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절
過越節
〔라〕Pascha · 〔영〕Passover · 〔독〕Pass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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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들의 과월절 행사 광경.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들이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하여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 '과월절' 의 히 브리 원어 פְצָה (pesach)의 뜻은 명확하지 않다. '(神을) 진정시키다' 라는 동사와 관련시키는 학자도 있고, 또는 축제의 종교적인 춤과 연관시키는 학자도 있다(1열왕 18, 26). 또 '때림' 〔强打〕이란 이집트어 Pe-shah에서 유래했 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성경은 pesach란 히브리어 명칭 을 알기 쉽게 이집트 탈출과 연관된 의미, 즉 '거르고 지 나가다' '건너가다' 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스 어 역본(70인역)과 라틴어 역본에서는 히브리 원어를 음 역하여 '파스카' (〔그〕πασχα, 〔라〕pascha)라 했다. 한국의 프로테스탄트측에서는 파스카 축제를 '유월절'(逾越節) 이라 번역했고, 가톨릭의 200주년 신약성서에서는 '해 방절' 이라 번역했다. 〔구약 시대의 과월절〕 출애굽기의 과월절 : 구약성서 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대 목에 과월절 기사가 처음 나타난다. 출애굽기 3-15장에 수록된 그 보고들은 배경을 달리하는 여러 시대의 전승 사료(J · E · D · P 사료)들을 한 줄거리로 엮은 것이다. 먼 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광야로 나가 '(봄)축제'를 지내게 하시려는 하느님(J : 출애 3, 18-20)과 그들을 놓아 보내기를 거부하는 이집트 파라오와의 대결에 관한 서사시가 보고된다(출애 7, 8-10. 29). 아홉 가지 재앙을 겪고서도 파라오가 말을 듣지 않자, 모세는 마지막 결정 적 재앙으로서, 모든 이집트인 가정의 맏아들과 모든 짐 승의 맏배의 죽음을 알린다(J : 출애 11, 4-6). 그날 이스 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지시를 따라 특별한 준비를 해야 했다(P : 출애 12, 1-14). ① 아빕(=이삭이 패는)월(양력 3~4월) 10일에 각 가정은 식구들을 위해 흠이 없는 1년 된 숫양이나 숫염소를 한 마리 골라 두었다가, ② 14일 해거름에 회중이 모인 곳에서 잡고, ③ 그 피는 받아다 가, 잡은 양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 야 했다. ④ 양고기는 불에 구워서, 누룩을 넣지 않은 빵 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했고, ⑤ 고기를 날로 먹거 나 삶아서 먹어서는 안되었다. ⑥ 남김없이 먹어야 하는 데 아침까지 남은 것이 있으면 불살라 없애버려야 했다. ⑦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 는 지팡이를 잡고 서둘러 먹어야 했다. 1) 파스카 축제의 기원 : 앞의 과월절 보고는 제일 늦 게 유배 시대 말기나 그 후에 정리된 제관계(P) 사료이지 만, 여기에는 옛 셈족의 목축 제의(牧畜祭儀) 관습이 반 영되어 있다. 즉, 이른 봄철에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을 '맏자식의 속량 제물' 로 바치고, 그 피를 천막이나 집의 출입구에 발라 화액(禍厄)을 막고자 한 관습이다. 예컨 대 고대 유목민들은 춘분 무렵 광야에서 농경 지대 부근 의 새로운 목초지로 이동하기에 앞서 씨족이 모여서 양 을 제물로 바치고 그 피를 천막 기둥에 발라 악귀가 '관 대히 지나가도록' 빌었다고 한다. 성경의 사화에서는, "주님이 이집트인 가정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모든 맏 배를 쳐죽이실 때(J : 출애 12, 29-30)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발라 재앙을 피하고, 마침내 탈출 하였다"고 한다. 2) 무교절의 기원 : 앞의 과월절 보고에서 언급된(출애 12, 11) '누룩 안 넣은 빵' 의 축제(無酵節)도 오랜 역사 를 가진 농경 제의(農耕祭儀)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만 물이 소생하는 봄에 농사짓는 이들은 첫 수확(거둠질 시 작)의 축제를 지내면서(레위 23, 10) 햇밀을 빻아 이렛 동 안 누룩 안 넣은 빵을 만들어 먹었다. 이 새로운 절기에 발효한 것은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묵은 누룩은 집안에서 말끔히 치워 없앴다(출애 12, 15-20).