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 본당

安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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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북문리 소재. 1930년 9월 30일 영유(永柔)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1950년 6월 폐쇄되었다. 관할구역은 안주군, 박천군, 덕천군, 개천군 일대. 〔교 세〕 1937년 565명. 〔역대 신부〕 초대 바론(E. Barron, 潘) 에 두아르도(1930. 9~1937. 4), 2대 캐롤(G. Carrol, 安) 제오르지오(1937. 4~11), 3대 플룬켓(T. Plunkett, 朴) 토마스(1937. 11~1941. 12), 4대 조인원(趙仁元) 빈천시오(1942.2~1944. 4), 5대 오기선(吳基先) 요셉1944.4~12), 6대 김동철(金東哲) 마르코(1944. 12~1946. 10), 7대 김충무(金忠務) 글레멘스(1946. 10~1948. 9) , 8대 이경호(李京鎬) 안셀모(1948. 9~1950. 6) .
안주 지방에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전해진 것은 1927년 함경북도 나남(羅南) 경찰서에 근무하던 이인근(李仁根, 타데오)이 안주읍으로 전임되어 온 뒤부터였다. 그리고 이듬해 영유 본당에서는 박정걸(朴挺傑, 요셉)과 곽 안나를 전교사로 안주에 파견하였으나, 1900년경부터 프로테스탄트가 이미 이곳에 진출하여 교세를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자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예견한 평양 지목구에서는 1930년 9월 안주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바론 신부를 임명했다. 부임 이듬해 임시 성당 겸 사제관을 신축한 바론 신부는, 1933년에 성당을 완공하고 1934년에는 빈민 가정의 자녀들을 위해 성모학교를 세웠으며, 이듬해에는 성모병원을 개원하는 등 일련의 복지 사업을 통하여 전교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어 부임한 2대 주임 캐롤 신부와 3대 주임 플룬켓 신부 역시 이러한 복지 사업을 더욱 확대함으로써 교세가 크게 신장되었다. 그러나 1942년에 일제에 의한 미국 선교사들의 강제 추방으로 서울교구에서 부임한 4대 주임 조인원 신부는 태평양 전쟁으로 선교 활동에 지장을 받게 되자 신자들의 신심 강화에 역점을 두고 사목하였고, 몇 년 간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성모병원을 폐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 5대 주임으로 부임한 오기선 신부는 부임 즉시 성모학교의 교장직을 겸임하여 운영난 타결을 위해 노력하였고, 6대 주임 김동철 신부 때인 1945년 4월부터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이 본당의 사목을 돕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광복 직후 공산당의 종교 탄압이 극심해져, 1947년에 전교사들이 안주를 떠난 데 이어 같은 해 12월 17일에는 수녀회도 본당에서 철수하였다. 이듬해 9월에는 이경호 신부가 8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는데, 그는공산당의 노골적인 종교 탄압으로 사목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던 중 1950년 6월 24일 정치 보위부 부원에게 연행되어 안주 구치소에 구금되었다가 총살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안주 본당은 신부 공석으로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 침묵의 교회 ; 영유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天主教 平壤教區史 編纂委員會 편, 《天主教平壤教區史》, 분도출판사, 1981/ 《교회와 역사》 298호 (2000.3), 한국교회사연구소.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