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 본당

岩寺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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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동구 암사1동 47910 소재. 1981년 1월 6일 천호동(千戶洞) 본당 관할 공 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사도들의 모후.관할 구역은 암사1 ~4동 전 지역과 명일동 일부 지역.〔교 세〕 1981년 1,386명, 1986년 7,502명, 1992년 8,403명, 1996년 6,675명, 1999년 7,028명. 〔역대 신부〕 초대 로박(C. Robak, 차일봉) 가롤로(1981. 1~1987.2), 2대 경갑실(景甲實) 사도 요한(1987. 2~1989. 10), 3대 이 기명(李起明) 프란치스코(1989. 10~1992. 9), 4대 김웅태 (金雄泰) 요셉(1992. 9~1996. 2), 5대 김형식(金亨植) 베 드로(1996. 2~현재). 1970년대 말 암사동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신자들이 입주하면서 신자수가 크게 증가하자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천호동 본당의 김병일(金秉鎰, 요셉) 신 부는 본당을 분할하기로 결정하고 1980년 3월부터 성당 건립 기금을 모금하였다. 그 결과 같은해 11월 2일 암사 동 공소가 설립되어 당시 암사동 446-16번지의 유신 상 가 3층(59평)을 임대해서 공소 강당으로 사용하였다. 그 리고 12월부터는 자체적으로 주일학교를 운영하기 시작 하였다. 그리고 12월 8일 메리놀 외방전교회에서 이 지 역 사목을 맡게 되었으며, 서울대교구에서는 1981년 1 월 6일자로 암사동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초대 주 임으로 로박 신부를 임명하였다. 설립 당시 천호동 본당 에서 478세대 1,376명의 교적을 이관받았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로박 신부는 본당의 기틀을 마 련하는 데 주력하여 이듬해 3월 5일 현 성당 소재지의 부지 507평을 매입하였고, 1983년 3월 5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2월 23일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의 성당(720평)을 완공하였다. 암사동 본당은 교세가 급 속히 신장되어 설립 5년 만에 신자수가 5배나 증가하였 다. 이에 따라 1986년 2월 21일 고덕동(高德洞) 본당이 설립되어 216세대 542명의 교적을 이관하였고, 이듬해 8월 19일에는 명일동(明逸洞) 본당을 분리하고 고덕동 일대 신자 1,365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1988년 3월 부터 10월까지 신자 재교육의 일환으로 신앙 대학을 개 설하였으며, 이듬해에는 매월 마지막 주일을 가정 주일 로 정하고 가족이 함께 한복을 입고 미사에 참석하도록 하였다. 교리실 확충의 필요성을 느껴 그 해 3월 성당 맞 은편 건물 두 채를 매입하였는데, 현재 이 건물은 수녀원 과 교육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3대 주임 이기명 신부는 부임과 동시에 전례의 토착화 와 신앙의 내실화를 꾀하고 조직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어 4대 주임 김웅태 신부는 1995년 4 월부터 환경 보존 운동의 일환으로 환경 학교를 개설하 고 폐지와 폐유를 정기적으로 수거하였으며, 농산물 직 거래장을 마련하였다. 5대 주임 김형식 신부는 대희년을 맞이하여 성체성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성체 신심을 앙양 하기 위하여 2000년 5월 21일 경기도 곤지암에서 "피 리를 불고 춤을 추자" 는 주제로 대희년 맞이 성체 대회를 거행하였는데, 3,000여 명의 신자가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 서울대교구 ; 천호동 본당)

※ 참고문헌  천호동 본당 40년사 편찬위원회 편, 《천호동 본당 40년사》, 천주교 천호동 교회, 1999/ 《평협 회보》31호(1984. 2).〔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