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될 수 없는 병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환자들의 뜻에 따라, 또는 가족 및 다른 보호자들의 원의에 따라 의사들이 개입하여 죽게 하는것. 곧 극도의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또는 정신 질환 및 불치병에 걸린 사람의 생명 연장을 중단시키기 위해 행하는 '안락 살해' (mercy killing)를 의미한다. 그리스어로 '편안한 죽음' (εὐ θάνατος)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현 황〕 현재 미국에는 영구 식물 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들이 1만 명이 넘고, 매년 수천 명의 불구아(不具兒)들이 태어나고 있다. 현대 의학에서 생명을 유지시키는 의술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생명이 점점 연장되고 있는데, 이에 비례하여 불구의 조건을 지닌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드는 의료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판단하여 안락사를 선택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1936년에 영국의 모이니한(B.G.A. Moynihan, 1865~1936)은 "병의 정도가 심하거나 치명적이어서 그 고통을 더 참을 수 없거나 줄일 수 없을 때에는 적극적인 혹은 간접적인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어야 한다" 고 주장하면서 영국 의회에 법안을 제출하였다. 실제로 안락사가 실시되는 나라도 있는데,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 자신이 안락사를 원하면 의사가 이를 행할 수 있도록 법원에서 허락하고 있다. '자발적인 안락사 협회' (Voluntary Euthanasia Society)의 자료에 따르면, 1985년에 약 2,000명의 환자들이 의사의 독극물 주사에 의한 안락사를 신청하였다고 한다. 한편 수많은 회원들로 구성된 '국제 안락사 반대 수행 기구 에서도 안락사를 극력 반대하고 있지만, 이 기구에서도 이미 많은 병원과 양로원 등에서 수행되고 있는 소극적인 안락사 혹은 '죽게 두는 일' (letting die)은 수용의 여지가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분 류〕안락사는 그 생명체의 의사(意思)나 시행자의 행위 방법, 또는 윤리적인 관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생명체의 의사에 따른 분류 : ① 자의적(恣意的)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 : 생명 주체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안락사를 의미하며, 두 가지로 구분된다. 즉 어떤 생명 주체의 명령 · 의뢰 · 신청 등 적극적인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의뢰적 안락사' 와,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나 안락사를 승낙하여 이루어지는 즉 소극적인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승인적 안락사' 이다.
② 임의적(任意的) 안락사(nonvoluntary euthanasia) : 생명 주체가 의사를 표시할 수 없거나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 또는 가능하다 할지라도 외부에서 이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즉 표현되고 있으나 시행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행되는 것을 말한다.
③ 타의적(他意的) 안락사(imvoluntary euthanasia) : 생명 주체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시행하는 것으로, '강제적 안락사' 라고도 한다.
시행자의 행위에 따른 분류 : ① 소극적 안락사(passive euthanasia) : 생명체가 어떤 원인으로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것이 확실할 때, 시행자가 그 진행을 일시적이나마 저지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중병의 기형 신생아를 수술하지 않고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이다. '부작위적(不作爲的) 안락사' 라고도 한다.
② 간접적 안락사(indirective euthanasia) : 어떤 일정한 현실적 변화를 목표로 한 자기의 의도적 행위가 결과적으로 죽음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행하여 죽음이 야기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죽음이 초래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모르핀을 계속 증가하여 사용하는 경우이다. 결과적 안락사' 라고도 한다.
③ 적극적 안락사(active euthanasia) : 행위자가 처음부터 어떤 생명 주체의 죽음을 단축시킬 것을 목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혈관에 공기를 주입하여 공기 전색을 야기시켜 사망하게 하는 경우 등이다. '작위적 안락사 라고도 한다.
생존의 윤리성에 따른 분류 : ① 자비적 안락사(bene-ficient euthanasia) : 인내하기 힘든 격렬한 고통이 진정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 이러한 육체적 고통을 지닌 인간 생명은 무의미한 존재이기 때문에 안락사를 한다는 것이다. 즉 고통을 견디어 내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된 상태에서의 생명이란 무의미하기 때문에, 그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 오히려 자비로운 행위라는 것이다. '반고통사' (反苦痛死, antidythanasia)라고도 한다.
② 존엄적 안락사(euthanasia with dignity) : 비이성적인 인간 생명은 무의미한 생존이기 때문에 안락사를 한다는 것이다. 즉 의식이 없어 정신적인 활동이 전혀 불가능한 '산송장' 으로서의 인간 생존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인격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단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존엄사' (尊嚴死)라고도 한다.
③ 도태적 안락사(selective euthanasia) :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과 일정한 연대성을 가지고 생활하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다. 어떤 생명체가 질병이나 사고로 심신의 상태가 극도로 약화되어 공동체에 큰 부담이 되고 그 희생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경우, 즉 이렇게 공동체에 큰 부담이 되는 생명 주체는 생존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쓸모 없는 존재인 생명 주체의 배제는 공동체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강화하려는 입장에서 나온 이론이다. '도태사' (淘汰死) 또는 '포기적(拋棄的) 안락사' 라고도 한다.