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이 누룩 안 넣은 빵의 축제도 이스라엘 선 조들의 원시적인 유목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 다. 오늘날에도 모압 지방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인 들은 누룩 안 넣은 빵을 급히 구워 따뜻한 것을 먹는다고 한다. 과월절의 역사화와 신학적 의미 : 하느님의 구원 활동 의 근본적 표상인 파스카 축제를 해마다 지내야 하는 의 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정착하면서 율법으로 규정되고(D : 출애 12, 25), 누룩 안 넣은 빵의 축제(무교절)와 결합하여 함께 역사화되었다 (출애 12, 14. 15 ; 13, 5. 6 ; 민수 28, 16. 17 ; 신명 16, 18 ; 참조 : 에제 45, 21-24). 두 가지 축제는 똑같이 하느 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내 신 해방의 기념 축제가 되었다. 자연적 제의들을 야훼 신앙의 관점에서 구원사적으로 해석하여 민족 탄생의 기 념 축제로 삼은 것이다. 먼저 파스카 축제를 '거룩한 밤 새움' 의 축제로 지내고 이렛 동안 무교절을 지냈다. 한 가정 또는 두서너 가정이 하느님 야훼 앞에 하나의 식사 공동체를 이루고, 구운 양고기를 누룩 안 넣은 빵과 쓴 나물과 함께 먹을 때, 선조들의 이집트에서의 고역과 탈 출을 회상할 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 사건에 참여하며 재현한다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 다. 이 해방 기념 축제는 세기를 거듭하면서 자세한 규 정들을 첨가하였다. 가장들은 자녀들에게 축제의 의미를 설명해 주어야 했다(출애 13, 8). 파스카 양의 뼈를 꺾지 말고 온전하게 다루어야 하며, 외국인이나 종, 그 밖에 몸붙여 사는 자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으면 파스카 회식 에 참여할 수 없었다(출애 12, 43-49). 시체에 닿아 부정 을 탄 자나 여행을 떠난 자는 한 달 뒤에 '작은 파스카'를 지낼 수 있었고, 집에 있으면서 과월절을 제대로 지 키지 않은 자는 공동체에서 추방되었다(민수 9, 10-12.13). 신명기의 과월절 : 신명기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큰 변 화는 '가정적 축제' 였던 과월절이 "야훼께서 당신의 이 름을 두시려고 고르신 곳" , 즉 '성소에서 지내는 순례 축 제' 로 발전한 점인데, 제사화(祭祀化)의 경향도 엿보인 다. 성소에서 '양과 소' 를 잡아 하느님 야훼께 과월절 제 물로 바치고 장엄한 '밤새움' 을 하면서 파스카 회식을 하고, 아침이 되면 순례자들은 임시 거처인 자기 천막으 로 돌아갔다. 이 천막 생활은 숙소를 구하기 어려운 관계 도 있었지만, 옛 광야 생활을 상기시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엿새 동안 누룩 안 넣은 빵의 축제인 무 교절을 지내고 이렛날은 '거룩한 모임' 을 갖고 축제를 마감했다(16, 1-8). 이 신명기의 핵심 부분(12-18장=原申 命記)은,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기원전 722/721) 후 예 루살렘으로 피난해 온 엘리트 제관들이 초기 예언자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편집한 '율법 책' (2열왕 22, 8. 11) 또는 '계약 책' (2열왕 23, 2. 21)으로서 성전에 보관되어 잊혀 졌다가, 한 세기가 지난 622년에야 요시아 왕의 종교 개 혁으로 공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한 하느님에 한 법전과 한 성전이라는 신명기 정신에 따라 개혁 사업을 대충 마 무리한 요시아 왕은 남북 주민들을 예루살렘에 불러모아 과월절을 성대한 '국가적 축제' 로 지냈다(2열왕 23, 2123). 그러나 요시아 왕이 므기또 전투에서 전사한 뒤 유 대 왕국은 급속히 몰락의 길을 걸었고, 그 어지러운 시대 상황에서는 과월절의 규정들을 제대로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배의 시련과 새로운 파스카에 대한 희망 :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군대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파괴한 뒤 유대 주민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켰다. 민족의 시련 이 혹독할수록 '새로운 탈출' , '새로운 파스카 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는 더욱 간절해지고, 그들은 메 시아 시대의 파스카를 위해 예언된 '하느님의 새로운 위 업' 을 고대하게 되었다(이사 40, 1-11). 동시에 그들은 하 느님 야훼께 대한 민족의 죄와 개개인의 과오를 뼈저리 게 성찰하고 회개하였다. 