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히〕יַעֲקֹב · 〔그〕Ἰακώβ · 〔라〕lacob · 〔영〕Jac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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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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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이사악에게 축복을 받는 야곱(왼쪽)과 돌을 베개 삼아 자던 중 꿈을 꾸는 야곱.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뒤를 이은 이스라엘 민족의 제3 대 성조(聖祖). 후에 하느님께서 이름을 "이스라엘" 로 바꾸어 주셨다. 이사악과 리브가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중 둘째이며 레아와 라헬의 남편으로서 그의 12명의 아 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생겨났다. 성서에서 야곱은 그의 후손 전체 혹은 일부를 지칭하기도 한다. 〔어 원〕 창세기에는 '야곱' 이라는 이름에 대한 두 가 지 어원론적 설명이 나온다. 출생할 때 형의 발뒤꿈치'(עָקֵב)를 붙잡고 나왔기에 이름을 '야곱' 이라 했다는 것 (25, 26)과 쌍둥이 동생에게 축복을 가로채였을 때 에사 오가 "저를 두 번이나 속였으니(יַעְקְבֵנִי) 야곱이라는 그 녀석의 이름이 딱 맞지 않습니까?(27, 36) 하고 부르짖 은 데 기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속이다' 로 번역된 동사 '아캅' (עָקֵב)은 명사 '아켑' (עָקֵב)의 파생어이다. 이 단 어는 발뒤꿈치를 잡는 동작과 관련되어 속임수 등의 불 의한 수단으로 다른 이의 몫을 가로채거나 다른 이를 앞 지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야곱이란 그는 속이 다' · '속일 것이다 혹은 '그는 앞지르다' · '앞지를 것 이다' 란 뜻을 지닌다(호세 12, 4 ; 예레 9, 3 ; 시편 49, 6). 한편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성서의 어원은 민간 전승 을 따른 것이라고 하여, 성서 이외의 자료들에서 본래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부 셈족에 게서 발견되는 이름들에 근거를 두고 야곱이라는 이름은 본래 신(神)적 요소와 결합된 '야곱-엘' , '야굽-엘' 혹 은 '야굽-일루' 등의 축소형이며, 본래의 뜻은 '하느님, 보호하소서' 였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서 밖 의 이름들과 성서 안의 인물 야곱이 관계 있다는 것을 증 명할 자료는 없다. 뿐만 아니라 야곱이 '이스라-엘' 이라 는 하느님과 결합된 이름을 새로 받았다는 점에도 주목 해야 할 것이다. 〔야곱 전승 연구의 방법론적 문제들〕 지금까지 학계는 주로 역사 비평적 방법론을 통해 야곱 전승을 이해하였 다. 특히 성서 문헌 가설(documentary hypothesis)에 바탕 을 두고 야곱 이야기는 야훼계(J)와 엘로힘계(E) 문헌이 라는 두 개의 주(主) 자료와 비교적 작은 부분을 차지하 는 사제계 문헌(P), 그리고 시기가 불분명한 후대 편집 자들의 짧은 부언(附言)들이 합쳐져 이루어진 작품이라 는 가설을 내세웠다. 이와 더불어 궁켈(H. Gunkel, 1862~ 1932) 이후 설화의 발단과 구전을 강조하는 양식사적 연 구가 곁들여졌고, 그 밖에도 편집사적 연구 등 여러 방법 이 동원되었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는 자료 병합이라는 통설을 견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료의 구분이나 역사적 자리 매김이 다양해져 점점 더 합일점을 찾기 어 려워졌다. 또한 이러한 분석 방법이 이해에 더 큰 어려움 을 준다고 느끼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다른 방법론이 시도되었는데, 일부 학자들(Alter, Fokkelman, Gammie 등)은 전승의 문제를 일단 젖혀놓고 현재의 성서 본문에 실려 있는 설화들의 문학적 구성과 글의 짜임새를 연구하였 다. 