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중국 선교사. 중국 이름은 애유략(艾儒略) 자(字)는 사급(思及). 1582년 이탈리아의 브레시아(Brecia)a)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에서 자랐으며, 1600년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609년 극동 지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듬해 마카오에 도착한 알레니는, 1611년 스피라(de Spira, 史惟貞) 신부와 함께 중국 선교를 위해 광주(廣州)로 잠입하였으나 관원에게 체포되어 마카오로 돌려보내졌다. 마카오에서 2년 동안 신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613년에 내지(內地) 진입에 성공하여 북경(北京)으로 들어간 알레니는, 그 뒤 서광계(徐光啓)와 함께 상해(上海)로 진출하였으며, 1615년에는 강소성(江蘇省)의 양주(揚州)로 부임하여 1616년까지 활동하였다. 이어 섬서성(陝西省) · 산서성(山西省) 등지로 활동 범위를 넓혔으며, 162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절강성(浙江省)의 항주(杭州)까지 진출하였다. 또 1623년에는 강소성의 상숙(常熟)을 개교(開敎)시켰고, 1625년에는 복건성(福建省)을 전교하기 위하여 복주(福州)로 갔다.
알레니는 복건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하였는데, 이곳에서 그는 복주 · 천주(泉州) · 영춘(永春) 등지에 8개의 성당과 15개의 소성당을 세웠다. 특히 그는 복건의 사대부들로부터 중국의 경사(經史)에 정통하다고 하여 '서양에서 온 공자' [西來孔子]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1638년 박해가 발생하면서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성당은 몰수되었으며, 신자들은 거액의 벌금을 내거나 투옥당하였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알레니는 그곳에 남아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 결과 15년간 복건 총독을 지낸 장 씨(張氏)의 도움으로 교회 재산을 돌려 받고, 예전과 같이 전교 활동도 계속할 수 있었다. 한편 알레니는 1641년부터 중국 예수회의 부관구장(副管區長)으로 임명되어 1648년까지 활동하였다. 그 사이 1647년에 청나라 병사들이 복건에 진입하자, 연평(延平)으로 피신하여 생활하다가 1649년 8월 3일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묘는 복주(福州)의 북문 밖 십자산(十字山)에 있다.
알레니는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신학 · 문학 · 지리 등 다양한 유럽 문화를 소개한 30여 종의 저술을 남겼는데, 그의 저서는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과 일본에도 전해져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가운데 《천주 강생 언행 기략》 天天主降生言行紀略, 1642) , 《척죄정규》(條罪正規, 1628) 《만물진원》(萬物眞源, 1628), 《삼산논학기)(三山論學記, 1625), 《서학범》(西學凡, 1623), 《직방외기》(職方外紀, 1623)는 일찍부터 조선에 전래되어 이익(李濯) 등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세계관을 심어 주었다. 특히 1801년에 체포된 유관검(柳觀儉)이 《서학범》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알레니의 저술이 조선 신자에게도 영향을 주었음을 말한다. 그 밖에 《미사제의》(彌撒祭義, 1629), 《이마두 행실》(利瑪竇行實, 1620), <오십언> (五十言, 1645), 《성체요리》(聖體要理, 1644) , 《곤여도설》(坤輿圖說, 1635), 《구탁일초》(口鐸日抄, 1635), 《기하요법》(幾何要法, 1631), , 《천주 강생 출상 경해》(天主降生出像經解, 1635), 《사자경》(四字經, 1642) 등의 저술이있다. (→ 중국 ; 한역 서학서)
※ 참고문헌 《邪學義》 費賴之, 《入華耶蘇會士列傳》, 商務印書館, 1938/ 徐宗澤, 《明清間耶蘇會士譯著提要〉, 中華書局, 19471 方豪, 《中國天主教士 人物傳》, 光啓出版社, 1970/ 배현숙, <조선에 전래된 천주교 서적>, 《한국 교회사 논문집》 I , 한국 교 구소, 1984/ 강재언, 《조선의 서학사》, 민음사, 1990/ 黃時鑒 主編, 《中西關系史年表》, 浙江人民出版社, 1994. 方方相根]
알레니, 줄리오 (1582~169)
〔이〕Aleni, Giu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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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