그리하여 '장래의 설계' 를 위 한 에제키엘의 법전(40-48장)에서는 과월절과 그 밖의 축제에 속죄 사상이 짙게 곁들여졌다(에제 45, 18-25). 이 대목에는 정확한 달력도 나온다. 과월절은 첫 달 14 일 저녁에 지내고 이렛 동안 누룩 안 넣은 빵을 먹는데, 바빌로니아 역법(曆法)을 따르고 있다. 한 해의 첫 달 초 하루는 춘분 후 초승달이 뜨는 날(에제 46, 1-7)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에제키엘 법전을 따른 제관계 달력에 의 한 파스카 밤은 '입춘 후 첫 만월날' 이 되었다. 유배 시 대부터 히브리 달력도 이 역법을 따르고, 첫 달 이름 '아 법' (이삭이 팸)도 '니산' (출발)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교 회의 전례력도 그 역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부활 축일 의 날짜가 해마다 달라진다. 1) 제관계 사료의 과월절 : 신명기에서 긴밀히 결합된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은 제관계 사료(P)에서는(레위 23 장) 그렇게 밀접히 연계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서 도 파스카 축제를 지낸 다음 이렛 동안 무교절을 성스럽 게 지내되, 첫 날과 끝 날에는 '거룩한 모임' 을 열고 모 든 생업에서 손을 떼라고 했다. 이 사료의 편집자들은 이 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전환기에는 파스카 축제가 성대히 거행되었다고 명기하고 있다. 예컨대, 이집트 탈출 때의 원형적 파스카 밤(P: 출애 12, 1-14 ; J+D+E : 12, 21-27. 29-37) 후 광야로 나와 시나이에서 첫 과월절을 성대히 지냈고(P : 민수 9, 1-5), 또한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길갈에서 과월절을 지내고 그 땅의 소출을 먹었다고 한 다(여호 5, 10-12). 광야에 등장하여 역사의 변천 속에 휩 쓸려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어디 에서 살든 과월절이 그들의 생활 리듬을 결정하였다. 성 경 사가(史家)들이 이렇게 역사의 과정에 파스카 축제를 삽입한 것은, 그것을 장래의 구원 시대에 지내게 될 새 파스카의 예형으로 이해하였음을 말해 준다. 기원전 538년, 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킨 페르시아 왕 고레 스의 해방령으로 유배 생활을 마감하고 팔레스티나로 돌 아오기 시작한 유대인들은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재건 사 업에 힘입어 어렵사리 다시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 무렵엔 율법도 최종적으로 정식화되고 확정되었을 것이 다. 제관계의 과월절 규정(출애 12, 1-14)과, 과월절 거행 을 예루살렘에 한정시킨 신명기의 규정(16, 1-8)은 둘 다 의무를 지우는 동등한 법이 되었다. 파스카 회식에 참여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자격도 확정됨으로써(출애 12, 4349), 과월절을 지내는 것은 하느님의 백성임을 증명하는 신앙 고백이 되었다. 그래서, 타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들(디아스포라)도 과월절에는 가능한 한 예루살렘에 돌아 와서 축제를 지냈다. 2) 연대기 사가의 과월절 : 기원전 300년 후 엮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역대기 상하, 에즈라서, 느헤미야서 등 이른바 연대기 사가의 경서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 들이 갈라진 기원전 4세기 말엽의 유대교 사상을 명확히 묘사하고 있다.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 성전의 유일무이 성에 역점을 둔 역대기에는 두 대목에서 과월절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하나는 북부 왕국 멸망(기원전 722/721) 후 유대의 히즈키야 왕이 하느님 백성 통일의 염원을 안 고 남북의 모든 주민을 불러모아 과월절을 지냈다는 보고 이다(2역대 30장). 이때 축제 기일이 이미 지났으므로, 한 달 후(둘째 달 14일)에도 지낼 수 있다는 규정을 이용하였 다(민수 9, 10-12). 또 하나는 열왕기 하권(23, 21-23)에 이미 보고된 요시아 왕 때의 과월절을 이상화(理想化)하 여 다시 상술한 부분이다(2역대 35, 1-19).