이들은 역사 비평법이 본문의 충돌과 단절, 즉 전승 의 상충과 중복이라고 단정했던 것들 안에서 조화와 통 일성을 새로이 찾아내었고, 성서 본문의 이해에 색다른 풍요로움과 깊이를 주었다. 그러나 성서가 문학성을 포 함한 책인 동시에 신앙 고백서이며 역사적 전승의 산물 임을 생각할 때, 어느 한 편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현대 학계는 방법론에 새로운 돌출구를 찾아 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창세기의 야곱〕야곱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25-50장). 출생과 성장 : ① 신탁과 쌍둥이의 출생(25, 19-28) : 야곱과 그의 형 에사오에 관한 가장 첫 언급은 그들의 출 생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리브가도 석녀였으므로 이 아이들은 이사악이 결혼한 지 20년 만에 이사악의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 답으로써 주어졌다. 리브가의 임신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 하였는데 리브가는 신탁을 통해 그 고통이 태에서부터 갈 라져 싸우는 쌍둥이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아 가 그 신탁은 이 아이들이 장차 동등하지 않은 두 부족으 로 발전할 것이며, 형이 아우를 섬기게 될 것을 예고한다. ② 야곱이 에사오의 장자권을 사다(25, 29-34) : 어느 날 사냥에서 지쳐 돌아온 에사오에게 야곱은 끓이고 있 던 붉은 죽을 '장자 상속권' (בְּכֹרָה)과 맞바꾸자고 제안 한다. 성미 급한 에사오는 야곱이 시키는 대로 맹세까지 곁들여 이를 판다. ③ 야곱이 에사오의 축복을 가로채다(27장) : 이사악 은 에사오가 사냥해 오는 고기를 먹고 난 후 그에게 장자 를 위한 '축복' (בְּרָכָה)을 주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리브 가는 계략을 꾸미고, 비록 두려움을 품기는 하지만 야곱 또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아버지가 눈이 어두운 것을 이용하여 속임수로 축복을 가로챈다. 축복은 하나뿐이며 물리지 못하는 것이기에 에사오가 통곡하며 받은 몫은 운명에 대한 예언뿐이었다. 비록 인간적 욕심과 투쟁의 결과로 빚어진 것이기는 해도 이 축복과 예언은 신탁의 내용과 일치하며, 또한 각각 훗날 에돔과 이스라엘 민족 의 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리브가는 에사오가 동생에 게 보복할 계획을 세우는 것을 알고 야곱을 하란으로 도 피시키려 한다. ④ 야곱이 두 번째 축복을 받다(28, 1-9) : 이사악은 야곱의 장자권을 인정한 듯 두 번째로 그를 축복한다. 첫 번째 축복이 한 가문을 대표할 장자권을 얻는 것이었다 면, 두 번째 축복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 복을 상속받을 권리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이 축복 의 전제 조건처럼 야곱은 가나안 땅의 여인이 아닌, 자기 조상의 혈통을 찾아 결혼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아울러 첫 번째와 두 번째 축복이 있기 직전에 각각 언급되었던 에사오의 결혼 문제가(26, 34-35 ; 27, 46) 세 번째로 다 시 언급되는데(28, 6-9), 이는 에사오가 예전에 장자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듯이(25, 34) 하느님의 약속 및 축복 과 연루된 가족 역사에 대한 감각이나 그 과제에 민감하 지 못하다는 것, 따라서 '장자' 특히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의 상속자'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을 부각시킨다. 이향(가나안에서 하란으로) : ① 베델에서 하느님을 만나 다(28, 10-22) : 자기 죄의 결과로 도망자로, 그리고 나 그네로서 하란을 향해 떠난 야곱은 돌을 베개 삼아 자던 중 꿈에서 하늘까지 닿는 층계와 그 위를 오르내리는 하 느님의 천사들을 보고, 마침내 자신의 옆에 서 계신 하느 님을 뵙는다. 