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 가톨리시즘

〔영〕Anglo-Cathol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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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로 가톨리시즘을 받아들여 제대 위에 촛대와 십자가를 올려놓은 미국의 영국 국교회 성당 내부 모습.

앵글로 가톨리시즘을 받아들여 제대 위에 촛대와 십자가를 올려놓은 미국의 영국 국교회 성당 내부 모습.


영국 국교회 고교회파(高敎會派, High Church Party)의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내세운 사상과 관습을 일 컫는 용어. 이 용어는 19세기 영국 국교회의 개혁을 주장한 옥스 퍼드 운동(Oxford Movement)을 전개한 영국 국교회 고교 회파 신자들이 1838년에 찰스 1세(1625~1649) 왕과 찰 스 2세(1660~1685) 시대의 신학자들(Caroline Divines)의 저서 출판을 기획하면서 '앵글로 가톨릭 신학 총서' (Library of Anglo Catholic Theology)라고 지칭한 데에서 유래하 였다. 앵글로 가톨리시즘은 영국 국교회 안에서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 이전 가톨릭 교회의 신앙 교리 와 전례 의식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앵글로 가톨 리시즘이라는 용어는 찰스 시대의 신학자들이 내세운 가 톨릭 사상에서 비롯하여 18세기 영국 국교회의 '비선서 파' (非宣誓派, Non-jurors) 성직자들을 거쳐 19세기 전기 옥스퍼드 운동을 통하여 영국 국교회 안에서 일반화되었 다. 또한 교의주의, 전례 운동, 수도회의 부활을 강조하 고 있다는 점에서 가톨릭적 성향을 지니고 있어 영국 국 교회 안의 가톨릭 운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19세기 후기 에 들어서서 앵글로 가톨리시즘을 받아들인 영국 국교회 신자들은 양분되어 대부분은 교황이 없는 가톨릭 교회를 내세우며 영국 국교회 안에 남았고, 일부는 가톨릭 교회 로 개종하였다. 〔배 경〕 앵글로 가톨리시즘은 찰스 시대의 신학자들에 게서 비롯하였다. 캔터베리의 대주교 로드(W. Laud, 1573~ 1645)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주교직은 초대 그리스도교의 하나이고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가톨릭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주교 중심의 교계 제도를 주장하였다. 그는 무오류성(無誤謬性)은 하느님만이 지 니고 있지만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과 비추심으로 기본적 교리에 대해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윈 체스터(Winchester)의 주교 앤드루스(L. Andrewes, 1555~ 1626)는, 신자는 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더럼(Durham)의 주교 코즌 (J. Cosin, 1594~1672)은 성서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실 체 변화는 거부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성체 현존(聖體現 存)을 믿으면서 미사는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를 위해 봉헌될 수 있다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내세웠다. 이들 은 설교단 대신에 성찬대를 성당 중앙에 놓아 십자가와 촛대를 올려놓고, 분향하였다. 찰스 시대의 신학자들은 영국의 종교 개혁을 루터(M. Luther, 1483~1546)와 칼뱅(J.Calvin, 1509~1564)의 종교 개혁과 분리하였고, 영국 국교 회만이 참된 교회가 아니라 가톨릭 교회와 영국 국교회 는 참된 교회의 일부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 신학자들 은 초대 교회의 교부들과 실천을 바탕으로 주교 중심 체 제의 교계 제도와 종교 개혁 이전의 전례 관습을 내세움 으로써 가톨릭적 또는 가톨릭에 가까운 성향을 보여 가 톨릭 교회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발 전〕 비선서파 : 18세기 찰스 시대 신학자들의 전 통은 비선서파가 이어받았다. 이들은 1688년에 혁명으 로 가톨릭 성향의 국왕 제임스 2세(1685~1688)가 축출된 다음 국왕이 된 프로테스탄트 성향의 윌리엄 3세(1688~ 1702)에게 충성 선서를 거부한 소수의 영국 국교회의 성 직자들이었다. 이들이 선서를 하지 않은 것은, 국왕의 신 권(神權) 사상에 따라 축출된 국왕이 살아 있는 한 충성 선서를 철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스터(Worcester) 주교좌 성당 참사회 단장인 힉스(G. Hickes, 1642~1715)는 윌리엄 3세에게 충성 선서를 한 영국 국교회 주교들을 교회 분열자로 비난하였고, 영국 국교회가 정치적 압력 에 굴복하였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참된 교회가 아니라 고 주장하였다. 로(W. Law, 1686~1761)는 영국 국교회와 가톨릭 교회 사이의 교리는 동일하며, 두 교회 모두 구원 의 교회라고 보았다. 그는 교리보다는 중세기 신비주의 자들에게 관심을 두며 영성 생활을 중요하게 여겼다. 로 는 그리스도 중심의 신심을 주창하며, 참된 그리스도인 은 겸손과 금욕적인 극기를 실천한다고 주장하였다. 