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된 과월절 의식도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에즈라서에는 유배지에서 돌아온 사람 들이 성전을 다시 세우고 귀향 후의 첫 과월절을 성대히 지냈다고 보고되고 있는데(6, 18-22), 이것도 첫번째 해 방인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동시에 바빌론 유배 생활에 서의 두 번째 해방도 기념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장래의 결정적 구원 곧 새로운 파스카에 대한 희망을 북돋우려는 구원사적 축제 보고라 할 수 있다. 후기 유대교의 과월절 에서는 이집트 탈출의 특별한 상황을 반영한 요소들, 예 컨대 니산달 10일의 어린 양 골라두기, 그 제물의 피를 집의 출입구에 바른 절차, 집을 떠나지 말라는 금령, 회 식 때의 여장(旅裝) 등은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 나 오랜 랍비 전승 가운데에는 '새로운 파스카' 에 대한 희망을 담은 격언이 있다. "그들은 그 밤에 구원받았으 며, 또한 (장래에도) 그 밤에 구원받으리라." 〔신약성서의 과월절〕 신약성서에서는 파스카를 구약 성서와는 다른 시각에서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키고 있 다. 최후 만찬에 관한 보고뿐 아니라 예수의 설교에서도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사도들과 그 가르침을 계승한 이들 의 서간들과 묵시록에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파스카" 라는 주제를 즐겨 다루고 있다. 특히 요한 복음 사가는 예수의 공적 활동을 세 번의 파스카 축제를 중심으로 정 리하며 보고하고, 예수를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약성서의 최후 만찬기 : 신약성서에는 네 가지 최후 만찬기(마태 26, 26-29 ; 마르 14, 22-25 ; 루가 22, 15-20 ; 1고린 11, 23-26)가 수록되어 있다. 공관 복음 사가들과 바오로 사도는 각기 독특한 표현 방법으로, 예수께서 유 대인들의 전통적 과월절에 제자들과 함께 드신 마지막 이별의 만찬에서 새로운 파스카가 비롯된 장면을 보고하 고 있다. 네 가지 최후 만찬기를 비교해 보면, 마태오는 마르코의 보고를 베꼈고, 루가는 마르코와 고린토 전서 의 보고를 적당히 뒤섞어 혼합형을 만들었기 때문에, 결 국 마르코와 고린토 전서의 만찬기만이 전승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르코 복음 사가와 바오로 사도는 각기 소속 교 회의 제문을 옮겨 썼을 것이다. 최후 만찬은 틀림없는 역 사적 사실이지만, 공관 복음서는 그것을 파스카 만찬으 로 보고하고 있고, 요한 복음서는 파스카 축일 전날의 만 찬으로 보고하고 있다(13, 1 ; 18, 28 ; 19, 14. 31-42). 많은 학자들은 요한 복음서의 보고를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정양모). 사실 유대인들은 니산달 14일 오후 3시경부터 성전에서 어린 양들을 잡아 파스 카 준비를 하고, 해가 지면서 시작되는 니산달 15일은 파스카 축일인 동시에 이렛 동안 계속되는 무교절(니산달 15~21일) 첫 날로서 파공 축일로 지낸다. 파공 규정을 엄격히 지키던 유대인 지도자들이 이날에 감히 예수를 체포하여 공개 재판을 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관 복음서에 보고된 대로, 대제관들이 의도적 으로 축제 당일에 그리스도를 처형하도록 일을 진행시켰 는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J. Gnilka, Johannesevangelium, Würzburg : Echter-Verlag 1985, 138~169쪽 참조). 이런 난제를 풀기 위해 여러 가지 해석이 시도되어 왔고, 근래에는 당시 지도층이 사용한 공용 달력과 민간에서 통용된 달 력의 차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설득력 을 얻고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예수의 최후 만찬을 파스카 만찬으로 보고하고 있는 공관 복음서나, 예수의 처형을 파스카 어린 양을 잡는 시간(니산달 14일 오후 3 시)으로 보고하고 있는 요한 복음서가 모두 예수의 죽음 과 부활을 '새로운 파스카 로 이해하고 있는 점이다. 여 기서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의 파스카 만찬 순서 또는 종 교적 회식의 순서와 최후 만찬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 다. 유대인들의 파스카 만찬과 종교적 회식 : 유대교의 구 전 법규서인 '미쉬나' 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과월절 만 찬은 대충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① 니산달 14일 오후 성전에서 잡은 어린 양의 몸통을 가장(또는 주 례자)이 받아가지고 집(또는 임시 거처나 천막)으로 돌아와 서 구운 다음, 10~20인이 둘러 앉아서 ②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옛 선조들의 고역을 상기하며 쓴 나물 과 누룩 안 넣은 빵을 곁들여 넉 잔의 포도주와 함께 먹 었다. ③ 먼저 가장이 포도주의 첫 잔을 들고 찬양 기도 를 드린 다음 가족(또는 동석자들)에게 돌렸다. ④ 맏아들 의 물음에 가장이 예식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⑤ 알렐 루야 시편 전반(112-113A)을 부르고 둘째 잔을 돌리며 음식을 먹었다. ⑥ 하느님의 위업을 회상하며 감사 기도 를 드리고 셋째 잔을 돌렸다. 