하느님은 전에 아브라함과 이사악에게 하 셨던 것처럼 그에게 가나안 땅과 무수한 후손을 주실 뿐 아니라 세상이 그와 그 후손의 덕을 입게 되리라고 약속 해 준다. 또 늘 야곱과 함께하며 보호하여 다시 가나안 땅으로 데려오실 것까지도 약속한다. 꿈에서 깨어나 두 려움을 느낀 야곱은 돌 베개를 도유한 후 그곳을 '베델' (하느님의 집)이라 이름짓고 조건부 서원으로 하느님께 응답한다. 도유는 성별(聖別)의 표현이기에, 이제 '돌 베 개' 는 그가 하느님을 만난 거룩한 장소의 표지인 '선돌' 이 되었고, 하느님이 한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 그는 그 선돌을 '하느님의 집' 으로 삼고 야훼를 자신의 하느님으 로 모시리라고 약속한 것이다. ② 하란 도착과 야곱의 결혼(29, 1-30) : 하란에 무사 히 도착한 야곱은 우물가에서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나 첫눈에 반했다. 라반은 야곱을 골육으로 받아들이 지만 한 달 후에는 삯을 주고받는 주종(主從) 관계를 맺 자고 제안하고, 야곱은 라헬과의 결혼을 청하며 지참금 조로 7년 종살이를 제의한다. 7년 기한이 찬 후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라헬 대신 언니 레아를 신방에 들여보낸 다. 밤의 어두움과 신부의 베일이 야곱의 시야를 가렸고, 라반은 철저히 남을 속이고 앞지르는 '야곱의 원칙' 을 그에게 역이용하였다. 섬김을 받고자 형을 희생시켰던 야곱이(25, 33 ; 27, 29) 이제 남을 섬겨야 하는 종의 신 세로 전락한 것이다. ③ 자녀들의 출생(29, 31-30, 24) : 야곱은 하란에서 11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얻었다. 이 아이들은 아내로서 우선권을 차지하기 위해 몸종 빌하와 질바까지 동원하며 다툰 두 자매의 경쟁과 갈등의 산물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베델에서 후손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약속 실현 의 증거이기도 하다. 라헬의 아들 '요셉' 은 '(더) 보태기 를' 이라는 의미 그대로 또 다른 아이를 얻게 될 희망을 준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준비된 셈이다. ④ 귀향을 위한 준비(30, 25-32, 1) : 요셉이 태어난 후 야곱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다시 속 임수' 라는 '야곱의 원칙' 을 써서 라반을 이기고 재산을 마련한 후 가족과 함께 도주한다. 라반은 사흘 길을 달려 가 이들을 잡지만 하느님의 명령 때문에 거칠게 대하지 는 못한다(31, 29). 라반은 자기 집의 수호신을 잃었다는 트집을 잡지만 라헬이 이를 훔친 줄 모르는 야곱은 격분 하여 그 동안 라반과 자기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고 마침내 라반은 이에 승복한다. 그 결과 라반과 야곱은 각각 자기 조상들의 하느님의 이름으로 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이제 야곱은 더 이상 도망자로서 가 아니라 라반의 사위며 자립한 족장으로서 Ejr이 길 을 떠난다. 귀향(하란에서 가나안으로) : ① 가나안의 입구(32, 222) : 가나안 가까이 이르러 야곱은 하느님의 '천사들' 과 마주쳤는데 그곳을 하느님의 '진영' (מַחֲנֶה)으로 알아 보고 '마하나임' (מַחֲנַיִם, 두 진영)이라고 이름지은 후, 자 신도 '심부름군들' 을 에사오에게 보내며 형의 호의(חֵן ) 를 청한다. 그러나 형이 부하400명을 데리고 온다는 소 식을 듣자 자신의 가족을 두 '진영' . '무리' 로 나누어 전쟁에 대비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다. 우선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이 많은 가족과 재산이 베델의 하느 님께서 약속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얻은 선물임을 고백하 며 감사드리고, 자신과 가족을 에사오의 손에서 구해 달 라고 청한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선물' (מִנְחָה)을 꾸려 서 차례로 에사오에게 보낸다. 