브 레트(T. Brett, 1667~1744)는 가톨릭 교회가 인정하는 전승 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성서만이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 라는 프로테스탄트의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가톨릭 교회의 미사에서 바치는 죽은 신자를 위한 기도, 성령 청원 기도, 예물 기도의 도입을 지지하였다.비선서파는 영국 국교회 안에서 소수 집단으로 많은 영 국 국교회 신자들로부터 반역자나 교황 추종자들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영국 국교회 안에서 가톨릭적 요소들 을 간직하고 19세기 옥스퍼드 운동에 전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옥스퍼드 운동 : 1833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고교회파 교수 키블(J. Keble, 1792~1866)이 국가의 교회 내정 간섭 을 비난하는 설교를 통해 교회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선 언함으로써 옥스퍼드 운동이 시작되었다. 키블과 함께 이 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뉴먼(J.H. Newman, 1801~1890) 과 프루드(R.H. Froude, 1803~1836)는 《시대를 위한 소책 자》(Tracts for the Times)를 발간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전 파하였다. 키블은 교회의 사도적 전승을 강조하며 이는 성사의 유효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신앙 교 리를 증거하는 성서와 가르치는 성전은 필요하며 서로 보완한다는 견해를 내세웠다. 또한 죄 고백은 신자들이 마음의 평화와 영성체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실 천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는 성찬례를 가장 중요한 성사로 보았고, 성찬례의 성사적 성격을 강조하며 잦은 영성체를 권장하였다. 한편 뉴먼은 교회의 권위는 하느 님으로부터 온 선물이며 국가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그 사 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영국 국교회가 비국교화(非國敎 化)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도(中道, via media) 사상을 내세워 영국 국교회는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 트 교회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프루 드는 친(親) 로마 가톨릭적 모습을 보였다. 그는 실체 변 화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시간 전례서를 사용하였 으며 수도자와 같은 엄격한 생활을 실천하면서 성직자의 독신 제도를 존중하였다. 프루드는 뉴먼이 가톨릭 교회 로 개종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키블은 영국 성 공회 · 가톨릭 교회 · 동방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사 도로부터 이어 오는 가톨릭 교회라는 나무의 세 가지라 는 '교회의 분지설(分支說) 을 내세워 영국 국교회에 남 아 교회 일치에 더 관심을 두었다.
뉴먼이 개종한 다음 퓨지(E.B. Pusey, 1800~1882)가 중 심이 되어 옥스퍼드 운동의 가톨릭적 이상이 실천에 옮 겨졌다. 첫째로 옥스퍼드 운동의 성체성사와 그리스도의 성체 현존에 대한 강조는 전례 운동으로 나타났다. 성찬 례에서 제사의 특성이 강조되었고 성체 공경 · 성체 현 시 · 성체 강복과 같은 성체 신심이 일어났다. 아울러 영 국 국교회의 일부 본당 신부들은 종교 개혁 이후 사용해 오던 나무 제대를 돌 제대로 바꾸었고, 제대 위에 촛대와 십자가를 올려놓았다. 이러한 제대의 변화는 성찬례를 식사가 아니라 제사로 강조하는 가톨릭적 의미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성당 내부의 변화는 예배 의식의 변 화를 가져 와 제의(祭衣)가 사용되었고, 성수 예절과 분 향이 예절에 도입되었으며 예배 의식을 가톨릭 교회 전 례서에서 직접 가져오기도 하였다. 성당에는 고해소가 설치되고 훈계 없는 죄 고백 또는 죄의 용서를 선언하는 성사적 죄 고백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둘째로 옥스퍼드 운동의 성덕(聖德)에 대한 강조는 수도회의 재흥으로 나 타났다. 옥스퍼드 운동의 지도자들의 신앙 생활에서 이 론과 실천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성덕에 대한 강 한 열망을 지니고 있던 프루드는 영국 국교회 안에 수도 원이 부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1841년 퓨지는 프루드의 이상을 실천에 옮기기로 계획하였고, 1845년 에 4명의 여성 신자로 구성된 수녀회를 처음으로 설립하 였다. 이후 많은 수녀회들이 창설되었고 남자 수도회도 1863년에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 300년 만에 다시 등장한 수도회는 영국 국교회 신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가톨릭적 생활이며 영국 국교회를 다른 프로테스탄 트 교회와 구분시켜 주었다. 따라서 영국 국교회의 연차 총회 · 성직자 총회와 같은 공식 기구는 수도자들을 교황 추종자라고 비난하였으나 점차 수도회를 승인하게 되었 다.
