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신학
過程神學
〔영〕process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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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1960년대에 미국에서 생겨난 새로운 신학 사조 가운 데 하나. 이 신학의 태동기는 세계 대전의 충격을 받고 태어난 '신정통주의' 신학이 퇴조하기 시작하는 시기와 때를 같이한다. 일반적으로 만물의 근본 질서, 곧 실재 의 근본 성질이 '존재' (being) 또는 '실체' (substance)가 아 니라 '과정' (過程, process)이라고 보는 형이상학을 과정 철학이라 한다. 그리고 과정 철학의 원리, 즉 불변하는 실체나 자존적 · 기계적 개체보다는 사건(event), 형성 (becoming), 그리고 유기적 관계성(relatedness)이 실재로는 더욱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양태라는 철학적 원리를 전제 로 하는 신학들도 일반적으로 '과정신학' 이라 한다. 그 러나 여기서 관심을 갖는 과정신학은 1960년대, 미국이 라는 토양 위에서 자라난 신학,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통찰력에 힘입어 성서의 메시지 를 현대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하려는 특정 부류의 과정신학을 말한다. 물론 이 과정신학의 배 후에는 동서 고금의 다양한 '과정' 철학들이 영향을 행 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즉 "만물은 흐 른다" 고 본 헤라클리투스(Heraclitus), , "경험들의 흐름에 서 본다면 정적으로 고정된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無 我)고 하는 불교의 가르침, "역사를 실재의 역동적 본 성" 으로 포착한 헤겔의 관점, 진화론적 사고 방식을 받 아들여 데모크리투스의 원자론을 포기한 현대 물리학의 실재론, 그리고 경험적 · 실증주의적 실용주의(pragmatism) 등이 오늘의 과정신학을 형성해 가고 있다. 이 특정 형태의 과정신학을 4명의 학자들의 사상적 특징 또는 공 헌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화이트헤드의 영향〕 영국의 유명한 수학자요 철학자인 화이트헤드는 모든 개체, 곧 최상의 실재인 신으로부 터 가장 저급한 실재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체계를 수립하고자 했다. 그는 1928~1929 년의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 - '과정' 이라는 용어는 여기에서 유래한 것 이다 - 에서 현대 물리학의 통찰과 새로운 철학적인 사 고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실 재 이해를 제시하였다. 그에 의하면, 실재의 기본 단위 는 고전적 개념의 실체(substances)가 아니라, '현실재 또 는 현실 계기' (actual entity ; actual occasion)라 부르는 '사 건' (events)이다. 이 개념은 정적인 실체 개념과는 달리 시공간적 의미를 포함하는 역동적 개념인데, 이러한 이 상하고 낯선 용어를 기본 개념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기 존의 이원론적 형이상학의 틀과 용어로는 그가 표현하고 자 하는 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만물의 근 본 단위인 현실재가 우주 속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창조' 와 '타자 창조' 이다. 자기 창조 : 다른 말로 자기 실현은 궁극적으로 만유 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자유' 를 가리킨다. 자기 실현은 자기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현실재가 자기를 실현하 는 데에는 자기 이외의 다른 '자료' 들이 필요하기 때문 이다. 다른 자료들이란 다른 현실재와 '영원한 객체' (etemal object)이다. 여기서 자료로서 다른 현실재란 시간 적으로 앞서 있는 다른 현실재를 지칭하며, 영원한 객체 란 색상, 빛깔, 냄새, 기하학적 성질 등과 같은 '순수 가 능성' 이다. 특정 현실재는 자료가 되는 다른 현실재들과 영원한 객체를 어떠한 방식으로 구체화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같은 작용, 곧 현실재가 자료인 다른 현실 재와 영원한 객체를 '자기의 것' 으로 만드는 과정을 '느 낀다' 또는 '포착한다' (feel ; prehend)고 일컫는다. 