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그]'Αθήνη · [라]Athenae · [영]Ath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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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아레오파고 법정에서 연설하고 있는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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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아레오파고 법정에서 연설하고 있는 바오로.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로 그리스의 고도(古都)이자 수도. 사도 바오로가 선교 활동에 실패한 곳.
〔지명의 유래〕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은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기원전 2세기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역사가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의 기록에 의하면, 아테네 최초의 왕은 페니키아 사람인 체크롭스(Cecrops)였고, 그는 아티카 지방으로 이주하여 바닷가의 거대한 바위 언덕에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올림포스 산의 신들은 인간들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제공하는 자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의 이름을 짓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때 아테나 여신과 포세이돈이 경쟁을 벌였는데,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심었고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바위를 쳐서 말 한 마리를 만들었다. 각각 평화와 전쟁을 상징하는 두 신의 창조물 중에서 신들이 아테나의 것을 선택함에 따라 이 도시는 아테나이( ̓Αθῆναι)라고 불리게 되었다.
〔역 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아테네는 내륙으로는 해발 2,510m 높이의 최고봉이 자리잡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넓이는 2,500㎡이며, 아티카 반도를 통일한 중심 세력이었다. 해발 156m의 바위 언덕인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천연적인 요새로 방어하기가 쉽고, 수량이 풍부한 2개의 샘이 있어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바다쪽으로 7km 떨어진 피레우스(Piraeus)는 아테네가 해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무역 항구의 역할을 하였다. 아테네 최초의 거주민은 아크로폴리스의 북쪽과 남쪽의 비탈에서 기원전 3500년경 우물을 파고 정착하였던 펠라스기인(Pelasgi)들로 여겨지며, 기원전 2000년경 새로운 민족이 아테네로 이주하였는데 이들이 이오니아인(Ionian)으로, 언어학적 측면에서 최초의 그리스 민족으로 볼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 중턱에 남아 있는 당시의 특징인 키클로포스 양식 성벽을 통해 아테네가 미체네(Myycenae) 문명 시대인 기원전 1400년경부터 도시 국가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1300년경 전설적인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Theseus)가 아티카 지방의 12개 도시를 동맹으로 연합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아테네가 이 지역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아테네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과 특히 공공 건축물은 기원전 700년경부터 등장하기 때문에 아테네가 본격적인 왕국을 형성한 것은 이때부터였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600년경에 아테네의 솔론(Solon, 기원전 630?~560?)은 토지 개혁을 통하여 만성적인 농민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입법부 · 행정부 · 사법부의 일대 개혁을 단행하였다. 아테네는 기원전 499년부터 시작된 페르시아의 그리스에 대한 공격으로 한때 침체되었으며, 기원전 490년 아티카의 북동해변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군은 페르시아 군대를 격퇴하였지만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 이후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461년에 아테네는 도시 동맹의 군주가 되었고, 페리클레스(Pericles, 기원전 495?~429?) 통치하에서는 대규모의 도시 건설이 이루어졌다. 페리클레스는 페르시아의 공격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 기원전 478)을 아테네로 유치하면서 델로스 섬에 보관된 도시들의 연합 금고를 기원전 454년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옮겼다. 아테네 세력의 팽창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시 국가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마침내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졌다. 기원전 350년경 마케도니아의 필피로스 2세(기원전 359~336)에 의해 아티카 지역이 점령되어 아테네도 그 세력권에 포함되었으며,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기원전 356~323)가 사망한 뒤 소아시아를 차지한 안티고노스(Antigonos I Monophthalmos, 기원전 382~301)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기원전 200년 마케도니아와 로마가 전쟁을 벌였을 때 아테네는 로마를 원조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테네는 여전히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신약 시대에는 로마 제국의 직접 통치를 받았지만, 상당한 정도의 정치적 · 경제적 독립이 보장되었었다. 