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코크, 마르가리타 마리아 (1647~1690)

〔프〕Alacoque, Margarita-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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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코크 성녀에게 발현한 예수 그리스도(왼쪽)와 파레이르모니알에 있는 수녀원의 경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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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코크 성녀에게 발현한 예수 그리스도(왼쪽)와 파레이르모니알에 있는 수녀원의 경당 내부

성녀. 프랑스 파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에 있는 '성모 방문 수녀회' (Ordo Visitationis Beatae Mariae Virginis)수녀. 예수의 발현과 환시를 체험하였고, 예수 성심 신심을 전파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1864년 9월 18일에 시복되었으며, 1920년 5월 13일 교황 베네딕도 15세 (1914~1922)에 의해 시성되었다. 축일은 10월 16일.
알라코크의 생애는 그녀의 지도 신부였던 예수회의 롤랭(I.-F.Rohn)의 지시로 1685년 이후부터 작성된 자서전 에 잘 나타나 있다. 그녀가 작성한 자서전은 1726년 로마에서 갈리페(J. de Galliffet)에 의해 발행되었으며, 1733 년에 리용에서, 1745년에는 낭시에서 각각 개정 · 출판되었다. 연대 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중요한 사료로 평
가된다.
〔생 애〕 1647년 6월 22일 프랑스 샤롤레(Charolais) 지방 베로브르(Verosvre)의 로트쿠르(Lauthecourt)에서 클로드(Claude Alacoque)와 필리베르트 라멩(Philiberte La-myn) 사이의 7남매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토지를 많이 소유한 귀족 가문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신앙심이 깊어 집 근처의 작은 참나무 숲에서 혼자 오랫동안 기도하곤 하였다고 한다. 4세 때 성체 앞에서 기도하면서 일생 동정을 지킬 것을 약속하였지만, 그 해 아버지가 4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친척 들의 도움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그래서 알라코크는 아버지가 사망한 직후 대모 마르게리트(Marguerite de Sainte Amour)의 집인 코르슈발(Corechval) 성으로 보내졌고, 성주이자 대모의 남편인 포트리에르(Claude de Fautrières) 경이 사망한 8세 되던 해까지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상류 가정의 예의 범절과 교양을 배웠다. 그 후 알라코크는 글라라회에서 운영하는 샤롤레의 기숙 학교에서 2년여 동안 생활하였다.
이 기숙 학교에 들어간 이듬해 첫영성체를 받은 알라코크는 글라라회 수녀들의 생활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 완전히 세속을 떠난 생활을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경 계통의 병을 얻어 2년 만에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주면 일생 동안 성모 마리아의 딸로서 자신을 바치겠다고 성모 마리아께 도움을 구하였다고 한다. 이 기도를 바친 후 병이 기적적으로 나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건강이 회복 된 후 알라코크 집안의 재산을 공동 소유한 친척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학대를 받았다. 1669년에 견진성사를 받은 후 수녀회에 입회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1671년 6월 20일 성모 방문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1월 6일 '마르가리타 마리아' 라는 수도명으로 수도 서약을 한 뒤 엄격한 금욕 생활과 기도와 본분에 매우 충실
하였다.
알라코크는 1673~1675년에 예수 성심의 환시를 체험하였는데, 이로 인해 본래 '눈에 뜨이지 않는 것' 을 중 시하던 성모 방문 수녀회 수녀들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구박을 받았다. 알라코크가 예수 성심의 환시를 체험할 당시의 수녀원 원장이었던 소메즈(Mane-Francoise de Sau-maise) 수녀는, 이해심이 깊고 동정심 많은 현명한 지도 자였다. 그러나 다른 수녀들보다 수도 생활에 있어서 돋보이는 알라코크가 체험하는 환시의 참됨을 시험하기 위하여 더 엄격하게 대하였다. 이것은 수도 생활에서 그녀가 참아 받아야 할 커다란 시련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안 배한 십자가였다.
알라코크는 1675년에 파레이르모니알의 예수회 원장 콜롱비에르(Claude de la Colombière, 1641~1682) 신부의 지도를 받으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온 참다운 계시를 받았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도를 받은 지 1년 만에 콜롱비에르 신부는 영국 요크 공비(公妃)의 지도 신부로 임명을 받아 떠났다. 1678년 안시의 성모 방문 수녀회 그레피에(Peronne Rosalie Greyfié) 수녀가 신임 원장으로 부임하였는데, 그는 알라코크에게 매우 엄격하고 냉정하게대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부임할 당시 수녀원 내에서는 알라코크의 환시 체험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였기 때문이다. 탁월한 지도력을 겸비한 그레피에 수녀는 알라코크를 엄격하게 대하며 시험하고자 하였다. 또다시 알라 코크는 몰이해와 부당한 질책을 받는 시련을 견뎌야 했으며, 또 외적으로는 육신의 병과 싸우고 내적으로는 악 마의 유혹과 공격을 받는 영적인 시련을 겪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시련을 예수 성심께 사랑으로써 봉헌할 고통과 희생으로 참아 받으며, 무엇보다도 절대적으로 장상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확신하 고 장상의 명을 거스르지 않았다.
