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북서부 지역에 위치한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공식 명칭은 알제리 민주 인민 공화국( el Djemhourîya el Djazaïrîya ed Dîmôqratîya ech Cha‘bîya). 동쪽은 튀니지와 리비아, 남동쪽은 니제르, 남서쪽은 말리와 모리타니, 북서쪽은 모로코와 접경해 있으며, 북쪽은 지중해와 연해있다. 면적은 ,381,741k㎡이고, 인구는 29,476,000명(1997)이며, 수도는 알제(Alger)이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며, 프랑스어 · 베르베르어 등도 사용된다. 원주민은 베르베르인이나 아랍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 외 다수의 소수 민족이 있다. 전 국민의 99%가 무슬림인 이슬람교의 나라이지만,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제한을 가하지는 않는다.
기원전 20만 년 전부터 알제리에는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1000년부터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2세기부터는 로마의 지배를 받아 로마령의 일부가 되었으며, 5세기에 로마가 멸망하자 반달족, 그리고 뒤를 이어 비잔틴의 침입을 받았다. 7세기 중엽부터는 무슬림의 침입이 시작되었다. 베르베르인은 여기에 저항하였으나 무슬림으로 개종한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해 주었으므로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고, 점차 아라비아어와 이슬람 문화의 침투로 문화의 혼혈 현상이 나타났다. 16세기 초 스페인이 북아프리카에 침입하자 아프리카인들은 오스만 제국에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오스만 제국군은 스페인을 격퇴한 다음 현지에 남아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오스만 제국의 속령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 오스만 제국 총독의 지배 영역 때문에 연안부에 오늘날의 국경이 정해졌으며 알제리 국가의 틀이 형성되었다. 1830년 프랑스는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해적을 제압하고, 자국 상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알제리를 점령하였다. 1847년까지 프랑스군은 대부분의 저항 운동을 진압하였으나, 1954~1955년 알제리 독립 운동은 절정에 달하였다. 1962년 3월 에비앙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7년 반 동안의 독립 전쟁이 종식되었고, 같은 해 7월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1965년 설립된 군사 정부는 1978년까지 유지되었으며, 1988년 정부의 부정 부패로 반정부 운동이 격화되자 1991년에는 첫 자유 총선을 실시하였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군부는 이를 막고 정권을 장악하였는데, 이로 인해 1995년 내전에 돌입하였으며 2000년 현재까지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복음의 역사〕 4세기 말 알제리의 안나바(Amaba) 근처에 있던 히포(Hippo)에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는 주교로 활동하였다. 로마 멸망 후 비잔틴이 침입함에 따라 그리스도교의 세력은 점차 커졌으나, 각 부족들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709년 이슬람족의 침입 이후에는 점차 이슬람교를 수용하였다. 1076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Ⅶ, 1073~1085)는 히포에 주교를 임명하였으며 1150년까지 알제리 교회는 로마 교회와의 연관 속에서 지속되었다. 또한 당시 스페인 선교회는 해안을 따라 거주하고 있던 그리스도인 포로 · 상인 · 병사들을 보호하였다. 16세기 초 알제리에는 소수의 신자만이 존재하였으나 1580년 삼위 일체 수도회(O.SS.T.), 1646년 선교 수도회(C.M.)가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신자수가 증가하였다. 그 결과 1650년에는 알제리 대목구가 설립되었다. 1838년 프랑스 통치하에서 알제 교구가 설립되었는데, 이 교구는 프랑스에서 이주해 온 신자들을 돌보는 데 주력했다. 1866년 알제 교구는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1868년 라비즈리(Lavigerie,1825~1892)는 백의의 선교사회(White Fathers)와 백의의 자매회(White Sister)를 창설하여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관할 교구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또한 1885년 라비즈리는 카르타고(Cathage) 대주교와 아프리카의 수석 대주교로 임명되어 거의 아프리카 전역을 관할하였다. 그러나 1892년 라비즈리 추기경이 사망하자 사하라와 수단 대목구는 알제 관할로부터 분리되었고, 1901년에는 가르다이아(Ghardaïa) 지목구가 되었다. 그리고 1948년에 대목구로 승격되었으며, 1955년 가르다아 대목구는 면속의 라구아트(Laghouat) 교구가 되었다.
1996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3,000명이고, 대교구 1, 교구 3, 본당 37개에, 대주교 2, 주교 2, 사제 104(교구소속 43, 수도회 소속 61), 수사 13, 수녀 177명이다.(→ 라비즈리, 샤를르 마르시알 알르망)
※ 참고문헌 J. Cuoq, 《NCE》 1, pp. 316~317/ 1, pp. 620~628/ 2000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08/ Annuario Pontificio 1998, Città del Vaticano, 1998/ 《EU》 Les Chiffres du Monde, pp. 85~87. 〔편찬실〕
알제리
〔영〕Democratic and People's Requblic of Alg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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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