야곱의 이 모든 작전은 그 러나 큰 도움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② 브니엘에서 하느님과 싸우다(32, 23-33) : 야곱이 밤에 홀로 있을 때 어떤 남자가 나타나 밤새도록 그와 싸 웠다. 도저히 승부가 나지 않을 듯하자 상대는 마침내 야 곱의 엉덩이뼈를 쳐 전혀 힘을 쓸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러나 야곱은 축복해 달라며 상대를 놓지 않는다. 이 일화 에는 야곱의 삶, 특히 옛날 에사오와의 관계를 규정 짓던 '속임수' 와 '이름' 과 '축복' 이라는 주제가 다시 등장하 는데, 야곱의 전생애를 해석하는 열쇠가 들어 있다. 야곱 은 전에 형을 속여 승리하였지만, 지금 그는 상대방의 속 임수에 빠져 발 전체를 다 차였다. 뿐만 아니라 이름을 묻는 상대방에게 '야곱' 이라 대답함으로써 자신이 속임 수로 상대를 기습하여 욕심을 채우는 사람임을 고백한 셈이 되었고, 이렇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이상 상대에 대한 기습 작전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싸움 에서 야곱은 힘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전적으로 패자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순간 상대방은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며 야곱의 삶을 총괄해 버린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 고 사람들과 겨루었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 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리리라"(창세 32, 29). 이름 은 높은 이가 낮은 이에게 주는 것이고(창세 17, 5. 15), 승리의 발표와 이름 바꿈은 멜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름은 한 인간의 정체를 의미하기에, 새 이름은 새 인간의 탄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제는 이스라엘이라는 원칙이 그를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으로 하여금 싸우 도록 하라! 혹은 하느님께서 싸우실 것이다" 라는 '이스 라엘' 이란 말의 의미는 제 힘이나 꾀를 써서 방편을 찾 는 '야곱의 원칙' 과는 정반대이다. 하느님이 처음으로 친히 축복해 주시는데, 이 축복은 속임수쟁이 야곱에게 주어지지 않고 새 사람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 야곱은 하느님을 대면했다고 하여 그 장소를 '브니엘' (하느님의 얼굴)이라고 불렀다. ③ 에사오와의 만남(33, 1-17) : 야곱과 에사오가 만 나는 장면에는 '은총' · '호의' 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들 이 계속 언급된다. 그런데 야곱의 '진영' 이 세 번 탈바꿈 한다. 에사오가 야곱이 보낸 선물을 '진영' 이라고 표현 함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이를 '선물' 로, 나아가 '축복' 이라고 일컫는다. "아무쪼록 저의 축복을 가지십시오 (לָקַח)" (33, 11. 필자 직역). 또한 야곱은 거듭 형을 자신 의 주인으로, 자신은 그를 섬기는 종으로 표현한다(25, 23 ; 27, 29). 축복과 장자권은 되돌려질 수 없는 것이지 만 마치 옛날 가나안에서의 사건이 모두 무산된 듯, 에사 오는 다시 첫째 즉 주인이 된 것 같고 야곱이 가져 갔던 '축복' (27, 36)도 되돌려 받는 것 같다. 야곱은 지금 은 총으로 둘러싸인 세계에 살고 있으며, 하느님의 싸움의 법칙에 따라 강자가 약자처럼 수그리고, 자신의 축복을 기꺼이 다른 이와 나누는 '이스라엘' 로서 처신하고 있 다. ④ 가나안에 정착하다(33, 18-20) : 야곱은 마침내 '가나안 땅' 세겜 마을에 '무사히' 이르러 그 앞에 천막 을 쳤다. 베델에서 그가 서원하며 내걸었던 조건 "무사 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신다면" (28, 21)은 이 루어졌다. 