1684년 원장으로 선출된 멀랭(Marie Christine Melin)수녀는 덕과 재능이 출중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으며, 알라코크를 딸처럼 돌보아 주었다. 더욱이 그녀를 신뢰하고 진가를 인정하여 부원장과 수련장직을 맡겼는데, 이러한 이해와 호의적인 관계 때문에 수녀원 안에서 예수 성심 공경이 실행될 수 있게 되었다. 1687년에 부원 장으로 재임된 알라코크는 1690년 10월 17일 사망할 때까지 예수 성심 공경의 신심을 전파하는 사도로서 활 동하였다.
〔예수 성심의 환시와 전파〕 알라코크는 약 2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예수 성심의 환시를 체험하였다. 최초의 환시 체험은 1673년 12월 27일 병실에서 일하던 알라코크가 잠시 시간을 내어 감실 앞에서 기도할 때 이루어 졌다. 영성체 난간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에 몰입해 있던 그녀는 온전히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단지 하느님의 사랑만을 느끼는 상태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환시를 체험 하였다. 그 말씀은 "내 마음은 모든 사람들, 특별히 너를 깊이 사랑한 나머지 더 이상 그 열애의 불길을 내 심중에
품고 있을 수가 없어, 너로 하여금 그것을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이 성심을 드러내게 하고 내가 네게 보여 주려고 하는 이 귀중한 보배가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도록 하려한다. 나는 이 큰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지하고 극 히 무가치한 너를 선택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비로운 '마음의 교환' 이 이어졌는데 "네 마음을 달라" 고 요구하는 예수의 말씀에 알라코크가 승낙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녀의 가슴에서 마음을 상징하는 심장을 꺼내 어 성심 속에 넣었다. 그런 다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가슴에서 심장 모양을 한 불길 같은 것을 꺼내어 그녀의 가슴속에 넣어 주었다. 최초로 체험한 이와 같은 환시가 있은 후 그녀는 언제나 가슴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두 번째 환시 체험은 1674년 봄 어느 금요일에 이루어졌는데, 이때 성심께 대한 신심의 근원이 밝혀졌다. 즉 성심은 참으로 사람을 사랑하셔서 사람이 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유형화한 상징인데 사람들의 배은망덕으 로 상처를 받았다. 성심에 대한 신심은 곧 보답받지 못하는 예수 성심의 사랑의 상처를 갚아 드리는 것이다. 따라 서 이는 필연적으로 보상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는 것 등이었다. 같은 해 6월경에 이루어진 세 번째 환시 체험에 서는 성심의 신비가 한층 더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날 제대 위에 현시된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있던 알라코크는 점차 모든 감각을 잊은 듯 황홀경에 빠져 들었는데, 이때 오상이 태양처럼 빛나며 영광에 둘러싸인 예수 그리스도
가 발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불꽃 가운데 있는 성심을 열어 보이며 상처받은 성심을 위로해 주기 위해 어떻 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지시하였다. 그것은 특별히 첫 번째 금요일에 영성체할 것과, 매주 목요일 밤중에 예 수의 수난을 기억하며 예수와 괴로움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성심의 고독을 위로하고 죄인을 위하여 기도 하면서 구속 사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체험은 1675년 6월 16~20일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이때 예수가 알라코크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씀은 유명하다. "보라! 사람들을 이렇듯 사랑하였고, 그들에게 이렇듯 많은 은혜를 베풀었건만 이 무한한 사랑에 대해 오직 배은망덕만 당하는 이 성심을! 내 성심은 망각 · 무관심 · 무례를 견디고 때로는 특별한 사랑의 유대로써 내 성심과 밀접히 결합된 이들로부터 이 모든 능욕을 당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체 축일 일주일 후 금요일을 성심을 공경하는 축일로 정하고, 그 날 영성체하는 것은 물론 제대 위에 성체를 현시함으로써 성심이 받은 불경을 배상하기 위하여 엄숙히 보상 행위를 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또 예수 성심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경하도록 권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성심을 열어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줄 것을 약속한다고 말씀하였다.
알라코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대로 콜롱비에르 신부에게 자신이 받은 성심의 메시지를 낱낱이 전하였다. 이 후부터 콜롱비에르 신부와 알라코크는 성심을 전파하는 최초의 사도가 되었고, 성모 방문 수녀회에서도 점차 알 라코크의 환시를 예수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신심을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1685년 7월 20일 예수 성심을 기념하 는 공경 예절이 수련소에서 거행되었고, 이듬해에는 예수 성심 신심이 이 수도 공동체의 주요 신심으로 채택되 었다. 또 1688년에는 수녀원 뜰에 예수 성심께 봉헌하는 경당이 설립되었는데, 경당 축성식이 거행되던 9월 7 일 알라코크는 약 2시간 동안 탈혼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신심은 곧 전세계의 성모 방문 수녀회에 전파되 었다. 또한 1689년에 알라코크는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1638~1715)에게 왕궁에 예수 성심께 봉헌된 경당을 설립하고 군기와 무기 등에 예수 성심을 새기도록 청하여 왕의 수락을 얻어내었다. 한편 콜롱비에르 신부는 예 수 성심에 관한 영성서 《영적 묵상》 (Retrait Spiritulle)을 저술하는 등 예수 성심 신심을 널리 전파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는데, 그에 못지않게 이 신심을 널리 전파하는 데 기여한 사람은 예수회의 크루아세 신부였다. 특히 그는 리 용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생들 사이에 예수성심 공경이 전파되도록 노력하였다. (⇦ 마르가리타 마 리아 알라코크 ; → 성시간 ; 예수 성심 ; 예수 성심 대축일 ; 예수 성심 성월 ; 예수 성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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