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동 본당

阿峴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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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1동 9소재. 1957년 3월 7일 약현(藥峴, 현 중림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로사리오의 성모. 관할 구역은 북아현1~3동, 대현동, 아현1~3동, 염리동, 대흥동, 노고산동 전 지역. 〔교 세〕1957년 2,500명, 1960년 5,000명, 1971년 3,758명, 1976년 4,867명, 1980년 5,124명, 1985년 4,720명, 1990년 6,005명, 1995년 6,067명, 1999년 5,124명. 〔역대 신부〕 초대 장병룡(張丙龍) 요한(1957. 3~1964. 8) , 2대 이석층(李錫忠) 요한(1964. 8~1965. 7), 3대 박희봉(朴喜奉) 이시도로(1965. 7~1967. 8), 4대 이문근(李文根) 요한(1967. 8~1968. 5), 5대 구전회(具田會) 바르톨로메오(1968. 5~1973. 5), 6대 조순창(趙順昌) 가시미로(1973. 5~1978. 8), 7대 박고 빈(朴稿斌) 시메온(1978. 8~1983. 8), 8대 김정진(金正鎮) 바오로(1983. 8~1985. 8), 9대 안충석(安忠錫) 루가(1985.8~1993. 3), 10대 심용섭(沈勇燮) 아우구스티노(1993. 3~1998. 10) , 11대 오기오(吳基五) 요한 그리소스토모(1998. 10~1999. 10), 12대 봉재종(奉載鍾) 마르코(1999. 10~현재).
1891년에 설립된 약현 본당은 그 동안 계속된 본당 분할에도 불구하고 1956년의 교세가 7,000여 명을 넘어서자 북아현동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계획하였다. 이에 북아현동과 아현동 지역 유지들이 주축이 되어 1957년 2월 10일 '천주교 아현 교회 설립 준비위원회' 를 구성하고 성당 건립 기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7일 본당이 설립되어 초대 주임으로 장병룡 신부가 부임하였으나 사제관이 없어 북아현동 124번지의 신자 집에 머무르면서 사목하였다. 성당 건립이 시급하였으나 당시는 한국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금 마련에 어려움이 많자 우선 임시 성당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이에 그 해 6월 현 성당 소재지에 있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매입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고, 목사관은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7월에는 서울 성가 소비녀회 수녀가 파견됨에 따라 사제관을 개조하여 수녀원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사제관은 가건물을 지어 사용하였다. 그리고 1959년 4월 19일 임시 성당 인근의 대지(162평)를 매입하여 이듬해 9월 기공식을 갖고, 1961년 8월 성당을 완공하였다. 성당 건립으로 어수선한 가운데에서도 매괴회와 레지오 마리애가 조직되었고, 특히 주일학교는 학생수가 500~600명을 헤아릴 만큼 활동이 활발하였다. 또 미국 가톨릭 복지 협회(N.C.W.C.)에서 지원받은 양곡으로 구호 사업과 함께 전교 활동을 펼쳐 본당 설립 3년 만인 1960년에는 신자수가 5,000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석충 신부는 성당의 부대 시설을 마련하고 여러 단체들을 조직하였으며, 3대 주임 박희봉 신부는 월보 <아현 성당 소식>을 창간한 데 이어 성당 외부 및 도장 공사 등을 마무리한 뒤 1965년 12월 19일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대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또한 박희봉 신부는 재임 기간 중 서대문 교도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100여 명의 재소자들에게 세례를 주기도 하였다. 4대 주임 이문근 신부 때인 1967년 8월 19일에는 연희동(延禧洞) 본당, 그리고 같은 해 10월 10일에는 양화진(楊花津, 현 서교동) 본당을 각각 분할하였다.
이어 5대 주임으로 부임한 구전회 신부는 전임 신부 때부터 계속 논의되어 오던 본당 묘지 조성을 구체화하여 1969년에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장곡리 산 15번지의 야산을 매입하고 본당 묘지로 조성하였으며, 본당 월보를 주보로 개편하였다. 또한 지속적인 교세의 확장으로 1969년 8월 10일 공덕동(孔德洞) 본당, 1971년 9월 17일에는 신수동(新水洞) 본당을 각각 분할하였다. 그리고 6대 주임으로 부임한 조순창 신부는 신자 가정 방문을 실시하였고, 성당 맞은편의 한옥을 매입하여 수녀원을 이전하였고 수녀원으로 쓰던 성당 지하 1층은 주일학교 교리실로 사용하였다. 1977년에는 본당 설립 20주
년을 맞아 야유회를 개최하고, 본당사를 발간하였으며, 전자 오르간을 설치하였다. 9대 주임 안충석 신부는 새 성당 건립 계획을 세우고 1986년 11월부터 성당 인근 대지를 매입하여 1989년 4월 기공식을 가졌으며, 1991년 2월 성모상을 건립한 데 이어 그 해 5월 5일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 집전으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0대 주임 심용섭 신부 때인 1997년 10월에는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아 기념 운동회를 개최하였으며, 12대 주임 봉재종 신부는 사도직 단체들을 정비하는 한편 전교 활동에 힘쓰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중림동 본당)
※ 참고문헌  《阿峴本堂 20年史》, 天主教阿峴教會, 1977/ 《애오개새성전》, 천주교 아현동 교회, 1991/ 약현성당 100주년사 편찬위원회, 《약현 본당 100년사》, 천주교 중림동 교회, 1992.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