결국 '포착' (prehending)이란 현실재가 물리적 자료인 다른 현 실재(여기에는 그 자신의 과거도 포함된다)와 개념적 자료인 영원한 객체들을 '느껴' ,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자기 자 신의 것으로 삼는 과정이다. 이 포착을 통하여 서로 다 른 현실재들이 내적으로으로' 연관된다. 이 말은 현실재들 이란 서로 고립된, 자족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계속 이어 지는 과정 속에서 서로 연관성(관계)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현실재들이 서로를 아무렇게나 무조건 적으로 포착한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재들은 각각 자신 의 주체적 지향 또는 목적(subjective aim)에 의해 대상이 나 자료들을 포착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지 않는 것들은 배제시킨다. 이것이 모든 현실재들이 지니고 있는 자유' 이다. 이와 같은 상대적 또는 관계적 자유를 통하여 현실재는 자신을 실현하며, 그 자유의 결과로서 '만족' (satisfaction)을 얻는다. 타자 창조 : '만족' 의 단계에 이르면 현실재는 더 이 상 경험의 '주체' 이기를 중지한다. 곧 '사멸' 한다. 그러 나 주체로서 사멸한 현실재는 소멸하는 것(無로 돌아감) 이 아니라 다른 현실재들의 자료로서 그 자신을 내어 주 게 된다. 이것이 현실재의 '자기 초월체' (초주체, superject) 의 단계이다. 자기를 실현한 주체로서의 현실재는 자기 실현을 끝내고 다른 현실재의 자료가 됨으로써, 그 타자 에게 '새로움' (novelty)으로 다가서게 된다(각 주체, 현실 재는 독특하다). 타자에게 자신을 내어 준 현실재는 주체 로서는 사멸하였지만 '자료' , 곧 대상 또는 '객체' 로서 는 (그 타자 안에서) '지속한다' (endure). 이상이 화이트헤드가 '궁극자의 세 범주' 로 설정한 '창조성' (Creativity, '다자' (the Many), '일자' (the One)이 다. 자기를 실현한(창조한) 현실재는 언제나 과거의 반복 이 아닌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 과정에서 현실재는 많은 다자(多者)를 주체적으로 포착하여 새로운 일자(一者) 가 되며, 그것은 다시 다른 많은 현실재들을 위한 객체, 대상, 자료로서 자기를 내어 주게 된다. 그 과정을 이끌 어 나가는 힘이 바로 창조성이다. 그러므로 무수한 현실 적 피조물들은 창조성의 구체적 사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원리는 근세의 이원론적 형이상 학을 철저히 극복하고 일원론적 또는 '통전적' 형이상학 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화이트헤드의 철학 체계에서 신은 무엇인가? 화이트헤드에게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현실재이다. 따라서 신이 존재한다면, 그도 당연히 현실재이어야 한 다. 즉 신은 존재 원리의 예외가 아니라 최고의 범례이 다. 신은 현실재가 지니고 있는 속성을 완전하게 실현하 고 있는 최상의 현실재이다. 신은 "모든 만물의 존재 방 식을 설명해 주는 형이상학적 원리의 최상의 범례"이다. 따라서 신은 우주에 있는 모든 현실재들을 포착하나, 반 면에 현실재들은 신을 포착한다. 신은 신을 제외한 모든 현실재들에게 그들의 창조성의 한계를 그어 주고, 각자 에게 가장 이상적이며 최적(最適)의 '시초 목적' (initial aim)을 제공하여, 그들의 주체적 목적에 영향을 줌으로 써 모든 현실재들에게 최상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앞에 서 현실재는 모두 물리적 극(자료 포착)과 정신적(개념적) 극(영원한 객체 포착)의 양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는 데, 이 원리는 신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단지 신 에게 그것들을 각각 '귀결적 본성' (consequent nature)과 '원초적 본성' (primordial nature)이라고 부른다. 신은 귀결 적 본성을 통하여 모든 완결된 현실재를 느껴, 자신의 완전한 포착의 자료로 삼고, 그것을 평가하여, 거기에 '객체적 불멸성' (objective immortality)을 부여한다(단 화이 트헤드의 논리로는 신에는 어떤 현실재도 '주체적' 불멸성을 획 득할 수 없다). 더욱이 신은 그가 포착해 온 객체적 현실 재의 자료들을 다시 세계에 '되돌려 주어' 세계 과정에 계속 지속되고, 과거에 의해 더욱 풍부해지도록 해준다. 따라서 신은 세계(의 현실재)를 포착함과 동시에 현실재 들의 포착 대상이 됨으로써 세계와 내적 상호 관계를 맺 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신은 세계 과정 그 자체에 내재 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세계에 더 커다란 가치와 심미적 강도(asethetic intensity)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강 제적 힘이 아니라 공감적인 설득으로 일어난다는 데 특 징이 있다. 