이 잔은 축복의 잔이라 하 였다. ⑦ 넷째 잔을 돌리고 알렐루야 시편 후반(113B117)을 부른 다음 과월절 만찬을 끝냈다. 유대인들의 그 밖의 뜻있는 종교적 회식도 이와 비슷 한 순서로 진행되었다. ① 먼저 손을 씻고 포도주 잔을 들어 찬양 기도를 드린 다음 포도주를 마시는 전식, ② 가장이나 주례자가 빵을 들고 찬양 기도를 드린 다음 음 식과 함께 먹는 본식, ③ 마지막으로 다시 포도주 잔을 들고 기도를 드린 다음 포도주를 마시는 후식,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이흥기). 최후 만찬과 새로운 파스카 : 신약성서의 최후 만찬기 에는 어린 양이나 쓴 나물을 식탁에 올린 이야기가 없 다. 최후 만찬 중에 보여 주신 예수의 동작도 과월절 만 찬보다 이별을 위한 종교적 회식의 범절에 가깝다. 그러 나 빵과 포도주에 관한 설명은 독창적이고 충격적이다. 예수는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며 말했다. "받으 시오. 이는 여러분을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입니다. 여 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마르 14, 22 ; 1고 린 11, 24 ; 루가 22, 19 ; 마태 26, 26). 이것은 자신의 임 박한 죽음을 시사한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빵의 형상 으로 주님의 몸을 받아먹는 새로운 파스카 곧 성체성사 가 비롯된 것이다. 예수는 또한 잔을 들고 사례한 다음 제자들에게 돌려 마시게 하면서 말씀했다. "이는 내 계 약의 피로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것입니다" (마르 14, 24 ; 참조 : 마태 26, 28 ; 루가 22, 20 ; 1고린 11, 25). 여기서, 예수는 새로운 기념을 도입했 다. 그때까지 파스카는 이집트에서의 탈출과 해 방을 기념한 축제였으나 이제 예수가 제정한 새 로운 파스카는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게 된다. 예수의 "내 피"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옛 히브리인들이 액운을 막기 위해 천막이나 집의 출입구에 발랐던 어린 양의 피, 시나이에서 이스라엘 선조들이 하느님 야훼 와 계약을 맺었을 때의 희생 제물의 피(출애 24, 4-8), 모든 속죄의 제사 때 흘린 희생 제물의 피 (레위 16, 14), '야훼의 종' 이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흘린 피(이사 53, 10-11), 그 모든 피가 예수의 '피' 안에 응축되어 있다. 바 야흐로 '새로운 탈출' , '새로운 파스카' 가 시작 된다. 그것은 하느님의 참된 어린양인 그 자신 이 십자가에 달려 흘리는 피의 대가로 얻어진 다. 최후 만찬에서의 '축복의 잔' 은 참으로 '구 원의 잔' 이 되었다. 만찬 후에 예수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그 십자가 의 길은 영원한 생명과 영광으로 '건너가는 길' 이었다. 실상 그는 '사흘 만에' 부활했다.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의 파스카 성찬례 : "우 리의 파스카(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도다"(1고린 5, 7). 바오로 사도의 이 말은, 예수의 십자가 상의 죽음 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구원이 왔다는 승리의 환호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그분을 믿는 이들도 죄악의 노예에 서 자유로운 하느님 자녀의 신분으로, 죽음에서 생명으 로, 어둠에서 광명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골로 1, 12-14).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 밤이나 일요일에 모여 예수의 최후 만찬을 재현하는 성찬례를 지내면서 ① '예수' 의 죽음을 상기하고, ② 부활하여 현존하시는 '그리스도' 를 의식하고, ③ 장래에 재림하실 '주님' 을 고대하는 기도를 드렸다(정양모).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파스카 신비의 불가분의 두 가 지 국면이다. 이 파스카 신비는 세례성사를 통해 영세자 에게 현실화된다. '주님의 날' 이라 불린 일요일, 바로 그 리스도가 부활한 일요일은 새로운 파스카 축일이다. 