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본당

押謳亭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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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76 소 재. 1979년 5월 31일 청담동(清潭洞) 본당 관할 공소에 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 은 신사동, 압구정동 일부 지역. 〔교 세〕 1979년 951명, 1984년 5,324명, 1989년 10,347명, 1994년 9,965 명, 1999년 3,585명. 〔역대 신부〕초대 박신언(朴信彥) 라파엘(1979. 5~1982. 8), 2대 최석호(崔奭浩) 바오로 (1982. 8~1987. 8), 3대 김득권(金得權) 굴리엘모(1987. 8~ 1992. 9), 4대 나원균(羅元均) 바오로(1992. 9~1997. 9), 5 대 이종남(李鍾男) 라이문도(1997. 9~1999. 3), 6대 이기 락(李基洛) 타데오(1999. 3~현재). 압구정동 본당 관할 지역은 본래 전형적인 농업 위주 의 마을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매립 공사가 시작 되면서 이 지역은 점차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1975년 말 현대 아파트가 완공되자 신자수도 증가하였다. 이에 청담동 본당 신자들은 1978년 3월 '공소 설립 발기인 회합' 을 갖고 압구정 공소의 설립을 논의하였고, 4월 현 대 아파트 상가 태평 증권 건물 1층에 임시 공소를 마련 하였다. 그러나 공소 건물이 평일에는 증권 회사로 사용 되어 불편함이 많았으므로, 그 해 6월 신자들은 압구정 동 253-2번지 소재의 건물 3층으로 공소 건물을 이전하 였다. 이듬해 초부터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 녀 2명이 파견되어 공소 사목을 도왔고, 신자들도 다양 한 신심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공소 활동이 활성 화되자 공소 신자들을 중심으로 본당 승격 운동이 본격 화되어, 5월에는 임시 사제관을 마련하였다. 또한 서울 대교구도 서울의 중심지로서 강남 지역이 발전함에 따라 교세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여 본당을 설립 하기로 결정하였고, 이에 그 해 5월 압구정 공소는 본당 으로 승격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신언 신부는 공소 건물을 성 당으로 사용하면서, 신자들의 신심 함양에 큰 관심을 기 울였다. 그 결과 성모회와 레지오 마리애 등의 활동이 활 발하게 이루어졌으며, 1979년 7월에는 〈압구정 본당 주 보>를 발간하게 되었다. 사목 활동을 통하여 본당이 안 정되고 신자수가 증가하자, 그 해 12월 사목 협의회에서 는 성당 건립을 논의하게 되었다. 1980년 1월 현 성당 소재지의 부지 600평을 매입하였으며, 10월에는 150평 의 부지를 추가 매입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7월 공사를 시작하여 1982년 6월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성당 (1,070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석호 신부는 1983년 3월부터 '성 바 오로 딸 수도회' 수녀들과 수요일마다 선교 활동을 전개 하였으며, 같은 해 7월 옛 성당을 매각하였고, 1985년 2월에는 121평의 부지를 다시 매입하였다. 또한 이듬해 3월에는 본당 소식지 <솔뫼>를 창간하였으며, 1987년 2 월에는 '파트리치안회' 라는 대화식 교리 공부 모임을 조 직하여 신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4대 주임으로 부임 한 나원균 신부는 1993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성당의 대대적인 개축 공사를 실시하였다.
1999년 3월에는 교구 사목 방침에 따라 압구정2동 본 당을 분리하면서 969세대 3,000명의 교적을 이관하였 고, 동시에 논현2동(論峴二洞, 현 학동) 본당으로 925세대 2,700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두 본당으로의 분리로 인하여 신자수가 급격히 감소한 압구정동 본당은 내실화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청담동 본당)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압구정 본당 10년사》, 천주교 압구정 교회, 1989.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