미국에서의 변화 : 미국에서 영국 국교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에 속하는 미국 프로테스탄트 감독 교회 는 대부분이 청교도(淸教徒)들과 복음주의 신자들로 구 성되어 있었지만, 고교회파 신자들도 있었다. 뉴욕의 주 교 호버트(J.H. Hobart, 1775~1830)는 옥스퍼드 운동의 교 회론을 받아들였고, 《시대를 위한 소책자》는 젊은 감독 교회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1817년 호버트는 뉴욕에 신학교를 세웠고 신학생들 중에는 가톨릭 교회로 개종하 는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감독 교회 대부분의 주교들 은 옥스퍼드 운동이 주장하는 실체 변화는 신성 모독의 교리이며, 미사는 우상 숭배라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강 한 비판은 앵글로 가톨릭 성향을 지닌 감독 교회인들을 가톨릭 교회로 개종하게 하였는데, 대표적 인물로 시튼 (E.A.B. Seton, 1774~1821)은 개종한 다음 '자비의 수녀회'를 창설하였다. 미국에서 옥스퍼드 운동의 결과는 서서 히 예배 의식과 성직자의 복장 그리고 제의에 대한 관심 에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영국처럼 앵글로 가 톨리시즘은 크게 발전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영국 국 교회는 처음부터 앵글로 가톨리시즘의 영향을 받았다."대한 성공회"를 세운 영국 국교회의 선교사들은 앵글로 가톨리시즘의 성향을 지닌 성직자들이었다.
〔의 미〕 앵글로 가톨리시즘은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있어서 정교 분리는 교회의 고유한 사명을 올바르게 수 행하도록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교회의 역사적 지속성은 사도적 전승을 통해서 보장되며, 여기에 성사의 유효성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교 중심의 교회 체제를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성체 현존에 근거하여 장엄한 전례 의식 을 도입하고 성덕에 대한 강한 열정에서 수도회를 부활 시켰다. (→ 뉴먼, 존 헨리 ; 영국 국교회 ; 옥스퍼드 운동)

※ 참고문헌  Richard Hurrell Froude, Remains of the Late Reverend Richard Hurrell Froude, M.A. vol. 4, London, J.G. & F. Rivington, 1838~ 1839/ John Henry Newman, Apologia pro Vita Sua, London · Glasgow, Collis Fontana Books, 4th ed., 1972/ Willem J.A.M. Beek, Jonh Keble's Literary and Religious Contribution to the Oxford Movement, Nijmegen, Centrale Drukkerj N.V., 1959/ Henry Parry Liddon, Life of Edward Bouwerie Pusey, vol. 4, London, Longmans, Green, and Co., 1893~1897/ A.M. Fairbairn, Carholicism : Roman and Anglican,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03/ N.P. Williams · Charles Harris eds., Northem Catholicism, London, S.P.C.K., 1933/ Paul Elmer More . Frank Leslie Cross eds., Anglicamism, London, S.P.C.K., 1957/ H.R. McAdoo, The Spirit ofAnglicanism, London, Adam & Chares Black, 1965/ William Holden Hutton, The English Church : From the Ascenssion of Charles I to the death ofAme (1625~1714), London, Macmillan and Co., 1903/ John H. Overton · Frederic Relton, The English Church : From the Ascenssion ofGeorge I to the End of the Eighteenth Century(1714~1800), London, Macmillan and Co., 1906/ J.R.H. Moorman, A History of the Church in England, 3rd ed. rep., London, Adam & Charles Black, 1976/ 김성태, <옥스퍼드 운동의 가톨 릭 사상>, 《歷史 안의 敎會》, 분도출판사, 1985, pp. 153~190/ 정철범, 《성공회 입문》, 성 베다 교회 출판부, 1989. 〔金聖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