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고라스 Athenagoras(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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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교부. 호교론자. 초기 그리스도교 호교론자 가운데 가장 유창한 문체를 구사한 인물. 그의 저서에는 시인들과 철학자들의 철학적 표현이나 문장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는데, 보쉬에(J.B. Bossuet, 1627~1704)는 아테나고라스를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호교론의 저자라고 평가하였다.
〔생 애〕 아테네에 살던 그리스도교 철학자라는 것 외에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니체포로 갈리스토(Nicephorus Callistus)의 《그리스도교 역사》(Storia Cristiana)에서, 요한 그리소스토모(Joannes Chrysostomus, 347~ 407)의 부제였던 필립보 시데테스(Phlippus Sidetes) 는 아테나고라스의 생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테나고라스는 하드리아누스(117~138)와 안토니우스 피우스(138~161) 시대에 꽃을 피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첫 수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호교론을 저술한 인물이다. 철학자의 옷을 입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첼소(Celsus)보다 먼저 그리스도교를 공박하는 저서를 쓰기 위하여 성서를 공부하던 중 그 자신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바오로 사도처럼 자신이 박해하던 신앙의 스승이 되었다 . ··《양탄자》(Stromata)를 쓴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가 그의 제자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교를 공박하기 위하여 성서를 공부하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든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수장이었다는 점은 확실하지 않다. 아테나고라스가 성서에 대해 갖고 있었던 존경심 때문에 생겨난 주장인 것 같다.
〔저 서〕 아테나고라스는 176~180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61~180) 황제와 그의 아들 콤모두스(180~192) 황제에게 보내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청원》(Πρεσβεία περί χριστιανῶν)이라는 호교론을 저술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유스티노(100?~165?)처럼 그리스도교와 로마 제국, 그리스도교 교리와 이방인 철학 사이의 조화를 꾀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해진 고발들을 하나씩 반박하였다.
우선 그리스도인들이 무신론자라는 고발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성부 · 성자 · 성령인 유일신을 믿는 이들(monotheistae)이지 무신론자들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그러면서 고전 철학자들과 이교도 시인들도 일신론적 경향을 지닌 이들이 많았으나 이들이 무신론자로 고발된 적은 없었다고 지적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영감을 받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어떠한 철학자들보다 하느님에 대해보다 완전하고도 순수한 통찰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의 말뿐만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들은 이방 신들에게 희생 제사를 바쳐서도 안되고, 그 신들을 믿어서도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또 그리스도인들이 식인(食人)의 죄를 범한다는 고발에 대하여, 아테나고라스는 살인죄를 범하는 것을 금하는 그리스도교의 계명을 제시하며 반박하였다. 더욱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들뿐만 아니라 검투사의 싸움조차도 구경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태도를 증거로 제시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육신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인간의 몸을 먹는 것을 금하는 충분한 이유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근친 상간의 죄를 짓고 있다는 고발은 증오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인간의 역사 역시 악행이 덕행을 박해해 왔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잘못을 생각으로도 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동정성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에서도 이것이 잘 드러나 있다고 강조하였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결혼 생활 안에서도 동정을 추구하며, 더욱이 재혼하는 것을 '정숙한 간음' (decente adulterium)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하여>(Περί ἀναστάσεως τῶν νεκρῶν)는 호교론 결론 부분에 나오는 소논문인데, 전통적으로 아테나고라스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친저성을 의심하는 학자도 있다. 철학적 성격을 많이 띠고 있는 이 소논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부분은 육신 부활에 대한 고전적인 반박, 즉 부활은 불가능한 것이고 하느님도 그러한 일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답변이다. 즉 하느님의 권능과 지혜가 육신 부활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화를 이루기에 부활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부활의 당위성에 대한 네가지 근거이다. 첫째는 영원히 살도록 창조된 인간의 운명이고, 둘째는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본성이다. 특히 이 일치는 죽음을 통해 깨어지지만 인간이 영원히 살기 위하여 부활을 통해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육신 역시 영혼과 함께 보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 다는 심판이고, 넷째는 지복 직관으로 운명 지어진 인간의 운명이다. 이는 이 세상 삶에서는 불가능하고 저 세상 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철학 사상〕 전체적으로 그의 철학 사상은 플라톤(기원전 428/427~348/347)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물질과 영혼, 천사, 감각적 본성과 지성적 본성, 그리고 하느님에 관한 그의 용어에 잘 나타 있다. 또 성자를 로고스요 창조주로 제시하였고, 무엇보다도 창조 사업에서 로고스를 "이데아요 에너지"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플라톤 사상은 절충주의의 수용과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면서 약간 변형되었다. 예를 들어 이방인 철학자들도 어느 정도 하느님의 조명을 받는다고 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인물로 평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계시를 통해서만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학 사상〕 아테나고라스는 예언자들이 증언하였던 하느님의 단일성을 증명하려고 노력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로고스의 신성과 성부와의 본질적 일치를 증명하면서도 다른 호교 교부들과는 달리 성자 종속설(subordi-natianismus)을 피하였으며, 성령에 대해서는 하느님에게서 나온 분(procedere)으로 설명하였다. 그래서 그는 삼위일체인 하느님께 대한 그리스도교 교의를 철학적으로 옹호한 첫 인물이고, 성령의 영감(inspinatio)이라는 교의에 서도 주요 증언자로 등장하고 있다. 또 그는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아테나고라스는 동정성을 그리스도교 윤리의 가장 아름다운 결실로 보았으며, 혼인에 대해서는 자녀의 출산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였다. 즉 자녀 출산이 혼인의 첫번째 목적이자 마지막 목적이라는 것이다. 또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강조하여 죽음마저도 혼인의 인연을 풀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점 때문에 틸몽(Louis Sébastien Le Nain de Tillemont, 1637~1698)은 그를 몬타누스주의자로 보기도 하지만, 재혼을 금지하는 것은 그리스 교부들에게서도 많이 나타나므로 틸몽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호교학)
※ 참고문헌  P. Nautin, (DPAC) 1, p. 435/ G. Bauschen, Manuale de Patrologia, trad. ital. di G. Bruscoli, Firenze, 1904, pp. 64~66/ G. Bosio . E. dal Covolo · M. Maritano, Introduzione ai Padri della Chiesa, Secoli I e I , Torino, 1993, pp. 195~208/ F. Cayré, Précis de Patrologie I , Paris, 1938, pp. 126~128/ 《ODCC》, p. 121/J. Quasten, Patrologia I , trad. ital. di Nello Beghin, Casale Monferrato, 1992, pp. 202~208/ S. Mansel, A Dictionary ofChristian Biography, ed. H. Wace . W.C. Piercy, Massachu-setts, 1994, pp. 65~69/ J.Tixeront, Précis de Patrologie, Paris, 1920, pp.56~58. [邊宗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