〔하트숀의 공헌〕 신학과 과학의 영역을 분명히 구분지 으려 한 신정통주의의 영향 때문에 1950년대까지도 화 이트헤드의 철학 체계를 신학적인 작업에 응용하려는 사 람은 극히 적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정황에 한 예외적 인 인물이 있었으니 하트숀(Charles Hartshorne, 1897~ )이 다. 그는 화이트헤드와 마찬가지로 모든 구체적인 경험 들을 해명해 줄 수 있는 일반적 원리로서의 형이상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1943년 하버드 대학 에서 시카고 대학으로 교직을 옮기면서(1955년 그 곳을 떠 남) 본격적으로 이룬 업적으로 화이트헤드를 신학의 본 격적인 작업에 원용하는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이 때문 에 과정신학자들이 종종 '시카고 학파' 로 불리운다. 하트손은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 체계를 다소 수정하 면서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사상은 일면 화이 트헤드에 비해 더 일관성이 있으며, 방법론에서도 화이 트헤드의 '철저한 경험주의' 에 비해 더욱 '합리주의적' 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존재' 보다 '형성' 을 우위에 놓는 다는 점에서는 화이트헤드와 의견을 같이하지만, '느낌'의 범주를 모든 현실재의 일반적 특성으로 강조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화이트헤드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범심론, panpsyschism). 또한 '양극성의 법칙' 에는 동의 하지만, 신의 양극성 이론에 있어서는 객체 개념을 거부 하면서, 대신 신의 정신적 극(mental pole)을 '추상적 본 성' (abstract nature)이라 부른다. 이것은 신의 추상적인 자 기 정체성 또는 시간의 연장 속에서도 계속 지속되는 성 격을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또한 화이트헤드의 귀 결적 본성은 하트손에게 '구체적 본성' (concrete nature)을 뜻한다. 이것은 구체적인 상태 속에서 현실적으로 존재 하는 신을 말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신은 그때까지 축적된 세계의 모든 가치들을 소유하게 된다. 결국 신의 추상적 본성은 상황의 변화에 상관없이 영원하고도 필연 적으로 신에게 속해 있는 속성들을 지칭하는 말이고, 구 체적 본성은 상황에 따라서 세계와 갖는 상호 작용을 통 해 신이 얻게 되는 신의 구체적인 모습을 가리킨다. 구 체적인 현실에서 본다면, 신은 '살아 계신 인격체' (a living person)이다. 그리고 신의 삶은 신의 제 사건의 지속적 인 계승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이 점에서 하트손은 화이 트헤드와 다르다. 즉 화이트헤드의 신은 단일 현실재인 데 비해 하트숀의 신은 '사회' 또는 '인격체' (많은 단일 현실재들의 복합체)이다. 신의 양극성(兩極性)에 대한 하 트숀의 입장을 좀더 살펴보면 신의 '추상적인 본성' 은 필연적(necessary)이고, 그의 '구체적인 본성' 은 우연적 (contingent)이다. 추상적인 본성 때문에 신은 타자에 대하 여 독립적(independent)이고, 구체적인 본성 때문에 타자 에 대하여 의존적(dependent)이다. 그리고 필연적이고 독 립적인 만큼 신의 존재는 무엇으로도 위협될 수 없으며, 무엇도 신의 사랑과 정의의 행위를 막을 수 없다. 그러 나 피조물들의 모든 행위는 구체적인 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신학의 빛에서 본다면, 하트손의 작업 가운데 특히 두 드러지는 것은 신의 '완전성' 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이다. 신의 속성에 대한 이 같은 새로운 이해를 위하여 극복해야 할 과제는 토마스 아퀴 나스로 대변되는 '고전 형이상학' 이다. 토마스에 의하 면, 신의 완전성은 피조물들의 상대성(relativity), 우연성 (contingency), 의존성(dependence), 유한성(finitude) , 변화 가능성(changeability)에 전적으로 대조되는 절대성(absoluteness), 필연성(necessity), 독립성(independece), 무한성 (infinity), 불변성(immutability)의 견지에서 이해되고 있 다. 그러나 하트숀에 의하면 이것은 잘못이다. 그는 이 것을 고전 형이상학의 가장 커다란 오류라고 지적하였 다. 