일 요일에 드리는 미사뿐 아니라 모든 미사에서 파스카 신 비는 끊임없이 재현되고 현실화된다. 미사(성체성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부활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또 한 그리스도인들끼리 하나가 되는 잔치이다(1고린 10, 16-17). 부활절 : 교회는 1년에 한 번 최후 만찬과 십자가 수 난과 부활의 회귀를 맞아 본래적 의미의 파스카를 장엄 하게 지낸다. 교회의 <전례력과 축일표에 관한 일반 지 침> 18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류 구원과 하느 님의 완전한 현양 사업을 그리스도께서 주로 당신의 파 스카 신비로 완성하셨으니,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 카 3일은 전례 주년의 정점이다." 파스카 3일은 성주간 의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 사흘을 가리킨다. 전 에는 '세족(洗) 목요일' 이라고도 불린 성목요일에는 세족례와 주의 만찬 미사를 거행한다. 세족례는, 예수가 최후 만찬에 앞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파격적 행위(요 한 13, 1-17)를 재현한다. 이 예절은 새로운 파스카의 핵 심적인 의미, 즉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려는 예수의 봉사 를 상기시킨다. 이 봉사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 주는 최후 만찬에서 성사(聖事)가 되고, 십 자가 상의 죽음으로 실증되었다. 성금요일에는 미사가 없고, 저녁에 거행되는 전례의 중심은 '십자가 경배' 이 다. 예수가 이 세상에 파견된 목적과 사명이 뚜렷이 드러 난 십자가 상의 죽음은, 모든 신자의 예수 추종에 요구되 는 생활 양식이며 본보기이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 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성토요일에는 밤 새움의 축제' 인 파스카의 전통을 따라 장엄한 부활 성야 전례를 거행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 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또 성경 (말씀)대 로 사흘 만에 일으켜지시고, 게파에게, 다음에는 열두 제 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1고린 15, 3-5). 원시 교회의 신앙 고백문을 인용한 듯한 바오로 사도의 이 말은, 십자 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의 "나타나심”(발현)을 체험한 제 자들의 신앙적 증언으로 그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 네 복음서도 부활의 '과정' 보다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다" 는 부활 복음에 초점을 두고(마르코), 부활한 예수의 마 지막 지시를 실천하는 일(마태오), 성경과 성찬례에서 부 활한 예수의 현존을 체험하는 일(루가), 성령을 통해 역 사적 예수와 내적 유대를 맺는 일(요한)에 역점을 두고 있다. 복음 사가들과 사도 바오로와 그 밖의 신약성서 필 자들은 한결같이, 예수 부활에 대한 신앙은 다시는 죽음 이 위협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희망의 신앙임을 증언하 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파스카는 그를 믿는 모든 이의 파스카이다. (→ 부활 시기 ; 유대교 ; 축제 ; ⇦ 유 월절 ; 파스카) ※ 참고문헌 Gerhard von Rad,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Band I, München : Chr. Kaiser Verlag, 1969(허혁 역, 《舊約聖書神學》 제1권, 분도출판사, 1976)/ John Bright, A History of Israel, Philadelphia : The Westminster Press, 1971(김윤주 역, 《이스라엘의 歷史》 上 · 下, 분도 출판사, 1977)/ P. Grelot · J. Pierron, Ostermacht und Osterfeier im Alten und Neuen Bund, Düsseldorf : Patmos Verlag, 1960(周 코르비니안 역, 《구약과 신약의 파스카》, 분도출판사, 1968)/ 정양모 역주, 《마르코 복음서》, 200주년 신약성서 2, 분도출판사, 1981/ -, 《루가 복음 서》, 200주년 신약성서 3, 분도출판사, 1983/ -, 《마태오 복음서》, 200주년 신약성서 1, 분도출판사, 1990/ 백 플라치도, 《미사는 파스 카 잔치이다》, 분도출판사, 1976/ 정양모, <예수의 최후 만찬과 교회 의 성찬>, 《宗教神學研究》 제3집, 1991, pp. 29~56. 〔金允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