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스카리오 (801~865)

〔독〕Anschar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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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스카리오 성인.

안스카리오 성인.

성인. 대주교.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의 선교사이자 사도. 브레멘-함부르크(Bremen-Hamburg) 대교구의 초대 교구장. 축일은 2월 3일.
801년 프랑스 코르비(Corbie) 근교에서 태어나 5세 때 어머니의 사망으로 수도원에서 자랐으며, 814년경 베네딕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823년 이후에는 코르베이(Corvey)의 수도원에 파견되어 교사 겸 설교가로 활동했다. 프랑스에 망명 중이던 덴마크의 왕 하랄(Harald Klak,+860)이 개종하자 프랑스의 왕 루트비히 1세(Ludwig IlePieux, 814~840)는 826년에 그를 선교사로 임명하고 하랄을 따라 덴마크로 가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그곳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3년 만에 돌아왔으며, 스웨덴의 사절이 선교사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자 코르베이의 수도자 비트마르(Witmar)와 함께 829년에 스웨덴으로 떠났다. 많은 어려움 끝에 이듬해 항구 도시 비외르괴(Björkö)에 도착하였으나, 루트비히 1세의 귀국 명령을 받고 1년 만에 다시 돌아와 코르베이의 수도원장이 되었다. 832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4세(827~844)에 의해 함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스칸디나비아인들과 슬라브인들에게 선교하라는 임무를 받고 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834년에 루트비히 1세는 안스카리오의 북유럽 선교를 위해 네덜란드의 투른후트(Turnhout) 수도원을 교육 공간이자 재정 지원소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840년에 왕이 사망하면서 카롤링거 왕조가 무너졌고, 그 후 투른후트 수도원도 폐쇄되어 안스카리오는 재정적 기반을 잃고 말았다. 845년에는 바이킹(Viking)의 침입으로 13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해오던 함부르크가 파괴되어 큰 좌절을 겪었고, 848년에는 브레멘 교구와 파괴된 함부르크 교구의 합병으로 브레멘-함부르크 대교구가 창설되면서 교황 니콜라오 1세(858~867)에 의해 초대 대주교로 임명되어 덴마크 · 노르웨이 · 스웨덴 지역에 대한 재치권도 함께 부여받았다. 브레멘에서 다시 북유럽 선교 활동을 지휘하면서 안스카리오는 849년에 덴마크에 갔었고, 852년에는 두 번째 스웨덴 여행을 하였으며, 선교 활동을 계속하다가 865년 2월 3일 브레멘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1344년에 읍살라(Uppsala) 주교좌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의 후임자 렘베르토(Rembertus)가 쓴 《안스카리오의 생애》(Vita Ansacarii)에 그의 삶과 업적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선교 활동〕 덴마크 선교 : 826~829년에 덴마크 왕 하랄을 따라간 그의 첫 선교는 성공적이지 못하였으나, 849년에 덴마크에 정착했을 때에는 하리크 1세 왕으로부터 많은 신임을 얻었다. 당시 덴마크 밖에서 세례를 받았던 상인들과 선원들은 850년부터 덴마크에서도 자유로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슐레스비히(Sch-leswig)와 리베(Ribe)에는 성당이 세워졌다. 왕과 신하들의 호의에 따라 선교 사업의 성패가 좌우되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아무튼 안스카리오는 덴마크 선교의 문을 연 최초의 사람이었다.
스웨덴 선교 : 830년 스웨덴 왕 비외른(Björn)은 프랑크 왕국에 접근하고자 안스카리오를 우호적으로 맞이하였다. 당시 스웨덴에 노예로 끌려온 이들 중에는 신자들도 있었는데, 항구 도시 비르카에서 선교를 시작한 안스카리오는 "이 나라에서 하느님은 이교도들을 부르기 위해 믿음의 문을 열어 놓으셨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또 그에게서 세레를 받은 스웨덴 왕의 고문관 헤르게이르(Hergeir)에게서 선교 사업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지만 852년의 두 번째 스웨덴 여행은 어려운 시기였다. 당시 비르카에서는 선교 사업을 말살하려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으므로 안스카리오는 스웨덴 선교 여행을 단행해야 한다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종교 문제를 다른 회의에서 그의 선교 활동이 허용되고 비르카에 성당이 설립되는 등 안스카리오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됨으로써, 안스카리오는 스웨덴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다.
〔영향 및 공경〕 근대에 이르러 안스카리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는데, 고고학자들은 비르카와 그 이웃 마을 헬괴(Helgö)에서 8~9세기의 그리스도교 전파와 관련된 유물들을 발굴하였다. 10세기에 비르카가 몰락하였기 때문에 안스카리오에 의해 설립된 교회가 지속되었는지는 의심스러우나, 비르카의 그리스도인들은 11세기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었던 시그투나(Sigtuna)로 이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브레멘 지역에서만 안스카리오 성인을 공경해 왔으나, 점차 덴마크의 룬드(Lund)로 전파되었다. 스웨덴의 가장 오래된 교구인 스카라(Skara)에서도 공경을 받았는데, 특히 린뢰핑(Linköping)에서 많은 공경을 받았던 것 같다. 성녀 비르지타 수도회에서는 안스카리오를 수호 성인으로 모셨고, ~20세기에는 안스카리오에게 봉헌된 성당이 비외르쾨 이외에서도 건축되었으며, 현재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의 사도로 공경을 받고 있다. (→ 덴마크 ; 스웨덴)
※ 참고문헌  S.A. Schulz, 《NCE》 1, p. 586/ G. Hocquard, 《Cath》 1,pp. 612-613/EJ. , Biogrphical Dictionary ofChristian Missions, ed. by G.H. Anderson, Macmillan Reference USA, New York, 1998. 〔姜昌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