로마 제국의 두 번째 황제인 티베리우스(14~37)가 즉위하자 아테네 시민들은 아고라(Agora, 시장)에 커다란 기념비를 세워 새 황제에게 바쳤는데, 그 기념비 아랫단에는 "아우구스투스 신과 "이 도시의 은인"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성서에서의 언급〕이스라엘 민족처럼 아테네인들도 하루를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로 계산하였다. 그들에게 하루의 끝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때였고, 하루의 시작은 밤 그림자가 드리울 때였다. 또 그들은 짐승의 피가 부정한 귀신이나 갑작스러운 재앙으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던 것 같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기원전 175~164)는 예루살렘과 유다 전역을 조직적으로 그리스화하려고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아테네의 한 철학자가 예루살렘으로 파견되어 이 사업을 총괄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올림포스의 제우스 신을 이스라엘의 신과 동일시한 그는, 유대인들이 '파멸의 우상'(1마카 1, 54)이라고 부르는 신상을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에 세우고 돼지를 제물로 바치게 하였다. 이로 인해 마카베오 가(家)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성서에서 아테네가 구체적으로 등장한 것은 사도 바오로의 제2차 전도 여행에서이다. 사도 바오로는 51년에 마케도니아의 베레아를 출발하여 배편으로 아테네에 도착하였는데, 아마도 피레우스 항구를 통해서 들어갔던것 같다. 바오로는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과 예수의 부활에 관하여 토론을 벌였고(사도 17, 16-18), 아크로폴리스 언덕 중턱에 위치한 아레오파고(ὄρειος πάγος) 법정에서는 하느님의 존재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연설하였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바오로의 말을 비웃고 단지 몇 사람만이 믿었다고 한다(사도 17, 22-34). 이는 아테네에서의
바오로의 복음 선포가 실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 적〕 아테네의 대표적인 유적지는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에 집중되어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동서의 길이가 320m이고 남북의 폭이 156m이며 전체 면적이 3만㎡인 바위 언덕이다. 이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둥과 건물들로 구성된 대규모의 출입구인 프로필론을 통과해야 한다. 기원전 510년 델피에서의 신탁은 아크로폴리스가 신들의 주거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기원전 461년 아테네의 통치자 페리클레스는 아크로폴리스의 사람들을 저지대로 이주시키고 이곳을 신전과 성소로 꾸미기 시작하였다. 대표적 신전인 파르테논(Parthenon)은 "파르테노스(처녀)의 집"이라는 뜻으 로, 기원전 447~438년에 건설된 그리스에서 가장 큰 도리아 양식의 신전이다. 델로스 섬에 있던 그리스 도시들의 동맹 금고를 아테네로 옮긴 페리클레스는 이 재원으로 아크로폴리스를 짓고 신전을 건설하였는데, 익티노스(Ictinos)와 칼리크라테스(Callicrates)에 의해 설계된 이 신전은 12m 높이의 아테나 여신의 황금 신상을 모시는 집의 역할과 함께 아테네 동맹에서 적립된 막대한 양의 재산을 보관하는 금고 역할도 하였다.
아테나의 올리브와 포세이돈의 말이 생겨난 곳에는 에렉테이온(Erechtheion) 있다. 아테나 여신과 포세이돈신을 모시는 두 개의 성소가 있는 이 신전은 아테네의 왕 에릭토니오스(Ericthonios)로부터 유래되었으며, 대표적인 이오니아 양식으로 경사면을 이용하여 건축되었다. 또 아크로폴리스의 남동쪽 모퉁이에 있는 박물관에는 헤라클레스 · 코레 등의 대리석 조각과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 조각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아크로폴리스 입구 아래에는 아테네의 최고 법정이 있었던 아레오파고 바위가 있고, 160년대에 건설된 헤로데스 아티코스(Herodes Atti-COS, 101?~177)의 로마식 극장이 본래의 높이대로 복원되어 무대 배경과 함께 오늘날에도 연주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에는 기원전 4세기에 건설된 1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해마다 3~4월에 디오니소스 축제가 개최 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기원전 419년부터 건설된 종합 병원인 아스클레페이온이 있다. 아크로폴리스 북쪽 아래에는 아테네의 아고라가 자리잡고 있는데, 본래 아고라 지역은 기원전 7세기까지는 아테네의 대표적인 무덤 지역이었다. 아고라는 기원전 600년 이후 솔론에 의해 처음으로 공공 장소로 개발된 이래 아테네의 군주들은 꾸준히 신전과 스토아, 그리고 자신들의 저택 등을 건설하였다. 150년경에 기록된 파우사니아스(Pausanias)의 《그리스 묘사》에 아고라의 상세한 건물들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아고라에는 기원전 5세기에 건설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위한 신전인 엘류시니온,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을 비롯하여 아레스 신전 · 아폴로 신전 · 제우스 신전 등이 있었다. 아테네 시민들의 자유로운 공공 집회 장소인 스토아는 회랑이 늘어선 복도 건물인데, 기원전 2세기 베르가모의 왕이 건설한 2층으로 된 아탈로스 스토아를 비롯하여 제우스 스토아 · 포이킬레 스토아 등 여러 개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하드리아누스의 도서관과 판타이노스의 도서관 등이 있다.
※ 참고문헌  J.B. Bury, A History ofGreece, New York, St. Martin's Press, 1966/ J. Camp, The Athenian Agora, Athens, American School of Classical Studies, 1990/ 一, The Athenian Agora : Excavations in the Heart of Classical Athens, London, Thames & Hudson, 1992/ G. Dontas, The Acropolis and Its Museum, Athens, Clio, 1979/ C. Hignett, A History of the Athenian Constitution, London, 1952/ I.T. Hill, The Ancient City of Athens, London, 1953/ H.M. Martin, 《ABD》 1, pp. 513~518/ R. Meiggs, The Athenian Empire, Oxford, 1972. 〔金 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