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주교. 도미니코 수도회 회원. 신학자. 교회 학자. 자연 과학자. 철학자. 자연 과학자들의 수호 성인. 축일은 11월 15일.
〔생애와 저서〕 1200년 남부 독일 슈바벤(Schwaben)지방에 있는 도나우 강가의 소도시 라우인겐(Lauingen)에서 그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223년 이탈리아 파도바(Padova)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던 시기에, 당시 도미니코회 총장이었던 작센의 요르다노(Jordanus vonSachsen, ?~1237)를 통해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쾰른(Köln)에서 수련 기간을 보내고 신학을 전공한 알베르토는 1220년 말 할데스하임(Hildesheim)을 비롯하여 프라이부르크(Freiburg) ,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그리고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강의하였다.
1243년 혹은 1244년에 파리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획득하여 1245년부터 그 대학의 교수로 강의하였다. 이 시기 그의 제자로는 훗날 위대한 신학자가 된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있었다. 1248년 도미니코회는 쾰른에 '수도회 대학' (Studium Generale)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에 알베르토를 임명하였다. 1248년까지 알베르토는 여러 수도회 대학과 파리 대학에서 성서와 베드로 롬바르두스(Petus Lombardus, 1095~1160)의 《명제집》(Libri Sen- tentiarum)을 강의하면서 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당시 신학자로서 그의 면모는 그 시기에 저술한 《선의 본성》(De natura boni) · 《피조물 대전》(Summa de creaturis) ·《명제집 주해》(Sentenzen-Kommmentar)에 잘 나타나 있다. 쾰른의 도미니코회 대학 학장을 역임하던 1249년에, 그는 《위 디오니시오 전집》(Corpus Dionysicum)을 교재로 강의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강의의 내용을 신학에서 철학으로 전환하였다. 이듬해에는 같은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83~322/321)의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을 주해하면서 강의하였다. 알베르토는 이 강의와 병행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Aristotelicum)을 체계적으로 주석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호하고 끈질기게 그 일을 수행하였다.
그는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과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로 잘못 알려져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위서(僞書)들' 까지 주석하였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자연학》(Physica, 1251) · 《천체학》(De caelo, 1251 이후) · 《발생론》(De generatione, 1251 이후) · 《기상론》(氣象論 Meteora, 1251 이후) · <원소의 특징들에 대한 원인론》(De causis proprietarum elementorum, 1251 이후) · 《영혼론》(De anima, 1254~1257) · 《소자연론》(Parva naturalia, 1258~1263) · 《식물론》(De vegetabilibus, 1258~1263) · 《광물학》(Mineralia, 1258~1263) · 《동물학》(De animalibus, 1258~1263) · 《영혼의 본성과 기원론》(De natura et origine animae,1263 이후) · 《기하학》(幾何學, Geometria, 1263 이후) · 《윤리학》(Ethica, 1263 이후) · 《정치학》(Politica, 1263 이후) ·<형이상학>(Mataphysica 1263 이후) 등을 주석하였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서인 《원인론》(Liber de causis)에 대한 주석서 《우주의 원인과 발생 과정론》(De causis etprocessu universi, 1268)을 저술하였다. 알베르토는 쾰른의 도미니코 수도회 대학 철학과 교수로서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시의 철학 전공을 위한 체계적인 자료인 주해서(註釋書)를 학생과 교수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당시 이와 같은 그의 왕성한 학문 활동은, 신학 교수란 그때마다 새로이 출간되는 학술 서적을 잘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철학에 대해서는 철학자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자연학에 대해서는 자연학자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조를 확고히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알베르토는 한때 도미니코회 독일 관구의 관구장직을 맡고 있었으며(1254~1257), 레겐스부르크의 주교(1260~1261)를 역임하였다. 또한 교황 우르바노 4세(1261~1264)의 위촉을 받아 십자군 독려를 위한 설교가로도 활동하였다(1263~1264). 그 후 쾰른으로 돌아가 제자들을 가르치며 저술 활동에 전념하였던 그는, 1280년 11월 15일 쾰른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80세로 사망하였다. 그는 현재 쾰른의 성 안드레아 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당시 모든 학문 분야를 섭렵한 학자였던 그는, '보편적 박사' 普遍的 博士, Doctor universalis)라고 불렸으며, 그의 학문 규모가 방대하다고 하여 그의 이름에 '위대한' 또는 '큰' [大]이라는 의미의 "마뉴스" (Magnus)라는 칭호가 붙여지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대 알베르토" 라고도 불린다. 1931년에 시성되었다.
