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에서 나오는 진정한 요구와 반대되는 나쁜 습성. 미덕(美德)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향락 권력 · 소유 등을 추구하려는 기본 성향을 지니기에 본성을 거스르는 것, 즉 인간이 완성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인간 본성이 드러내는 이성적인 요구에 반대되는 것이다.
〔정의 및 개념〕 윤리 신학적인 측면 : 악덕은 특정한 형태의 악한 행위와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다양한 태도들로부터,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최종 목적으로부터 빗나가게 한다. 그러나 미덕은 선(善)을 향한 모든 인간의 완전한 성향이다. 예를 들어 분별력은 습관적으로 올바른 것을 선택하도록 실질적인 이유들을 조건 지우거나 권한을 부여하며, 정의(正義)는 인간이 다른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인간의 의지를 완성한다. 그리고 굳셈과 인내는 동물적인 두려움과 욕망이 올바른 이성의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따르도록 욕구들을 조절한다. 이와 같이 미덕은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선을 행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의미한다. 반면에 악덕은 악한 행위에 몸을 맡긴 상태, 즉 습관적인 타락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부추기는 습관을 말한다. 악덕은 윤리적인 미덕들과 반대되는 것으로 나타나므로, 그 자체로 미덕과 함께 공존할 수 없다. 미덕이 옳은 행위로의 확고한 성향이라면, 악덕은 악하게 행동하는 확고한 성향이다. 그리고 미덕이 본성과 조화된 행위를 하는 사람의 기질이라면, 악덕은 본성에 반대되는 것을 행하는 기질이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와 윤리학자들은 악덕이 본성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악덕의 의미는 "습관은 자연적으로 이성에 순응한다"는 미덕에 대한 치체로(M.T. Cicero, 기원전 106~43)의 정의(定義)에 따른 표현이었다. 실제로 인간의 참된 본성은 이성(理性)의 요구에 일치되며,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이성은 신앙을 통해 조명된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중의 본성이 있다. 하나는 이성적인 면에 대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성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성에 대한 성향은 자주 이성의 요구와 대립하기 때문에, 인간이 이성을 거슬러 감성의 경향을 좇는다면 바로 여기서 악덕과 죄가 생기게 된다. 악덕은 윤리적인 가치의 영역에서 특히 감성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교만과 탐욕으로 발전하는 무질서한 자기 사랑에 의하여 윤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부정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몰아간다. 이에 따라 악덕은 향락 · 권력 · 소유 등을 추구하려는 기본 성향을 지닌다. 이러한 의미에서 악덕과 죄는 본성에 반하는 것, 즉 인간이 완성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인간 본성이 발(發)하는 이성적인 요구에 반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악덕이 중요한 죄, 즉 대죄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큰 악덕'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죄와 악덕을 단순하게 동일시할 수는 없다. 죄는 윤리적으로 악한 행위이며, 따라서 이것은 선한 행위에 반대되는 것이다. 물론 죄의 중대함이라는 윤리적인 개념은 그것에 반대되는 미덕의 고귀함이나 그것이 관계된 대상에 의해서 악덕과 연관되는 것이다. 하지만 악덕은 미덕이라는 습성에 반하여 인간을 악한 행위로 이끄는 지속적인 경향 자체를 뜻한다. 그런데 악덕에 사로잡혀 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행위자라는 것이 전제되어야한다. 비록 그가 실제로 습관에 의해서 경미하게 죄를 짓는 경향이 있지만 죄의 생활을 통해서 초래된 습관적인 타락은 전 인간의 인격으로 확장된다.