왜냐하면 본성적으로 우연적인 세계에 대한 신의 필 연적인 지식, 시간적인 세계를 창조하고 통치하는 신의 무시간적인 행위, 역사 속에 개입하여 인간들에게 사랑 을 보여 주지만 결코 자신을 상대화시키지 않는 신의 행 위는 이해 불가능한 논리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트숀은 '우주적 전제 군주' 에 불과했던 고전 형이상학 의 신의 완전성을 철저히 재해석하였다. 신의 완전은 사 회적인 관계에 있어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신을 능가 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이 진정으로 완전한 사랑이라면, 그는 모든 피조물들 을 완전하게 느끼고 그들에 대해 공감적 이해를 완벽하 게 가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건에서 모든 피조물들에 대해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응답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신은 그의 추상적 본성에 있어서는 최고로 절대적이지 만, 구체적 본성에 있어서는 최고로 상대적이다. 아무것 도 피조물에 대한 신의 사회적 관계성에 있어서 그를 능 가할 수 없다. 오직 신 자신만이 자신을 능가할 수 있다. 그는 '성장할 수 있고, 또 성장한다.' 도덕적으로 더 나 은 것이나 더욱 완전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계에 대 한 느낌과 그것으로 인해 얻어지는 기쁨에 있어서, 그리 고 현실 사건들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또한 세계에 의해 창조된 가치를 소유함으로써 신은 성장한다. 그러므로 신은 '스스로에 의해서만 능가되는, 만물을 능가하는 존 재' (the self-surpassing surpasser of all)이다. 그러므로 신은 전체성에 있어서는 세계보다 더 크다(범신론의 극복). 왜 냐하면 그는 그 자신까지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신은 지식과 사랑으로 인하여 세계의 여러 사건 을 완전하게 포착하며, 이 때문에 그 자신 안에 세계를 포함한다(고전 유신론의 극복). 이러한 신 개념을 하트손 은 범재신론(汎在神論, all-in-God-ism/ panentheism)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은 하트숀의 작업은 거의 폐기된 것으로 인식된 성 안셀모의 존재론적 증명 논의를 다시 불붙인 것으 로 평가되고 있다. 성 안셀모의 신 존재 증명은, 하트손 에 의하면, 신의 존재 양태의 독특성에 대한 위대한 발 견이었다. 하트손은 이 같은 신의 특성을 '완전' 개념에 연결시켰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적용〕 하트숀을 매개로 화이트헤드의 통찰력을 그리스도교 신학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여 러 사람들이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활발 하게 이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미국의 두 신학자를 중심 으로 다루어 보겠다. 존 곱(John B. Cobb, Jr., 1926~ ) : 존 콥은 다원주의 상 황을 진지하게 고려하여 일생 동안 '다종교와 예수 문 제' 로 씨름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존 콜이 화이트헤드 의 철학 체계를 사용하여 《그리스도교 자연 신학》(A Christian Natural Theology)의 가능성을 다시 모색하려 했 다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다원주의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도 그들의 진리 주장을 모두 포용하려면, 화이트헤드의 것과 같은 철학 체계가 필요하고 또 유용하다는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그리스도교적 실존 구 조》(The Structure of Christian Existence)에서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다른 종교에서도 나타나는 여러 존재 구조들 가 운데 예수에게서 성취된 독특한 존재 구조로 해석하고, 이 실존 구조가 다른 존재 구조보다 탁월하다는 주장을 논한다. 즉 다른 종교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 도교가 우월하다는 배타성을 고집한다. 그러나 불교와의 오랜 대화-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대화 상대자는 고 등 종교인 불교, 특히 일본 불교에 제한되어 있었다. 끝에 그는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게 된다. 