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

惡行

[라]factum malum · [영]evil d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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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행은 나쁜 마음씨에 의한 실제적인 행위이다.

악행은 나쁜 마음씨에 의한 실제적인 행위이다.

선행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몹시 사악한 행실. 악덕(惡德)이 나쁜 마음씨를 의미한다면, 악행은 그것에 의한 실제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악행은 인간의 책임에 귀속하는 해로운 행실 또는 나쁜 행위이다.
〔개 념〕 인간은 궁극 목적을 추구하여야 하고, 그 목적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이 목적의 달성을 보장해 주는 도덕률의 의무와 양심의 명령을 무시한다면, 이는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행동이 비의지적이라면 그것은 없어야 할, 그리고 고쳐야 할 하나의 무질서이다. 그렇지만 자유로운 인간적 행위가 아니라면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자유로이 원한 것, 즉 알면서 자유로운 동의로 행하였을 때이다. 물론 사람들 마음속에는 악의 유혹을 일깨워 주는 적극적인 성격의 요인들도 있다. 악행과 악심(惡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인류는 악의 위협과 그 무서운 세력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므로 악은 인간 도덕의 내면에 있는 선의 대립 개념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근원적인 악 혹은 악마적인 힘으로도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악이 아담의 '원죄' (原罪)에서 시작되어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느님의 질서에 반항하고 복종을 거부할 때 생긴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보면 '악' 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서에서는 어떤 인간이나 행위 또는 사물을 그 외관이나 결과로 보아 무가치하거나 부패한 것, 즉 흉악하고 근심되는 것, 고통스럽고 해되는 것 등을 악으로 보았다. '부패' 라는 의미를 확대시켜 생각할 때, '악' 은 인류 특히 이스라엘이 견뎌야 하는 재앙 · 화(禍) · 위험 등을 뜻하였다. 따라서 '악' 은 종종 하느님께서 주시는 벌이나 응징을 의미하며, 하느님은 엄하지만 분별 있는 목적을 위해 '악' 을 사용하기도 하시므로 악의 주관자로 묘사되기도 하였다(읍기 2, 10 ; 판관 45, 7 ; 아모 3, 6). 또한 도덕적인 잘못 · 악의(惡意, malevolence) · 죄 있는 마음의 사악함 등도 의미하였다(욥기 8, 20 ; 시편 26, 5 ; 잠언 17, 4 ; 판관 1, 4 ; 예레 20, 13). 특히 신약성서에서의 악은 도덕적 · 영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인간이 서로에게 행하는 잘못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악이란 개념을 가진 단어는 '이블' (evil)과 '롱' (wrong)이다. '에빌' 은 당연히 있어야 할 선 또는 자연히 본질적으로 속해 있어야 될 선의 결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연히 갖추어져 있고, 어떤 존재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이 '악' 이다. 그러나 바르지 않은 것 또는 틀린 것은 '롱' 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인간 행위에 적용하였을 때 당연히 나아가야 할 길, 인간의 최종 목적인 천국에 다다르는 길에서 벗어남을 말한다. 따라서 '롱' 은 '진리' 에 반대되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블' 은 '선' 에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다. 이에 상응하여 '악행' 도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생각할 수가 있다. 즉 당연히 있어야 할 선의 부재(不在)와 행위의 선악을 뚜렷이 검토하지 않는 상태의 악의적인 인간 행위를 자행하는 경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간 행위에 적용할 때 당연히 나아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악을 바라는 의미에서 악의적인 못된 짓을 하는 경우이다. 악행이 행해지는 이유로는 악한 표양과 타락
한 사회 풍조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윤리 가치들은 이론적으로나 아니면 실천적으로 의문시되고 있고, 오히려 악한 행동 방식이 인정되거나 추천되기까지 한다. 이러한 환경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도 선을 행할 용기를 잃게 한다. 예컨대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거나 공직자들이 뇌물을 받는 것처럼, 악한 표양은 다른 사람들에게 악한 행동을 하도록 초래한다.
