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 본당

安康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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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월성군 안강읍 양월 4리 1214 소재. 1967년 5월 13일 경주(현 성동) 본당 관할 안강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파티마의 성모. 관할 구역은 경주시 안강읍, 강동면 전 지역. 〔교 세〕 1975년 691명, 1980년 866명, 1985년 1,242명, 1991년 1,671명, 1995년 1,982명, 1999년 1,909명. 〔역대 신부〕초대 이명우(李明雨) 베드로(1967. 5~1969. 1), 2대 이판석(李判石) 요셉(1969. 1~1971. 11), 3대 이재
명(李在命) 바오로(1971. 11~1974. 5), 4대 이대길(李大吉) 시메온(1974. 5~1976. 3), 5대 김광록(金光錄) 베드로(1976. 3~5), 6대 이용길(李庸吉) 요한(1976. 5~1979. 7), 7대 이정우(李庭雨) 알베르토(1979. 7~1982. 2), 8대 이성한(李盛漢) 베르나르도(1982. 2~1986. 1), 9대 이강태(李 康胎) 베드로(1986. 1~1988. 6), 10대 여창환(呂昌煥) 라우렌시오(1988. 6~1990. 6), 11대 박석재(朴錫載) 가롤로(1990. 6~1993. 10), 12대 박수태(朴壽太) 비오(1993. 10~1996. 8), 13대 최환욱(崔桓旭) 베다(1996. 8~1999. 11) , 14대 백명흠(白明欽) 바오로(1999. 11~현재).
1956년 5월경 안강읍 양월 2리(창말)에 사는 이인출이 부산 메리놀 병원의 간호사 이 마르가리타와 만나 신앙을 갖게 되면서 안강읍의 첫 신자가 되었고, 이인출로부터 영향을 받은 8명이 그 해 12월 세례를 받은 데 이어 이듬해 2월에도 5명이 더 영세를 하였다. 이에 경주 본당의 윤광제(尹光濟, 다윗) 신부는 같은 해 5월 안강 5리 389-1번지에 공소 강당을 마련한 후 6월에 안강 공소를 설립하였다. 신자들은 2년 후인 1959년 7월에 양월 5리 1357-18번지에 있는 강당을 매입하여 이곳으로 공소를 이전하였는데, 이 무렵 신자수는 80명 정도였다.
신자수가 꾸준히 증가하자 윤광제 신부는 본당 분할 계획을 세우고, 1960년 봄 현 성당 소재지의 부지 600여 평을 매입하였다. 그 후 1967년 5월 13일 안강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명우 신부는, 그 해 10월 12일 현 성당(343평)을 건립한 데 이어 이듬해 1월 30일에는 기계 공소(1999년에 죽도 본당으로 이관)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69년 1월에는 샛별 유치원을 개원하여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는 데 노력하였다.
1970년대에는 주임 신부의 잦은 이동으로 다소 침체되기도 하였지만 여러 사도직 단체가 주축이 되어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1979년 10월에 도서실을 마련하였고, 1986년 6월 1일에는 경주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청년회와 친선 배구 · 축구 대회를 가졌으며, 이듬해 12월 13일에는 기계 공소에 성모상을 건립하였다. 또 1988년 3월 6일 사제관과 수녀원 신축 기금 마련 바자회를 개최한 데 이어 4월 5일 이 공사에 착수하여 5월에 완공하였다. 이와 더불어 매년 경주 지구의 여러 본당들과 연합하여 체육 대회 및 순교자 현양 대회를 갖고 있다. 13대 주임 최환욱 신부는 체계적인 사목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속적인 본당 발전을 도모하였고, 1999년 11월 14대 주임으로 부임한 백명흠 신부는 '전교하는 공동체' 라는 목표 아래 지역 복음화와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성동 본당)
※ 참고문헌  《경주 성당 예순 돌(1926~1986)》, 천주교 성동 교회, 1986.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