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安息日

〔히〕שַׁבָּת · 〔그〕Σάββατον · 〔라〕sabbatum · 〔영〕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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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 해서 생기지는 않았다" 고 하였다.

예수는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 해서 생기지는 않았다" 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일을 하지 않고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일주일의 일곱째 날로, 야훼 하느님에 의해 거룩하게 된 날.
〔어원과 기원〕 안식일을 가리키는 말로 종교적인 맥락에서만 사용되는 히브리어 명사 "삽바트" (שַׁבָּת)의 어원과 기원은 아직까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보름달〔滿月]을 지칭하는 아카드어 "삽파툼" (sabpattum)과 고대 근동에서 완성의 시간으로 여겨졌던 '일곱' 이란 의미의 아카드어 여성형 "십비팀" (sibbitim)에서 유래하였다는 가설이 있다. 또는 명사 "삽바트"가 '멈추다' · '중지하다' · '쉬다' 라는 의미의 동사 "사바트" (שָׁבַת)에서 유래하였다는 견해도 있지만, 독립적으로 쓰인 용례가 많아 불분명하다. 그 유래가 어떻든, 일주일 제도에 근거한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매우 독특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구약 시대의 안식일〕 고대 근동에서 어느 특정일이나 특정한 해에 일을 하지 않는 관습은 매우 오래된 것이다. 종교사적으로 이는 고대 농경 사회에서 생산력의 신비를 기리며 미래의 수확을 지속시키려는 일종의 금기 관습에서 유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알베르츠(R. Alberz)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바빌론 유배 이전의 이스라엘에서는 일곱째 날을 휴일로 지내는 것과 종교 의식으로 안식일을 지내는 것이 구분되어 있었다고 한다. 즉 각 가정에서 칠일마다 농사일을 하지 않은 까닭은 어떤 종교적 의미에 따라서가 아니라, 다만 고대 관습에 따라 소와 나귀 등 농경에 중요한 가축들을 쉬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출애 23, 12 : 34, 21). 이 경우 집안일은 전혀 금지되지 않았으며, 쉬는 대상에 계집종의 자식과 몸붙여 사는 사람들이 포함된 때는 좀더 후대의 일로 여겨진다(출애 20, 10 ; 신명 5, 14). 반면에 안식일은 종교 절기인 신월(新月) 축제로 성전에서 사제들에 의해 정규적으로 거행되었다고 주장하였다(2열왕 4, 23 : 11, 4-12; 1역대 9, 32 ; 이사 1, 13 ; 호세 2, 13 ; 아모 8. 5). 일반 백성들은 안식일에 신탁을 받았으며(2열왕 4, 23), 상행위가 금지된 이날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아모 8, 5).
안식일의 성격이 분명하게 굳혀진 때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성전 제의가 모두 사라진 유배 시기이다(애가 2, 6). 안식일은 신월 축제나 금기일이 아니라, 계약과 연관되어 칠일마다 거룩한 모임을 갖고 하느님께 바치는 거룩한 날로 지내게 된 것이다(레위 19, 3. 30 ; 23, 3 ;26, 2).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주요한 표지요(에제 20, 12),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충성을 드러내는 날이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요청이 강화되었다(에제 20, 20 ; 44, 24 ; 예레 17, 19-27). 이에 따라 안식일 준수는 한층 엄격하게 규정되었다(느헤 13, 15-22 ; 참조 : 10, 32). 나아가 안식일은 시나이 계약의 표(에제 20, 12. 20)이자 "대대로 세운 징표"이기에 (출애 31, 13) 이날을 지키지 않는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어 반드시 사형에 처해지도록 규정되었다(출애 31, 15 ; 참조 민수 15, 32-36). 안식일 규정은 갈수록 강화되어 경건한 유대인들은 적의 공격을 받고도 안식일에는 일체 방어를 하지 않아 몰살당하거나(1마카2, 32-38 ; 2마카 5, 25-26 ; 6, 11 ; 15, 1-3), 추가 공격을 포기하기까지 하였다(2마카 8, 25-28). 기원전 100년경 쿰란 공동체는 안식일날 1,000큐빗 이상을 걷지 못하게 하는 등 어느 종파보다도 엄격한 규정을 지켰으나, 안식일을 모독하는 이를 사형에 처하지는 않았다(〈다마스커스 문서> 10장 ; 12장 참조).
〔구약성서에 나타난 안식일의 의의〕 구약성서는 안식일을 하느님이 직접 정한 규범이며 선물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창세 2, 2-3 : 출애 16, 22-30). 특히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계약 규범인 십계명에서 안식일 준수를 세 번째 계명으로 규정함으로써 한층 더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구약성서에서 십계명은 두 차례 등장하는데, 안식일 계명은 거의 동일한 표현으로 되어 있지만 계명의 동기 부분이 서로 다르다. 좀더 초기 형태인 신명기의 십계명에서는 이집트의 억압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구속 활동을 기억하며, 일의 고통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로 안식일을 규정하였다(신명 5, 14c-15a). 반면에 출애굽기의 십계명에 덧붙여진 동기는 하느님의 창조를 기억하며 쉼으로서의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이다(출애 20, 11a). 즉 하느님은 6일 간의 창조 활동을 마치고 '일곱째 날' 에 쉬시면서 이날을 '축복' 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다른 6일과 구분된 특별한 날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차원 즉 해방과 창조, 인도적이고 사회적인 차원과 종교적 차원이 계약과 연관되어 안식일에 함께 공유된다.