〔책임에 대한 논쟁〕 악한 행위는 인간의 책임에 귀속되는 잘못된 행동이다. 이에 대한 주된 질문은 "과연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려고 하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고의로 잘못 행동한 것이 아니거나 그 사람이 악한 행동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면, 그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묻거나 비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469~399)는 이러한 어려움을 제기하였지만 철학자들과 특히 현대 철학자들은 이에 대해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더욱이 최근에 제기한 두 가지 의심스러운 문제 설정으로 개념을 훨씬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즉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는 것을 아는지에 대한 고전적인 의심들은 어떤 행동이 정말 전적으로 잘못된 것인가에 대한 훨씬 현대적인 의심들과 혼합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역설적인 관점을 제시하였는데, 지식이 바로 덕이기 때문에 어떠한 누구도 의도적으로 잘못을 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악행은 특별히 심오한 무지(無知)의 일 종에서 나온다고 한 그의 견해는 악덕과 덕행에 관해 지성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고, 선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덕행을 동일시한 시각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이러한 견해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소크라테스가 설명한 '무지' 가 매우 이상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떤 경우에는 명백히 알고 있지만, 자신이 사악한 행동을 하도록 유혹받았을 때 그러한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기에 간헐적으로 안다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철학자들은 동기 유발에 있어서 '감성' 과 같은 비지성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중요한 사항들이 이루어진다는 지적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동의해왔다. 그러나 일부 철학자들은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의 결정 인자로서 "이성과 감성 사이에 경쟁한다"는 주제를 다루기도 하였다. 그들은 이성과 감성이 아주 색다른 요소들이고 단지 행동의 두 가지 가능 원인들이라고 생각하였다.
현대의 일부 정치 이론가들, 특히 공리주의자들은 악행을 질병과 비교할 수 있는 공적인 폐단으로 취급하였으며, 이를 시정하기 위한 사회적 기술 장치의 발견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공리주의적 태도는 비록 이따금 공적 행위에는 유용할지라도, 개인 책임을 완전히 없어지게 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이러한 접근 방식의 부적합성에 대해서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는데, 니체(F. Nietzsche, 1844~1900)와 사르트르(J.-P. Sartre, 1905~1980)는 자유가 단지 존재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들을 창조하고 발견하는 문제라고 하였다.
"악한 행동이 이성(理性)을 거스르는가"라는 질문에 가톨릭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이성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자기의 궁극 목적을 전혀 모르지 않는다. 그는 적어도 암묵적(暗默的)으로나 불분명하게라도 그것을 알기 마련이다. 궁극 목적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고 있는 맹목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인간의 궁극 목적은 하느님과 그분의 영광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궁극 목적에 대해서 알면 하느님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또한 어떤 사람이 바른 이성을 거슬러 윤리적으로 악한 행동을 행할 때, 그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 이성을 거스르는 모순을 범하지 말아 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기 마련이다. 이 절대적 권위의 판단을 인정한다면, 그는 자기에게 내려지는 절대적 요청을 인정하고 암묵적으로 어떤 절대적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을 거스르는 악행이란 있을 수 없다. 참된 선을 거절하고 악한 행동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단지 인간의 부족한 이성과 의지가 무한한 선을 충분하고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 악행도 역시 삼중적(三重的) 해악을 가져온다. 삼중적 해악이란 하느님을 거스르고, 이웃과 인간 공동체를 거스르며, 죄인 자신을 거스르는 것을 말하는데, 사람은 매번 악행을 행할 때마다 이 삼중적 해악을 가져오게 된다. (→ 악 ; 악덕)

※ 참고문헌  K.H. Peschke, 김창훈 역,《그리스도교 윤리학》, 분도 출판사, 1986, pp. 378-4271 M. Midgley, Wickedness, The Encyclopedia of Ethics, Garland, 1992, pp. 1315~1317/ W. Kern, Übel, 《LThK》 10, pp. 430~436. 〔具經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