그는 서원의 내용대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 (אֵל אֱלֹהֵי יִשְׂרָאֵל, 하느님은 이스라 엘의 하느님)이라고 부르며,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하느 님" (28, 13)에 이어 야훼께서 이제 자신의 하느님이 되셨 음을 고백한다. 족장 야곱 : 창세기 34장부터는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야곱이 족장으로서 겪는 사건들을 담고 있다. 디나로 인 해 아들들이 세겜인들에게 저지른 횡포 때문에(34장) 세 겜을 떠난 야곱은 베델로 다시 올라가 돌기둥을 세운다. 그 후 에브랏으로 가는 길에 베냐민을 얻고, 막달에델 건 너편에 살다가 마므레에서 에사오와 함께 아버지 이사악 을 장사지낸다(35장). 그의 나머지 삶은 창세기 37-50장 에서 요셉 이야기 안에 그려지는데, 야곱은 기근으로 인 해 아들 요셉의 초청을 받고 이집트에 가서 살다 거기서 죽지만 자신의 유언에 따라 시신은 가나안에 묻히게 된 다. 그가 족장으로서 열두 아들에게 준 축복(49장)은 '야 곱의 축복' 으로 일컬어지며, 이스라엘 12지파에 관한 오 랜 전승을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성서에서의 야곱] 야곱은 창세기 외에는 자주 나타나지 않으며, 신 · 구약 성서를 통틀어 주로 아브라 함과 이사악에 잇달아 이스라엘의 제3대 성조로 언급된 다(출애 6, 3 ; 마르 12, 26-27). 또한 창세기에 서술된 내 용과 관계없이 야곱과 이스라엘은 상호 교환적으로 특히 병행하여 많이 사용되며, 그의 후손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곱' 혹은 '야곱의 집'이요,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야곱의 하느님' (이사 2, 3), '야곱의 강하신 이' (창세 49, 24), '야곱의 거룩한 이' (이 사 29, 23), '야곱의 왕' (이사 41, 21)이다. 또한 이스라엘 의 성전은 '야곱의 하느님의 처소' (시편 132, 5 ; 사도 7, 46)이다. 〔신학적 성찰〕 야곱 전승의 중심 : 창세기의 본문을 정 밀하게 읽어 보면 이사악을 주인공으로 하는 26장을 제 외하고 야곱의 출생에서 가나안 정착까지의 이야기(25, 19-33, 20)가 뛰어나게 조직적인 구상과 치밀한 어휘 선택으로 쓰여졌음이 드러난다. 이 이야기는 베델과 브 니엘의 일화를 두 기둥으로 하여 지리적으로 야곱 삶의 내적 여정을 셋으로 구분하는데, 이 사이에서 서로 공명 하는 단어들은 이야기의 앞과 중간과 뒤를 함께 보며 읽 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주요 주제들을 다양한 말 놀이를 통해 연결시킴으로써 이야기에 통일성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이를 '야곱 이야기' (Jacob narraive)라는 하나의 작 품으로 간주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저자가 이 미 존재하던 전승을 얼마만큼 이용해서 창작하였는지는 모른다. 이러한 통일성은 34장 이후부터 사라지고 35장 에서 본문은 심한 반복과 단절, 충돌을 보이며 전승의 중 첩을 뚜렷이 나타내고 이야기의 초점도 야곱보다는 장소 나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로 옮겨 가 37장부터는 요셉 이야기가 된다. 결국 성서 전반에 걸쳐 야곱에 관해 언급 되는 것들은 거의 '야곱 이야기' 의 내용에 근간을 두고 있다. 즉 '야곱 이야기' 는 야곱에 관한 전승의 중심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야곱 : 성서에서 개인의 이름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는 통칭으로 쓰이 는 것은 오직 야곱뿐이다. 거기에는 그가 받은 이름 이스 라엘이 그 후손들의 이름과 같다는 점을 넘어 더 큰 이유 가 있다. ① 민족의 조상 : 야곱 이야기의 서두에서 신탁은 태 어날 쌍둥이를 그들로부터 불어나게 될 민족들과 즉시 동일시함으로써 독자가 이 이야기를 개인(이사악과 리브가 의 아들들)과 집단(에돔과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두 차원에 서 읽게 한다. 