윤리적인 태도로서의 악덕은 원천적으로 습득되어 점진적으로 확립되는 것이다. 후천적으로 습득된 습관인 악덕은 고의적으로 반복되는 악한 행위들이 원인이 되어야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반복되는 어떤 악한 행위들이 만일 공포 혹은 두려움의 영향력 아래에서 범해진 것이라면, 그 행위들은 나쁜 습관을 만들어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악덕이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악덕은 악한 의지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악한 행위를 범할 경우에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한 인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본성적으로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한다면, 그때에 죄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악덕은 의지가 악으로 이끌리게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게 된다" (《신학 대전》 I a-Ⅱ ae, q. 78, a. 3)라고 하였다. 인간의 인격 안에서 의지는 사랑, 욕망, 미움을 향한 궁극적인 영적 능력, 인간 행위의 샘, 근본적이며 선천적인 힘을 지닌다. 악덕은 의지의 부패뿐만 아니라 죄를 짓거나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소원하도록 하는 데에도 관계한다. 의지에 의한 이러한 타락은 자발적인 반응으로 유도하는 의지 자체뿐만 아니라, 악한 행위가 만들어 내는 결과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의지에 의해 피할 수 없게 된 인간의 다른 힘과 능력에도 적용된다.
또한 모든 악한 행위는 명백한 선과 악을 볼 수 있는 지성의 탐욕적인 오류에 관계하며,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 악인은 양심의 가책 없이 죄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기 위하여 윤리적인 법을 고의로 무시하고자 한다. 즉 무지나 열정의 영향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유익을 명백하게 고의로 선택한다. 악덕에서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습관적인 성향이 되었을 때, 말하자면 죄인의 제2 본성이 되었을 때이다. 어떠한 미덕의 성향도 없게 되어 버린 이런 경우에는 미덕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악덕의 습관은 지속적인 성향이며 이를 없애는 것은 매우 힘들 뿐만 아니라, 의지가 이러한 습관을 마음대로 다루기란 매우 힘들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주목할 것은 습관적인 악덕에 사로잡힌 사람에서도 선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을 행하는 자도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그 특성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습관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이성을 완전히 변질시키지는 않는 악한 습관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 습관을 가지고 미덕의 행위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신학 대전》I a-Ⅱ ae, q. 78, a. 2)라고 하였다.
심리학적인 측면 : 악덕은 거의 규칙적인 성향으로 나타나는데, 자연적으로 무질서한 탐욕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결함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정신적인 결함의 증상이 될 수도 있다. 심층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발전의 뿌리를 어린 시절, 즉 부모로부터 받아야 하는 사랑의 결핍을 통하여 욕구의 잘못된 발전과 고착에서 찾는다. 항상 더 넓은 세계와 하느님과의 만남을 지향하는 인간의 성향들은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경험하는 거부와 잘못된 형성으로 이기적이고 유치하며 발달하지 못한 쾌락의 만족으로 회귀함으로써,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욕구에 대한 완전한 발전의 가능성이 적으면 적을수록 쾌락적인 시각을 더 많이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은 만족될 수 없기 때문에 점점 더 자주 반복되어야 한다. 악덕에 물든 태도들의 성향과 다양한 형태들은 이렇게 형성된다. 만일 그것이 정신적이나 윤리적인 형식에 의해서 수정되지 않는다면, 마지막 단계에서는 악덕에 물든 발전은 신학에 의해 제시된 길을 사라지게 한다.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성향은 상황에 따라 윤리적 저항에 대한 비범한 장애를 의미하며, 중대한 경우들에 있어서 죄책감을 잃게 만들지만, 원칙적으로 결정의 자유를 없애지는 않는다.