곧 그리스도교 외의 다른 종교, 특히 불교에도 그리스도교만큼의 진리 가 있고, 그래서 《다원주의 시대에서의 그리스도》(Chist in a Pluralistic Age)에서는 '로고스 그리스도론' 을 전개한 다. 이는 그리스도론적으로 본다면 처음에는 '예수 그리 스도' 에서 예수를 강조하다가 나중에는 그리스도를 강 조함을 뜻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와 연결되는 그 리스도는 곧 로고스이며, 이 로고스는 불교와 같은 다른 '의미 중심들' (centers of meaning) 속에도 '창조적 변형'(creative transfomation)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리스 도' 란 단지 그리스도교적 맥락에서 나타나는 로고스의 변형이다. 이 같은 사상 전환의 결과가 《과정신학과 불 교》(Beyond Dialogue)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콥은 여 기서 단순히 대화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대화 를 발판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의 상호 변혁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콥의 최근의(1990 년 이후) 사상은 '루비콘 강' 이 쪽에 머물러 있다. 즉 우 리들이 지금 종교 다원주의 시대를 맞이하였음에도 불구 하고, 그의 입장은 그리스도교의 독특성을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신앙 주체성의 견지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중심' 으로 하여 기존의 '원' 을 더욱 더 크게 그려 나가겠다는 것이다. 타종교에 대한 '개방 성' 에는 매우 적극적이나, 자신의 '중심' 은 쉽사리 양보 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타종교인들과의 오랜 대 화를 통하여 얻은 결론으로서, 현실적 종교들은(공통점 을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서로 매우 독특함을 알게 되었 기 때문이다. 콥은 이러한 종교 다원주의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 속에서의 서로 상충되는 다양한 진리들을 조화시키는 일에 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류의 미래가 다원주의를 긍정하는, 다양한 진리들의 조화와 통합, 그리고 그 결 과로 나타나는 더 나은 '창조적 변형' 에 있다고 그는 확 신한다. 이 같은 생각 자체는 바로 화이트헤드적인 철학 체계의 하나이다. 오그덴(Schubert M. Ogden, 1928~ ) : 오그덴의 관심은 콥의 것과는 현저하게 다르다. 그의 신학적 관심은 "그 리스도교의 증언을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관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적절한 신학은, 그에 의하면, 성서의 증언에 부합 하여야 하고(appropriate), 현대인이 이해할 수(credible) 있 는 것이어야 한다. 《신화 없는 그리스도》(Christ Without Myth)에서 그는 불트만의 탈신화화 프로그램과 실존론 적 인간 이해를 적극 지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의 행위로서의 그리스도 사건' 이라는 신앙의 걸림돌, 즉 신 화를 남겨 놓았다고 비판한다. 그 대안으로 그리스도 사 건은 어떠한 신화의 잔재 없이 '인간의 주체적 결단' 이 라는 인간 이해로 재해석되어야 한다면서, 그리스도 신 화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후기 하이데거 철학을 이용한 불트만의 실존론적 인간 이해를 인정하면서도, 세속화된 세계에 적합한 새로운 '신 이해' 〔神論〕에 대해서는 아무 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불트만을 비판하였다. 그 리고 하트손의 철학적 작업을 토대로 신 개념에 대한 일 종의 현상학적 기술을 전개하였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철학이 인간 실존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을 제공해 주는 것과 대칭된다. 오그덴은 '신-죽음의 신학' (1963년경 등장)이 신의 죽음 을 선언한 이유는 과거의 전통적인 유신론이 현대 세계 가 직면해 있는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그덴은 이같은 신 죽음의 신 학의 주장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이들과는 달리 새로운 신 논의를 전개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신에 관해 말 하는 것이 제아무리 불합리하다 하더라도, 신 없이 그리 스도교 신앙에 관해 말하는 것 이상으로 불합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The Reality of God》 14). 