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원 본당
陽德院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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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춘천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홍천군 남면 양덕원리 222 소재. 1948년 풍수원(豊水院) 본당 관할의 물구비 공소가 수곡리(水曲里, 일명 물굽이 · 물구비) 본당으로 승 격되었다가 1962년 양덕원리로 이전하면서 본당 이름을 양덕원으로 바꾸었다. 주보는 시몬과 타데오. 관할 구역 은 양덕원 2리, 유목정 1 · 2리, 월천리, 명동리, 제곡리, 용수리, 화전리, 굴업리, 대곡리, 신대리, 유치리, 시동 전 지역과 양덕원 1리 일부 지역. 〔교 세〕1974년 851 명, 1980년 945명, 1985년 809명, 1990년 657명, 1995년 532명, 1999년 501명. 〔역대 신부〕 초대 주재용(朱在用) 바오로(1948. 9~1959. 11), 2대 케니(P. Kenny, 奇) 바오로(1959. 11~1963. 2), 3대 머레이(B. Murray, 咸) 브렌다노(1963. 2~12), 4대 킨(M. Keane, 張) 마티아 (1963. 12~1966. 10), 5대 오코너(P. O' Conor, 權) 파트리 치오(1966. 10~1969. 4), 6대 프렌치(G. French, 范) 제라르 도(1969. 4~10), 7대 플레밍(C. Fleming, 闕) 가비노(1969. 10~1971), 8대 스미스(J. Smith, 千) 요한(1971~1974. 12) , 9대 코메르포드(T. Comerford, 孑L) 토마스(1975. 1~1979. 4), 10대 다기(B.Dagge, 卓) 벨라도(1979. 4~1983.4), 11 대 해리스(D. Harris, 羅) 데렉(1983. 7~1986. 4), 12대 오 하라(J.O' Hara, 河) 요한(1986. 4~1989. 12), 13대 강성구 (姜成求) 사도 요한(1990. 1~1993. 8), 14대 이수영(李壽 榮) 다미아노(1993. 8~12), 15대 정기원(鄭基元) 미카엘 (1994. 1~1997. 8), 16대 양완모(梁完模) 야고보(1997. 9~ 2000.9), 17대 배광하(裵廣河) 치리아코(2000. 9~현재). 〔본당 전사〕이 지역 신앙 공동체는 박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66년 병인박해 이후 크고 작은 박해 를 피해 충청도 내포 지방의 최덕화(야고보) · 박이화 · 지시몬 등이 갈기리(현 홍천군 남면 유목정리)로 숨어 화 전과 옹기 굽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전교하여 교우 촌이 형성되었다. 박해가 끝나고 1888년 풍수원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곳에 갈기리 공소가 설립되었다. 당시 신 자수는 13명이었으며, 이들은 최덕화 공소 회장의 집에 서 공소 예절을 행했다. 1890년에는 공소를 물굽이(현 유목정 1리)로 이전하고, 공소 이름을 물굽이 공소로 바꾸 었다. 1894년에 61명, 1923년에는 114명의 신자수를 보이며, 1923~1925년 사이에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 다. 그 후 신자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마침내 1948 년 9월경 수곡리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본당 승격 당시 신자수는 300여 명이었으며, 주보 성인은 소화 데레사 였다. 〔수곡리 본당 시대〕 초대 주임으로 주재용 신부가 부임하여 물굽이 강당을 성당으로 증축하고 사목 활동을 전개하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성당이 전소(全燒)되 고 신자들도 흩어졌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다시 본당으 로 돌아온 주재용 신부와 신자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1952년 성당을 신축하였다. 이로써 안정을 되찾은 본당 은 주재용 신부의 전교 노력으로 교세가 신장되었으며 수곡리 본당과 관할 공소 신자들이 모두 《경향잡지》를 구독하는 등 신앙의 열의 또한 강했다. 그러나 수곡리보 다는 양덕원 지역이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주재 용 신부는 양덕원리(현 본당 소재지)에 대지를 매입하고 성당 이전을 준비하였다. 그 후 1959년 11월 주재용 신 부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지도 신부로 이임되고, 2대 주임으로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케니 신부가 부임하 였다. 케니 신부는 1962년 10월 양덕원리에 새 성당을 신축하고, 같은 해 11월 본당을 수곡리에서 양덕원리로 이전하였다. [양덕원 본당 시대] 케니 신부는 양덕원리로 본당을 이전하여 본당 이름을 양덕원 본당으로, 주보 성인을 시몬과 타데오로 바꾸었다. 그 후 양덕원 본당에는 머레이, 킨, 오코너, 프렌치, 플레밍, 스미스, 코메르포드, 다기 신부 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들이 사목하였다. 1983년 7월 11대 주임으로 역시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해리스 신부가 부임하여 가정 방문을 실시하고 구역 미사를 봉헌하였다. 또한 성당과 사제관 보수 공사를 실시했으며, 이듬해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 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관내의 무의탁 노인에게 집을 마련해 주었고, 불우 이웃들에게 성금을 전달하였다. 이어 12대 주임 오하라 신부 때는 성당 도색 작업과 성당 보수 작업을 실시하였다. 한편 13대 주임으로 한국인 사제 인 강성구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은 활기를 찾기 시작하 였다. 강성구 신부는 부임 직후 가정 방문을 실시하고, 사제관 개축 공사를 실시했으며, 전자 오르간을 구입하여 미사 전례를 장엄하게 하였다. 1997년 9월 16대 주 임으로 부임한 양완모 신부는 봉고차를 구입하여 먼곳의 신자들이 매주 본당으로 미사 참례를 오도록 하였다. 이로써 제곡 공소와 유치 공소가 폐쇄되었다. 한편 관내 휴양 시설의 관광객들을 위하여 매주일 오전 8시 그곳에서 미사를 집전하였는데, 참여 신자수가 70~150명에 이르렀다. 2000년 9월 17대 주임으로 부임한 배광하 신부는 관내 불우 노인들을 위한 각종 활동을 준비 중이며, 주일학교를 강화하는 등 노인 복지와 청소년 교육에 힘 쓰고 있다. (→ 춘천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향잡지》1090호(1959. 1). 〔편찬실〕
