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동 본당

空港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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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서구 공항동 691 소 재. 1966년 12월 14일 당산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 으며, 주보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관할 구역은 공 항동과 방화1 · 2동 지역. 〔교 세〕 1973년 939명, 1978 년 1,874명, 1982년 2,683명, 1987년 5,747명, 1989 년 6,136명, 1993년 5,766명. 〔역대 신부〕 초대 김철규 (金哲珪) 바르나바(1967. 1~1970. 11), 2대 임응승(林應承) 요한(1970. 11~1974. 5), 3대 박고빈(朴稿斌) 시메온(1974. 5~1978. 8), 4대 김재천(金在千) 요셉(1978. 9~1980. 2), 5대 장덕범(張德範) 바오로(1980. 2~1985. 8), 6대 조학문(曹 學文) 바오로(1985. 8~1990. 8), 7대 배갑진(裵甲鎭) 베드 로(1990. 8~현재). 〔설립과 성장〕 현재의 공항동 지역에는 1955년에 이 미 김포 본당 관할 방화리 공소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1961년 인천교구가 서울교구로부터 분리 독립되고, 1963년 1월 1일 공소가 속해 있는 김포군 양서면이 서 울시로 편입되면서 방화리 공소도 서울대교구 당산동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공소 신자들은 당산동 본 당으로 가서 미사에 참례하였으나 거리상 많은 불편을 겪게 되었고, 그러므로 이전에 매입해 놓은 방화리 24721번지의 부지 400평을 바탕으로 스스로 강당 건립과 본당 승격 운동을 전개해 나가게 되었다. 그 결과 1965 년 미 공군의 브레난(Francis P. Brennan) 군종 신부의 도 움으로 기존의 대지를 매매한 뒤 방화동 734-3번지에 대지 360평을 다시 매입하고, 즉시 성당 건립에 착수하 여 이듬해 2월 6일에는 약 85평의 강당과 약 33평의 사 제관을 완공하는 한편 7월 5일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공소 강당을 건립한 뒤에도 10개월 동안 방화리 공소는 그대로 유지되다가 1966년 12월 14일자로 마침내 본당 승격을 보게 되었다. 당시 이곳 신자는 400명도 채 되지 않았었다. 그 후 제2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임응 승 신부는 김포 공항의 확장 계획으로 본당 이전이 불가 피해지게 되자 1973년 공항동 4-144번지의 대지 330평 을 새로 매입하고 신축 성전 건립 기성회를 조직하여 기 금 마련에 나섰지만, 이 일대 부지가 자연 녹지 규제에 묶여 있던 탓에 본당 신자들은 성전 건립에 많은 어려움 을 겪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87년 3월 15일 현 성당 부 지를 마련하여 기공식을 갖고, 2년 뒤인 1989년 5월 13 일 마침내 대지 719평에 연건평 980평의 신축 성전을 축성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성전 건립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본당 신자들은 신심 · 활동 단체들 을 하나 둘씩 조직해 나가는 한편 전교 활동에도 노력하 여 본당 설립 20년 만인 1987년에는 총 신자수 5,700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리고 1992년 9월 가양동 본당 의 분할로 이 지역이 분리되어 나가면서 현재의 구역이 확정되었다. 한편 본당에는 1978년 12월 인보 성체 수 도회의 분원이 설립되어 동 회 소속의 수녀들이 사목에 협조해 오고 있다. (→ 서울대교구)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