[특 징]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모든 미덕은 일치를 조장하려고 하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덕에 의해서 행동하는 사람은 이성의 법을 따르고자 하는 명백한 의도를 갖고 있으며, 미덕의 행위를 통해서 다른 모든 미덕들을 연관 지어 일치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에 악덕은 이러한 관계 맺음이 없으므로, 분열을 일으키고 불화를 조장하며 일치를 방해한다. 그리고 모든 미덕은 공평함을 지향하지만 악덕에는 공평함이 없다.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죄와 모든 사악한 습관은 윤리적인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런데 악덕은 악으로의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치나 균형을 파괴하고 그럼으로써 공평함에 반대되는 것이다(《신학 대전》 I a-Ⅱ ae, q. 73, a. 2 ad 3um). 이와 같이 악덕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중(重)한 것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미덕에 반대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덕에 반대되는 모든 것이 악덕이라고 볼 수 있으며, 또한 미덕은 악덕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하지만 악덕은 덕행을 실천함으로써 감소되거나 결국에는 소멸될 수 있다.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완치라는 것이 아주 어렵듯이 윤리학적인 측면에서도 악덕을 소멸시키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덕은 교육을 통하여 형성되는 후천적인 미덕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악덕 목록〕 고전적인 악덕 목록은 가장 평범한 윤리적인 실패 형태의 목록이다. 성서에는 인간의 자만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랑의 발전과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자만은 "모든 죄의 근원, 악덕으로 넘쳐흐르는 근원" (집회 10, 13)이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애처럼 자만은 모든 다른 악덕들을 발전하게 하는 자극적 충동을 피한다. "탐욕은 모든 악덕의 뿌리"(1디모 6, 10)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완전하게 악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게으름 혹은 나태는 신적인 선에 대한 마비(무감각)에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사랑의 기쁜 특성에 반대된다. 신적인 선을 향한 열정이 없으면 미덕의 삶을 발전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두려움이 생기는데, 그것은 즉시 절망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은 사용 가능하며 주어진 심리적 힘의 양이 있고, 탐욕으로 육체적인 즐거움을 열성적으로 추구할수록 영적인 것을 위해서는 더 적게 남게 된다. 탐욕으로 인한 가장 일반적인 실패의 형태는 진정으로 좋은 것에 대한 인간적 이해력의 약화와 험한 목표들에 적절한 방안들을 선택하는 의지적인 반응 능력의 약화이다. 이렇게 하여 무질서한 낮은 욕구들은 죄가 깊은 쾌락에서 자기애를 고수하려는 의지 안에서 무질서를 향한 왕성한 기초가 된다. 현세의 즐거움에 대한 애정은 다가올 세계의 영적 즐거움을 좌절시킨다. 그리고 일련의 유사한 반응들이 다른 이들의 선을 슬픔으로 구성하는 질투와 함께 시작된다. 질투는 다른 이에게 일어난 불행을 기뻐함으로써 고통을 누그러뜨리며, 이것은 또 다른 이들에 대한 실제적인 미움을 쌓는다. 윤리적인 부패의 이런 형태들은 늘 알려져 왔다.
이러한 미덕에 대조를 이루는 악덕이 점점 더 세분화되어 늘어나는 현상은 스토아 철학에서 구조적으로 미덕과 악덕의 목록을 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과잉이나 부족에 의해 초래된 악덕의 목록은 윤리적 미덕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미덕의 목록보다는 더 많다. 견유적인 성향을 지닌 스토아 철학은 특히 악덕 목록을 교훈을 주는 데에 있어서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악덕 목록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죄라는 입장에서 탐식 · 간음 · 탐욕 · 분노 · 슬픔 · 나태 · 교만 · 불손 등 8개, 혹은 여기에서 불손을 제외한 7개로 형성되었다. 이것들은 개별적인 죄의 특별한 중대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악덕이 죄의 원천과 형성되는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스콜라 철학은 모든 죄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칠죄종' (七罪宗)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칠죄종이란 교만 · 탐욕 · 질투 · 음행 · 탐식 · 분노 · 게으름을 말한다. 교회 전통은 칠죄종에 대칭을 이루는 일곱가지 주요 덕의 목록도 만들었는데, 그것은 세 가지 대신 덕인 믿음 · 희망 · 사랑과 사추덕인 현명 · 정의 · 용기 ·절제이다. 그러나 칠죄종과 주요 덕들 간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왜냐하면 칠죄종이나 주요 덕의 목록이 체계적인 분석이나 논리적인 결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대중 윤리에서 유래된 것이며, 어디까지나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러한 목록들 자체는 모두 영적인 자극이 되고 수덕적 반성에 도움을 준다. (⇦ 악습 목록 ; → 덕 ; 악 ; 악행 ; 윤리덕 ; 칠죄종)
※ 참고문헌 R. Hoffmann, Laster, 《LThK》 6, pp. 805~806/ R.H.Schmandt, 《NCE》 16, pp. 642~643/ B. Loth ed., 《DTC》 25, pp. 2858~ 2862. [具經國]
악덕
惡德
[라]vitium · [영]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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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악덕은 향락 . 권력 · 소유 등을 추구하려는 기본 성향을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