〔논쟁과 윤리〕 찬성 의견 :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한다.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의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며, 이 환자를 위하여 고통을 진정시키는 진통제의 사용 이외에 다른 어떤 치료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그 고통과 비참함을 빨리 종식시킬수록 좋다는 것이다. 사실상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누워 있는 환자는 일을 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도 없으며, 인간으로서어떤 목적도 성취할 수 없는, 실제로 죽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이 불치의 병을 치료하는 데 가족들에게 정신적 ·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주고, 막대한 의료 비용은 그 환자의 가정과 재산을 파탄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환자의 생명을 빨리 단축시키는 것은 자비로운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 의사의 중요한 임무이므로 이것은 비윤리적인 행위가 아닌 것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계속되는 고통과 회복의 가망이 없는 병에 시달릴 때 자신의 생명을 끊는 것은 개인의 기본적 자유이고 자율적인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많이 있는데, 영국에서 1935년에 시작된 '엑시트' (EXIT)라는 협회를 비롯하여 오스트레일리아에 4개, 벨기에에 2개, 인도에 1개가 있다. 그리고 '자발적인 안락사 협회' 는 20개 국가에 30개 이상이 있다. 이 단체들은 활발한 모임들을 갖고 법적으로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도록 많은 로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네덜란드 대법원에서는 1984년부터 죽어 가는 환자가 명확하고 지속적으로 죽음을 요청할 경우, 의사들이 환자에게 독극물을 주사하여 안락사시킬 수 있도록 용인하였으며, 네덜란드 의학 협회에서는 1986년에 안락사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다. 첫째 안락사를 요청하는 환자가 자발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고, 둘째 신중하게 숙고하여 요청하여야 하며, 셋째 '지속적인 죽음의 요청' durable death wish)이 있어야 하고, 넷째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지속되어야 하며, 다섯째 동료들과 충분한 상의가 있어야 한다. 한편 1991년에 네덜란드 정부에서 위촉한 한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매년 9,000명 가량의 환자들이 의사들에게 자발적으로 안락사를 요청하고 있지만 200~300명 정도만 허용되었으며, 연간 400명 정도가 의사들의 도움으로 죽고 있다고 하였다. 또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원에서 환자의 생명을 종식 시키는 행위는 뚜렷하게 명시된 바는 없고, 단지 환자의 심한 통증 치료의 부작용으로 불가피하게 생명이 단축된 경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소생 시술을 중단하든지 아예 하지 않은 경우, 그리고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빠지고 회복될 가능성이 없을 때 적극적인 안락사를 한다고 나타났다. 이 경우 이를 수행한 의사들은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네덜란드의 하원은 2000년 11월 28일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상원의 의결을 남겨 두고는 있으나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므로 곧 시행될 전망이다.
반대 의견 :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의사의 가장 기본적이며 고귀한 임무는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일인데 환자를 도와서 죽게 한다면, 그 결과로 의사 자신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로 변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의미 없고 무가치하다고 생각되는 환자의 안락사를 용인하면, 수많은 비윤리적인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임은 틀림없다. 환자 자신이 고통스럽고, 가족에게 큰 부담을 주고, 사회에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다고 하여 그의 생명을 종식시키는 일이 허용된다면, 이러한 미명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것이다.
이들은 흔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만행을 예로 든다. 1939년 독일 정부는 당시 살가치가 없고 사회에 부담만 준다고 여겨지는 정신병자들, 오랫동안 앓고 있는 노인들을 소멸시키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나치당원 의사들에게 이들을 안락사시키도록 명령하여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이미 27만 5,000명을 죽였다. 그 후 이 대상이 확대되어 사회에 해를 준다고 생각되는 유대인들과 비독일계 민족인 집시 등을 대량 학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설정한 방향에 따라 안락사의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많은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고통 중에 있으며 진통제를 사용해 온 환자가 자기 생명을 끊는 데 있어서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신중하게 숙고하여 결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나타냈다. 또 진통제로 고통을 완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죽음을 꼭 선택하여야만 하는 지속적인 고통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있다. 결과적으로 안락사의 남용과 오류를 막을 충분한 안전 장치가 없고, 현실적으로 안락사의 실시를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입장〕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안락사에 대하여 보수적인 견해와 진보적인 견해가 서로 양립하고 있다.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안락사를 선의의 인도주의보다는 하느님 계명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처리하려고 한다. 하느님만이 인간의 생명을 끝낼 수 있고,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하고 분명한 명령을 받을 때에만 그것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 자체는 삶과 동일하게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이지만, 안락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살해가 축복이라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에 중점을 둔 견해이다. 즉 인간의 인위적인 욕망의 성취가 아니고 하느님의 계명에 복종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비록 안락사가 환자 자신과 그와 함께 고통을 겪는 가족들을 돕기 위해 현대 의학의 기술을 사용하여 효과 있게 고통을 없애는 방법으로 이 세상의 삶을 끝내게 함으로써 그의 정신적 · 육체적 고통을 단축시키는 것이지만, 안락사는 살해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어원적으로는 "부드럽고 고통이 없으며 거의 아름다운 죽음"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살해" (justifiable killing)를 의미하고 있다. 