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 서북부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공식 명칭은 알바니아 공화국(Republika e Shqipërisë). 북쪽으로는 유고슬라비아,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 남동쪽으로는 그리스와 접경해 있으며, 서쪽은 320km²의 해안이 아드리아 해를 끼고 있다. 면적은 28,748k㎡이고, 인구는 3,293,000명(1997)이며, 수도는 티라너(Tiranë)이다. 공용어는 알바니아어. 국민은 알바니아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들이 소수 존재한다. 알바니아는 1967년부터 모든 종교 활동이 금지되었으나, 1990년에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 전 인구의 70% 이상이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동방 정교회와 가톨릭 신자들은 소수이다.
알바니아인들은 기원전 2000년경 발칸 반도 서쪽 지역에 정착했던 일리리아(Ⅲyria)인의 후손이다. 기원전 4세기에 이르러 일리리아인들은 부족 국가를 이루기 시작하였는데, 기원전 3세기 말부터는 로마 제국의 침략을 받기 시작하여, 기원전 167년에는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395년 행정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의 지배를 받았으며, 3~7세기 동안에는 서고트족 · 훈족 · 슬라브족의 침략을 받았다. 1344년 알바니아는 세르비아에 합병되었지만 1389년 세르비아가 오스만 제국에게 패함으로써 알바니아 전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하였고, 이듬해 전쟁이 끝난 뒤 알바니아는 독립국으로 승인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알바니아는 그리스, 세르비아,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차례로 점령당하였다. 종전과 함께 알바니아에 있던 열강들이 일단 철수하자 1920년 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수도를 티라너로 옮겼다. 1939년 이탈리아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1943~1944년 내란 끝에 알바니아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1944년에 권력을 장악한 호자(E. Hoxha, 1908~1985)는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정책을 펼쳤는데, 이러한 정책은 1985년 그가 사망한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노동자들의 반정부 시위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점진적인 개혁이 시도되었고, 1992년 총선을 통해서 공산 정권이 무너졌다. 그러나 2000년 현재 알바니아는 국 · 내외적인 분쟁으로 인하여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복음의 역사〕 알바니아에는 교부 시대에 로마와 그리스로부터 그리스도교가 전해졌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착되고 전파되었는지에 관한 기록들은 없다. 600년경 슬라브족의 침략으로 교계 제도는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그들이 목동 생활을 하던 산간 지역으로 다시 이주하였다. 남부 알바니아 지역과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사는 알바니아인들 사이에서는 비잔틴 전례가, 북알바니아 지역에서는 라틴 전례가 우세하였다. 선교는 거의 작은 형제회(O.F.M.)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1089년에는 바르(Bar) 대교구가 설립되었고, 북알바니아 교구들은 모두 바르 대교구의 관할이 되었다. 13세기에는 디르하치움(Dyrrhacium) 대교구가 설립되었다. 15세기에 이르러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자 북부 지역의 가톨릭 신자와 지주, 남부 알바니아 지역의 지배 계급과 평민들은 상당수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그 결과 알바니아는 점차 이슬람 국가가 되었으며, 많은 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이탈리아 · 시칠리아 · 그리스 등 남부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종교적 변화 속에서도 많은 이들은 세례 · 성인 공경 · 성지 순례 등 가톨릭적 전통을 유지하며 가톨릭 신자로 남아 있었고, 알바니아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적 전통이 공존하는 종교 형태를 보여 주었다. 특히 알바니아 출신이었던 교황 글레멘스 11세(Clemens , 1700~1721) 는 알바니아의 가톨릭 신자들을 돕고자 노력하였다. 그가 신학교를 설립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실행되지 않았고, 1856년 이탈리아 예수회가 슈코더르(Shkodër)에 교황청립 대학을 설립하면서 실현되었다. 1910년대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서는 이슬람교의 교세가 일시 감소되기도 하였다.
1945년부터 알바니아 공산당은 가톨릭이 이탈리아에 협조한다는 구실로 가톨릭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였는데, 모든 이탈리아 선교사들을 수감하거나 일부를 추방하였다. 탄압은 자국인 성직자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학교 · 신학교에도 영향을 미쳐 2명의 알바니아인 주교가 사형에 처해졌고, 다른 이들은 수감되었다. 1945년 당시 전 인구의 68%는 이슬람교 신자였고, 19%는 동방 교회 신자였으며, 13%가 가톨릭 신자였다. 1951년 성직자는 국가법과의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며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1964년 알바니아에는 3명의 가톨릭 주교가 거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7년 정부는 모든 종교를 억압하고 알바니아를 무종교 국가로 선언하였다. 그 결과 가톨릭에서 운영하던 학교와 교회는 폐쇄된 뒤 극장으로 사용되었고, 교황청과의 연락망은 모두 단절되었다. 그러나 1990년 사회 개혁 정책의 시행과 더불어 다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이듬해 말 알바니아 수상의 요청으로 교황청과의 외교 관계가 수립되었다.
1992년 10월 오랫동안 공석 중이던 교구들에 4명의 주교가 임명되었으며, 1994년 11월에는 알바니아인 추기경이 탄생되었다. 1997년 초 다단계 판매 사업으로 돈을 잃은 수천 명의 알바니아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남알바니아에서는 교회와 이슬람 사원들이 파괴되고 약탈당하였다. 알바니아 내 소수의 가톨릭 신자들은 교육과 보건 사업 등을 전개하며 사회에서 존경받고 있다.
1996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634,000명이며, 대교구2, 교구 4, 본당 132개에 대주교 2, 주교 4, 사제 97(교구소속 29, 수도회 소속 68), 수사 13, 수녀 277명이다. (→ 동방 교회 )
※ 참고문헌 M. Lacko, 《NCE》 1, pp. 246~247/ 《EB》 1, PP. 505~512b/ 2000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p.307~308/ Annuario Pontificio 1998, Citttà del Vaticano, 1998/ 《EU》 Les Chiffres du Monde, pp. 83~84. 〔金善美〕
알바니아
〔영〕Republic of Albania
글자 크기
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