이러한 집단적 차원은 말 놀이를 통해, 그 리고 그 말들의 반복적인 사용을 통해 이야기 전체에 퍼 져 있다. '에사오' ( עֵשָׂו)는 태어날 때부터 털북숭이 (שֵּׂעָיר )였고 붉었다(אַדְמוֹנִי) '털북숭이' 라는 의미의 단 어 '쎄아르' 는 후에 에돔족의 땅이 된 '쎄이르' (שֵּׂעִיר) 를, '붉다' 는 의미를 지닌 '아드모니' 는, 에사오가 장자 권과 바꾼 붉은 죽 '아돔' (אָדָם)과 더불어 같은 어근으 로 이루어진 에돔(אֱדוֹם)을 빗대어 가리킨다. 에사오가 사냥을 좋아하여 들 에서 살았다 함은(25, 27) 그가 에 돔 '들' 에 살며 수렵하던 에돔 민족의 조상이 되기에 합 당한 자임을 각각 암시한다. 사실 이사악이 에사오에게 해준 운명의 예언도 확실히 사냥꾼에게 맞는 내용이다 (27, 39-40). 반면에 천막에 머무르는(25, 27) 야곱은 양을 치는 반 유목민의 조상이 될 기질을 지녔고, 후에 이를 유감없이 발휘한다(33, 13-15. 17). 그가 이사악으로부터 받은 축 복은 반유목민에게 맞는 것이며, 그의 후손 이스라엘이 에돔족의 섬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27, 27-29). 야곱이 살아야 할 땅은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받은 가나안 땅이며(28, 13), 야곱이 세겜에서 땅을 산 것은 장차 그 후손이 이 땅을 차지할 주인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그 조상이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느님께 선택되어 에돔족과 구분되었다. 아람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야 곱의 아들들이 생길 때까지 이스라엘족과 아람족은 혈통 을 같이했지만(창세 24 : 28, 2 ; 신명 26, 5), 야곱이 길르 앗에서 라반과 조약을 맺고 두 부족의 경계를 확실히 할 때부터(31, 51-53), 그들은 각각 독립된 두 민족으로 발 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야곱은 이스라엘인들에게 민족 의 정체성을 뚜렷이 제시해 주는 인물이 되었으며, 그중 에서도 하느님께 선택된 존재라는 사상은 역사를 타고 계속 흘러(말라 1, 2) 신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새 백성으 로까지 이어진다(로마 9, 10-13 : 8, 29). ② 죄인이며 의인 : 야곱 이야기는, '야곱' 이라는 이 름이 뜻하는 바 그대로 뿌리깊은 죄성을 지닌 인물이 하 느님에 의해, 그리고 나그네살이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어떻게 정화되고 구원되어 은총의 인간 이스라엘로 변화 되었는가를 그린 이야기이다. 가나안에서의 야곱은 몹시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신성 모독을 할 정도로 하느님 과 무관하게 행동하는(27, 20) 독불 장군과 같았다. 그런 데 하란의 나그네살이에서 야곱은 종이 된다는 것, 속는 다는 것, 서로 경쟁하고 갈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뼈 저리도록 배웠다. 그리고 라반과 다투면서 정의에 대한 개념, 곧 윤리 개념도 터득하였다. 그래서 가나안 입구에 들어서면서 형과 화해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는 자기 젖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때 하느님 께서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그런데 이름이 바뀐다 고 사람 됨이 갑자기 바뀌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실상 이것은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야곱 의 단계적 변화는 베델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마지막 단계가 브니엘 사건이었을 뿐이다. 사실 20년 나그네살 이 동안 야곱은 죗값을 남김 없이 다 치른 셈이며, 하느 님은 진실을 판가름하여야 할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으로 개입하시어 그 변화를 완성시켜 주셨다. 