문제는 신이 아 니라 신을 설명하고 있는 형식, 틀, 언어이다. 이 문제의 근본 중의 하나는 고전 유신론이라는 틀이며, 이 틀을 '과정' 형이상학의 개념, 즉 하트손의 통찰을 빌려 다시 표현하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인들에게 그리스 도교 신앙의 '신뢰성' 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오그덴 의 주장이다. 나아가 과정 형이상학은 이 세계를 긍정하 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오그덴에 의하면, 신은 이 세계 에서 우리의 삶과 진정으로 관계를 맺는 실재이고, 현실 적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들의 행위로 인해 영향을 받는 실재이다(신에 대한 세계의 기여).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신의 존재는 어떠한 특정 존재로부터도 영향받지 않는다 (세계로부터의 신의 독립성). 예를 들면, 신은 이 세계에 대 해 관계를 맺고 이 세계를 사랑한다. 이 점에 있어서 세 계는 신께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세계의 존재나 행위가 '세계를 사랑하는 신' 을 '미움의 신, 무관심한 신' 이 되 게 하지는 못한다. 과정 형이상학에 의한 새로운 신 이 해는 성서가 말하려는 신, 곧 창조주가 되고 역사의 주 인이 되며, 예수 안에서 그 자신을 '결정적으로 재현(再 現)하신' 신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고 오그 덴은 확신한다. 〔평 가〕 과정신학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이를 옹호 하는 사람들은 과정신학이야말로 성서적 유신론에 대해 처음으로 나타난 안성맞춤의 개념 체계라고 말한다. 그 리고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신학의 부르주아적 부 당성과 숨막힐 듯한 합리성(건조성)에 대해 종교적 회의 를 표시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반된 견해 속에서도 과정신학과 과정 사상은 심리학, 사목 상담,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계속 응용되고 있다. 따라서 과정신학 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이 같은 응용 분야에서의 결과 를 더 주목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합리성을 극대화시 키고 있는 과정신학이 과연 그 효율성도 입증할 수 있을 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정신학은 그 자체로 서 아직도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 범신론) ※ 참고문헌 《EDR》(Washington, D.C. : Corpus Publications, 1979)/ J.A. Komonchak, Mary Collins & D.A. Lane eds., 《NDTh》(Wilmingyon : Michael Glazier, Inc., 1988)/ Alfred North Whitehead, Adventrues of ldeas, New York : Free Press, 1933/ The Concept of Nature, London : Cambridge, 1920/ 一, Dialogues of Alfred North Whitehead, New York : New American Library, 1954/ 一, The Function of Reas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29/ 一, Modes of Thought, New York : Free Press, 1938/ -, Process and Reality , New York : Free Press, 1929 corrected ed., 1978(오경환 역, 《과정과 실재》, 민음사, 1991)/ Charles Hartshome, Anselm's Discover, Lasalle : Open Court, 1965/ -, Beyond Humanism : Essay in the Philosophy of Nature, Gloucester: Peter Smith, 1975/ 一, Creativity in American Philosophy, Albany : Suny Press, 1983/ 一, The Divine Relativity : A Social Concept of God, New Haven : Yale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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