바르트(K. Barth, 1886~1968)는 이러한 견해를 가진 대표적인 학자로, 안락사의 수행에 반대하며 안락사도 인공 유산과 같이 의학 윤리의 특별한 문제로서 한계 상황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안락사를 인간 존엄성의 견지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불치의 병으로 환자가 천천히 추하게 죽어 감으로써 고통당하고 비인간화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하느님은 인간이 행복하기를 원하며, 인간의 행복은 선한 것과 옳은 것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인본주의적이고 인격주의적인 가치 체계를 생물학적 가치 체계보다 우위에 두고 생각하여야 하며, 윤리적으로 우선 고려하여야 할 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지 초월적이고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인간적인 것이 삶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뇌사는 인간의 합리적인 능력이 끝난 것으로 보며, 뇌 기능의 상실은 인간이 죽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극적 또는 간접적 안락사는 윤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안락사도 윤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플레처(J.F. Fletcher, 1905~ )가 대표적인 학자이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가톨릭 교회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하느님 사랑의 선물로 본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생명을 잘 보존하여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존재이다. 또 인간 생명은 신성 불가침의 권리를 지니며, 이 신성 불가침의 생명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적 권리의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죄 없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예외없이 그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고 근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또한 극도의 중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자기 생명을 이끌어 가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 생명은 오직 영원한 생명 안에서 온전한 완성을 찾는 것이지만, 이미 지상에서 결실을 맺어야 할 선으로서 개인에게 맡겨진 것이다. 또 고의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거나 자살하는 것은 살인과 마찬가지로 부당한 일이다. 인간의 편에서 취하는 이러한 행위는 하느님의 주권과 사랑의 계획에 대한 거절로 간주된다.
현대에 이르러 오래 지속되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인하여 죽음을 요청할 수 있고, 안락사를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좋은 일이며 인간 존엄성에 부합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톨릭 교리는 어느 누구와 그 무엇도 무구한 인간 존재-갓 잉태된 태아든 조금 자란 태아든, 어린이든 노인이든,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든 죽어 가는 사람이든-의 살해를 용납할 수 없다고 확고히 천명하였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든 아니면 자기가 돌보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든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살인 행위를 요청할 수 없고, 또 남자든 여자든 명시적으로나 함축적으로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또 어떠한 권위라도 그러한 행위를 합법적으로 권고하거나 용인할 수 없는데, 이는 하느님의 법을 침해하는 문제이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며 생명을 거스르는 범죄요 인간성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권리' 를 말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의 손에 의한 공격일 뿐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손에 의하여 혹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죽음을 획득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적이고 그리스도 교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고통 특히 삶의 최후 순간에 겪는 고통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죽음은 회피할 수 없는 현존인 동시에 불멸의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죽음의 시간을 재촉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책임과 존엄성을 갖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안락사는 용인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언제나 가능한 모든 치료를 계속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는데, 의학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치료를 하고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1957년 11월 24일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의사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생명 보존을 위해서 일반적인 치료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의무이지만, 특수한 치료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일반적인 치료 수단이란 "환자에게 어느 정도 이익을 줄 수 있는 합리적 희망을 제공하고, 동시에 지나친 치료비나 고통이나 다른 큰 불편 없이 제공받을 수 있는 약품 투여와 치료 수술 등"을 말한다. 반면에 특수한 치료 수단이란 "지나친 비용이나 고통이나 다른 큰 불편이 없이는 제공받을 수 없고, 또 제공받는다 하더라도 기대하는 효과를 얻으리라는 합리적인 희망을 제공하지 못하는 모든 약물 투여 · 치료 · 수술 등"을 말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치료 수단과 특수한 치료 수단의 구별을 토대로 교도권은 생명 보존을 위한 치료 의무의 한계를 분명히 설정해 주고 있다. 생명 보존을 위해서 일반적인 치료를 해야 할 의무는 있지만, 특수한 치료를 해야 할 윤리적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 살인 ; 생명 ; 생명권 ; 생명 윤리 ; 자살)
※ 참고문헌 S. Oosthuizen, Euthanasia, Oxford Univ. Press, 1978/ R.M. Veatch, Death, Dying and the Biological Revolution, Yale Univ. Press, 1976/ N. Bernards, Euhhanasia, Greenhaven Press, 1989/ 문국진, 《생명 윤리와 안락사》, 어문각, 1982/ T. Shannon · J. Digiacomo, 황경식 · 김상득 역, 《생의 윤리 학이 란?》, 서광사, 1987/ P. Milmoe · McCarrick, Active Euthanasia and Assisted Suicide, Scope Note 18, Kennedy Institute ofEthics, 1992/ McCormik, To Save or Let Die : The Dilemma ofModern medicine, Jama 229(1974. 7. 8). 〔金重浩〕
안락사
安樂死
〔라 · 영〕euth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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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에서는 안락사를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천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