브니엘에서의 싸움 후 야곱은 자기가 하느님을 대면하 고도 목숨을 구한 것에 놀라워한다(32, 31). "목숨을 구 하다" (נִצֵּל נֶפֶשׁ)라는 말은 신체적인 생명의 보존이라는 차원을 넘어 '실존적이며 윤리적 의미에서의 구원' 을 뜻 한다(에제 3, 19. 21 ; 14, 20 ; 33, 9). 결국 야곱은 윤리 적으로, 더 나아가 자신의 죄의 뿌리로부터 구원된 것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이 구원, 즉 죄를 넘어선 새 인간으 로의 창조야말로 야곱을 에사오로부터 철저히 구한 것이 다(창세 32, 12). 너무 달라져 도저히 옛날 그가 가나안에 서 알던 동생이라고 할 수 없는, 절뚝거리며 경계심이라 고는 조금도 없이 뛰어오는 겸손한 야곱에게 에사오는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울며 입맞춤을 한 것이다. 사실상 야곱의 새로운 시각(33, 10b)이 에사오의 시각을 바꾸어 놓은 듯하다. 그러므로 야곱 안에는 죄인의 모습과 하느 님의 은총을 입어 정화되고 구원된 의인의 모습이 다 들어 있다.
이러한 양 극단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역사 안에서 체험하는 자신이다. 그 부정적 모습의 극 (極)을 예언서들 안에서 찾을 수 있다. 호세아는 "모태에 있을 때에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늘어졌다"(12, 4)라고 하고, 예레미야는 "동기들끼리 서로 걸어 넘어뜨린다" (9, 3)며 야곱이란 이름을 사용한 말 놀이를 통해 자신의 욕심 때문에 형제를 팔아먹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혹 독히 비난한다. 반면에 긍정적인 야곱 이미지의 절정은 '야훼의 종' 과의 동일시에서 발견되고(이사 41, 8 ; 44, 1-2), 마침내 신약에서 예수로 이어진다(마태 8, 17). 예 수야말로 모든 상황과 자신의 운명을 전적으로 하느님께 내맡기신 분이고,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그를 대신해 싸 우셔서(이스라엘) 부활이라는 승리를 안겨 주셨다. 그러 므로 예수는 모든 이스라엘인들의 궁극적 이상인 은총의 인간 야곱, 구원된 참 이스라엘의 전형적 모범이다. '온 순함' 으로 번역된 야곱의 특성 '탐' (תָּם, 창세 25, 27)은 실상 '온전함' 을 뜻하고(욥기 1, 1 ; 2, 3), 이로써 이스라 엘인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야곱 안에 앞질러 투사했다고 볼 수 있다. ③ 축복의 전달자 : 야곱이 장자로서 받은 예언적 축 복(27, 27-29)과 아브라함의 후손 자격으로 받은 약속 (28, 13-14)은 유효하여 야곱 덕분에 라반도 에사오도 축 복을 받았다. 그런데 이사악이 에사오에게 한 예언(27, 40)은 어긋났다. 야곱의 사람 됨이 바뀜으로써, 즉 장자 이면서도 섬기는 사람으로 행동함으로써 그는 멍에 · 칼 · 압제 등 싸움과 억누름의 요소들을 모두 무효화시켰 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평화를 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축복의 전달자로 바뀌었다(33, 11). 결국 마지막에 하느 님으로부터 받은 축복(32, 30)은 이제까지 야곱이 받은 축복과 약속을 가장 완전한 방식으로 실현시킨 것이다. 성서의 여러 곳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람에게 중대한 일을 시키시기 전에 그를 공격하여 정화시키시는 것이 언급되어 있다(출애 4, 24-26 ; 33, 3-5 ; 여호 5, 13-15 ; 이사 6, 5). 그렇다면 브니엘에서도 하느님은 바로 그 일 을 한 것이다. 야곱은 정화된 모습으로 온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축복의 도구가 된 것이다. 〔야곱 전승에 대한 재고〕 성서, 특히 야곱 전승을 통시 적(通時的, diachronic) 안목으로만 볼 때 자칫 특정 자료 의 문체라는 가설에서 분석함으로써 전체성에 대한 시각 을 잃기 쉽다. 각각 야훼계(J) 혹은 엘로힘계(E)의 야곱 이야기라는 것들도 비록 최소한의 논리를 가진 일화들의 모임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 라는 차원에서 볼 때 비논리적인 경우가 많다. 