전통이 많이 들어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성자에게서" 본문에 다른 내용들이 첨가되어 있고, 일부 내용은 삭제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9세기 초에 많은 동방 교회 학자들은 이 신경을 아타나시오의 작품으로 간주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성자에게서"의 문제와 이 신경의 친저성 문제는 별개로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17세기부터 러시아 정교회가 전례에 이 신경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780년에는 그리스 정교회에서도 전례에 이 신경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아주 짧은 동안만 사용하다가 곧 삭제하였다. (- 신경)
※ 참고문헌  J. Quasten, Patrologia 3, Roma, 1992, pp. 32~33/B. Alta-ner, Patrologia, Roma, 1992, pp. 319~323/ J. Tixeront, 《DTC》 12, pp.2178~2187/ 《DS》, pp. 40~42/G. Owens, 1, pp. 995~996.〔盧成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