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코 (1400~1455)

〔이〕Angel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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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니콜라오 5세 개인 경당에 있는 성 스테파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왼쪽)과 <십자가에서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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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니콜라오 5세 개인 경당에 있는 성 스테파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왼쪽)과 <십자가에서 내림>.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사 신부. 이탈리아의 화가. 초기 르네상스 시대 때 피렌체 양식으로 종교적인 작품을 많이 제작하였다. 세례명은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Pietro)이며, 조반니 다 피에솔레(Giovanni da Fiesole)라고도 한다. 그의 이름이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로 널리 알려진 것은 유명한 시인이자 라틴어 학자인 코렐라의 도미니코(Domenico da Corella) 신부가 그를 '천사 같은' (angelic) 화가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프라' 는 '수도자' 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프라테' (frate)의 약어이다.
〔생 애〕 1400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비키오(Vicchio)에서 태어나 1417년에 형베네데토(Benedetto)와 함께 피렌체의 한 필사본 작업장에서 일했는데, 이때 형은 필사가로, 안젤리코는 채색 화가로 교육을 받았다. 20세 때 피에솔레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신앙심 깊고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으면서, 기도 생활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이때 알젤리코는 조반니 다 피에솔레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1436년부터는 그의 절정기에 속하는 작품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생활하였다. 1445년에는 교황 에우제니오 4세(1431~1447)의 부름을 받고 베드로 대성전의 경당과 바티칸 궁내에 있는 경당 및 니콜라오 5세 교황(1447~145)의 방에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는데, 현재 교황 니콜라오 5세의 개인경당에 있는 성 라우렌시오와 성 스테파노의 일대기를다룬 작품들만 남아 있을 뿐 대부분의 작품들은 파손되었다. 1447년에는 오르비에토(Orvieto) 주교좌 성당의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다.
재능 있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안젤리코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우 청렴한 생활을 했던 그는 당시 교황 니콜라오 5세가 자신을 피렌체의 대주교로 임명하려고 하자, 같은 수도회의 안토니오(Antonius Pierozzi, 1389~1459) 신부를 교황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였다. 1450년 경 피렌체로 돌아가 약 2년 동안 피에솔레 수도원 원장을 역임하였고, 1453년경 다시 로마로 왔다가 이곳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1455년 2월 18일 사망하여 그곳에서 가까운 산타 마리아 델라 미네르바(Santa Maria della Minerva) 성당에 안치되었다. 1960년에 시복되었으며,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그에 대한 공식적인 전례가 승인된 데 이어 1984년에 예술가와 미술가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작품 및 경향〕 안젤리코가 화가로 활동하던 시기는 피렌체에 르네상스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에, 여기에 걸맞게 그의 작품에도 새로운 조형 양식이 도입되었다. 성서와 성인의 이야기를 다룬 교회적인 내용이 주된 주제였으며, 여러 성당과 수도원을 위하여 제단화를 비롯한 많은 종교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형식적인 면에서 일련의 변화를 보였는데, 초기에는 특히 채색 화가로서의 경력이 반영된, 즉 등장인물의 의상 등에 나타난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과 황금색의 사용 등 고딕적인 영향이 특징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인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명암법 · 단축법 · 원근법에 매우 충실했고, 당시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등 르네상스 시기의 새로운 조형 언어에 깊은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젤리코의 초기 작품 가운데 알프스 북쪽의 고덕적인 요소를 알프스 남 쪽의 피렌체 미술에 적절히 조화시킨 좋은 예로는 <십자가에서 내림>(Deposition)과 <주님 탄생 예고>(Annuncia-tion)가 있다.
그의 초기의 장식적인 특징은 1438~1445년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작업한 화가들과 함께 제단화와 벽화 등 50여 점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는 것이다. 색채는 극히 제한되고 구성은 단순해지며 배경 묘사도 일체 사라진 압축적이고 간결한 표현이 주를 이루는데, 이는 수도자들의 명상과 기도를 돕기 위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곳에서 안젤리코는 고심 끝에 건축과 회화를 조화시킨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수도원 북쪽 복도에 그려진 〈주님 탄생 예고>이다. 그는 이 작품을 상대적으로 어두운 곳에 위치 시킴으로써 빛에 의한 효과를 극대화하였으며, 프레임을 그려 넣어 2차원의 벽에 3차원적인 환영을 부여하여 그림이 조각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화면 전면에 가로로 세워져 있는 기둥들은 15세기 이탈리아 회화에서 성모 마리아의 집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고린토 양식의 주두인 반면에, 대각선으로 세워진 기둥은 산 마르코 수도원 건축에 실제로 사용된 이오니아식 주두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천사에 의한 예수 탄생 예고가 이루어진 곳이 성서에 기록된 대로, 나자렛에 있는 마리아의 집인 동시에 수도원이라는 것을 이중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하여 수도자들에게 순명의 자세를 지닐 것을 강조하는 교훈적인 효과를 이끌어 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 시기의 혁신적인 작품으로 산 마르코 성당의 제단화를 들 수 있는데, 이전의 제단화와 달리 황금색의 배경이 아니며 피나클(pinale)이나 게이블(gable)도 없고, 성모의 모습이 특별히 강조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화면 중앙 하단부에 <십자가 처형>(Crucification)을 '그림 속의 그림' 으로 표현함으로써 모순적인 시각 효과를 유도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안젤리코는 표현 방식에 대해 부단히 새로움을 추구한 예술가다운 면모를 나타내었다.
그의 로마 시기 작품은 산 마르코 수도원 시기의 단순함과 소박함에서 벗어나 건축적이고 웅장해졌으며, 구성면에서도 한층 탄탄해진 모습을 선보였다. 종교적인 주제의 전달은 물론, 형식과 공간 탐구에 탁월하였던 안젤리코는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와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Domenico di Michelino)를 제자로 두었으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등 그의 뒤를 따르는 피렌체의 많은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 프라 안젤리코 ; → 가톨릭 미술)
※ 참고문헌  Frederick Hartt, History of Renaissance Art, Thames and Hudson, 1970/ Georges Didi-Huberman, Fra Angelico, trans. by Jane Marie Todd, The Univ. of Chicago Press, 1990/ William Hood, Fra Angelico at San Marco, Yale Univ. Press, 1993. 〔朴性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