나아가 거기서 예술성을 찾아 보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동시적(同時的, synchronic) 접근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성서 본문에는 동시적 접근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단절과 충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적 안목을 사용한 결 과를 참고한다면, 적어도 창세기 26장을 제외하고 25장 19절부터 33장 20절 사이에 있는 '야곱 이야기' 는 하나 의 단일 설화로 간주되고, 따라서 이를 위한 역사적 자리 매김이 가능하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베델 브니엘 · 이스라엘· 세겜이 동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시기가 있다. 북이스라엘의 첫 임금 여로보암 1세(기원전 933~911)는 통일 국가가 남북 왕조로 나뉘는 상황에서 새 왕국의 건설에 도움이 될 종 교적 · 정치적 개혁이 필요하였다. 남부 유다로부터 독립 하기 위해 그는 우선 세겜을 수축하여 수도로 정했다가 얼마 후 브니엘로 옮겼으며, 베델을 중앙 성소로 만들어 북부 왕국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순례 가는 것을 막았 다(1열왕 12, 25-33). 그러나 이런 일들에 못지않게 중요 한 과업이 새 국가 '이스라엘' 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 이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의 후손 전체를 뜻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남부 유다와 구분되어 이제 갓 시 작된 북부 왕국의 백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창 세기가 이야기하는 그들의 조상 야곱의 인생 여정, 그리 고 특히 '베델과 브니엘에서 하느님을 만난 사건' 은 새 로 태어난 왕국의 정책에 일종의 인준 역할을, 그리고 '새 이름을 받은 사건' 은 그 백성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이 하고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 안에 나오는 모든 지명이 전부 북부 지역 에 속하며 야곱의 아들 중에서 북부 부족을 대표하는 요 셉이 특별히 부각되는 점을 고려할 때 야곱 이야기가 북 부에서 유래된 것은 확실하다. 유능한 개혁가였던 여로 보암 1세가 자신이 당면했던 내적이고 신학적 문제를 풀 기 위해 문학적 수단을 사용했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그리 무리가 아니다. 호세아서 12장과 '야곱 이야기' 사 이에서 발견되는 내용의 유사성과 단어의 중첩은 야곱 전승의 중심이 이미 기원전 8세기에 거의 확정된 형태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비록 후대에 약간 의 수정이 있었음을 감안할지라도, 지금의 성서가 제시 하고 있는 것과 매우 비슷한 야곱 이야기가 북이스라엘 의 여로보암 1세 때, 수도를 세겜에서 브니엘로 옮겼을 즈음에 쓰여졌으리라고 추정된다. (⇦ 라헬 ; → 레아 ; 열두 지파 ; 창세기)
※ 참고문헌 임승필 역, 《창세기》, 구약성서 새 번역 7, 한국천주 교중앙협의회, 1995/ E.J. Bae, Is Gen 32, 29 an Indispensable Verse in the Jacob Cycle(25, 19-33, 20)?, Dissertation(MSS), Rome, Pontifical Biblical Institute, 1990/ E. Blum, Die Komposition der Vatergeschichte, WMANT 57, Neukirchen-Vluyn, 1984/ J.P. Fokkelman, Narrative Art in Genesis, Studia Semitica Neerlandica 17, Assen-Amsterdam, 1975/ H. Gunkel, Genesis, 7 Auflage, Göttingen, 1966. 〔裵銀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