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

〔영〕People's Republic of Angola

글자 크기
8

아프리카 남서부 해안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로, 공식 명칭은 앙골라 인민 공화국(República popular de Angola) .북쪽과 동쪽은 자이르, 남동쪽은 잠비아, 남쪽은 나미비 아와 접경해 있으며, 서쪽은 대서양과 연해 있다. 앙골라 해안 지대 최북단의 카빈다 지역은 자이르의 영토인 좁 은 회랑 지대에 의해 앙골라 본토와 분리되어 있고, 북쪽 으로는 콩고와 접해 있다. 면적은 1,246,700k㎡이고, 인구는 10,624,00명((997)이며, 수도는 루안다(Luanda)이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지만 많은 토착어와 방 언이 사용된다. 주민의 대부분은 반투어족에 속하며, 그 밖에 콩고족 · 루임베족 등이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리스도인이며, 나머지는 전통 신앙을 신봉한다. 1000년경까지 지금의 앙골라 주민인 반투어계 여러 부족이 이 지방에 진출해 있었다. 반투어계의 여러 부족 은 철기를 사용하는 농경 민족이었는데, 앙골라 내륙의 고원 지대에 할거함으로써 원주민을 흡수하고 이 지역에 철기 문화와 농작물 재배법을 퍼뜨렸다. 앙골라에서 반 투족이 세운 왕국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콩고 왕국이었 고, 콩고 왕국 남쪽에는 음분두족의 은동고 왕국이 있었 는데, 앙골라라는 이름은 이 왕국의 왕위를 뜻하는 '응 골라' 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1483년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서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고자 했던 포르투갈인들이 앙골라 해안까지 도달하였다. 1575년 루안다 항에 식민 지가 건설되기 시작하고, 노예 무역이 시작되자 앙골라 는 노예 수출의 중심지가 되었다. 노예 무역에는 네덜란드 · 영국 · 프랑스 등도 참여하였고 수백만 명의 앙골라 주민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 갔다. 19세기 말 유럽 열강에 의한 아프리카 분할로 인하여 앙골라 지역은 포 르투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내륙 지 배를 강화하고 식민지 경영을 추진하였으나, 1930년까 지 식민 통치에 반대하는 무장 저항 운동이 계속되었다.1951년 '해외 영토 조직 헌장' 에 따라 앙골라는 포르투 갈의 일부인 해외 주(海外州)가 되었고, 포르투갈의 중 앙 집권적 지배는 더욱 가혹해졌다. 1950년대 들어 앙 골라의 민족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해 방 운동은 '앙골라 해방 인민 운동' (MPLA), '앙골라 해 방 민족 전선' (FNLA), '앙골라 전면 독립 민족 동맹'(UNITA)으로 분열되었다. 1960~1970년대에 독립 투 쟁은 절정에 달하였으며, 1975년 마침내 포르투갈은 앙 골라에서 철수하였다. 그러나 앙골라는 곧 각 분파간의 싸움으로 내란이 발생하여, 해방 조직들은 구체적인 교 섭에 들어갔으며 1975년 MPLA의 인민 공화국이 수립 되었다. 정부 수립 후에도 주도권을 둘러싸고 해방 조직 사이의 내전이 계속되어 정세가 불안해지자, 1991년 5 월 내전의 종식을 위한 평화 협정이 조인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분파들간의 산발적인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복음의 역사〕 1491년부터 포르투갈로부터 파견된 선교사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가 소개되었으며, 1570년 경부터는 예수회 · 프란치스코회 · 도미니코회, 그리고 몇몇 교구 신부들에 의해서 선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그 러나 그들의 활동은 노예 무역에 의해서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초기 선교 활동의 성과는 콩고에서보다 미약하 였다. 1590년 이 지역의 가톨릭 신자수가 20,000명에 이르자, 1596년 상오 살바도르(São Salvador) 교구가 설 립되었다. 1640년 콩고 지목구가 설립되었으며, 이 지 목구는 북부 앙골라를 담당하고 있던 카푸친 작은 형제 회(O.F.M.Cap.)에 위임되었다. 17~18세기 초 아프리카 에서는 선교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나 이 후 한 세기 동안에는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1759년 포 르투갈은 정치적 이유로 예수회를 추방하였고, 1834년 에는 모든 수도회의 활동을 억압하였다. 1826~1852년 에는 주교 없이 교구가 존재하였고, 1866년 성령 수도 회(C.S.Sp)가 도착함으로써 교구가 다시 설립되었다. 포 르투갈 정부와 프랑스 선교단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1879년 김베바시아(Cimbebascia) 지목구가 설립되었는 데, 이 지목구는 앙골라 남부 지역 반 이상을 포함하여 남서 아프리카 지역까지 관할하였다. 1910~1925년에 는 포르투갈 정부의 선교단 탄압으로 인하여 교회가 많 은 타격을 받았으나, 1933년부터 시작된 베네딕도회의 활동 결과 정부와의 관계가 점차 호전되었다. 1940년 포르투갈은 교황청과 정교(政敎) 조약을 맺었으며, 같은 해 루안다는 대목구가 되었다. 독립 이후 계속된 내전 속 에서 교회도 많은 탄압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선교사 의 반 이상이 앙골라를 떠났다. 1992년 선거로 인하여 또다시 내전이 발발하였을 때, 주교와 수도자들은 국민 들에게 평화를 호소하였다. 1994년 말 반군과 정부 간 에 맺은 평화 협약에도 불구하고 사회 상황은 여전히 불 안하며, 1997년 앙골라 정부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교황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1996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6,818,000명이며, 대교 구 3, 교구 12, 본당 246개에 추기경 1, 대주교 5, 주교 16, 사제 472(교구 소속 190, 수도회 소속 282), 종신 부제 1, 수사 68, 수녀 1,538명이다.

※ 참고문헌  R. Pattee, 《NCE》 1,pp. 540~541/ 《EB》 1, pp. 942~945/ 2000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08/ Anmuario Pontificio 1998, Città del Vaticano, 1998/ Les Chiffres du Monde, pp. 94~9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