〔사 상〕 형이상학 : 알베르토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수용하고 있다. 그는 《형이상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최종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저서가 아니라, 신학 즉 《원인론》이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마지막을 장식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신플라톤주의(Neuplatonismus)에서 유래하는 《원인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알베르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제1 원인' (第一原因) 또는 '제1 원리' (第一原理)를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이 말한 '선' (善)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제1원리' 또는 '제1 원인' 의 역할은 모든 사물에 작용하는 '인력' (引力)으로 질료 속에 들어 있는 형상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어 들여 형상들을 한곳에 모아 '하나' 로 통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 은 "자기 자신과 존재를 확산하는 것" (diffusivum sui etesse)이다. 또한 선은 그 '선의 인력' 으로 모든 사물을 자기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최고 원리(《형이상학》 12)는 단순히 '제1 동자' (第一動者, rimummovens)만이 아니라, 동시에 '제1 산출자' (primum agens)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최고 원리는 모든 사물을 산출하고 또한 모든 사물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어 들이는 원리이다. 그는 이러한 그의 해석을 《우주의 원인과 발생 과정론》에서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저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을 재구성해 내고 있다. 알베르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存在者로서의 存在者에 대한 학문)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 (存在者의 원인에 대한 학문)을 종합하여 하나의 형이상학 체계를 형성해 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알베르토의 작업은 중세의 철학과 신학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윤리학 : 알베르토의 윤리관은 '획득 이성' (intellectus adeptus)을 축으로 체계를 이루고 있다. '획득 이성' 이란, 인간의 영혼이 물질과 "분리된 능동 이성" (intellecus agens separatus)을 얻어낼 때 생겨나는 상태이다. 즉 '능동 이성' 이 '획득된 이성' 속에서 '영혼의 형상' 이 될 때 생겨나는 일치 상태이다. 알베르토는 이러한 '일치' 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0권에서 서술하고 있는 '명상적 삶 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것은 철학자들이 갈망하고 있는 "삶의 최고 목표" 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저 세상에서 비로소 '획득'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서 '획득'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철학적 명상에서 오는 '이성적 지복' 속에서, '이론' 즉 형이상학과 '실천' 인 윤리가 하나가 된다.
〔의의와 영향〕 알베르토의 사상은 다음과 같은 특징과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알베르토는 그리스도교 문화권인 서방 세계에 그리스 문화권의 철학과 이슬람 문화권의 자연 과학과 철학을 대폭적으로 수용하여 그것들과 대결하기 시작한 선구자이다. 둘째, 이러한 수용과 대결의 과정 속에서 알베르토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 의 경향을 지녔다. 이는 그가 오랜 세월을 두고 주석하였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에 대한 주석을 신플라톤주의 계통의 저서인 《원인론》에 대한 주석으로 보충하여 마무리 짓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셋째, 알베르토에 의한 이러한 신플라톤주의 경향은, '중세의 독일 철학' 또는 '독일 신비주의' 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알베르토로부터 시작되어 울리히(Ulichvon Straßburg, 1248/1254-1277/1278) · 디트리히(Dietrich vonFreiberg, 1250~1310) · 에카르트(Meister Eckhart, 1260~1329)를 거쳐 베르톨트(Berthold von Moosburg, 1318~1361)에 이르는 '중세의 독일 철학' 내지는 '독일 신비주의'에 그 출발점을 제공하고 있다. (→ 독일 신비주의 ; 스콜라학: 신플라톤주의)
※ 참고문헌 P. Jammy ed., Alberti Magni Opera omnia, Bde. 21, Lyon, 1651/ A. Borgnet · E. Borgnet eds., Alberti Magni Opera ommia, Bde. 38, Paris, 1890~1899/ Alberti Magni Opera omnia edenda curavit Institutum Alberti Magmi Coloniense Bernhardo Geyer praeside, Miinster, Aschendorff, 1951(비판본, 현재 31권이 출간됨)/ M.J.F.M. Hoenen · A.de Libera Hrsg., Albertus Magnus und Albertismus, Deutsche philoso- phische Kultur des Mittelalers, Studien und Texte Zur Geistes-geschichte des Mittelalters XLVIII, Leiden, Brill, 1995/ A. de Libera, Albert le Grand et la Philosophie, Paris, Vrin, 1990/ -, La Mystique Rhenane. D'Albert le Grand a Maître Eckhart, Paris, Édition du Seuil, 1994/ J.A. Weisheipl, Albertus Magmus and Sciences, Commemorative Essays, 1980 ; Toronto, Ont., Pontifical Institute of Mediaeval Studies, 1980/ A. Zimmermann, Albert der GroBe. Seine Zeit, Sein Werk, Seine Wirkung, 《MM》 14, Berlin, de Gruyter, 1981. 〔鄭達龍〕
알베르토 (1200~1280)
〔라〕Alber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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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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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성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