결국 안식일의 특성은 정규적으로 일을 쉰다거나 이에 따른 금지 규정에 있지 않고, 계약 및 하느님과 연결되어 '하느님께 바쳐진 거룩한 날' , "주님의 안식일" (레위 23,38)이라는 데 있다. 안식일은 결코 법률적이고 의례적이며 부담스러운 제도가 아니라, 하느님이 주는 기쁨을 누리는 날, '야훼께 바친 귀한 날' 이다(이사 58, 13-14 ; 참조 : 56, 2). 안식일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물론, 모든 피조물들이 일을 하지 않고 쉬면서 그분이 선물하시는 자유를 즐기는 날, "시간 속의 지성소"이다. 다시 말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시간 속에서 멈추어 생명을 거저 주신 하느님을 창조주요 구원자로 기억하고 고백하며, 계약의 주님과의 관계를 계속 살아 있게 한다는 표시이다. 하느님 안에서 자신과 다른 존재들의 삶의 의미를 깨닫고 영육으로 새로워지며, 이웃과 함께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궁극적인 안식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신약성서에서의 안식일〕 예수는 안식일마다 정규적으로 회당에 가서 예배를 보았다(루가 4, 16 ; 참조 : 마르 1, 21. 29). 복음서에는 안식일에 관련된 사건 기사가 아홉 가지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 두 가지(예수의 나자렛 회당 설교, 루가 4, 16-20 ; 밀 이삭을 자른 사건, 마르 2, 23-28) 를 제외한 일곱 가지는 안식일에 이루어진 치유 기적 사건들이다. 또 아홉 중 여섯 가지는 안식일 규정을 둘러싼 논쟁 기사이다(마태 12, 1-8=마르 2, 23-28=루가 6, 1-5 : 마태 12, 9-14=마르 3, 1-6=루가 6, 6-11 마르 1, 21-28=루가 4, 31-37 : 루가 13, 10-17 ; 14, 1-6 : 요한 5, 1-18 ; 9, 1-41).
이 기사들을 통해 예수는 사람들이 만든 안식일 규정, 즉 '할라카' (הֲלָכָה)가 오히려 사람들을 억압한다고 비판하였다. 당시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율법의 울타리' 로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로 41가지 항목(총 246 세부 항목)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았었다. 안식일보다 중요시된 할례를 행하거나(요한 7. 22-23), 죽을 위기에 있는 이들을 구원하는 경우만을 예외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쉼과 기쁨과 축복을 주기 위해 창조 때 마련하신 날이 안식일이므로, 이웃 사랑이 금지 규정보다 우선한다고 본연의 의미를 밝혔다. 나아가 예수는 사람의 아들인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 주님이라고 밝힌다(마르 2, 28 ; 마태 12, 8 ; 루가 6, 5). 따라서 그가 안식일에, 임박한 생명의 위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오고 있다는 선언인 동시에 안식일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하느님의 주권의 날임을 밝히는 것이다.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됩니다"(마태12, 12)라는 것이 그의 단호한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안식일을 폐지하지 않았으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존중할 것을 기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도망치는 일이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시오"(마태 24, 20)라고 하였던 것이다.
사도들도 안식일을 지켰음은 분명하다. 바오로 역시 "습관대로" (사도 17, 2 ; 참조 : 24, 14 ; 28, 17)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유대인들의 모임에 참여하여 토론하였다. 이른바 사도 회의(사도 15장)에서도 안식일 준수 여부는 거론되지 않았다.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성찬례가 특정한 날에 행해졌다는 뚜렷한 근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사도 20, 7 ; 1고린 16, 2). 히브리서는 창세기(2, 2)와 시편(95, 7)을 인용하면서 믿은 이들은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신 예수를 통하여, 예수와 함께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고 일러준다(히브 4, 3-11).
〔안식일과 주일〕 그리스도교가 확산되면서 6일은 일하고 하루는 쉬는 일주일 제도가 보편화되었다. 특히 동일한 뿌리를 갖는 유대교 · 그리스도교 · 이슬람교는 주중 하루를 특정한 쉼과 예배의 날로 지키고 있다. 오늘날 이슬람교가 금요일, 유대교는 토요일(정확하게는 금요일 해넘이부터)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는 반면에,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결별하게 된 2세기 중반부터 예수가 부활한 주간의 첫날, 즉 일요일을 '주일' (主日)이라 하여 예배일로 지키고 있다. 다만 안식교 등 극소수 그리스도교계 신종교에서는 안식일에 예배를 거행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든 주일은 안식일을 그대로 계승하거나 대체한 날이 아니다. 주일은 주간을 마감하는 날이 아니라 주간을여는 첫날로서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하신 예수의 부활로 새롭게 열린 새 시대를 기념하는, 말 그대로 '주님의 날'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을 기억하고 그분의 선물에 감사드리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안식일의 정신은 주일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 안식년 ; 주일)
※ 참고문헌  R. North, 《NCE》 12, pp. 778~782/ G.F. Hasel, 《ABD》5, pp. 849~856/ A. Kanof, 《EJ》 14, pp. 557~572/ Rainer Alberz, A History of Israelite Religion in the Old Testament Period, vol I . Ⅱ,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S., The Sabbth in the New Testament, MI, Berrien Springs, 1985/ Roland De Vaux, Ancient Israel : Its Life and Institutions, Darton, Longman & Todd, 1961/ A.J. Heschel, 오만규 역, 《안식일-시간 속의 지성소》, 성광문화사, 1981. 〔李鎔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