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 본당
陽谷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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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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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양곡리 475-10 소재. 1987년 3월 25일 통진(通津) 본당 관할 양곡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영 보. 관할 구역은 양곡 1 · 2 · 5 · 6리, 구래 1~6리, 미 산리, 유현리, 석모 1~6리 전역과 대곳면 대능리, 양곡 3리 일부 지역. 관할 공소는 누산리, 대곳, 석정 등 3개 소. 〔교 세〕1987년 1,590명, 1990년 1,749명, 1995년 1,959명, 1999년 2,350명. 〔역대 신부〕초대 스미스(P. Smith, 천만길) 패트릭(1987. 3~1990.2), 2대 제정원(濟廷 源) 베드로(1990. 2~ 1993. 2), 3대 김영욱(金永郁) 요셉 (1993. 2~1996. 2), 4대 이완희(李完熙) 스테파노(1996. 2~ 1999. 2), 5대 홍창만(洪昌晚) 루가(1999. 2~현재). 〔본당 전사〕 이 지역에 신앙이 전파된 시기는 1880년 경 서울에서 온 '서울 할머니' 가 누산리에 머무르며 전 교하면서부터였다. 그래서 1917년에는 75명의 신자가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는데, 이것이 누산리 공소이다. 이 공소는 행주(幸州, 현 수색) 본당 관할에서 1936 년 5월 영등포(永登浦, 현 도림동)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가 1948년 11월 다시 김포(金浦)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한편 1961년 김포 본당의 브랜스필드(M. Bransfield, 金) 신부가 이 지역에 본당 분할 계획을 세우고 면 소재지 근 처에 위치한 양곡리에 양곡 공소를 설립하였다. 브랜스 필드 신부는 매년 봄과 가을에 공소를 방문하여 판공 성 사를 주었으며, 가난한 주민들에게 노임(구호 물자로 온 밀 가루)을 주며 서해안 간척지를 농경지로 개간하여 농사 를 짓게 했다. 또한 양곡리의 신자수가 증가하자 1965 년에 양곡리 475번지의 임야 1,063평을 매입하여 공소 강당을 건축하였다. 그 해 8월 5일 양곡 공소가 설립되 면서 통진(通津) 본당으로 이관되고, 통진 본당 불레리 스(R. Bouleris) 신부가 이곳에 인보 성체 수녀회의 수녀 를 파견하고 사도직 단체를 구성하는 등 준본당에 가까운 공소가 되도록 하였다. 그 후 양곡 공소 신자들의 노력과 신자의 증가로 1987년 3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본당 승격 및 발전〕 초대 주임으로 골롬반 외방선교 회의 스미스 신부가 부임하였으며, 관할 지역은 양곡리 · 양능리 · 석모리 · 구래리 · 마산리 · 가오대리 · 홍신 리 · 학운리였으며, 누산 · 대곳 · 석정 등 3개 공소를 이관받았다. 스미스 신부는 부임 직후 평신도 사도직 협의 회를 구성하여 본당 운영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성 당 건립 계획을 세우고 1988년 3월 '성당 건립 추진위 원회' 를 구성하여 인접 대지 318평을 추가 매입한 뒤 이 듬해 3월 25일 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12월 8일 완공 하였다. 이어 1990년 9월 제정원 신부가 부임하여 침체 된 평신도의 활성화와 안정을 위해 평신도 사도직 협의 회를 개편하고, 마리아 수녀회의 수녀들을 초청하였는데, 아직 수녀원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우선 본당을 방문 하여 주일학교와 예비 신자 교리 등 본당 사목을 도왔다. 그 후 수녀원은 3대 주임 김영욱 신부 때인 1994년 8월에 완공되었으며, 1999년 2월 5대 주임으로 부임한 홍창만 신부는 본당 내실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 인천교구 ; 통진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 사연구소 편, 《천주교 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한국교 회사연구소 편, 《자료로 본 천주교 인천교구사 제4집 - 교세 통계 표》, 천주교 인천교구, 1988.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